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x워해머] 무제 - 프롤로그
루프트바페 2015-01-17 1
“또 게임이야?”
슬비가 말한다. 푸른 눈의 소녀는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세하의 타원형 게임기를 바라봤다. 세하는 슬비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게임의 마무리만 열중 했다. 소년은 구름이 꼈던 하늘이 맑아져 햇빛이 내려쬐자 지붕이 날아간 강남 도로가의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일어나 본능적으로 그늘진 장갑차 곁으로 움직였다. 슬비는 그런 세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쉬며 세하의 뒤를 쫓아 어느새 장갑차 측면의 반응장갑에 등을 기대고 있는 세하에게 다시 말했다.
“안 들려? 작전 대기 중이라도 한 눈팔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귀찮게 좀 하지 마.”
세하는 대답조차 하기 싫다는 투로 말했다.
“이게...!”
슬비는 살짝 화가 나 한 발짝 내딛으며 주먹을 쥐었다. 세하는 아주 잠깐 위협을 느꼈는지 슬비를 뒤로하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은 몸을 지키려는 자기보호본능이 아니라 게임기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었다.
“또, 또, 또. 그러다가 싸우겠다.”
그때 백발의 남성이 노란 선글라스를 티셔츠 밑단으로 닦으며 다가왔다. 슬비는 짜증이 난 상태로 그에게 따지듯 말했다.
“아저씨, 쟤 좀 어떻게 해봐요. 아까부터 저러고 있단 말이에요.”
“아저씨 아냐. 오빠라고 불러.”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나한텐 문제야. 아픈 것도 서러운데 늙어 봐. 아, 그래 뭐 여하튼 세하 너는 게임 좀 그만 해.”
그는 슬비의 강렬한 눈빛에 마지못해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세하는 들은채 만채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예- 이판만 하고 끌게요.”
“옳지. 잘했다.”
대충 말하는 세하의 대답에 그는 자기가 할 일은 이미 했다는 식으로 설렁설렁 넘어가려는 분위기에 슬비는 다시 한 번 한 숨을 쉬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진지해지만 안 되나 하고 속앓이를 하는 슬비는 세하가 정말로 게임을 끄는지 안 끄는지 보기 위해 옆으로 다가가 세하가 하는 게임을 지켜봤다.
‘애들이야, 애들.’
그 사이에서 제일 어른인 그는 두 청소년들을 보며 생각했다. 슬비는 평소 아이들을 이끄는 리더이며 언제나 진지하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역시 어린애 티는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까와 달리 진지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벌써 한 판을 넘긴 게임을 보는 천진난만만 표정을 지으며 어느 순간부터 슬비는 작은 화면을 통해 비춰지는 게임을 거의 구경하는 눈빛이었다.
딱히 뭐라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도 일일이 대응하기 귀찮았으니까. 어께도 뻐근한게 비가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목덜미를 주물럭거리기나 했다. 별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것이, 이곳 강남은 아주 평화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차원종이 출몰해 귀찮아 지기는 했지만, 그리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본인 또한 심심한 나머지 슬비와 세하 곁에 서서 슬비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구경했다.
게임기의 화면 속에서는 중장갑의 병사가 거대한 망치를 들고 녹색 괴물들을 통쾌하게 박살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게임 속 장면이기 때문에 그는 거리낌 없이 피투성이 화면을 보며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화면을 통해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