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세하슬비] 그녀의 눈물

Ryusia 2015-01-21 8

어릴 적, 그러니까 내가 위상력을 각성했을 무렵. 어머니의 과도한 기대와 어른들의 색
안경을 낀 시선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런 내가 있을 유일한 장소는 학교 뿐이었지만,
위상력이라는 존재는 그 학교마저 내게서 빼앗아갔다.

 

이후 내 눈에 비친 세계는 흑백의 세계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훈련과 검사. 유일하게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은 자그마한 전자기기 하나 뿐이었다. 게임만이 유일한 낙이었고,
재미였다.

 

이후 학교를 가게 되서도, 내 관심사와 흥미는 오직 게임뿐이었다. 게임을 위해 용돈을
모으고, 친구들과 놀러가는 것 또한 게임방을 가는것 뿐. 게임으로 인해서 나는 평범해지
고, 인생의 낙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전설의 클로저인지 뭔지하는 엄마의 압박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들어가게
된 유니온 소속의 검은양 팀. 그 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색채를 찾았다.

 

 

" 야, 이세하 ! 게임기 안끄면 날려버린다 ! "
" 알았어, 알았다고. 5분만 기다려. "

 

 

언제나 똑같다. 내가 임무중이 아닐 때 게임기를 꺼내드는 것도, 그걸 지적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그러나 최근 들어서 느끼는게 있다면,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싫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 이세하 ! 지금 당장 끄라니까! "
" 아, 알았다고. 이것만 깨고 끌게. "

 

 

역시나 게임에 대한 욕구는 버릴 수 없던 것인지, 내 손은 계속해서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와 다르게 본능은 사이렌을 마구 울리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라고.

 

본능에 따라 뒤를 슬쩍 돌아보자니, 아니나 다를까. 검은양 팀의 리더인 소녀는 위상력
으로 땅의 돌들을 둥둥 띄우고 있었고, 어쩐지 앞 일이 예상이 되었다.

 

 

" 으아아 ! 알았어 ! 넣을게 ! 넣는다고 ! "

 

 

세이브 파일이 몇개나 들어있는 탓에 부숴지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판단해서는 제
복의 주머니에 게임기를 억지로 집어넣는다.

 

 

" 아 - 이제 뭐하냐. "

 

 

무의식적으로 다시 게임기를 꺼내들려 했지만, 슬비의 압박과 차원종 경보에, 내 행동은
저지되었다.

 

 

 

" 폭령검 전소 ! "

용을 쓰러트린 후 평화로웠던 강남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차원종이 나오기도 한다. 그
것을 막는 것 또한 우리 클로저의 임무이지만, 역시나 요즘은 꽤나 한가하다. 더군다나
나도 슬비도 이미 정식요원으로 승급한지 오래라서 이런 c급 차원종들은 이젠 장난과도
같다.

 

임무가 간단하게, 싱겁게 끝나버려서는 다시금 게임기를 꺼내들려다가 흠칫 하고
는 슬비의 눈치를 보니, 어째 내쪽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것 같기도 해서, 어째서
인지 언짢은 기분으로 게임기를 켰다.

 

아니나다를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익숙한 잔소리마저 함께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야, 이세하. 너 내가 아까부터 게임기 끄라고 했지 ! "

 

 

그러나 기분이 언짢았던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 어쩌라고. 넌 신경이 온통 내 게임기에 쏠려있냐 ?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면서 게임기만 켜면 왜이러는데 !! "

 

 

어째서 내가 이렇게 화를 낸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하지만 게임기만 켜면 이때다 싶어서 잔소리를 해대는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 그래, 니 눈 앞에서 게임 안하면 되는거 아냐 ?! 사라져줄게. 사라져 준다고 ! "

 

 

진절머리 났다는 듯이 머리를 긁고 일어서는 나. 큰소리가 돌아올 것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조용한 그녀가 이상해서 슬쩍 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 야, 너 왜 울어 … !! "

 

 

그렇다. 그렇게 강인하고, 올곧던 소녀가, 지금 내 눈앞에서 울고있다. 내 말에 상처라도 입은걸까. 확실히 소리를 치긴 했지만, 그렇게 울만한 종류의 것이었던걸까.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입에 담은 말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 너 … 맨날 … 게임화면만 … 보는게 … 아니라 … 나도 … 좀 봐달라고 ! 이세하 멍청아 … ! "

 

 

그렇다. 이 소녀는 자신을 봐달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왜 나한테?

 

 

" 야, 넌 누구나 좋아하니까, 딱히 내가 아니라도 봐줄 사람이 많잖아. "
" 너가 아니면 안된단 말야 … . "

 

 

정말 내가 평소에 알던 그 슬비가 맞는 것일까 의심이 될 정도로 지금 그녀의 행동은 매우 연약해보였다.

 

 

" 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건데. "

 

 

무심한 말투를 의도적으로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슬비에게는 이런 말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 듯, 그녀는 나에게, 이번에야말로 진짜 믿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 …… 그야, 좋아하니까. "
" … 뭐 ? "

 

 

우선 내 귀를 의심했다. 나에게 항상 잔소리를 퍼부으며, 거의 앙숙과도 같은 사이인 슬비와 나인데,

그런 그녀가 나에게 '좋아한다' 라고?

 

 

" 야, 농담하지 말ㄱ … . "

 

 

급히 부정하고자 했지만,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진심처럼 보였으며,
또한 그녀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 또한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입증을 주었다.

 

 

" 거짓말 … 아니니까 … . "

 

 

그녀가 조그맣게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의 입에 내 입을 겹쳐버리고 말았다.

 

 

 

 

 

 

 

 

 

 

 

 


" 야, 이세하. 또 게임이야 ? "

 

 

내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내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버린 나로써는 그 잔소리마저 어쩔 수 없이 좋게 들리고 만다.

 

 

" 알았어, 넣을게. "

 

 

세이브 후 게임기의 전원을 끄려고 하니, 그녀에게서 의외의 말이 한번 더 나왔다.

 

 

" … 임무도 없잖아. 해도 되. "
" 어 ? 진짜 ? "

 

 

순간적으로 그렇게 반응한 나였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젓고는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 됐어, 집에 가서 하면 되. "

 


서로 앙숙이었던 우리. 어디가 좋아져서, 어디가 맘에 들어서 이런 사이가 된건지는 모
르겠지만,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투닥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소중한 하루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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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하 청각장애 만든거 다음편은 없습니다.

대신 이거라도 보세요.

이건 대놓고 세하슬비입니다! ( 제목부터 )

2024-10-24 22:22: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