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1 세하와 함께 게임을 -이슬비 편-
하윤슬 2015-01-04 4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차원종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날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이런 좋은 날에 검은 양의 리더, 이슬비는.
"작전회의하기 딱 좋은 날이네."
…작전회의를 위해 멤버들을 소집했다.
"근데 왜! 이세하, 너 밖에 없는 건데!?"
세하는 슬비의 말에도 그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세하의 얼굴에 형형색색의 빛이 지나갈 때마다 슬비의 얼굴색이 점점 붉으락 푸르락하게 변했다.
세하는 그저 고개를 들어 슬비를 슬쩍 보고,
뿅뿅뿅, 두두두, 콰쾅!
이어폰에서 나오는 게임의 효과음에 귀를 맡기고 다시 게임기로 눈을 돌렸다.
"이세하……."
"응?"
작게나마 들리는 슬비의 목소리와 정**를 열기에 세하는 고개를 다시 들었다.
"브스를 뜰어뜨리기 즈네 끄라(버스를 떨어뜨리기 전에 꺼라)……."
"우워워워웍, 뭐냐고 대체? 껐어, 껐잖아! 그보다 너 지금 그 열기랑 표정 뭐야? 새로운 결전기냐?"
쾅!
세하의 바로 앞의 책상에 거대한 대나무가 꽂혔다.
밖에 있던 대나무인 모양이었는지 검은양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죄송합니다."
세하는 즉각 사과했다.
"대체 이게 뭐냐고, 어떻게 된게 아무도 안 오고 제일 게으르고 게임밖에 모르는 너만 오다니!"
"유리는 신상 죽도가 나온다기에 보러갔고, 제이 아저씨는 건강식품 세일에 갔고, 테인이는 오늘 강남 탐험에 떠났어.
그리고 기껏 와줬는데 게으르다는 소리는 좀 빼지 그래?"
후우. 슬비는 진정을 하기 위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세하는 왔다. 맨날 게임을 하지만 임무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할애를 할 정도이니.
그렇다면 리더인 자신은 오지 않은 요원들 때문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세하만이라도 왔으니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무도 안 오니까 그냥 갈게."
은 무슨.
쾅!
이번에는 세하의 발 바로 앞에 철제 사물함이 꽂혔다.
"아 놔, 진짜 뭐하자는 거야 싸우자는 거야? 그런거야?"
소리를 버럭 지르는 세하에게 슬비도 버럭 소리를 질러서 응수했다.
"지금 화를 내야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다들 뭐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차원종이 없다고 해서 어디로 놀러가버리고,
임무는 나 몰라라. 이래서 어떻게 신서울을 지키겠냐고!"
씩씩거리는 슬비를 보면서 세하는 잠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그리고 슬비 앞에 바짝 다가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세하의 행동에 슬비가 당황하고 말았다.
"너야말로 뭔데?"
"내, 내가 뭘?"
"대체 그놈의 임무, 임무. 너는 무슨 신서울을 지키는 기계냐? 오늘은 1년 중에도 보기드문 아무것도 없는 날이잖아. 이런 날은 조금쯤 즐겨도 되잖아. 너처럼 자신을 혹사해서 진짜로 큰 일이 생겼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셈인데?"
"그,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있지. 있는 일이지. 리더가 쓰러진 팀이라니. 그것보다도 우스운 게 세상에 어디있는 건데?"
흠칫. 슬비의 숨이 일순 막혔다.
세하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제대로 쉬어 본 게 언제였던가? 드라마를 볼 때의 한, 두시간 말고는 쉬어본 적이 있었던가.
침울해진 슬비의 얼굴에 네모난 모양에 버튼이 달린 물건, 게임기가 내밀어져 있었다.
그것도 들어오는 돈이 많을 텐데 세하가 고집스럽게 가지고 다니는 하나뿐인 게임기가.
"한 시간 쯤은 빌려줄 수 있어. 격투게임이 세팅되어 있어서 취향에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세하, 너의 분신을."
멍한 얼굴로 보는 슬비의 시선에 세하는 머쓱해졌다.
"분신이니까 소중히 다루라고."
이 남자. 게임기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인정했다.
세하가 게임기를 빌려주고 3시간 뒤.
"한 판 더!"
슬비는 열이 올라서 충전기까지 꽂고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다.
"저기, 슬슬 돌려줄 때가…."
"나는 검은 양의 리더 이슬비. 학교의 공부도, 클로저스의 임무도 중간에 내팽겨치지 않아. 맞아, 그게 설령 만들어진 세계에서 뛰노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이럴려고 빌려준게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슬비는 세하와 동류인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탄하게 스테이지를 클리어 했으나 보스가 나오기 시작한 뒤부터는 쭉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다.
그것도 2시간 씩이나.
게임기를 돌려달라고도 해봤으나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기세에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 게임은 제목은 무림고수들의 격투기를 그린 '강철권6'라면서 어째서 로봇이 튀어나와서 공격을 하는 거지? 이 게임을 만든 제작자의 두뇌가 의심스러워!"
"원래 그 고수들은 그 로봇을 파괴하기 위해 모였다는 설정이야. 강철권도 그 로봇의 이름이고. 무림고수들의 격투기를 그린 건 어디까지나 강철권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누가 제일 적합하냐를 겨루는 거고."
"크으으~!"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기가 부서지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되기는 했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화내는 슬비를 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임무, 임무, 임무. 어쩌면 슬비는 정말로 자신을 신서울을 지키는 기계쯤으로 자신을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소한 게임에 푹 빠져있는 지금만이라도 재미를 위해 놔두어야 되지 않을까?
세하가 생각을 끝낸 순간, 마침내 슬비가 조종하는 '엔젤 진'의 주먹이 보스의 턱에 꽂혀서 남은 HP게이지를 모두 깎아냈다.
오, 잘하는데?
세하는 슬비를 위한 칭찬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갑자기 슬비가 세하를 껴안고 환호를 했기 때문이다.
"야호, 야호! 봤어? 봤지! 내가 멋지게 보스를 쓰러뜨리는 걸! 검은 양의 리더가 이런 게임에 질리가 없다고!"
이렇게 검은 양의 이름을 막 대도 괜찮나?
세하는 생각하는 한 편 정신이 혼미했다.
순수하게 화내는 슬비에 이어서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아이처럼 웃는 슬비도 슬비지만 자꾸 뺨을 비비고 슬비에게서 나는 희미한 샴푸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순간 세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넘어진 세하 위로 슬비가 올라탄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세하와 슬비가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어…."
어색한 침묵 속에서.
"오우."
선글라스를 낀 하얀 머리의 아저씨, 아니 형님이 들어왔다.
쇼핑백에는 신토불이라는 문구가 한자로 적혀있었다.
상황을 찬찬히 살피더니 하얀머리 형님, 제이는 걸음을 뒤로 돌리며 말했다.
"얘들아 건강이 최고다. 그런 거 자꾸 하면 말이지."
잠시 운을 띄우고.
"뼈 삭는다."
탁. 동시에 문이 닫혔다.
슬비는 몸을 일으키더니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그리고.
"으하아아아아아앙!"
울면서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세하도 몸을 일으키면서 창문을 바라봤다.
6층 높이지만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았다.
클로저니까 죽지는 않겠지.
그날 밤.
게임을 하고 있는 세하한테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한 통 왔다.
-FROM J-
결국 어른의 계단을 밟았구나.
승급기념으로 내일 이 형이 맛있는 걸 사주마
세하는 스마트폰을 벽을 향해 위상력을 폭발시킨 후 던져서 산산조각 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