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세하유리] 무제
유리벨라 2015-10-11 3
※ 설정 날조주의
※ 오랜만에 팬만화 게시판 명전 갔다가 입덕당했어요. 그래서 중얼중얼 썰(?)이라도 풀어보려고합니다.
※ 아마도 다음편 나올 수도 있을겁니다...(아마도...)
그 날 아침에 만난 세하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한창 강남사태의 일로 인해 바쁜 와중이라 요원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면 문제였지만.
말이 없는 편이기는 했지만-그래도 다가가서 말을 걸면 대꾸식이라도 반응은 해주었다-그 날은 더 과묵하다고 해야할까. 보고사항을 묻는 슬비에게도, 기운이 없어보이니 건강 음료를 권하는 제이에게도 죄다 피하듯 말을 아꼈다.
다만, 유리와는 예외였다.
"세하야, 이세하! 너, 오늘 왜 그러는거야?!"
"..."
미스틸테인과 정찰을 다녀온 유리는 오후 늦게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껴질만한 세하에게 다가왔다. 유리가 대뜸 이 말부터 꺼내는 이유가 있었다. 슬비에게 상황보고를 하는데 슬비가 오늘 세하가 조금 이상하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세하는, 원래부터 뭐 보고하는거 딱 싫어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그거랑은 조금 달라. 평소라면 게임기에 집중팔려서 그랬는데, 오늘은 게임기에 손도 안되더라고.
그 말 그대로였다. 잠시 옥상 타워 구석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거 같은 세하의 두 손에는 애용하는 게임기가 없었다. 틈만 나면 보스전을 깨**다니, 일단 세이브를 해**다니 하는 세하였던 만큼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어, 어, 이세하? 드디어 게임폐인에서 벗어나는거야?! 공무원 되었다고?"
유리는 기쁜듯이 목에 팔을 걸치며 안았는데 평소의 세하와 확실히 달랐다. 평소라면 '무, 무슨 짓이야! 숨막히니 떨어져!' 라는 말을 입으로 내뱉으면서 얼굴에 홍조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오늘은 천하태평식으로 유리의 스킨십을 받았다. 그제서야 유리는 그냥 게임을 끊으려는게 아닌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세하야...?"
"..."
조심히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보니 상대방은 자신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게다가 왠지 모르게 더 날카로운 듯한 전체적인 느낌. 오싹한 느낌에 유리는 얼른 세하에게서 멀어지려고했지만 세하의 행동이 더 빨랐다.
"...?"
오른쪽 손으로 유리의 볼을 잡아당긴 세하는 말없이 유리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몇 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엔 유리가 당황하고 말았다. 세하는 어딘가 뒤틀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고 싶어서 목 빠지는 줄 알았잖아."
* * *
"자, 잠깐만!"
유리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세하는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 방금 그, 그건 뭐였지! 세, 세하가 나한테 지금 나한테...키, 키스를...?!
"너, 그거 방금 뭐야?"
"보면 몰라. 보고 싶어서 계속 기다린 사람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게 말이 안돼?"
지금 요점은 그게 아니었다. 유리가 아는 세하가 '전혀' 아니었다. 서로 하면 부끄러워서 멀찍히 떨어지는게 스킨십이었는데 이번엔 그런게 없었다. 오히려 유리가 더 호들갑을 떨었다고 하는게 더 옳은 편이다.
"너...너 진짜 이상하다...?"
"왜? 너도 이런거 원하지 않았어? 넌 내가 싫은거야?"
그리고 왜 이리 말이 많아...슬비와 제이 아저씨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데...세하는 뒷걸음질을 치려는 유리에게 재빨리 다가가 유리를 안았다. 유리는 왠지 부러운듯한 눈으로 세하의 정식요원복을 보았다.
아, 맞다. 최근에 세하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함은 정식요원이 되는 승급 심사에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첫타자로 세하가 뽑혔는데 유리는 세하가 공무원이 된다고 부러워했었다. 곧 자신에게 기회가 오기는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승급 심사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고한다. 심사를 해야하는 '큐브' 에서 오작동이 발견되었기에, 수리가 끝나는 즉시 다른 검은양 팀 요원들도 승급 심사를 볼 수 있다고한다.
그러니 현재 저 정장 스타일의 요원복을 입은 건 검은양 팀에서 세하뿐이라는 소리였다.
"...심사 끝나고서 바로 보고 싶었는데 정찰을 갔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기다렸지."
"뭐, 뭐야..."
"넌 모를거야. 그 지옥 같은 삶..."
지옥 같은 삶? 알파퀸의 아들로 사는 삶? 어라...? 근데 무언가 안 맞는거 같은데...
"세하야...너 오늘 좀 이상해."
"나도 알아."
"그, 그리고...어, 언제 놓아줄래?"
"놓아주기 싫은데."
그, 그렇지만 이렇게 있으면 부, 부끄럽다고...! 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자는거냐고...세하는 몸을 살짝 뒤로 빼더니 유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조금은 흐뭇한거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향기 좋던데, 샴푸 뭘로 써?"
"우와, 이세하, 너 진짜 몰랐는데 원래 그리 능글맞았어?"
세하의 손이 멈췄다. 전체적으로 굳어진 느낌이었다. 세하는 정말 마음에 안드는 표정이었다.
"정말 이상하네. 좋아하는 마음은 있으면서 그렇게 표현을 안 하다니."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라니?"
분명 세하 자신의 이야기인데 제3자를 이야기하는 듯이 말한다. 그제서야 유리는 알아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동색 눈동자였던 세하 눈동자가 붉게 변한 걸. 사람을 죽일듯한 살기와 함께.
"너...세하 아니지?"
"글쎄...?"
유리를 시험에 들게끔 한 비꼰듯한 미소. 이제서야 알다니 유리는 자신의 머리를 연신 쳐댔다. 겉모습만 똑같지, 완전 전 반대의 인물 아니야!
"너...누구야? 누군데 왜 세하 모습을 한거야? 그리고 세하는 어딨어?!"
"질문이 너무 많아. 하나씩 답해주면 안될까."
세하를 닮은 인물은 아주 즐거워보였다. 유리가 깜빡 속은거에 대해 장난을 친 어린아이처럼 기쁜듯 했다.
"내가 누구든 상관없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이세하' 와 똑같이 생겼는데, 오히려 기쁘지 않아? 이세하한테서는 이런거, 기대할 수도 없잖아."
"누가 그런거 원한대? 넌 세하가 아니야. 잔말 말고 세하나 내놔."
세하 도플갱어는 어깨를 으쓱했다. 안 그래도 가봐**다는 말과 함께, 정말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 이번엔 그래도 유리 너와 키스했으니 만족해**다고 해야할까?"
방금전의 상황이 떠올라 유리의 얼굴은 급격히 붉어졌다. 그러는 사이, 세하 도플갱어는 사라졌다. 유리 혼자 생쇼를 벌인 것과 같이 완벽하게 혼자 남아있었다.
* * *
저녁즈음 되어서야 세하가 돌아왔다. 아까 전에 사라진 세하 도플갱어가 입은 것처럼 똑같은 정식요원복을 입고 게임기를 손에 들은채로. 게임기에 집중을 해서 주위 거리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디 갔다 온거야, 이세하."
갑자기 사라졌던 세하에게 슬비가 화가 난듯이 물었다. 그러자 세하 역시 만만치 않게 대꾸했다.
"너야 말로 무슨 소리야. 나 지금까지 큐브에 갇혀있었다고. 어휴...나와 똑같이 생긴 기분 나쁜 도플갱어를 상대하니까 갑자기 큐브 전체가 다운되더니 큐브에서 나올 수 없었어. 그래서 반나절 이상 갇혀있었는데, 무슨 헛소리야."
세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검은양팀 요원들 대부분의 얼굴이 싸하게 굳어져버렸다. 부, 분명 세하, 널...보, 보았는데? 라는 슬비의 패닉 섞인 말로 시작으로 하나둘씩 쇼크에 빠진 얼굴을 짓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세하는 그걸 못 보았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곧장 신경을 끄고 자신이 오면서 하던 게임을 마저 속행한다.
게임을 한창 하던 중,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유리에게 세하가 물었다.
"근데, 서유리."
"응...?"
"그 내 도플갱어가 '다음에 또 보자고, 서유리.' 란 말을 했는데 무슨 의미일까?"
유리는 몸이 또 다시 굳어졌다. 그건 환상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진짜로 존재한 세하를 꼭 닮은 인물, 이었다. 정확히는 차원종화가 된-세하가 다 설명해주었다- 세하. 그 특유의 비꼬는 미소를 생각하니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보자니,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왜 꺼내는건지. 정말로, 다시 볼거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