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지 않기를 -0-
Dr제이 2015-01-13 1
백발의 청년이 술에 떡이된건지 약에 떡이 된건지 모르게 주변에 맥주캔과 각종 약병을 널부러트려 놓은 채로 누워 그저 처참한 액수의 통장잔고를 봐라보고 있었다. 37만 2천 800원 당장 이번달 식사및 교통비등의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금액이다.
'으윽, 분명 숙취가심해서, 0한 개 정도는 안보이는 걸거야. 숙취해소제를 마시면....'
청년은 숙취에 쩔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냉장고 앞으로 이동해 문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냉장고 안에는 녹용, 키토산, 리보플라빈, 칼슘, 오메가3 그외에 여러 건강 드링크와 맥주로 가득했다. 청년은 그중에 숙취해소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인다고 생각되는 드링크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다.
'0한 개는 늘었겠지....'
청년은 통장잔고를 다시 확인하지만, 0이 늘기는 커녕 오히려 한 개 줄어버렸다. 3만 7천 280원 처참 하다못해 절망적인 금액이다. 이걸론 이번달이 아니라 오늘을 걱정해야하게 생겼다.
'** 튀김에 이어서 술도 끊어야하나.... 아니, 끊었어야 했나...?'
청년은 어딘가에서 돈을 빌려볼까도 생각해복지만 금방 그만둔다. 무직, 친구 없음, 각종 질병과 투병 중. 일부 쓸만한 장기를 담보로 사채라도 빌리지않는한 돈을 빌리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알고 있기때문이다.
"안되겠군. 새로운 녹즙 블랜딩하면서, 잠시 머리를 비워야겠군."
청년이 녹즙기의 코드른 집는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아까도 말했듯이 청년은 친구가 없어, 확률적으로 신문, 우유, 보험 혹은 종교 권유일 것이라 생각 하고 없는 척 무시하기로한다.
"유니온에서 왔다네,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왔으니까 잠시만 이야기에 어울려주었으면 하네."
유니온이라는 말에 청년은 부들부들 떠는 손을 진정시키고, 녹즙기 코드를 내려놓는다. 유니온 차원전쟁에서 살아남은 위상 능력자들을 필두로 UN산하에 만들어진 차원문 대책 기관의 이름이다. 청년은 한때 이곳에 몸담고 있던 요원이었었다. 청년은 별로 달갑지 않은 얼굴로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연다.
"유니온이 이제와서 무슨일이지? 퇴직금이 일부 누락돼서, 늦게나마 지급하러 온거라면, 환영하겠지만. 내가 댁들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당신이라면 잘알거라고 생각하는데?"
청년은 찾아온 유니온의 요원과 면식이 있는지 얼굴을 보자마자 비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과거에 요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어 유니온과 청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역시 최근 금전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나보군."
"누추하지만 안에서 얘기하지."
요원이 청년이 금전적으로 시달리던 것을 알면서도 찾아왔다는 사실에 뭔가 돈과 관련된 일을가져왔을 거라생각한 청년은 요원에게 들어올것을 권유한다.
"상상 이상으로 난장판이군."
요원은 집안 꼬라지에 살짝 충격을받았는지 방금전까지 여유있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나 같은 퇴물의 안부나 묻자고, 찾아온건 아닐테고 용건이 뭐지?"
청년의 물음에 요원은 가져온 가방에서 [Project : BLACK LAMBS]라고 적힌 노란 파일 꺼내 청년에게 건낸다.
"검은 양 프로젝트? 퇴직요원 복지 프로젝트면 좋겠군."
청년은 그런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파일을 열어본다. 파일을 넘길수록 청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간다. 파일을 대충 다 훑은 청년은 파일을 요원에게 도로 건넨다.
"요즘 유니온에선, 위상 능력자들 조기교육 사업이라도 하나봐?"
"아카데미가 있긴 하지. 하지만 이 아이들은 실전 팀으로 투입될 예정이네."
"그래서, 이 애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걸 보여주는 거지?"
청년은 애써 괜찮은 척 하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감춘다.
"아무리 유니온이 일손이 부족하다지만 아이들만으로 투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그래서 노련한 클로저 요원을 같이 투입하자는 얘기가 나왔네."
"설마 나보고 그 노련한 클로저 요원을 맡으라는 건가?"
청년이 살짝 굳은 얼굴과 달리 애써 괜찮은 목소리로 묻자 요원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때, 요원의 제안은 통장잔고가 바닦난 청년의 입장에서 그렇게 나쁜일은 아닐것이다. 그냥 아이들을 몇시간 돌보는 것으로 월급을 타가는 것 처럼 보일테니 말이다.
"농담 집어치워! 전쟁때는 몰라도 지금의 내겐 위상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아무리 애들이지만 클로저 요원들을 관리하는건 무리야."
"자네에겐 이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차원 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네, 그리고 자네라면 위상 호흡으로 어느정도 위상력을 낼수 있을걸세."
차원문을 닫는 클로저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애돌보기 정도로 보이겠지만, 차원문을 닫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애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모자라 전력으로서의 가치가 의심 스러울 정도로, 현역에서 물러난지 오래된 퇴물을 투입하다니, 청년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어느정도의 위상력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몰라도 유니온에서 자살 특공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 안보였다.
"아이들에겐 자네 같이 경험많은 선배요원이 꼭 필요하네."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줘...."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주고싶지만 아이들의 현장투입이 3개월도 안남았네 자네의 위상호흡을 이용한 위상력 전투 등급을 내는 것과 일부 재활 훈련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
청년의 부탁에 요원은 왼쪽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다.
"3시간 뒤에 다시 찾아오겠네."
요원이 다시올 시간을 알리고 밖으로 나가자 청년은 침대위에 눕더니,잡자기 몸부림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리를 싸매고 몸을 웅크리고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더 이상 싸우고싶지 않아...."
아무래도 과거 요원이었던 시절의 트라우마가 떠오른게 아닌가 생각된다.
'통장잔고를 봐 돈이 필요하잖아.'
"난 힘을 잃고 너무 오래 현역에서 빠져있었어. C급이나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청년은 싸움이 두렵긴해도 현실에 닥친 금전적위기를 들먹여가며, 자문자답을 하지만 딱히 심경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싸우지 않을 수만 있다면 길거리에 나앉아 굴러다니다가 죽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들을 봐 저 어린나이에 차원종을 상대로 싸워야만 한다고.'
"평생 마주친적도 없는 꼬맹이들 따위 알게 뭐야? 그리고 내가 발목이나 안잡으면 다행이지."
'아이들 중엔 13살 짜리 아이도 있어.'
"나도 그 나이 때 쯤에 투입되었었어. 차원전쟁 이후론 고위급 차원종 출연도 줄었다고 하니, 괜찮겠지"
청년은 아닌척해도 아이들이 신경 쓰이는지 계속 자문 자답에 들먹인다. 어쩌면 비슷한 나이에 전시상황을 겪었던 점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겹쳐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니온에서 아무리 일손이 부족하다지만 눈엣가시 같은 나한테 찾아왔다는 것은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어쩌면 최근 차원문의 상태가 불안정해진 걸지도 몰라.'
"내가 잘모르는 애들을 왜 그렇게 까지 신경 써야하는데? 유니온의 윗*** 들이 알아서 잘들 하겠지."
청년은 결국 끝까지 싸울 생각이 안드는지 요원이 다시 찾아오든 말든 신경 안쓰고 그냥 낮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이든다.
고층 빌딩의 옥상.
'여긴 꿈속인가?'
분명 있을리 없는 거대 괴수형 A급 차원종이 도망치는 모습에 청년은 분명 차원전쟁 당시의 꿈을 꾸는 것이라 판단한다. 요원이 찾아왔던 것이 원인이라생각하며, 주변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리멀지 않은 곳에 과거의 자신과 동료 요원들이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 형태의 두 실루엣에 하나하나 쓰러져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청년은 차원 전쟁중 자신이 겪은 최악의 기억이 끄집어 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이런 목소리가 안 나와! 부탁이야 과거의 나 여긴어차피 꿈속이잖아!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다시보고 싶진 않아. 제발 동료들을 데리고 도망쳐!'
그때 사람 형태의 두 개의 실루엣이 청년의 뒤로들어와 등을 찌른다. 청년은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면서도 과거의 자신에게 애원 하듯이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순간 과거의 자신이 입을 열어 묻는다.
"그 아이들이 같은 일을 격게 내버려 둘거야?"
2개월 뒤 유니온 본부.
"작전명 검은 양?"
"유니온은 자네를 이작전의 감독관으로 정했네."
여성은 검은양 파일을 집어들어 읽기시작한다.
"강한 위상력을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선별, 육성 및 실전투입 계획? 이거 진심이세요?"
작전의 개요를 읽은 것 뿐인데, 여성은 벌어부턴 한숨을 내뱉는다.
"유니온이 언제 자네에게 농담하는 거 본적있나?"
노트북 너머의 상관의 말에 여성은 한숨을 내뱉으며, 파일을 넘겨 요원들을 확인 한다. 파일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근심만 깊어져간다.
"물론 정말 아이들만 투입하겠다는 건 아니야. 기존에 은퇴했던 배테랑 클로저 요원의 복귀도 결정되어 있네."
상관의 말에 여성은 파일에서 그 배테랑 클로저 요원의 정보를 확인한다.
"8년전 은퇴 2개월전 복귀........ 특이사항... 신경성위염, 스트레스성 편두통, 빈혈, 류마티스... 고소공포증? 기타 만성 지병 다수?!"
여성의 얼굴이 아이들에대한 자료를 볼때보다 더욱 굳어지다못해 창백해진다. 이정도이면 차원종과 싸우다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게 없어 보인다.
"이 퇴물이 무슨 배테랑이에요!"
"그야... 써먹기 나름 이지. 그래뵈도 차원전쟁 참여자라고."
여성은 그저 한숨을 내뱉는다. 써먹기 나름이라니 퇴물이라고 상관쪽에서 인정한 셈이나 다를게 없다.
"그래서 이사람들은 지금어디에 있는데요?"
"일이 급해져서 작전지역에 투입되어있다네."
"뭐라고요?!"
강남역 인근 차원종을 처리하기위해 경찰 바리케이드 사이로 4명의 아이들과 청년이 앞으로 나선다.
"애들아 무리하지마라. 건강이 제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