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ration High Noon : 인간☆실격 (1) 』

류은가람 2015-01-0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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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역을 목적지로 출발한 억제열차의 몸체를 이루는 금속 철제들이 만월의 푸르고도 
은은한 월광을 받아 백은의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근접
한 구로역의 주변은 과거, 평화의 시대였다면 서울 전체의 하늘을 수놓은 마천루의 야
경이 어둠을 헤칠 곳이었겠지만, 차원 전쟁의 여파가 짙게 남은 지금은 칠흑같은 어둠
이 물 샐틈 하나 없이 철도 전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어둠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별빛 한 줄기로 화한 억제열차가 끝이 없는 어둠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흡사 망망대해에 떠오른 작은 선박 하나를 연상시켰다. 차원종이라는
망망대해에 너무나 깊게 들어가 길을 잃은 작은 선박. 재미있게도 푸른 유리로 외벽이
이루어진 유니온 서울 지부 건물도 오늘같은 만월에는 비슷한 이유로 '등대' 라 불리
기도 했다. 

 월광을 통해 간신히 건물의 형상만 드문드문 보이는 창문 안으로는 다섯 명의 클로
저 요원과 함께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철도의 마찰음을 제외해버리
면 모두의 귀에서 이명이 웅웅거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누구 하나도 이 지루한 시간을 
내기 위해 신문이나 전자기기를 들어보이지 않았다. 

 압박스런 공기가 지속되는 와중에, 본의 아니게 이상함을 넘어 미심쩍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상황을 '일련의 사건' 으로 초래한 녀석, 나이 지긋한 네 명의 클로저 요원들
과 달리 사회 초년생의 앳됨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청년은 야속하게도, 혹은 긍적적이
도 '일련의 사건' 으로 마음이 착잡해진 다른 팀원과는 달리 마음속에 희망을 가득 
운 채 겉으로 내비치지 않는 흥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검은양 팀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그를 더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 유니온의 홍보를
위해 일부러 젊고 수려한 녀석들만 뽑았다 ' 라는 근거 불명의 소문이 신빙성을 얻어
파다하게 퍼질 만큼 검은양네들의 외모는 이견의 여지 없이 수려했다. 거기다 10대
들로 이루어진 혁혁한 전과의 클로저 팀이라는 비현실적인 매력은 어린 시절을 간직
한 청년인 유시혁에게 더 없이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 거기다 내 위치는 더 없이 유리한 위치이기도 하고 말이야. '

 그 생각대로 유시혁의 위치는 그들과의 인연이 밀접해지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였다.
자신은 클로저 요원, 그들과 만날 계기는 지금 이 열차의 목적지로 정해졌고, 파벌 싸움
으로 인해 정예 요원 지원이 번번히 누락되었던 그들과 첫 번째로 조우하며 함께하게 될 
정예 클로저 팀의 팀원이기도 했다. 이번에 여러가지로 점수를 따 놓는다면 검은양네들
과 적어도 얼굴 정도는 여러번 마주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이런 흑심 가득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울 수 있지만은 않았다. 검은양을 둘러싼 파
벌 싸움은 유니온 서울 지부의 지부장조차 개입되었을 정도로 견고했다. 그렇기에 보통
의 경우라면ㅡ 차원 전쟁 시기에 출몰했던 A급 차원종 말렉이 나타나는 순간까지도 보
내지 않았던 지원이, 그것도 정예로 파견되었다는 뜻은, 사태가 파벌 싸움보다도 더 중
대함을 의미했다.

 자신의 맞은편, 왼쪽, 오른쪽, 그리고 저 쪽의 먼 자리에 앉은 네 명은 사건의 중대함을
재차 강조하고 있었다. '하이 눈'. 그것이 자신이 속한 팀의 이름이었고, 차원 전쟁 시기
를 겪어온 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제는 세피아 색으로 퇴색해버린 아련한 기억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최고의 팀을 지원한다,
그것이 상부의 입장이었다. 어딜 봐도 흑심 가득한 자신이 마음을 놓을 수 있을만한 상
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시혁의 마음은 더 없이 고요했다. 비록 팀워크가 철저히 박살난 지금이라 해
도, 팀원들을 믿는 마음이 퇴색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제약이 있었다지만 차원 전쟁 시
절의 A급 차원종인 말렉을 성공적으로 체포한 검은양 팀의 근속 기간은 한 달도 채 안
됬는데, 차원 전쟁 시절부터의 원년 멤버였던 하이 눈 팀의 근속 기간은 이십 년 하고도 
수 개월을 더 해야 했다. 그런 힘을 가졌음에도 이런 일에 겁을 먹는다는것도 우스운 일
이었다.

 창 밖은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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