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온 신입사원일기 - 1화. 모니터 너머의 그녀(上)
레드바니 2015-01-23 1
1화. 모니터 너머의 그녀.
오후 5시 25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안 그가 홀로 게임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곧 동생이 퇴근해서 올 테지만, 그 전에만 컴퓨터를 끄고 공부 하는 척을 하면 된다.
그의 나이 올해 29, 안타깝게도 내년에 30을 바라는 처량한 인생이다.
“아... 민폐세하 내 레일건 다 빗나가네..”
그도 처음부터 니트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무엇 하나 남들보다 못하는 것이 없었고, 내노라 하는 대학도 나왔지만 문제는...
‘어디하나 꼭 맘에드는 직장이 없단 말이지’
그렇다.. 그는 한 회사에서 3달을 넘겨본 적이 없는 막장이었다.
몇 개의 대기업을 중도하차 하고 그나마 한달 전까지도 꽤나 유망한 중소기업에 다녔었지만, 지금은 그저 여동생에게 얹혀사는 백수일 뿐이다.
“아오... 저놈 보스방 들어오자 마자 눕더니 부활도 안하네, 민폐다 민폐. 유성검이라도 한번 쓰고 죽을것이지”
그가 지금 하고있는 게임은 ‘클로저스’ 라는 게임으로 최근에 심심풀이로 하고 있다.
그는 게임도 직장처럼 진득하게 하지는 못한다. 피씨게임은 엔딩을 보기전에 지워버리고 온라인 게임은 만렙을 찍음과 동시에 잊음, 혹은 만렙 전 다른게임으로 갈아타는 타입이다.
그나마 이번게임은 나온지 얼마 안돼서 다들 고만고만 한데다가 뭣보다 스토리가 제법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게임이란게 다 고만고만 하지만, 나름대로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그럭저럭 스토리라인도 착착 진행되고 무엇보다 뭔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전개라 그의 흥미를 돋구고 있다.
개략적인 내용이라면, 서울 강남에 ‘차원종’ 이라는 몬스터가 나타났고, 여러 가지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그 차원종에게 맞서는 것은 3명의 고딩과 한명의 아저씨. 추후 공개될 초딩 하나까지. 서울의 미래는 그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제법 재밌었다”
그는 오늘도 피로도를 전부 태우고 괜스레 마을에서 점프를 누르며 못내 아쉬운 입맛을 다셔본다.
그의 화면 속에 뛰어다니는 것은 단검을 든 소녀. 그녀가 뛸 때마다 그녀의 분홍머리가 살랑거린다.
‘아... 내스타일 아니야...’
아쉽다, 무지무지 아쉽다. 원래 그의 이상형대로라면 ‘서유리’ 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맞을 것이다. 아니 정말 딱 들어맞으려면 ‘김유정’ 이여야 한다. 적당한 라인에, 목소리에서 풍겨져 나오는 성숙미, 어려운일은 애들한테 전부 떠넘기는 카리스마..
다만, 그는 원래 어떤 게임을 하던 ‘매지션’ 이라는 캐릭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슬비를 선택한 이유. 그 전부이다.
오늘도 채팅창에는 ‘빈유파’ 와 ‘거유파’ 가 현금으로 900원 짜리 외치기를 쓰며 다투고 있다.
‘빈유 찬양하는 애들은 아마 실제로 여자를 만나본적이 없을거야... 그 소리 면전에다 대고 하면 엄청난 욕이라고..’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 여성에게 ‘빈유가 최곱니다!! 빈유는 법칙이다!! 만세!!’ 라고 소리치다 따귀를 맞는 아무개씨를 상상하며 한번 피식 웃어본다.
‘그나저나....’
그는 오늘 사냥중 주운 아이템을 블랙마켓에 올려본다.
-거래 불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이게 뭐지..’
던전을 돌다 심지어 일반몹에게서 떨어진 주황글씨.
그는 생에 최초의 레전더리를 감격스럽게 집어 들었으나, 그것은
-차원 연락장치-
[?????????????]
아무리 봐도 검정색 핸드폰 모양의 물체에 주황색으로 쓰여있는 심플한 이름.
그리고 아이템 설명이 쓰여있어야 할 공간에 있는 것은 회색 물음표 뿐.
인벤에도, 공홈에도, 심지어 상점에도 아무런 정보도 없으며 판매조차 되지 않는다.
‘어제 업데이트되고 아직 적용 안된 신템인가..음..’
문제는 모듈도 코어도 실드도 아닌 것이 버젓이 장비칸에 있다는 것이다.
아직 공개도 안된 아이템이니 엄청나게 희귀할 것 이라는 기대에 그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간다.
하지만 곧 동생이 퇴근하고 올 시간이다. 이제는 슬슬 게임을 끄고, 열심히 이직준비 하는 오빠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그때.
-부우우웅 부우우웅-
책상 옆에 두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누구지?’
핸드폰 커버를 열어 번호를 확인하려는 순간.
-콰앙!!-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강렬한 진동이 건물 전체를 휩쓸었다.
책상위에 있던 컵은 방바닥에 떨어졌으며 강한 충격파에 귀가 일순간 멍해진 그는 양손으로 귀를 막은채 소리의 진원지로 예상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타고 있는 거리.
무너져내린 담장.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
평온한 저녁 주택가는 일순간 전혀 다른곳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불길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인간이 아닌 그것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게임을 너무 해서 **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는 게 우선이다.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선 안 되는 일....
-그러나 마음속 한구석에 바래왔던일-
“스캘....빈져...”
그는 어느덧 자신의 손에서 연신 진동을 내고있는 물체의 커버를 벗기고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버튼을 누른후 귀에 가져다댄다.
“네 여보세요.”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일에 오히려 믿고 싶지 않아서 인지 몸은 평온해 보인다.
아니, 단지 습관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이미 그의 이성은 날아가 버렸다고 해도 좋다.
자연스레 전화를 들고 자연스레 인사를 뱉었다.
그러나 상대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대 차원간 작전개시. 임무 시작합니다.”]
-퍼엉!!-
이번 폭발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등뒤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그의 모니터이다.
순간 엄청난 빛이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와 모든 사물을 하얗게 뒤덮었고,
뒤이어 터져나온 강한 폭발음과 진동이 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엔..
“작전 개시. 임무 시작합니다.”
그녀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