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침략자들 - 1

서진권 2015-01-09 1


 그녀가 맨 처음 세하의 집에 찾아왔을 때는 봄바람이 사라지고 무더운 습기가 내려앉는 초여름 끝 어느 저녁 무렵 이었다. 그는 여느때와 같이 형광등 불빛만 가득 찬 거실 바닥에 홀로 누워 끼니마저 거른 채 게임에 열중 해 있었다.

날카로운 전자음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수많은 적들이 게임 속 자신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에게는 언제나 익숙한 광경이다. 수도 없이 반복된 전투를 거치며 단련 된 손가락이 온갖 버튼들을 능숙하게 바꿔 누르며 적들을 화려하게 처치한다. 

퍽퍽.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괴물들의 사지가 도트로 그려진 선혈과 함께 사방으로 솟구친다. 어느새 그는 시체더미 위에 홀로 서있다. 

이윽고 시체로 가득한 화면 위에 숫자들의 나열이 언제나처럼 예쁘게 줄을 선다. 그의 훌륭함을 칭송이라도 하듯 숫자들의 아래에는 크게 ‘SSS+’라는 알파벳과 기호가 나란히,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노히트에 퍼펙트 스코어 클리어. 그야말로 완벽한 플레이다.

세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잠시 게임기를 내려놓고 바람이라도 쐴 겸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불어오는 것은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바람 뿐 이다. 집 안에 부는 에어컨 바람에 비하면 이건 차라리 하마의 하품보다도 못할 지경이다. 비라도 올 모양인가? 그는 무심히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으로 가득 찬 밤하늘이 청아한 별 빛 대신 바닥에 엎드린 전자 조명들의 사나운 색채만을 우중충하게 머금고 있었다. 저 멀리 빛나는 도시의 햇무리가 막무가내로 그의 눈을 할퀴어댔다. 정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다. 세하는 짜증스러운 듯 시선을 거두며 다시 게임기에 손을 댔다. 화면 안에서 환상의 세계가 언제나처럼 그를 반기고 있었다.  

벨소리가 울린 것은, 그가 다시금 게임을 시작하려던 그 때였다. 정적을 깨는 낮선 소리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게임기의 전원을 끄고 말았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9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다. 수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형광등이 머리 위에서 깜빡이며 조용히 발작을 일으켰다. 

엄마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1년에 몇 번 얼굴보기도 힘든 사람이 아닌가? 애초에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 올 성격도 아니다. 그는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현관 너머를 바라본다.

한 번 울린 벨소리가 다시 들려 올 기척은 없다. 잡상인인가? 하지만 이 시간에? 혹여나 이웃 꼬마들이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지만, 이 아파트 주변에 얘들을 가진 집은 없었다. 보아하니 퍽이나 심심한 누군가가 이상한 장난기라도 발동 한 모양이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게임기 액정을 몇 번 두들기다가 망설이듯이 전원을 올렸다. 

그 순간 벨소리가 다시 그를 찾아왔다. 따닥. 하고 형광등이 기침을 했다. 냉장고 뒤편에서 둔중한 모터소리가 코끼리의 먼 울음소리처럼 불현 듯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튕겨지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기에서 자신을 부르는 음악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왔지만, 그의 신경은 오로지 대문 너머에 서 있을 방문객에 대한 것으로만 사납게 곤두 서 있었다. 

정말로 엄마인가? 하지만 그녀가 집 열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의미 없이 벨이나 눌러 댈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여 도둑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아 인기척이라곤 거의 없는 그의 집 이었다. 일순 쓴웃음이 입 밖에 절로 나온다. 후자라면 망설일 것 따윈 없지. 그는 성큼성큼 걸어 가 몇 중으로 굳게 닫힌 걸쇠를 풀고 덤덤하게 문을 연다.

강도? 도둑? 보통 사람 같았으면 무서워 벌벌 떨었겠지만 그는 오히려 불청객들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반인이 칼로 찔러봤자 이빨조차 박히지 않는 그의 몸 이다. 마침 게임도 지겹고 슬슬 심심했던 참 이었다. 어떻게 놀려줄까? 범죄자에게 돈을 뜯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그는 불청객을 바라봤다.

주홍색 어두운 불빛을 뒤로 기댄 채, 젊은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검고 긴 생머리에 조신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입가에는 새하얀 미소가 햇살처럼 순수하고 무례하게 피어있다. 차라리 도둑이었으면. 아니, 괴물이 찾아왔어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하는 그만 말을 잊고 말았다. 

 “안녕?”

말을 잊은 얼굴로 인사하는 그에게, 여자가 구김 없는 미소로 대답했다. 멀리서 어린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아득히 세하의 머리를 두들기며 저녁 하늘을 타고 무심히 흘렀다.

 “저기, 나 언제까지 여기 서 있어야 돼?”

날렵하고 유려한 눈썹을 장난스럽게 움직이며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세하가 얼빠진 얼굴로 어눌하게 몸을 비켜주자, 그녀는 마치 자기 집에라도 돌아온 듯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소파에 몸을 뉘였다. 그는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된 듯 현관에 못 박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해?” 라며, 그녀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건 원래 그가 해야 될 말이었다. 

서유리,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세하는 현관에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진 그녀의 신발을 정리하고 천천히 냉장고로 다가가 차가운 냉수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켰다. 머리가 식는가 싶더니 현재의 상황이 냉정하게 들어왔다. 평정을 찾은 그에게 맨 처음 찾아온 궁금증은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집에 왔을까하는 것 이었다.

뭣 때문에 여기에 왔던 이유는 그 다음에 묻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클래스메이트 중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사실 학교에 친구라고 해 봤자, 서유리를 제외하면 같은 팀원인 이슬비, 그리고 게임폐인인 한석봉밖에는 없었지만.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친구가 없었다. 아는 사람은 있을지 모를지언정 말이었다.

 “어떻게 여길 알고 온 거야?” 

물어서 알아보는 편이 빠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무실에 있는 네 인적사항에 너 네 집 주소 적혀있었잖아. 그거 보고 왔는데?”

적당한 상황에 적당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때때로는 절실한 법이다. 세하는 식탁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왜 온 건데?”

 “그냥 오면 안 돼?”

그의 물음에 유리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녀다운 반응이었다. 그는 우리 엄마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라고 되받아치려다 그만 두었다. 엄마가 있건 없건 그녀는 특유의 붙임성과 넉살로 지금처럼 소파에 누웠을 것이다.

 “너, 지금 시간이 몇 시 인데 찾아 온 거야?”

 “9시 30분 좀 넘었네?”

목이 탔는지, 그녀는 제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그가 아껴놓은 주스 몇 모금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내가 지금 그런 뜻으로 물어 본 게 아니.......”

 “나, 너네 집에서 며칠 살아도 되지?”

 “뭐?”

 “이유는 묻지 말고. 딱 일 주 일 만. 어때?”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세하는 입을 몇 번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뭐, 친구니까 괜찮잖아? 그보다 나 좀 씻어도 되지? 좀만 봐주라, 머리고 몸이고 죄다 땀으로 절었단 말이야.”

아예 작정을 하고 온 것 인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녀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살짝 벌려진 문 틈 으로 여름 교복이 하나 둘 씩 쌓여간다. 상의, 하의, 양말, 머리끈, 그리고 그 위로 커다란 봉우리 두 개가 히말라야 산맥처럼 솟더니 이내 만년설이 내린다. 그는 멍하니 앉아 옷가지가 퇴적물처럼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리 한참을 쏟아지던 물소리가 잦아들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그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세하는 3개월 가까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의 주인은 언제나와 같이 적막 뿐 이다. 

가구는 온통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 마치 유령들의 회의소에라도 들어온 느낌이다. 세하는 바닥의 먼지가 날리지 않게 조심스레 걸어 가 장롱 문을 열고 그녀가 입을 만 한 옷가지 몇 개를 챙겼다. 

처음엔 속옷까지 찾으려 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그만두기로 한다. 그것까지 챙겨 줄 필요가 있을까? 속옷은, 알아서 하라지.

방에서 나오니 그녀가 젖은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 쓴 채 욕실에서 얼굴만 내밀어 배시시 웃고 있다. 그는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 표정으로 가져온 옷가지를 문간에 던져놓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녀는 고마워. 라고 말하며 손을 뻗어 주섬주섬 옷을 챙기다가 행동을 멈추고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안 챙겨왔냐?”

 “응.”

 “그럼 알아서 하던가.”

버려진 고양이 같은 표정 지어봤자 부질없다. 그녀는 애초에 고양이 같은 게 아니다. 차라리 하이에나나 승냥이가 더 어울릴 거 같다. 

 “다 말 할 거야.”

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심술 섞인 낭랑한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하지만 어쩐지 가학적인 어조로 들려온다. 불현 듯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세하는 뻣뻣하게 멈춰 선 채 그녀의 방향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기, 누구한테 뭘 말하겠다는 거야?”

 “세하가 날 밤중에 거리로 불러내서 억지로 자기 집에 데려온 다음 속옷도 입히지 않고 잠자리에 들게 만들었다고 다 말 할 거야.”

 “그러니까 누구한테.......”

 “모두 다.”

내뱉는 말의 끔찍스러운 내용과는 달리, 표정 하나 만큼은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어떻게 해야 저토록 완만한 반원을 그린 해맑은 미소가 천근만근 무겁게 사람의 마음을 짓누를 수 있을까? 

이건 만행도 보통 만행이 아니다. 멋대로 남의 집에 쳐들어오더니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무기로 삼아 집주인의 인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 예전 구로역에서 만났던 게슈펜스트조차 그녀보다는 자비로우리라.

 “사람들이 그걸 믿으리라 생각 해?” 

그녀의 협박 앞에서도 세하는 짐짓 여유로운 척 하지만, 목소리만은 그렇지 않은 듯 안타깝게 떨리고 있다.

 “뭐, 적어도 음침한 게임폐인의 변명보다는 더 잘 먹히지 않을까?”

그로서는 인정하고 싶진 않은 말 이었지만, 자신이 부정한다고 해서 그녀의 말이 딱히 틀린 말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하루 종일 자거나 게임만 하는 폐인. 그것이 학교에서 그에 평판이자 이미지였다.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무신경하게 대하며 살고 있는 그였지만 자신에 대한 평판까지 모를 정도로 귀를 막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 어머니 것을 막 입고 다니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지?”

이제 와서 예의를 따지는 게 뭐가 잘못 된 건지 말해줘도 그녀가 알기는 하려나 모르겠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그녀를 뒤로 하고, 그는 휘청거리며 자기 방에 들어가 얇은 겉옷과 지갑을 챙겼다. 뒤이어 그녀 입에서 튀어나올 말을 그냥 서서 듣고 있을 만큼 그의 마음은 다부지지 않았다. 지갑 속엔 그가 아껴 모은 상추 색 지폐 몇 장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잠시 후 면 다른 이의 손아귀로 사라질 그들을 보며 세하는 그만 슬픔에 고개를 떨궜다.

오늘 밤, 신서울의 그 어떤 누구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한 판 확 붙어버릴까? 관자놀이에 일순 힘줄이 돋는다. 죽기 살기로 붙어보면 남자인 그가 여자 하나 못 내쫒을까? 하지만 그는 이내 포기하기로 한다. 남의 보금자리에 들어와 부리는 기세와 강짜를 보니 저 여자 성격에 절대 그냥은 안 나갈 판이다. 

애당초 힘으로 저 여자를 내쫒는다니 완전히 정신나간 짓이다. 자신이 보통 남자가 아니듯이, 저 여자도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동네 주민들의 재산과 생명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아니, 참는 것 말고는 고요한 여름밤의 대참사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부디 조용히 살고 싶을지언정, 다음 날 방송 3사의 저녁 뉴스에 남고생과 나체 여고생 사이의 싸움으로 대량의 인명, 재산손실 이라는 제목의 헤드라인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따위, 세하에게 눈곱만큼도 없었다. 

불끈 쥔 주먹을 조심스레 펴고 초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자주 하던 숨쉬기 운동을 몇 번 반복 해 보았다. 머리에 몰렸던 피가 빠지니 조금은 괜찮은 기분이다. 세하가 이성을 되찾고 방에서 나오니 그녀는 어느 새 어머니의 옷을 입고 소파에 드러누운 채 제멋대로 TV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있다. 방금 전 만 해도 깔끔하게 정렬 돼있던 쿠션들이 벌써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패잔병처럼 뒹굴고 있었다.

아, 이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의 집을 초토화 시키는 그녀를 보니 젊은 나이에 암이 생겨날 것 같다. 짧은 인생, 이렇게 허무하게 작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돈 만큼은 그녀에게서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덜 비참해질 수 있다. 더불어 자신의 상처 입은 자존심도 조금은 안식을 찾겠지. 힘줄이 다시금 솟으려는 걸 참으며, 세하는 그녀에게 돈 좀 주지 않을래?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다 말해버린다?” 

개그프로를 보며 희희낙락대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는다. 솔직히 말해, 예상했던 반응이다.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여잔데 그 여자한테 속옷 살 돈을 달라고 하다니. 한 순간이나마 보였던 부질없는 희망이 부서진다. 그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아, 내 가슴 사이즈 알아?”

얼어 죽은 시체처럼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는 그를 향해 짓궂게 그녀가 물었다. 이 상황에서 그녀의 가슴 사이즈를 알아봤자 전혀 기쁘지 않다. 세하는 신발 끈을 마저 묶으며 얼만데? 하고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도 그녀는 바로 대답을 않고 덧니를 슬쩍 드러내며 실실 웃기만 한다. 

등골이 유난히 시리다.

2024-10-24 22:21:4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