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장 이세하] 운증용변 STD(雲蒸龍變 Seha The Dragon) 【 16 】

가람휘 2015-11-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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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장 이세하] 운증용변 STD(雲蒸龍變 Seha The Dragon)









【 3 】일상(2)



3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늦게까지 자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잠에서 깨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은 모두 아직 잠에 빠져있다.

 화장실로 향하여 씻음과 동시에 옷을 걷어 옆구리의 상처가 전혀 회복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역시 값비싼 고급 앰플을 사야하는 걸까. 비싼 앰플들은 보급용 저가 앰플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서 상처의 치유속도와 치유량이 훨씬 높다고 들었으니, 이 정도 상처도 며칠이면 완치되리라.
 가급적 휴가가 끝나기 전에 상처가 나았으면 하지만, 아마 그건 힘들겠지.

 “…산책이라도 할까.”

 TV를 보자니 그 소리에 가족이 깰 것 같고, 다른 무언가를 하자니 내키는 것이 없다.
 그저, 매일 이 시간에 출근을 위해 나갔던 것이 습관이 되어 바깥 공기를 쐬고 싶을 뿐.

 “후으아…,”

 밖으로 나오자, 아직 조금 추운 새벽의 공기가 폐 깊숙이까지 드나들며 새하얀 입김을 만들었다.
 너무 얇게 입고 나온 탓일까, 몸이 으슬으슬 떨려 웅크리게 된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이왕 나온 거 편의점이라도 들렸다가 가자. 마침 목이 마르기도 하고, 탄산음료가 마시고 싶기도 하니까.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매장 하나 뿐. 다만 거기조차 집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는 탓에, 도보로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왕복 40분의 거리.
 역시 집에 돌아가서 겉옷이라도 챙겨 입고 나오는 게 좋을까.

 “아, 유리누나!”

 잠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아침안개 너머부터 작은 실루엣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미스틸?”

 그는 다름 아닌, 검은 양의 동료이자 이제는 아주 친해진 동생, 미스틸테인이었다.

 “약도를 받았지만, 그래도 해맬 것 같아서 아침 일찍 나왔는데 다행히 바로 만났네요!”

 암만 그렇다곤 해도, 보통 이렇게 새벽같이 찾아오나? 아니, 그보다 대체 무슨 일로?

 “유정 누나랑 세하 형이 전해달라고 했어요!”

 미스틸이 찾아온 이유에 의문을 갖자, 미스틸이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유정누나가 전에 못 준 보너스 대신이라고 했어요.”
 “보너스 대신?”

 미스틸이 건네 준 쇼핑백을 펼쳐보자, 그 안에는 포장된 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한우는 당장은 무리라 나중에 사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미리 눈치 채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미리 눈치 채지 못해서…. 아무래도 세하가 유정 누나에게 말을 한 모양이다. 미스틸은 모르는 걸로 보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리고 이건 세하 형이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유정 언니의 쇼핑백과는 대조적으로 성의 없어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받았다.
 세하답다고 할까….

 “이건?”

 봉지를 펼쳐보자, 그 안에는 주먹만 한 작은 상자와 편지봉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봉지에서 꺼내지 않은 채 봉지 안에서 슬쩍 상자를 열어보자, 그 내용물이 눈에 들어왔다.

 “앰플…!”

 앰플이다. 그것도 매우 비싼 것으로 알고 있는, 최고급 앰플.
 제이 아저씨나 정말 상황이 급박할 때 하나를 사용하고, 그 외에는 사용하는 모습을 **조차 못했을 정도로 값비싼 물건.
 편지봉투를 열어보자,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가득한, 짧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니가 없으니까 분위기가 어두워서 죽겠어. 빨리 낫고 돌아와. p.s. 올 때 메로나.]

 이 커다란 종이에, 썼던 글을 찍찍 그어서 지워놓은 것만 가득하고 사실상 제대로 된 문장은 한 줄 뿐이란 것이 또 꽤나 세하다웠다.
 지우기 위해 찍찍 그어버린 선들 너머로 조금씩 보이는 글자들이 상냥한 말투나 무심경한 말투, 장난스런 말투가 보이는 걸로 보아, 꽤나 고민한 모양.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 미스틸!”
 “네?”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미스틸을 부르자, 미스틸이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으면 같이 뭐 먹으러 가지 않을래? 어제 같이 못 먹은 크레이프 대신!”

 “아! 그럼 저 먹고 싶은 게 있어요!”

 어제 같이 가지 못한 게 내심 미안하여 말을 꺼내면서도 혹여나 거절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미스틸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돌아가는 길에 한과 전문점을 찾았어요! 사실 어제 먹은 크레이프는 별로 즐겁지는 않았거든요. 이번엔 거길 꼭 가보고 싶어요!”

 한과 가게인가. 미스틸이 말 한 곳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한 곳 알고 있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조금 큰 편에 속하는 한과 찻집.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친구들의 말로는, 여러 종류의 한과와 차를 판매한다고 한다.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아주 먹지 못할 만큼 비싼 정도도 아니며, 결정적으로 맛있다고 한다.

 “그래. 같이 가자. 그럼 조금만 기다려.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준비하고 나올게.”
 “네!”


*   *   *

 “정말 맛있었어요! 특히 유과와 약과가요!”

 “응. 나도.”

 미스틸과 함께 한과 찻집에서 나오며 감상을 주고받던 도중.

 “어? 유리야. 미스틸.”

 정미와 만났다.

 “앗! 정미정미!”
 “꺅! 끌어안지 마! 네가 안으면 숨 막힌다고!”

 정미가 자신을 끌어안는 유리를 억지로 떼어내자, 미스틸이 다가왔다.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정미누나.”
 “맞아. 학교는?”

 이 시간이라면 분명 아직 학교에 갔을 시간.

 “힘들게 재건축하고 복구를 끝냈던 학교가 다시 바로 무너져버려서 아예 당분간은 복구 자체를 멈추려는 모양이야. 이번 사태가 일단락 될 때 까지는 휴교라고 하더라고.”

 지난번, 신강고 사태 때 반파됐었던 학교. 그것이 막 복구가 끝난 참이었는데 곧바로 다시 그렇게 붕괴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다시 복구를 하려 해도 할 마음조차 안 생길 정도, 일단 사태가 일단락 될 때 까지는 휴교를 하려는 모양.

 “그러는 너희는? 출근시간은 아직 아니야?”
 “미스틸은 이제 갈 거고, 나는 연차 썼어.”
 “연차? 왜?”
 “응? 그, 그냥 쉬고 싶어서. 아, 정미정미! 그럼 나랑 오늘 데이트하자!”

 혹여나 상처에 대한 것을 눈치 챌까 싶어 대충 대답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미안. 난 지금 캐롤언니 심부름 중이라서. 오늘은 힘들 것 같아.”
 “그래? 아쉽다.”

 급하게 화제를 돌린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아쉬웠다. 오랜만에 정미와 놀고 싶었던 것은 진심이었는데.

 “그럼 난 이제 그만…”

 각자의 대화를 끝내고 정미가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 하고 빛이 났다. 그리고 잠시 후

 콰르르르르르르릉!

 피부가 저릴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울려퍼졌다.

 “꺅!?”
 “처, 천둥!?”

 틀림없는 천둥번개.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아침이라는 것과, 빛이 번쩍인 것이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장, 즉 데미플레인이라는 것.

 “차원종이에요.”

 그리고 그걸 본 미스틸이 무표정한 얼굴로 데미플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원종의 위상력이 폭발한 거에요. 그것도 막대한 위상력이….”

 막대한 위상력. 저 높은 곳에서 터져서 지상의 공기마저 흔들 정도의 위상력이라면 아마 하나뿐이리라.

 “용…!”

 틀림없이 이것은, 용의 위상력이다.
 그런대 대체 왜? 왜 용의 영지에서 용의 위상력이 폭발한 거지?

 “대체 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마찬가지로 데미플레인을 바라보며 말한 정미의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4

 미스틸, 정미와 헤어지고부터 몇 시간 뒤. 동생들을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오자, 엄마는 식당으로 출근했고, 아빠는 새 직장을 찾으러 간다며 외출하셨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뒤에야, 세하가 미스틸을 통해 전해준 앰플을 사용하고 밖으로 나섰다.

 “아, 유리야!”
 “어! 웬일이야? 엄청 오랜만이네!”
 “그러게! 오늘은 쉬는 날이야?”

 가벼운 산책을 겸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자, 클로저가 되기 전에 함께 놀던 친구들을 만났다.

 “얘들아! 오랜만이야! 보고싶었어~”

 반가운 얼굴들을 본 유리가 그대로 달려가 가장 앞에 있던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하하. 일단 안고 보는 건 여전하구나. 오늘은 쉬는 날?”
 “맞아. 클로저는 바쁘잖아? 우리랑 놀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 토라진 얼굴로 아이들이 말하자 유리가 허둥지둥 해명을 시작했다.

 “삐, 삐진 거 아니지? 요즘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하하. 알고 있어. 장난 한 거야. 너희의 활약은 이미 질릴 만큼 들었는걸?”
 “맞아, 맞아. 빌딩만 한 거대 차원종하고도 싸웠었다며?”

 헤카톤케일의 이야기. 일단 극비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대규모의 작전이었으니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게 더욱 무리이리라.
 그저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신서울 전역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응. 오세린 선배라고 엄~청 대단한 클로저가 있는데, 그 선배의 활약 덕분에 쓰러트릴 수 있었어.”
 “난 차원종이라고 해봐야, 스케빈져? 그 쥐 같이 생긴 것들 정도일 줄 알았는데 그렇게 커다란 게 나타나서 엄청 놀랐어!”
 “나도, 나도. 대피소에서 잠깐 숨 돌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얼마나 놀랐는데!”

 인류를 멸망의 위기까지 몰고 갔었다는 차원전쟁으로부터 이제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 차원종 하면 떠오르는 것이 겨우 스케빈져 정도라고 한다.
 하긴, 이게 차원전쟁을 겪지 못한 우리 또래의, 특히 지금껏 차원종 청정구역이었던 신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차원종의 인식이리라.
 당장 클로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별 차이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휴일?”
 “응. 조금 쉬고 싶어서 연차 썼어.”
 “연차라니…. 너 우리랑 같은 고등학생이잖아? 그런 얘기 들으니까 진짜 직장인 같다.”
 “직장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직장인이야. 그것도 4급 공무원!”
 “공무원!? 진짜?”

 당당하게 손가락 네 개를 펼쳐보이며 말하자, 아이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기사, 클로저라는 것을 알아고 공무원이라는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리라.

 “저번에 정식 요원이 되면서 4급 공무원이 됐지롱~ 헤헤.”

 그 뒤로도 한참을 웃고 떠들던 도중, 한 아이가 조금 불안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저기, 그런대 유리야. 저… 하늘의 저거, 괜찮은 거지? 저번처럼 위험한 거 아니지?”

 하늘. 데미플레인. 저번이라 함은 역시 아스타로트 사건 때를 이야기 하는 것이리라.
 당연히 그 또한 극비사항이지만, 하늘의 데미플레인이 점점 가까워졌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누구나가 그 당시가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이번에는 그 때와는 달리 데미플레인이 저 위치에서 더 이상 가까워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시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걱정 마. 저번에도 무사히 해결 했는걸? 우릴 믿어. 저런 걸 해치우는 게 클로저의 일이니까.”

 사실 불안하기만 하고 대처는 떠오르지 않는, 이전보다 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아이들에게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하긴. 그렇지? 그걸 위해 클로저가 있는 거니까.”
 “맞아, 맞아. 그런 게 아니면 굳이 클로저를 유지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악의는 없다. 하지만 역시, 클로저인 입장에서 저렇게 클로저가 차원종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역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이 강요되는지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저 정도가 당연한 인식.
 그리고 나 또한 얼마 전까지 차이가 없었다.
 …세하와 슬비, 검은양의 모두는 이런 인식 속에서 살아왔던 걸까.

 우당탕!

 “꺄악!”

 그 때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가자, 소란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인질을 풀어주고 무기를 버려라! 그러면 최대한 선처를…”
 “웃기지 마! 네놈들의 말을 믿을까 보냐!”

 한 카페에서 중년의 남성이 종업원을 인질로 잡은 채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치안이 안 좋아지면 민심도 안 좋아지고, 안 좋아진 민심이 다시 치안 저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악순환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인가 유정언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차원 전쟁 이후로 일어나는 수많은 범죄들과, 총기 규제가 강한 한국에서조차 총기 범죄가 빈번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클로저인 이상 이를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한다고.

 적어도 아직까지 국내에서 대규모의 테러가 일어난 적은 없지만, 언제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테러가 발생하면 거기에는 클로저와 특경대가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소규모 문제 정도로 판단되는 것일까, 이곳에는 클로저도 특경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반 경찰들이 범인과 대처하고 있을 뿐.

 “적어도 인질을 풀어줘라! 죄질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마!”
 “허, 허, 헛소리 하지 마라! 인질을 풀어주면 쏠 거잖아!”
 “쏘지 않아! 그러니 우선 진정해!”

 범인은 딱 봐도 굉장히 흥분하고 불안해하는 상태였다. 언제 인질로 잡고 있는 종업원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걸 알기에 경찰들도 우선 인질의 안전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겠지.

 “이, 인질을 돌려받고 싶으면 적어도 다른 인질을 보내! 요구만 하지 말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란 말이다!”

 범인 또한, 인질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에게 가해질 제재를 두려워하는 모양인지라, 인질을 풀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저거 위험한 거 아냐?”
 “그러게…. 저 언니는 무슨 잘못이라고.”

 그걸 보던 아이들이 한 마디씩 중얼거리던 찰나, 유리가 성큼성큼 범인에게 다가갔다.

 “제가 인질로 잡힐게요. 그러니까 그 언니는 풀어주세요.”
 “유리야!”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기가 찼을까? 아니면 뭔가 의심이 됐을까? 그도 아니면 그런 판단을 내릴 수조차 없을 만큼 이성을 잃었을까?
 어느 쪽일지는 모르지만, 다행히도 사내는 돌발행동 대신, 잡고 있던 종업원을 경찰들을 향해 힘껏 밀쳐서 풀어주고 유리를 다시 인질로 붙잡았다.

 “네, 네가 왜 인질을 자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인질은 필요해!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가까이 다가와서 보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만큼 사내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몸이 떨리고 눈이 흔들리며, 주변 여기저기를 신경써가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저기, 아저씨.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예요?”
 “나,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게 아냐! 이, 이번 사태에 클로저들은 부상당한 내 아내와 자식들은 거들떠도 안보고 상부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어! 그 수많은 클로저들이 전부 죽어가는 내 가족을 보고 방치했다고! 그 탓에 난 가족도, 운영하던 가게도 잃었어!”

 클로저들의 방치로 인해 가족이 죽었다. 전투에 휩쓸려 운영하던 가게를 잃었다.
 정미에게 전해들은 정미네 아빠의 이야기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와 마찬가지. 안타깝기 짝이 없을뿐더러, 더 없이 공감되는 이야기.

 “그, 그런데 정부에서는 보상이나 위로는커녕 아무런 지원조차 안 해줘서 무너진 가게만 빚으로 남았다고!”
 “그래서 아저씨는, 이런 일을 벌여서 뭘 하고 싶은 거예요?”
 “뭐, 뭐?”
 “이런다고 뭔가 달라지는 게 있어요?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이유는 공감한다. 확실히 더 없이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 공감되고, 할 수 있으면 돕고 싶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면, 이건 그저 폭력일 뿐이에요.”
 “웃기지 마! 네가 뭘 알아! 너, 너 따위가 뭘─!”
 “최대한 살살 하겠지만, 아프다면 미리 죄송해요.”

 흥분이 극에 달했는지, 지금까지 이상으로 위험한 모습을 보이는 사내. 그런 사내를 유리는 가볍게 휘어잡아 바닥에 매쳤다.

 “크악!”

 사내가 바닥에 내던져지자, 대치하던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사내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그리고 경찰 중 한 사람이 유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민간인은 아닐 거란 느낌을 받은 모양.

 “유니온 신서울 지부 검은양 팀 소속 정식 클로저, 서유리입니다.”

 단독으로 임무 수행할 때를 위해 외워야 한다며 슬비에게 강제로 주입 당했던 자기소개. 그와 함께 ID카드를 내밀자, 경찰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경례를 붙였다.

 “충성! 요원님이셨군요. 신서울의 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서울의 영웅. 그러고 보니 한기남 아저씨가 그랬었다. 신서울 사태를 해결한 검은양 팀은 영웅으로 통하며, 그런 우리를 본뜬 인형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고.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모여들어서 구경하던 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동경심 비슷한 것들로 변했다.

 “사건 해결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뭘. 그나저나 저 아저씨… 심한 벌을 받게 되는 건가요?”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불쌍한 사연이 있으니까….”

 갑작스런 유리의 말에 당황했던 경찰이, 유리의 설명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말한 사연은 그들에게도 들렸을 테니까.

 “최대한 선처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타앙─!

 모두의 시선이 유리에게 집중된 순간, 아주 잠깐의 순간이나마 범인을 제압하려던 경찰들의 의식마저 유리에게 모여든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사내가 경찰들의 힘이 풀린 순간 제압에서 빠져나와 유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것.
 그 직후 다시 제압당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쏘아진 총알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티잉─!

 “아….”

 허나 유리에게 닿은 총알은, 어처구니없게도 피부에 막혀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위상력은 위상력이 아니면 뚫지 못한다. 일반 무기가 차원종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하는 것처럼, 위상력으로 보호받는 위상능력자 또한 일반 총화기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다.
 누구나가 익히 아는 당연한 이야기.

 허나, 이론으로 아는 것과, 인간이 총알을 튕겨내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한 순간에 유리에게 모여 있던 동경의 눈빛들이 일제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 그럼 요원님.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만나서 영광이라 말하던 경찰은, 총알을 맞은 유리에게 안부를 묻지도 않고 허겁지겁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 또한 도망치듯이 흩어진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게 흩어져 사라진 사람들 속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친구들 또한 섞여 있었는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카페에는 유리 외에는 그 누구도 남지 않았다.

 “이게…”

 이게 위상능력자가 일반인들에게 받는 대우.
 이게 위상능력자가 일반인들에게 받는 차별.
 이게 위상능력자가 일반인들에게 받는 멸시.

 이게… 세하와 모두가 지금껏 받아왔던 경멸.

 뒤늦게 위상능력자가 된 탓에 모르고 있었던 악의를 이제 와서 조금씩이나마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이건 너무…

 “너무 슬프잖아….”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아니, 분명 잘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왠지 조금,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한 달이나 걸려버려서 죄송합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꼐 뭐라 드릴 말이 없네요, 정말...

바쁜 것도 바쁜 거였지만, 묘하게 손이 안가는 슬럼프(?) 비슷한 녀석이 찾아와버려서 극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버렸네요.

슬럼프 기간동안 그림도 그리고 했었습니다. 혹여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최상단의 링크 타고 보러 가 주시길!

...결론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강고 에피소드에서 정미와 하나를 통해 알게 된 민간인들의 클로저에 대한 반감, 웹툰 등을 통해 알게 된 위상능력자의 차별.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한, 다른 이들은 무뎌져 버린 이유 없는 악의를, 그나마 늦게 위상능력자가 된 유리를 통해 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덤으로 스토리 떡밥도 조금 던졌고요...ㅋ;


일단 계획한 일상편은 3편인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그 뒤로는 다시 메인 에피소드인 '용들의 전쟁'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유일하게 미스틸의 출현빈도가 높을 예정이었던 클로저의 일상 편에서조차 미스틸의 존재감은 안습하네요...

과거가 너무 밝혀지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개그캐릭터라는 특성 때문에 뭘 써도 진지해지는 저한테는 너무 맞지 않아서...

생기발랄한 유리조차 이리 어둡게 써버린지라 미스틸테인은 어떻게 써도 캐붕이 심해져서 아예 스킵해버렸습니다.


미스틸은 나중에 떡밥이 풀리면 그 때 다시 쓰는 걸로...
2024-10-24 22:41: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