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 me - 슬비의 이야기
카페인의노예 2015-12-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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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는 아침부터 거울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것 저것 한참을 꺼내 여러가지로 몸에 대보기는 했지만, 오늘따라 왠지 더욱 더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평소 입는 요원복을 입고 나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이상한 ** 보일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슬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큼은 그 애한테 한 명의 '여자'로서 보이고 싶었다. 물론 매일 잔소리를 일삼았기에 조금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적어도 임무를 벗어난 상황에서는 '평범한' 여자아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나를 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처음엔 그저 게임 중독자에 노력이라고는 쥐뿔도 안하는 그런 인간으로만 보였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활용하지 않으려는 그가 이해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질투도 났다.
분명 천재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를 위한 단어일텐데,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 모습이 정말 참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조금씩 그의 변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정식 요원이 된 이후로, 그리고 신서울을 구하게 된 이후로 그도 조금은 변하게 되었다.
가끔씩 리더인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는 낯선 두근거림을 느꼈지만, 그것이 정말 그를 향한 이성적 관심인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슬비는 알 수 있었다. 점점 더 그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고, 조금 더 자주 눈길이 갔다. 게임 이외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그와 함께하는 관심사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낯선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참 고민한 뒤에 슬비는 예전에 유리와 같이 쇼핑을 하러 나가서 산 옷을 골랐다.
유리가 '언젠가 슬비도 남자와 데이트를 할 날이 올지 모르잖아?' 라고 말하며 골라준 옷이었다.
핑크색의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만, 유리가 강력하게 권해서 결국 마지못해 입어본 후 산 옷이었다.
슬비는 새삼 유리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그 날이 오늘이 될 줄이야.
슬비는 나가기 전 잠시 책상에 앉아 액자를 들여다 보았다. 액자 속 사진에는 어릴 적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태껏 소중히 보관해온 부모님과의 행복한 마지막 추억이었다.
'엄마, 아빠, 오늘도 절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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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는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여태껏 차원종을 섬멸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위상력이 각성했을 땐 이건 하늘이 준 기회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반드시 내 손으로 복수 할 것이다. 알파퀸이 그랬던 것 처럼, 나도 그들을 공포에 떨게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 뒤의 일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채찍질하며 강해지는 것 만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차갑다고, 냉정하다고 말 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아니었다.
분명 그 날의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평범한 여자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아이쇼핑을 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잠이 드는 그런 하루를 보냈을 텐데.
그리고 언젠가 드라마 속 멋진 남자 친구를 꿈꾸는 그런 일상을 보냈을텐데.
그랬기에 슬비에게 그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의 앞에서는 보호받고 싶었다. 하지만 리더라는 자리가 있기에 함부로 약한 모습을 보일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사람이기에 힘들 땐 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어깨에 기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모습을 꿈꿨다.
볼에 살며시 내려앉는 햇살과, 살랑이듯 춤추는 꽃들과 머릿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그의 손.
[다음 역은 강남, 강남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입니다.]
지하철의 안내 방송에 정신을 차린 슬비는 목적지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는 먼저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서 있었다. 약간은 멍한듯한 그의 표정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쟨 나랑 둘이서 만나는 건데, 긴장도 안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비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바로 뒤에까지 다가왔건만, 세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으, 응? 뭐야, 왔으면서 사람 놀래키지 마."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세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 할 말 없어? 라는 표정으로 잠시 기다렸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왜 그렇게 쳐다 봐? 내 옷이 그렇게 이상해?"
"응?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대회 보러 가는건데 열심히 꾸몄구나 싶어서."
'......하다못해 잘 어울린다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둔탱이. 바보. 멍청이. 속으로 온갖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난 아무하고나 만나는 여자도 아니고, 또 이렇게 꾸미지도 않는데, 너와 만날걸 기대하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옷을 고르고 한참을 신경썼단 말이야.
단지, 너한테 그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데 넌 눈치가 없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나에게 관심이 없는건지. 의미없는 말을 쏟아냈지만 그럴수록 답답해지는건 자신이었다.
그 뒤로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긴장해서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슬비는 새삼 길거리의 커플들이 신기해 보였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지금껏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빠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할 수 있다는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슬비는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너에게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물론, 매일 게임을 하는 너에게 잔소리나 일삼는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임무중에 그런 행동을 하면, 잔소리를 할 수 밖엔 없는걸. 그렇다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니가 조금만 더 내 입장을 이해해주고 생각해준다면, 그리고 나를 이성으로서 대해준다면, 더 바랄것이 없을 것 같은데.
슬쩍 세하를 바라보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에 아마 앞으로 보게 될 게임 대회에 관한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내가 옆에 있어도 계속 그렇게 날 바라보며 날 생각해준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
경기는 나름 흥미로웠다. 리더의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유닛을 컨트롤하는 팀원들의 모습은 슬비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팀의 모습이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제 앞으로 뭘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이대로 헤어지기엔 너무 아쉬웠다.
어쩌다 잡힌 약속인데, 이대로 별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기엔 발걸음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재밌었다고 말하며 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분명 세하의 덕분일거다.
같이 온 사람이 세하가 아니었다면, 나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거리를 걸었다. 이대로 무언가를 할 것이 마땅치 않다면 차라리 시간이 멈추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저거 니가 좋아한다는 그 드라마 아냐?"
세하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XYZ 파일>의 극장판 포스터가 보였다. 몇주 전부터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약속 때문에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걸 잊어버리다니! 하지만 어쩌면 이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그와 함께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럽게 같이 극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응? 야, 이세하! 어디 가?"
극장 안으로 들어간 세하가 잠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다가가니 손에 표 두 장을 쥐고 있는게 보였다. 어쩌면 자신을 위한 배려일지로 모른다.
슬비는 유감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본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그의 그런점이 좋았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여도, 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사심없이 묻어나오는 그 행동들.
어쩌면 그런 점이 너를 좋아하게 만든걸지도 몰라.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너와 사귀게 된다면 그 때 이야기를 해주자고 결심하면서.
***
"그랬었구나."
유정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비는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인 채 그저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도 했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다니.
평소에는 조금은 어리광을 부려도 될텐데, 하고 고민도 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도 됐다.
"일단은 조금씩 다가가는게 어떨까? 남자라는 존재는 말야, 너무 갑자기 다가가면 또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그거, 혹시 언니랑 제이씨 이야기인가요?"
"으, 응?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유정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직 제이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겐 비밀로 하고 있었다. 밀린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한숨 돌리게 되면, 그땐 이야기 해 줄 생각이었다.
솔직히 아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연애를 하는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언니."
"고맙기는. 그런 이야기는 언제든지 이 언니한테 털어놓으렴."
분명 너희에게도 언젠가 따스한 날들이 오겠지. 너무나 곧고 착한 아이들이니까.
유정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이 고백을 받은 날도 이런 날씨였다.
하늘은 너무 투명해서 손으로 두드리면 맑은 노래를 부를 것 같았고, 구름이 유유자적 흘러가는 그런 날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부드럽게 그녀들의 볼을 감쌌다. 누군가를 좋아하기엔 너무나 좋은 날이었다.
-fin.
2화로 구상해둔 이야기도 이렇게 끝났네요 =ㅂ= 사실 처음에 상대 여주인공 역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어요.
처음에는 유리로 생각해뒀다가 정미도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슬비로 하는게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아서 결국 슬비로 했는데 생각보다 쓰는 저도 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이런 달달한 스토리는 한동안은 안 쓰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사실 제가 이런 스토리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던지라 많이 부족하기도 했고 다른 이야기를 써볼려고 미리 한참 전부터 생각해둔게 있기도 했구요
(사실 막상 올릴지는 좀 고민이긴 해요)
무튼 귀한 시간에 이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 _) 다음번에는 다른 이야기가 생각난다면 그때 다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