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x슬비]달과 낙타의 꿈을 꿨다

행정법싫다 2016-01-27 0

 

",우리 팀장님 막 옛날에 이세하랑 서유리랑 막 편먹고 신서울 지켰다는데?"

"에이.그 영웅들이 지금 다 S급 요원이니 뭐니하는데 팀장님은 팀장치곤 좀 어리다쳐도 그냥 클로저 뒤치다꺼리나 하는 관리팀장이잖아.전에 위상능력있었으니까 잠깐 같이 합동임무라도 했겠지"

"그거야 그렇지만...팀장님 워낙 자기이야기를 안하니까.막 베일에 싸인?신비로운?그런 매력이 있지 않냐?"

"...취향......."

"!!내가 뭐!그 눈 뭐!예쁘잖아!"

"그래.승진하자마자 야근야근 열매를 집어처먹어서 팀원들을 야근지옥으로 밀어넣는 야근인간이 막 예쁘고 아주 애들 못보고 열흘쯤 되더니 애가 미쳤구만?"

",그래서 보고서는 잘 작성하셨나요?"

 

집에 들어간지 이틀째 되는 날, 커피도 뽑아 마실 겸 뻑뻑한 눈도 쉬게 할 겸 나왔다가 게으름(이라기엔 휴식이 너무 없지만)을 부리고 있는 두 사람을 일터로 돌려보냈다.

아무래도 요새 야근이 너무 많으니 하나 둘 미쳐가는건가.하지만 이번 분기는 차원종이 너무 많이 나와서 보고하고 예산 받고 복구하고 다시 예산청구하고...

아니 그보다 누군 정시 퇴근이 싫어서 안하는 건 줄 아나.나도 일만 없으면 정시퇴근 하고 싶단 말이야.

슬금슬금 어깨까지 길어진 백발을 짜증스레 손으로 빗어 넘기며 신경질적으로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 일 할 시간이다.

 

*

 

집에 못 들어간지 일주일째,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속도로 간신히 이번 분기 보고서며 예산 청구서같은걸 제출한 우리는 그야말로 만세를 부르며 집으로 자러갔으며,

나는 긴 불면으로 지끈지끈한 머리를 꾹꾹 눌러대며 미용실에 잠깐 들러 소싯적 미스틸마냥 짧게 머리를 잘랐다.

나중에 세상이 좀 평화로워지고 나면 머리를 길게 길러보고 싶었는데.

짧은 뒷머리를 새삼 만지작대다 시동을 걸었다.

 

신서울의 도심을 나와 한참 달리면 나오는 드문드문 가로등 켜진 한적한 길,

그즈음해서 모여있는 작은 상가거리,

그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더 이상 차가 진입할 수 없으니 늘 대던 곳에 차를 주차하고

앞발 한쪽을 든 고양이상이 서있는 어설픈 일본식 선술집을 끼고 골목으로 여섯 걸음 들어가면 늘 거기 있는 정**를 화분들이 있고,

어닝에 쓴 조그만 글씨로 간판을 대신하는 작은 술집이 있다.‘달과 낙타의 꿈을 꿨다’.

 

어서오세요~라고 해봤자 슬비 밖에 없나.어서와 대장.”

대장 아닌지 벌써 6년째에요.제이씨.”

 

제이씨는 익숙하게 맛없는 위스키를 한잔 내밀었고,나는 그걸 받아 익숙하게 홀짝거린다.

안주로 나온 땅콩을 으득으득 먹으며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있으면 온 몸에 힘이 없고 머리가 박살날 것 같은 불면증도 좋은 친구 같은 기분이 든다.

 

뭐 어때.우리같은 퇴물들은 옛날에서 머무는거지.”

어머,저 이래봬도 꽤 잘나가는 팀장님이거든요?손님이라곤 저밖에 없는 이런 가게 점장님하고는 다르거든요?”

아이 참 거 할 말이 없네.나 그래도 돈 모아놓은건 꽤 있어.죽을 때까지는 넉넉하게 쓸걸?”

~그거 제이씨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대장 진짜 너무하네!”

 

분홍빛 머리가 하얗게 바래고, 익숙하던 힘을 잃어버린 클로저가 S급 요원 승급 한 달 전에서 퇴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참 짧았다.

클로저가 아닌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내게 남은 것은 얼마 안 되는 연금과 불면증정도.

 

그나저나 슬비야, 이번엔 또 얼마나 못잔거야?”

...글쎄요.딱히 세진 않아서.”

 

열흘쯤 된 것 같아요.중간중간 기억이 없는걸 보면 눈을 붙인 것 같기는 한데 눈감고 자려고 하면 도통 잘 수가 없네요.항상 가위 눌리는 기분이에요.눈이 빡빡하니 아프고 입안이 버석거려서 입맛도 없어요.누가 내 머리를 가지고 정으로 쪼아서 조각하는 것 같아.제이씨,나 좀 도와줘요.나 잠들고 싶어요.투정이 혀끝을 맴돌았다가 쓴 술과 함께 쓸려내려갔다.

투정부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

특히 이 사람에게 투정부리기에는.

 

,너 언제까지 술로 잘래?너 술마시고 또 수면제 먹으려고 하잖아.그러다 큰일난다?”

뭘요.제이씨도 살아있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거냐,그냥 좀비지.”

에이.언제부터 좀비에요?그냥 평범한 할아버지면서.”

할아버지는 심했다!슬비야 나 아직 40대도 안됐어!”

거짓말!”

 

하잘것없는 만담을 하고,조금 웃고,술을 들이키고.

손님 없는 가게를 열어둬서 뭐하냐고 꼬시면 갈등하는 척 문을 잠그고, 벌어지는 것은 결국 한바탕 술판이다.

옛날에 유리의 지갑을 마나나폰이 삼켜버려서 유리는 마나나폰의 뱃가죽을 맨손으로 찢었던 이야기나 실수로 세하의 게임기를 비트로 쏘았는데 그때 세하 표정이 어땠는지,위상력이 없는 아직도 가끔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할 때 왜 안 꺼내지나하고 당황한다거나,이해한다며 높은 곳에 올라갈 때 자연스럽게 점프로 올라가려했다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또 하고,또 하고.이런 이야기가 즐거운걸 보면 나도 늙은 걸까.

 

참 그나저나 슬비야,머리 진짜 안 기를거야?”

안 길러요!”

이제 뭐 엉킬 일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짧은게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거짓말이야.

그런가..그래도 좀 기르면 좋겠는데.길게는 말고.....등까지?”

그러면서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눈이 나를 보고있지만 나는 나를 **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거 보통 머리가 엄청 길다고 표현하거든요?”

 

차마 쳐내지 못한다.취했으니까.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가며.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는 그 눈을 본다. 아마 그곳에는 다시 ** 못하는 그녀가 있겠지.

 

제이씨,못 잔지 얼마나 됐어요?”

매일매일 잘 자.”

거짓말 하지마요.”

넌 한 열흘쯤 못잔 것 같은 애가 맨날 뭐 이리 집요해?”

그건 좀 심했네.저도 열흘쯤 못 자면 쓰러져요.”

 

손을 치우지 못한다.이렇게라도,그래 이렇게라도.

몇마디 잡담을 하고 자연스럽게 손이 떨어진다.뜨뜻한 온기가 머리를 타고 내려와 술기운과 섞였다.

평범한 날일진대 속이 메슥거렸다.술기운에 힘을 얻었다고 변명하며 안 하던 말을 떠든다.

먼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안녕이란 말도 하지 못하고 떠난 그 날.

 

유정이 언니를 보고있어요?”

 

당신은 어째서 여기에 있어?

삐익,하는 이명이 가득한 귀에 습기있는 노랫소리가 박힌다.

달과 낙타의 꿈을 꿨어.

그대로 가게의 이름이 된 노래는 나 역시도 좋아한다.그게 노래가 좋아서인지 제이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손을 꼭 잡아줘요,폴라리스까지

여린 기타소리와 촉촉하고 달달한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나는 그 언니 아닌데.”

 

사막을 밝히는 별이 되길...

그래봤자 당신은 내 별이 아니잖아.

 

“...알아.”

거짓말하지 마요.”

 

손을 뻗었다.그에게 닿지 못하지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술기운이 뜨끈하다.

 

언니 없어요.”

알아.”

 

알긴 뭘 알아.제이씨는 풀린 눈으로 중얼댔다.

 

언니 죽었어.”

 

얼굴이 굳는다.저열한 기쁨이 술기운과 섞여 뱃속을 빠듯하게 채운다.

내가 머리를 짧게 치는 까닭은 내 긴 머리가 그녀를 떠올리게해서다.

,내가 굳이 승진한 이유도 그녀였다.관리요원은 그녀를 너무 많이 떠올리게 했으니까.

이제는 신화로 정착된 이야기에서 뜯겨나가 같은 이야기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모두 기억하지 못할 그녀를 공유할 한명의 전우.

 

그가 영원한 사랑을 바친 이의 기억을,상처를 공유할 사람.

 

있죠,제이씨가 원하면 막 머리도 길러서 갈색으로 염색하고 말투나 버릇같은 것도 바꿀 수 있어요.”

 

손이 얼굴에 닿지 않으니 아래부터 타고 올라간다.

손끝,,어깨를 지나쳐 가슴,멱살.

 

?원해요?”

 

제대로 다림질을 하지 못해 구깃거리는 흰색 남방에 험악한 손자국이 남는다.

나의 제이씨는 나에게 결국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인생에서 사랑스러웠던 이가 있던 순간을 공유할 마지막 사람이니까.

흐린 눈을 마주본다.이 이를 울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유정이 언니를 연기해줄까요?"

 

기어이 제이씨가 무너져 우는 것을 본다.다 뭉개진 발음으로 아니라고 중얼대고,유정언니를 몇번 부른다.아,이 저열한 쾌감.

어떤 이름인지 기억도 안나는 술을 한잔 쾌활하게 마시고 빈 병을 흔들며 비틀비틀 다른 술을 가지고 왔다.

한많은 제이씨는 아직도 엎어져 꺽꺽 울고있었다.좋은 안주다.

 

"...넌...사람이 울고있는데 뭐하냐.."

"다 우셨어요?워낙 보기좋아서."

"애가 크더니 위험한거에 눈떴어.."

 

새로 가져온 술을 반병쯤 마셨을까,호흡을 가다듬은 제이씨가 아무 일 없었던 양 엎어진 채 농을 던진다.

술기운에 머리가 핑핑 돌고,손발은 명령체계가 한두개 더 필요한것마냥 잘 움직이지 않았다.어쨋든 기분은 좋았다.

 

"그럼 나 여기오지 말까요?"

"그럴리가."

"흐흐...그럼 다음에도 이렇게 울려도 돼요?"

"얘가 뭐라는거야.."

 

눈앞에 제이씨가 있었고,제이씨를 괴롭혀서 기분이 좋았다.

 

"또 나로 유정이 언니볼꺼에요?"

"볼꺼야."

"내가 싫다고 이렇게 또 괴롭혀도?"

"괴롭히라지."

"이거 안되겠네."

"원래 반한 사람이 지는거랬어.참아"

"맙소사 이 나쁜 놈!"

 

제이씨의 입에서는 기분나쁘지 않은 술냄새가 났다.

어쨋든 기분은 좋았고,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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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슬 멘탈은 깨부셔야 제맛.

근데 난 뭘 쓴거냐...

2024-10-24 22:43:4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