디멘션 브레이커 Part.7 영혼을 거두는 자(3)
안gel리na 2016-03-01 0
"으, 으음..."
로토는 천천히 눈을 뜨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느낌상, 몇 분 전에 쓰러진 자신이 쓰러지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머, 일어났어요, 로토군?"
"누, 누나..."
하피가 눈앞에서 활짝 웃으면서 물어보는 바람에 로토는 허염없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녀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로토는 하피의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있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어찌보면 참 다정한 남매로 보였었다.
그건 그렇고, 로토와 해어진 지 오래 되었을텐데, 하피가 로토의 이름을 잊지 않은거면 하피도 로토를 보고 싶어했나보다.
로토의 눈에 비춰진 하피의 밝은 미소는 아카데미에서 항상 자신을 향해 웃어준 어렸던 그녀의 미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로토는 허염없이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후훗, 그 사고뭉치가 이렇게 늠름해져서는 이렇게 큰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다니... 좀 놀랍네요."
하피는 로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활짝 웃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하피가 어렸을 때 본 로토의 모습은 카이넌스 못지 않는 막나가는 사고뭉치였나보다.
"무, 무슨... 소리야..."
"잠깐, 더 누워있어요."
로토가 일어나려고 하자, 하피는 얼른 로토의 이마를 꾹 눌러 다시 눕게해버렸다.
"그렇게 나 때문에 위상력을 마구잡이로 쓰고, 잠도 제대로 못 자다면서요? 이렇게라도 쉬고 있어요, 알겠어요?"
"누, 누나..."
하피가 한쪽 눈을 감으면서 단호하게 얘기하자니, 로토는 별 다른 말도 못하고 다시 하피의 무릎에 머리를 눕힐 뿐이였다.
"하아... 로토군, 당신과의 재회가 이렇게 아이러니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
하피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리는듯이 말하자 로토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만 회피할 뿐이였다.
어쩌면, 로토가 이런 사건을 일으킨 것도 참 멍청하다면 멍청한 짓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하피가 벌처스의 홍시영 감시관의 측근인 거 정도는 정보수집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일을 벌여야 했을까?
"... 나, 누나랑 해어지고 나서 내 위상력을 좀 더 갈고 닦아서 독일에서도 인정받고, 한 때는 한국의 플레인 게이트의 탐사대원이기도 했어. 누나가 나 항상 내 위상력은 불안정한 거 같다고 얘기했잖아. 그래서..."
"그래서 나 이제 위상력 잘 써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려고 이렇게 사단을 일으킨 거에요?"
로토의 길게 이어진 말을 끊고 하피는 조금 화난 얼굴로 로토에게 물어보았다.
로토는 독일 아카데미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홀연히 떠나서는 최보나가 탐사탐장으로 있던 플레인 게이트의 탐사대원으로써 활약하기도 했었다.
칼바크 턱스의 말마따나, 로토는 그 탐사대에 있던 시절부터 차원종들의 영혼을 약탈하고 다니면서 카인과 카이넌스와 비슷한 실력의 클로저가 된 모양이다.
플레인 게이트내의 차원종들은 신서울에 나타난 차원종들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플레인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의 로토의 클로저로써의 전투능력도 높았던 것일 것이다.
하긴, 그 정도는 되야 딱 봐도 어린 나이의 로토를 최보나가 믿고 탐사대원으로 썼을테니 말이다.
"누나 목의 그거, 칼바크 턱스가 만든 초커라면서? 그리고 누나는 지금 벌처스의 늑대개팀에 있고, ... 그 홍시영 감시관이란 사람의 측근... 이라면서?"
"..."
로토가 폭포물이 떨어지듯이 거침없이 이것 저것 물어보자 이번엔 하피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하피,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닌... 것이니 말이다.
"누나가 옛날에 괴도 프롬퀸이였던 것도 알아. 괴도의 사진을 보고 누나인걸 딱 알아챘지. 아카데미 때의 누나는 무척 자유로워보였는데... 지금은 무언가에 강하게, 영혼이 묶여져 있는 거 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로토의 이어지는 질문에 하피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의적으로써 구로 난민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던 그녀는 벌처스의 기밀문서를 훔치려다 잡혀버려 홍시영 감시관의 갖은 고문을 받아 결국, 지금의 하피라는 홍시영의 그림자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하피라는 그림자가 되기까지 그녀가 겪은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무서운 기억들 뿐이였고, 결국엔 괴도 시절의 자신을 부정하기까지에 이르고 말았다.
아니, 부정할 수 밖에 없기에 그녀는 마음 한 구석이 항상 아프고, 또 아파왔을 것이다.
"... 로토군,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 지... 당신의 눈으로 알 수 있는 모양이군요? 당신의 눈은 상대방의 영혼이 어떤 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하피는 피식 웃으면서 로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로토의 눈은 그의 위상력과 관련되서 상대방의 영혼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많은 걸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로토가 그 영혼을 바라봄으로써 느껴지는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슬퍼보인다... 기보다는 애처롭다고나 할까?"
"후후, 정말이지 족집개네요 로토군의 눈은."
로토의 말에 하피는 씁쓸하게 웃어보일 뿐이였다.
"어른의 사정이라고만 얘기해둘게요."
"그런 대답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애써 웃어보이려는 하피의 대답이 조금 탐탁지는 않았지만 로토는 별로 캐물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하피, 그녀를 보기 위해서 이렇게 온 거니까.
"하이고... 우리 형님, 못 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으셨습니다, 그려? 쭉쭉빵빵 금발 미인이랑 아름다운 밤이라도 보내신 건가? 목에는 뭔 목걸이유?"
"닥치라, 병X 같은 새X야. 니도 형님 얼굴 안 본 지 오래되서 맛이 갔나?"
"여전히 거친 말씀이십니다, 기철이 형님. 내가 그래서 우리 형님 좋아하지요."
"니 게이가? 딴 데 가서 알아봐라."
한편, 하피와 로토가 기쁨의 재회를 하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카이넌스와 피닉스는 차원전쟁 이후, 3년만의 재회를 하고 있었다.
차원전쟁 이후, 연락이 끊겨 3년동안 있는 둥, 없는 둥 지내온 두 사람은 로토가 일으킨 심령사건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카이넌스가 워낙에 돈을 밝히고 혼자 살기 때문에 해결사 일을 하고, 피닉스도 어영부영 알바나 하다 최근에 하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늑대개팀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카인헌티 들었다, 니 유니온 따까리라카데?"
"허이구, 우리 박정인이 입도 싸지... 쓰잘떼기 없는 걸 ***고 다니네잉?"
피닉스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비웃자, 카이넌스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였다.
카인의 의도가 결코 나쁜 뜻은 아니였지만, 삐딱하기로 또 소문난 카이넌스에겐 소 귀에 경읽기만도 못했던 것이다.
"니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건데? 돌았나? 애새X들 모인데서 푼돈 벌을라카나?"
"햇님이야말로 나한테 뭐라할 처지는 아닌 것 같수다... 목에 건 거, 그거 쵸커 아닙니까? 옆에 같이 오신 미인 분도 목에 그거 차고 계시는데... 햇님이야말로 당췌, 뭐하고 지내시는 거요?"
"내가 먼저 물었다 아이가?"
"나는 푼돈 번다치고, 햇님은 모가지가 걸린 거 아닙니까? 어느 쪽이 더 우선순윈데?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거 같아?"
"... 지X 똥싸고 있네..."
점점 더 격해지는 대화속에서 피닉스는 담배를 마저 피며 카이넌스의 말을 회피할 뿐이였다.
"에휴... 뭐 길게 묻지는 않겠수다. 그건 그렇고... 그 쵸커를 만든 놈이 누군지는 아쇼?"
"뭐하는 놈인데?"
"칼바크 턱스라고 하는, 차원전쟁 시절 차원압력계의 가장 뛰어났던 과학자라고 합니다."
"근데 그 이과놈이 왜?"
"... 그놈이 지금 이드... 남궁연화랑 같이 있다고 합디다."
"... 아니, 뭐야...!"
카이넌스의 말에 피닉스는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격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피닉스도 디멘션 브레이커 맴버였던 이상, 배신자였던 이드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런 배신자가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쵸커를 만든 자라면 그냥 흘려들을 수 없을 것이다.
"피닉스...?"
"아... 하피,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저 먼치에서 하피가 피닉스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부르자 피닉스는 살짝 당황스러워하며 하피에게 손사레를 쳤다.
"허이구... 우리 햇님, 여자한테 잡혀사시나?"
"잡혀살긴, 왠 **X헌티 구해줄라꼬 얼마나 개고생하는데..."
"호오~?"
"건들지마라, 내 꺼다 아이가?"
"무슨 물건이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피닉스의 능청스런 말에 카이넌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음이 섞인 헛웃음을 터트리며 어개만 들썩일 뿐이였다.
"아무튼, 나는 나대로 잘 지내고 있응께, 걱정하지말그라."
"딱히 걱정 안 했으니까 담에 뵐 때는 저 하피라는 누님 데리고 오쇼."
"내가 왜, 임마!"
이번엔 카이넌스의 능청한 말에 피닉스가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 누님한테서 미묘한 술냄새가 났단 말이오. 바로 자뭉이슬! 술친구론 딱 제격이지 않겠수?"
'하피는 와인 마시는데, 어떻게 소주 냄새가 난다는 거야..."
카이넌스의 말도 안 되는 개그에 피닉스는 맥이 쫙 빠지는 느낌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21살 밖에 안 된 놈이 그동안 얼마나 마시고 다녔으면 와인을 좋아하는 하피에게서 술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카, 카이 오빠...!"
그 때, 카이넌스와 피닉스 앞에 제이와 슬비가 나타났다.
늑대개팀의 하피와 피닉스와 마찬가지로 검은양팀들도 구로에서의 차원종 퇴치를 하던 와중에 칼바크 턱스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이곳, 마천루까지 오게 된 모양이다.
"이슬비...?"
카이넌스는 슬비가 힘들어보이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며 그녀를 부를 뿐이였다.
"뭐야...?'
"검은양...?"
"**...!"
곁에 있던 피닉스, 하피, 로토도 한마디씩 내뱉으며 검은양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탁!
"카이넌스 씨, 수고하셨어요. 당신 덕분에 로토를 채포할 수 있을 거 같네요."
검은양팀 뒤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면서 김유정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카이넌스들에게 나타났다.
위상능력자가 아닌 그녀가 이 마천루 옥상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검은양팀의 호위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뭐, 뭐야...!"
"뭐, 뭐라고...!"
김유정의 차가운 말에 카이넌스와 로토는 입을 떡 하니 벌리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로토는 그렇다 쳐도, 검은양팀의 의뢰를 받아 로토를 검은 해결사 맴버로 넣을려고 하던 카이넌스에겐 놀랄 노자였던 것이다.
"어이..."
"로토군...?"
피닉스와 하피는 각각, 카이넌스와 로토를 보고 어리둥절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What the FXck...!'
"아니, 이것 좀 보십쇼... 의뢰 내용이랑 좀 다른 거 같은데요?"
어이가 없어질대로 없어진 카이넌스는 속으로 별의 별 욕을 하면서도 애써 웃어보이면서 김유정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니에요, 로토는 검은 해결사에 들어가게 될 거구요. 그 전에 저희 검은양팀이 유니온의 반 클로저 격리시설에..."
"그래서 당신네들 입맛대로 애를 바꾸겠다는 거 아니요, 빌어쳐먹을!!"
김유정의 말을 끊어버리고 카이넌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를 부드득거리는 카이넌스는 당장이라도 지나가는 사람 죽일 듯이 매우 사나워보였다.
"... 카이넌스 씨...!"
김유정은 카이넌스를 똑같이 노려보며 그의 이름을 부를 뿐이였다.
"뭐어~? 격리시설? 김유정 씨, 당신 바봅니까? 격리시설이란 단어가 애초에 듣기 좋다고 생각하세요? 애당초, 격리시설이 뭐하는 덴 지는 아시고 계시는 겁니까! 로토 녀석이 영혼을 다룬다니까 당신들 도구로 쓰기 위해서 격리시설에 가둘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
"어이, 그리고 이슬비! 너는 일이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나한테 의뢰랍시고 날 이용할려고 했던 거냐!"
"그, 그게...!"
카이넌스의 격한 추궁에 김유정과 슬비는 별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슬비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원치 않았는 지, 카이넌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였을 것이다.
단지, 의도치않게 카이넌스를 속이게 된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
"나한테 이빨 털더니, 나를 이용할려고 해? 내 통수를 쳐? 이 유니온 개X끼들이!!"
탁!
카이넌스의 눈이 점점 검붉어지고 두 손이 핏빛으로 물들어지자, 피닉스가 얼른 카이넌스의 오른팔을 잡아버렸다.
카이넌스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데, 이 분노조절이 되지 않고 폭발해버리면 그의 의사에 관계없이 눈동자가 검붉어지고, 입에서는 송곳니, 팔은 칼바크 턱스 극찬(?)했던 블러디 핸드로 변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흡혈귀 비스무리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되는데, 이는 차원종들을 겁주기엔 꽤 탁월했다고 한다.
"... 이거 놓으쇼, 형님... 역시 유니온 새X들은 믿을 놈들이 못 된다, 이거지...!"
"**놈아, 적당히 해...! 니가 여기서 난동을 부리면 어쩌자는 거야!"
입에서 송곳니까지 나온 영락없는 흡혈귀의 모습이 된 카이넌스의 반항에 피닉스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카이넌스가 검은양팀과 싸우게 된다면 김유정과, 이슬비, 제이는 카이넌스에 의해 살해되고 말 것이다.
하물며, 사건이 더 번져서는 카이넌스라는 엄청난 학살자에 의해 유니온은 큰 인명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야 말로, 신서울이 피바다가 되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일 것이며, 더군다나 옛 스승을 유니온으로부터 잃어버린 복수심을 가진 카이넌스라면 더더욱...
"카이넌스..."
한편, 로토는 자신을 변호해주는 카이넌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카이넌스가 유니온에 대한 악감정에 비롯된 변호라지만 로토는 영혼의 눈으로 본 그의 악감정은 상상도 할 수 없은 거대한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가 검은양팀의 의뢰를 받아 자신을 갱생시키려 한 카이넌스를 다시 생각해보니, 그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이, 카이넌스...! 그 말은 좀 기분 나쁜걸? 우리 리더랑 유정 씨에게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김유정의 옆에서 제이가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앞에 나서자, 카이넌스도 지지 않고 제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형제의 술잔을 기울인답시고 별의 별 얘기를 해왔던 사이라지만, 제이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야속했나보다.
"후우... 우리 제이 햇님이 설마 이렇게 통수를 치실 줄은 상상도 못했수다?"
"통수를 치긴 무슨... 로토가 일으킨 사건들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야. 격리시설에 간다고 해서 죽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죄값을 치루는 거 뿐이라고.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카이넌스..."
점점 자신의 감정에 따라 입을 여는 카이넌스를 보다 못한 제이는 카이넌스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제이도 카이넌스가 얼마나 유니온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검은양팀인 슬비와 김유정을 모욕하는 카이넌스의 말을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로토가 일으킨 심령사건은 죄값을 치뤄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까놓고 말해서 로토가 아무 처벌없이 검은 해결사에 들어가기는 좀 그럴 것이다.
"하, 나... 미치겠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카이넌스는 제이의 말에 수긍이라도 됬는 지, 머리를 잔뜩 헝끌어뜨리며 짜증을 부리기 바빴다.
지금은 감정이 조금 진정됬는 지, 카이넌스는 제이의 말이나 피닉스의 말이나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피닉스의 말마따나 여기서 검은양팀과 싸운다고 해도 이득볼 게 없을테니 말이다.
"... 카이넌스 씨, 당신에게는 의뢰 내용을 다르게 알려드려서 죄송해요. 당신이... 우리 유니온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에요. 하지만..."
"하하하하하!! 여전히 그놈의 절차, 절차에 목숨거는 건 여전하시군요, 검은양팀!"
투타타타!!
이번에도 김유정의 말을 끊은 또 다른 누군가의 호탕한 목소리와 함께 마천루 옥상 옆에서 커다란 헬리콥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 뭐에요! 왜, 왜 자꾸...!"
"이, 헬리콥터...! 설마!"
"그만 끊으라구요오!!"
카이넌스의 경악에 찬 목소리 때문에 김유정은 자신의 말을 뚝 짜르는 그에게 버럭 화를 냈다.
"크하하하하!! 꼴이 말이 아니구만, 카이넌스!"
헬리콥터의 문이 열리고 문 안에서 카인 세라이트가 오른손에 찬란하게 빛나는 광검을 잡고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평소의 차가운 그의 모습과는 많이 상반되는 모습이였다.
"박정인이, 니 거서 뭐하노!!"
피닉스가 삿대질을 하며 헬리콥터 안에 있는 카인에게 사투리를 남발하며 소리쳤다.
"흥, 오랜만에 보자마자 삿대질에 사투리야? 누가 부산 사나이 아니랄까봐..."
카인은 오랜만에 보는 피닉스를 바라보며 피식 웃을 뿐이였다.
카이넌스와 마찬가지로 함께 셋이서 죽마고우로 지낸 사이니, 아무리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이라고 해도 카인에겐 제법 감동적인 재회가 될 것이다.
"부산 래퍼 정상수 씨가 있다면 부산 클로저 이 피닉스님이 있다 아이가!"
"무슨 소리에요, 이 멍청한 불닭 같으니!"
"끄아아악!!"
피닉스의 우승꽝스런 발언에 보다 못한 하피가 피닉스의 양 볼을 꼬집기 시작했다.
검은양팀과 카이넌스의 마찰로 인해 상황을 지켜보던 하피였지만, 이런 상황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피닉스가 좋게 보일 리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흐음~ 피닉스 형, 안 본 사이에 굉장한 미인 분과 사귀는가 보네?"
"미안하지만 아니에요, 이 멍청한 불닭 따위, 트럭으로 줘도 싫답니다."
카인의 비아냥을 놓치지 않던 하피가 활짝 웃으면서 피닉스가 들으면 슬플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 하피이~! 아, 아무리 그래도~!"
"입 **요, 불닭."
"녜에..."
"크하하하!! 이것 참, 피닉스 형, 여자한테 잡혀사는 거야? 형 답지 않은걸?"
하피와 피닉스의 우스갯스런 모습에 카인은 여전히 평소와 같지 않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말했다.
"뭐, 아무튼간에 말이야... 지금 한가롭게 여기 보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에요, 제이 씨?"
"뭐, 뭐야...!"
카인의 말을 듣자마자 제이는 불길한 예감을 듣고 슬비와 김유정쪽으로 얼른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으윽...!"
"이, 이거 놔요...!"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냐는 듯이, 김유정과 슬비가 누군가에게 뒤에서 잡혀 날카로운 무기에 목을 위협받고 있었다.
김유정의 뒤를 검으로 위협하고 있는 자는 불타는 머리카락에 중세시대에 어울리는 붉은색과 은빛의 조화가 이루는 경갑옷에 검은색 망토를 입은, 슬비 또래의 어린 소년 검사였으며...
슬비의 뒤를 단검으로 위협하고 잇는 자는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조끼와 베이지색 바지,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카이넌스 또래의 차가운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사내였다.
아무리 사람들이 카인에게 한눈 팔았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런 기척없이 순식간에 김유정과 슬비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아, 아니, 어... 어느 새...!"
"제이 씨도 한물 가셨나봐요? 실망이군요. 평소 같으면 우리 크루세이드의 간부들 정도는 쉽게 간파하셨을 텐데 말입니다?"
제이는 입을 다물지 못한 표정으로 슬비와 김유정을 바라보는 모습에 카인은 피식 웃으며 제이를 비웃을 뿐이였다.
아무리 제이가 전** 때의 그가 아니라 해도, 수많은 전장속에서 순간순간 배어진 다른 이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기 때문에 제이도, 곁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크크큭, 어이, 대장...! 이런 일에 우릴 쓰는 거야? 이래뵈도 나 귀족인데?"
"귀족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알파퀸이니, 빙검성이니, 신서울 검사들과 싸우고 싶어서 다짜고짜 온 주제에..."
"시끄러, 너 지금 대장한테 반말했지, 앙?"
"** 새X가 입만 뚫려서는... 어이, 대장! 내가 그래서 이 자식이랑 같이 안 다니겠다고 했잖아아!!"
"까미유, 스팅! 그렇게 떠들 시간 있으면 두 숙녀분들 잘 잡아드리라고. 얼마만에 유니온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 제이 씨가 아무리 날고 뛰었다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 어쩌겠냐고?"
까미유와 스팅이라 불리는 자들에게 카인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사악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게 차원종들을 학살할 때보다 더 사악한(?) 카인의 모습은 매우 이질적이였지만, 카이넌스 못지 않게 카인도 유니온에 대한 악감정이 많이 있다는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카인 세라이트, 이 자식...! 무슨 짓이야! 유정 씨랑 리더를 인질로 삼아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렇군요... 좋은 거래 상대란 말이지요. 그 두 숙녀 분은 말입니다, 크크큭...!"
제이가 이를 부드득 갈며 화를 버럭 냈음에도 카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는 시원스럽게 대꾸할 뿐이였다.
"어이, 카인... 너 무슨 생각이야... 너답지 않아...!"
한편, 잠자코 듣고 있던 카이넌스가 송곳니와 검붉은 눈동자를 거두고 평소의 얼굴에 사나움을 띄며 카인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가 반 클로저 집단 크루세이드의 리더라고 해도 이렇게 누군가를 인질로 잡는 비겁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차원전쟁 시절에도 항상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던 긍지 높은 검사였다.
그 점을 대량학살의 마녀라 불린 알파퀸도 인정하였고, 빙검성이라는 고고하고 한없이 차가운 그에게 어울렸던 칭호였다.
그랬던 카인의 곁에 항상 있던 카이넌스였기에, 그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카인을 추궁했던 것이다.
"뭐,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우리가 그렇게 뼈빠지게 차원종들을 죽이고, 또 죽였는데 결국 우리 통수를 치고 드루이드 씨를 죽여버렸으니까."
"어이...!"
"김유정 씨, 인질인 당신에게 거래를 하자니, 좀 웃기긴 하지만 말입니다? 로토가 일으킨 사건들을 모두 용서해주신다면 저희도 두 분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두 분 목숨을 심령사건 죄목을 없애주는 걸로 살릴 수 있잖아요? 이만한 장사가 또 어딨겠습니까?"
카이넌스의 말을 무시하고는 카인은 김유정을 사악한 웃음기를 띄며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 뭐라고요! 그, 그럴 수는...!"
"그러면 이 이쁜 목을 그으는 수 밖에 없잖아?"
"히, 히익...!"
김유정은 자신의 말을 자르고 목에 검을 더 깊게 들이대는 까미유 때문에 다시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언니...!"
"유정 씨...!"
슬비와 제이는 공포에 질려하는 김유정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피닉스, 당신들의 동료였다는 그 빙검성과는 동일인물 같지만, 좀 많이 바뀐 거 같네요..."
"... 녀석이 저러는 거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테니까."
카인에 대해서 익히 들었던지라, 나름대로 느낀 것이 있던 하피에게 피닉스는 입에 담배를 물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카이넌스보단 덜 깊게 알고 지낸 사이라지만, 늘 침착냉정한 그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거라고 피닉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당신들이 뭘 원하는 지 모르겠지만, 왜 나를 도와주려는 거지?"
이 때, 로토가 앞에 나서서 카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것 참, 기껏 도와주겠다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짜증나는 건 당신들에게 휘둘려지려는 이 상황이야! 유니온이든, 당신네들 크루세이드든! 나를 이용할 생각 뿐이잖아! 내 위상력이, 영혼을 다루는 소울테이커니까! 당신네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능력이잖아!"
로토는 자신의 투창을 카인을 향해 거칠게 겨누며 사나운 맹수마냥 소리치기 시작했다.
카이넌스들의 디멘션 브레이커들이 가진 위상력도 희귀하다면 희귀하지만, 로토처럼 누군가의 영혼을 다루는 위상력은 다할나위없는 능력이다.
위상력이라는 게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거둔다지만, 로토의 위상력이 일으키는 파급효과는 설사, 혼란을 일으킨다하더라도 어떤 위상력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토는 지난 나날 동안 자신의 위상력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플레인 게이트 탐사에 참가하면서까지 자신의 위상력을 갈고 닦은 것이다.
그런 자신의 위상력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눈앞에 선한데, 로토가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로토군..."
"이거, 이 꼬꼬마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놈인 건 확실한데?"
하피와 피닉스는 카인을 향해 투창을 겨누는 로토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슬비 또래의 어린 나이를 가진 로토 혼자서 얼마나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겪어왔기에 이런 혼잡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당당해질 수 있단 말인가?
"... 난 그저, 그런 위상력을 가진 네가 그 X같은 유니온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니꼬울 뿐이야. 마음 같아서는 너 같은 위상능력자가 우리 크루세이드를 위해 일해준다면 땡큐이긴 하지만."
카인은 로토의 투창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면서 짜증난 듯한 말투로 대꾸할 뿐이였다.
"난 우리 반 클로저들이 유니온에게 이용당하는 걸 원치 않을 뿐이야. 우리 크루세이드는 클로저들의 진정한 자유를 이륙하기 전까지 해산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유정 씨께서 로토의 처분을 카이넌스의 의뢰대로만 행해주신다면 풀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이상은 봐드릴 순 없다구요?"
"... 으윽...!"
카인이 다시 여유로운 말투로 덧붙이자 김유정은 목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까미유의 검을 신경쓰랴, 카인의 말에 신경쓰랴 힘들기 짝이 없었다.
"다, 당장 답을 드릴 순 없어요...!"
"이것 참,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시나... 까미유, 스팅."
김유정의 호소에 카인은 다시 냉정한 목소리로 까미유와 스팅을 불렀다.
스륵...!
"꺄아악...!"
"아악...!"
그러자, 김유정과 슬비의 비명소리와 함께 까미유와 스팅이 두 사람의 목에 칼을 긋기 시작했던 것이다.
목에 칼이 그어지는 순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면서 두 사람의 목덜미에 흐르기 시작했다.
"유정 씨! 리더!!"
제이는 김유정과 슬비의 피를 보고 깜짝 놀라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카인!! 유정 씨랑 리더를 인질로 잡는 것도 모잘라서 이게 무슨 짓이야아!!"
"..."
이어진 불같이 화난 제이의 말에도 카인은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만으로 제이를 대할 뿐이였다.
"... 정말이지, 여자에게 저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그 고고하다는 빙검성, 본인이 맞는지 의심스럽네요."
하피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면서 카인을 향해 사납게 노려보았다.
여자에게 신사적으로 대하지 않는 남자를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자를 인질로 잡는 것도 모자라 피해까지 입히는 카인에게 질려버린 것이다.
"이거, 이거 봐~ 우리 대장이 괜히 빙검성이 아니라고?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양반이라고? 키킥...!"
하피의 말이 우습게 들렸는 지, 까미유는 키킥 거리면서 그녀를 비웃을 뿐이였다.
"... 제가 보기엔 당신들은 클로저들의 자유를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냥 무한이기주의자들이 자기합리화에 빠진 걸로 밖에 안 보이는군요."
까미유의 말이 불에 기름 붇는 격이였는 지, 하피는 이까지 부드득 갈면서 까미유를 날카롭게 노려볼 뿐이였다.
"뭐... 딱, 여기 까미유를 얘기하는 게 맞습니다만..."
"너 진짜 여디 편이냐? 너도 똑같이 했잖아!"
스팅의 무미건조한 말에 까미유는 버럭 화를 내면서 배신감이 가득찬 호소를 내뱉었다.
"자아, 유정 씨? 이제 사태파악 좀 되시죠?"
"으, 으윽...! 그, 그치만...!"
- 걱정하지마, 유정 씨. 신서울 지부장인 내가 허락하지.
툭!
고통스런 김유정의 목소리와 함께 옥상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지며 듣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는 진지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팟!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의 둥근 무언가에서 세로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갈색 머리카락에 안경을 쓰고, 검은색 코트를 입은 20대 중반의 키 큰 남자가 나타났다.
"지, 지부장님!"
"데, 데이비드 형!"
김유정과 제이는 데이비드 리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데이비드가 어떻게 알고 이 마천루에 자신의 홀로그램 무전기를 떨어뜨릴 수 있었단 말인가?
"... 데이비드 리...!"
"이열~ 우리 크루세이드의 척살대상 1호님 아니셔?"
"... 저 자가..."
카인을 비롯한 크루세이드 맴버들도 데이비드의 홀로그램을 보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특히, 카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화가 잔뜩 난 얼굴을 띄고 있었다.
카인이 데이비드 리를 암살 시도했던 적이 있었던 이유가 아무래도 그에 대한 사적인 원한인 모양이다.
'저 양반이 그 카인이 암살하려고 했던 그 신서울 지부장인가...?'
'양반은 못 되는구먼, 어떻게 여길 알고 홀로그램만 떡하니 던져놓는 거야?'
카이넌스와 피닉스도 저마다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으면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유정 씨, 유니온엔 내가 잘 얘기할테니까 로토를 격리시설엔 보내지마.
"그, 그래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한 데이비드의 말에 김유정은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데이비드 허락이 떨어졌다고 해도, 로토는 독일 아카데미 출신의 위상능력자로써 한국에 와서 심령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퍼질 수 있으며 아무리 신서울 지부장인 데이비드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지라도 그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안 됩니다! 로토는 여태까지 많은 심령사건을 일으켜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해요!"
슬비가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억지로 누르면서도 홀로그램을 향해 소리쳤다.
완벽주의자인 그녀에게 혼란의 도가니인 이 자리에서 로토의 처벌을 피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던 것이다.
"그 처벌이 꼭 격리시설이야만 하는 거냐?"
"뭐, 뭐라구요!"
옆에서 카이넌스가 귀찮다는 듯이 묻자 슬비는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격리시설이 어떤 곳인 지 모르는 슬비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그동안 로토가 일으킨 사건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선 역시 격리시설에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카이넌스에게 화를 퍼부었던 것이다.
"애초에 네가 나한테 요구한 건 로토의 갱생이야. 반 클로저가 아닌, 너희 검은양팀처럼 시민들을 차원종으로부터 구하는 그런 히어로틱한 클로저가 되는 거잖아?"
"그... 그렇지만..."
"그리고 사건 피해자들이 클로저들을 이용하려 했던 작자들이라고 했잖냐, 니가? 따지고 보면, 아에 나쁜 일을 한 건 아니잖냐? 그쵸, 데이비드 선생?"
- 적어도 유니온에선 로토의 이번 사건을 썩 나쁘게만 보진 않다는 거지.
의기양양한 카이넌스의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로토가 일으킨 심령사건 피해자들이 선량한 시민들이였으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반대로 클로저들을 이용하려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자들이였기 때문에 유니온 쪽에서 백프로 로토의 심령사건을 나쁘게 바라** 않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피해자들, 자체가 유니온에 있어서 조금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죠. 검은양의 리더인 이슬비를 우리 검은 해결사에 있게 하되, 로토를 감시하라고 하는 걸로 말입니다."
"무, 무슨...!"
"왜, 왜 내가 검은 해결사에 들어가는데!"
"이봐, 카이넌스...!"
카이넌스의 제안에 검은양팀은 입을 쩍 벌리며 항의하듯이 소리치기 바빴다.
슬비만한 인재가 어딨고,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한 검은양팀에 리더쉽 넘치는 슬비가 중간에서 하드캐리해도 모자랄 판국에 고작, 심령사건을 일으킨 반 클로저 감시나 하기 위해서 해결사 그룹 따위에 들어가라니??
"물론, 그렇다고 저희쪽에 계속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감시라는 것도 듣기 좋으시라고 한 거구요. 전 단지, 우리 이~ 슬비 요원께서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할 로토를 너무 못 믿는 거 같아서 한 번 지켜보라고 자리를 마련하겠다 이겁니다. 우리 이~ 슬비 요원께서 성에 차신다면 아에, 다시 검은양에 복귀해도 좋다 이거죠."
"저, 저기... 카이 오빠, 그 이~ 슬비 요원께서 어쩌고하는 거 되게 기분 나쁘거든?"
카이넌스의 비아냥에 슬비는 눈을 가늘게 띄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뭐, 이 방법이 아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로토가 크루세이드 같은 반 클로저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 적잖아 들며, 어디까지나 하피를 찾기 위해 일으켰던 사건이니 오늘 하피를 만난 이후로 그가 더 이상의 심령사건을 일으킬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슬비의 성에 안 찬다면 직접 카이넌스와 로토를 감시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슬비의 의심을 누그러뜨리게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솔직히 제가 말씀드린데로 하시는 게 우리 크루세이드나, 검은양팀이나, 저희나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이쯤에서 서로 물러나는 게 좋다 이거죠. 우리 뒷북치신 데이비드 선생깨서도 같은 생각이시겠죠?"
- 후후, 수많은 차원종들을 학살한 피의 황제가 내기엔 어려운 제안이로군.
데이비드는 피식 웃어보이면서 카이넌스의 제안에 흡족해하는 얼굴을 지었다.
데이비드가 말은 저렇게 했지만 해결사 일을 하기 전부터 그의 능수능란한 화술은 순간순간에 빛을 발했던 적이 많았었다.
물론, 그의 입이 기본적으로 거칠다보니 아이러니한 점도 있으니 말이다.
"... 까미유, 스팅..."
샥!
한편, 잠자코 듣고 있던 카인이 살짝 인상을 쓴 얼굴을 하며 입을 열자 순식간에 김유정과 슬비를 붙잡고 있던 까미유와 스팅이 순식간에 사라져 카인이 탄 헬리콥터 안에 서 있었다.
"윽...!"
"어, 언니!"
구속에서 풀려나자 비명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는 김유정을 슬비가 부축하기 시작했다.
"유정 씨, 리더! 괜찮아...!"
"카이넌스, 네가 이런 제안을 낼 줄은 몰랐어. 너야말로 너답지 않았다고나 할까?"
제이의 외침과 동시에, 카인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카이넌스에게 말했다.
"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겄냐? 네가 백날 슬비랑 유정 씨를 인질로 잡는다고 해봤자 얻을 게 뭐가 있겠냐? 너도 어차피, 로토를 도와주기 위해서라면 이쯤에서 선을 긋는 게 좋다고."
카이넌스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여유스럽게 대답했다.
"... 데이비드, 당신은 내가 언젠가 꼭 죽여주겠어. 그 때까지 목 정도는 잘 씻어두시라고... 출발해."
투타타타타!!
카인이 홀로그램속의 데이비드를 향해 거칠게 내뱉고는 헬리콥터를 출발시켰다.
이윽고, 헬리콥터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마천루 옥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정인... 너 도대체..."
카이넌스는 카인을 태우고 사라지는 헬리콥터를 바라보면서 그의 이름만 나지막히 부를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