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의 시간-Conviction(신념)

바스케즈 2016-02-05 0

내 이름은 강태식.

나는 20년전,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내 집.....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차원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정예 클로저들로만 구성된 울프팩 팀의 멤버였다.

나는 그 당시 울프팩 팀의 리더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밑에는 서지수,베로니카,정지훈이라는 믿음직한 부하 세 명이 있었고, 내 위에는 상부로부터 내려온 지시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관리 요원 데이비드-리가 있었다.

일단, 내 밑에 있던 부하들을 소개하겠다.

서지수는 알파퀸이라는 코드-네임으로 활동하던 우리 팀 내의 최고의 칼잡이었다.

그녀는 긴 붉은 머리를 나부끼며 선대의 유산과 우리들의 미래를 유린한 차원종 놈들을 눈에 보이는대로 회를 쳐버렸다.

그녀가 휘두르는 칼에 쓸려나간 차원종의 숫자는 산 하나를 이룰 정도.

기세 좋게 우리들의 세계를 짓밟던 차원종 놈들은 그녀의 이름만 들었다하면,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기 바빴다.

우리같은 클로저들을 관리하는 유니온 뉴욕 총본부에서는 그녀의 공로를 높이 사, 또 하나의 칭호를 달아주었는데, 그 이름은 우리도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학살의 마녀'.

무척이나 예쁘고, 씩씩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녀에게 나도 한 때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알파퀸 서지수가 우리 울프팩 팀의 미모 담당이었다면, 다음에 소개할 이 꼬마 아가씨는 우리 울프팩 팀의 귀여움 담당이다.

바로, 베로니카.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아 베로니카는 키는 작지만, 착하고, 모범적이고, 솔직하고...... 서지수 만큼은 아니지만 예쁘고....... 그리고 머리도 좋다. 심지어 대담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우리 팀 내에서 염동술사를 맡고 있었다.

염동력으로 사람이든, 사물이든 뭐든지 들었다, 놓았다 할 수도 있고, 조립, 해체, 조작도 할 수 있다.

그 말인 즉슨..... 그녀의 타깃이 된 차원종은 그녀의 실험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절대 무식한 수로 차원종을 죽이지 않는다. 아주 지능적으로 죽인다.

염동력으로 차원종 하나 또는 둘 이상을 공중으로 띄운 다음에 차원종의 뼈를 한 가닥씩 차례대로 부러뜨린 다음, 살과 내장을 분해 해버린다......

염동력으로 잡은 차원종 놈들마다 실컷 괴롭히고나서 죽이는 그녀에게 '학살의 마녀 2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녀에게 이 별명을 붙인 사람은 내 밑에 있던 팀원 중에서 막내 녀석이다.

우리가 적대시하고 있는 차원종이면 몰라도, 사람한테는 절대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순한 베로니카였으니 망정이지,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람이든, 차원종이든 그 즉시 박살내버리는 알파퀸 서지수였으면 그 녀석은 절대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하는 어린 나이에 용감하게 전선에 뛰어든 우리 팀의 막내, 정지훈 군이다.

정지훈 군은 우리 팀 내에서 파이터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가끔 잘나가다가 실수할 때도 있지만, 결코 중간에 포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사용하는 격투 기술은 태권도,유도,합기도,영춘권과 같은 동양 격투 기술만을 고집한다. 그도 그럴것이 어려서부터 무협 만화, 무협 영화, 무협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 살아왔던 녀석이라, 녀석이 있던 화이트-팽의 개인 침실에 가보면 책꽂이와 서랍장이 온통 무협 만화나 무협 비디오로 가득했다. 그리고 방 한 구석에는 중국 무협 영화에서 볼법한 목인장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정지훈 군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목인장을 대련 상대 삼아서 자기가 만화나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봤던 동양 무술을 연마한다.

가끔 울프팩 멤버들 전원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을 때, 정지훈 군이 내 방에 찾아와 대련 상대가 되어 달라고 조르면, 못 이긴 척 방에서 나와 화이트-팽에 마련된 링 위에서 대련을 해주곤 했는데, 적당히 봐주고 그러는 것을 싫어하던 나는 어린 정지훈 군을 원-펀치로 단숨에 K.O(Knock-Out)시켜버린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했던가,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넘어저도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저도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여 계속 나에게 덤벼든다.

나는 그의 정신력에 깊이 존경한다. 지금도........

부하들의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우리 팀의 관리 요원 차례다.

우리 팀의 관리 요원은 데이비드-리. 한국계 미국인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한국인이시기에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는 계급이 높아질수록, 거들먹거리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클로저들과 유니온은 정의의 편에 서서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있던 나에게 있어서 그는 영원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지수와 베로니카에게는 (나까지 포함해서) 좋은 직장 상사였고, 정의의 히어로를 꿈꾸던 어린 정지훈 군에게는 자신의 친형처럼 평생 믿고 따를 만한 우상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갔다.

우리들의 열정과 노력에 세계 곳곳에서 우리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다.

이에 세계 각국 정부와 유니온은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승승장구하던 우리 팀을 찢어놓기 위해서 누가 봐도 정신이 나간 작전 명령을 하달하여 우리 팀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내린 명령은 '태고의 존재' 또는 '이름없는 존재'로 알려진 차원종의 최고 우두머리를 찾아내 제거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름만 알고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수수께끼 투성이인 그 두려운 존재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하달 받았을 때, 우리는 몇 번이나 확인을 요구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이 정신 나간 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뭐,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곳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했던가?

맨 앞에서 싸우는 우리 울프팩 팀 멤버들과, 뒤에서 우리를 엄호하던 사단 규모의 세계 정부 연합군 소속의 기계화 보병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다.

후방에 있던 전진 기지에서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데이비드는 기겁한 나머지, 남아있는 인원들을 전부 빼내기 위해서 본부에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 사이 전방에 나가있던 부대의 피해는 더 늘어났고, 기지 내 구호 천막은 환자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이 침상들 중에는......

베로니카도 누워있었다.

당시, 미 합중국의 워싱턴 국회 상원 의원이셨던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딸이 작전 중에 중상을 입고, 구호 천막 내 이동 침상 위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베로니카만이라도 죽음의 현장에서 빼내어 고급스러운 의료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 팀과 연합 작전을 하고있던 세계 정부 연합군 소속 기계화 보병 사단장을 매수했다.

매수당한 기계화 보병 사단장은 부하들을 시켜서 몰래 베로니카를 화이트-팽 의무실로 옮기고, 함을 발진시켜서 미 합중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베로니카의 집으로 향하게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데이비드가 우리에게 연락하여 화이트-팽의 발진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태고의 존재'라고 불리우는 두려움으로 가득찬 존재가 먼저 이 사실을 감지하고, 자기 부하들을 시켜서 우리들의 기함을.... 우리들의 집을 그대로 공중 분해해버렸다.

미 합중국의 워싱턴 국회 상원 의원의 딸이 전함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나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전원에게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위상력이 없으면 또 모를까..... 위상력이라는 저주스러운 능력 때문에 우리 울프팩 팀은 또 한번 수모를 겪게 된다.

당시에 클로저가 죄를 저지르면 일반인이 죄를 저지른 것보다 세 배 이상의 형벌이 가해진다는 '클로저 세 배의 원칙' 때문에 팀원(울프팩 팀 멤버였던 베로니카와 연합 작전을 같이한 세계 연합군 소속 기계화 보병 사단의 장병들 포함함.)의 죽음을 방조한 클로저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면치 못했다.

그 말은.......

한창 꽃필 시기인 지수나, 지훈 군 그리고 나까지 죽는다는 의미이다.(데이비드는 일반인이므로 제외됨.)

나는 팀의 리더로서......아니, 가족으로서 결단을 내렸다.

"내가 대신 가겠소. 이건 다, 리더인 나의 불찰이오. 그러니 다른 사람은 손대지 마시오."

그 날로, 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 되었다.

"하...... 좋은 인생이었어."

나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에게 죽음을 택할 자유까지 빼앗은 자들이 있었다.

"석방이요. 단, 당신은 지금부터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 할거요. 난 당신의 주인이니까."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죽음을 택할 자유마저 빼앗아 간 건 세계 각국 정부와 유니온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이었다.

치열한 입찰 경쟁에서 살아남아 정치권과 경제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덕 군산업체 벌쳐스가 바로 그것이다.

벌쳐스의 회장은 나를 범죄자 신분의 클로저들을 훈련시키고, 차원종의 잔해를 수집하는 임무나 경쟁 업체의 신기술을 빼돌리는 임무나 스파이를 처리하는 임무에 투입시키는 처리부대의 대장으로 임명했다.

이미 나의 신념은 잃은 지 오래.

나는 벌쳐스에서 관리하는 위상 능력자 수용 시설을 정기적으로 다녀가서 처리부대 훈련생을 데려오고, 그들을 철저히 주인의 노예로 길들였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매.

나는 내 말을 듣지 않는 훈련생을 매로 다스렸다.

딱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그렇게 나는 범죄를 저지른 클로저들을 내 주인에게 충실히 봉사하는 노예로 만들어왔다.

벌쳐스 상부는 그런 나의 노고에 칭찬하면서 '트레이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미 내 예전 이름은 없어진지 오래니까, 상관없다.

그러던 어느 날, 벌쳐스 상부에서 비밀 임무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이 임무는 나를 비롯한 벌쳐스 처리부대 대원들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인생을 더 망가지게 만들었다.

그 때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죽였으면 좋았으려만.....

바로 칼바크-턱스였다.

칼바크-턱스는 본래 차원 압력 연구쪽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던 유니온 과학자였는데, 차원종 군단 지휘관 애쉬와 더스트와 내통한 죄로 반역자 신세가 되어 구금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신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로 은둔하면서 차원종을 소환하는 가방을 만들었고, 그걸 이 날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시간의 광장 한복판에서 작동시켜 시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벼르고 있던 유니온은 이 참에 칼바크를 죽이려고 했으나, 그의 재능에 흥미를 갖고 있던 벌쳐스 상부는 우리로 하여금 살려서 데려오게 하였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칼바크는 내가 이끄는 처리부대 '늑대개'의 경호로 무사히 벌쳐스에 도착했고, 그는 회장의 추천으로 벌쳐스 소유의 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되었고, 그가 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만든게.... 우리 늑대개 목에 걸린 저주스런 물건인 이 차원 압력 초커다.

난 이것 때문에 조금이나마 남은 희망마저 잃고 말았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살을 시도 할 때마다 정찰용 드론 '뻐꾸기'로 감시하고 있던 벌쳐스 이사진은 차원 압력 초커를 작동시키는 리모컨으로 내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딱 죽지 않을 정도만.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해봤지만 그들의 처벌은 언제나 죽지 않을 정도에서만 끝나고 만다.

미치겠다.

하지만 포기했다.

이젠 모르겠다.

이젠 다 놓고, 저 쪽에서 시키는 일만하다가 죽어야지.

누가 죽든, 누가 다치든, 누가 울든, 누가 날 원망하든 난 상관하지 않겠다.

강태식이란 사람은 완전히 죽어버렸으니까.

그러니.... 날 내버려 둬.

그렇게 난 말하는 가축으로써 그들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왔다.

그 잘나가던 영웅 강태식은 어디가고 이젠 비열한 기업 벌쳐스의 충복인 트레이너라는 사람만이 남았다.

그런데......

저 두 녀석은 뭐지?

왜 자꾸 나를 귀찮게 만드는 거야?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굴러들어 오는데 왜?

상을 받기 싫어?

그래, 오냐. 주인에게 대든 노예에게는 벌을 주어야지.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주인의 명령에 거역하는 두 녀석들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그런데.....

포기를 하기는 커녕, 다시 일어서는게 아닌가?

왜 포기를 못하는 거야, 왜?!

나타! 레비아!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 나는 죽은 줄만 알았던 나의 신념이 다시 살아난 것을 느꼈다.

만날 대들기만 하던 문제아 나타와 차원종 주제에 사람 흉내내는 차원종 레비아 두 녀석의 입에서 저런 말이 터져나올 줄이야...

내가 신념을 되찾았을 때, 현 벌쳐스 회장 홍시영은 돈 몇 푼을 위해 인륜배반적인 계획의 마무리 단계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절대로 깨우지 말았어야 했던 헤카톤-케일을 부활시키고, 그가 이끌던 차원종 군단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그렇지......

양심을 팔다니......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나타와 차원종 주제에 인간 행세하고 다니는 레비아 두 녀석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

난 일단 두 녀석들에게 헤카톤-케일을 잠재우는 일을 맡기고, 차원문을 통해 차원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내가 이렇게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녀석 덕분이다.

일이 끝나고나면, 나는 두 녀석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타랑 레비아라는 이름은 실험체 13호라던가, 차원종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라고 봐서 막 생각해내서 지어낸 이름이었지.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줘야겠구나.....

이름은 뭐가 좋을까.......

그래.

나타는 강무영.

레비아는 강설화라고 해야겠다.

나타 녀석은 유독 눈에 띄어서 내가 쭉 지켜보았는데, 태도나 말투가 거칠긴 해도, 자기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몰래 돕곤하지. 그러면서 늘 아니라고해.

그래서 남몰래 선행을 베푸는 나타는 무영(無影)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러줘야겠다.

그리고 레비아는 차원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고, 예의도 바르고, 참 착해. 마치... 하얗고 순수한 눈처럼 말이야.

그래서 눈처럼 하얗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레비아는 설화(雪花)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러줘야겠다.

난 이 두 아이의 아빠로서 사랑으로 보살펴야겠다.

그리고 참된 클로저의 길이란 무엇인지 알려줘야겠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무영아.

설화야.
2024-10-24 22:44: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