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18년 전 Ep.1 천안 휴게소(1)
룬네기 2015-01-04 0
Ep.1 천안 휴게소(1)
2002.5.28(화)
세종시와 천안시 사이에 위치한 천안 휴게소.
한 때는 경부선을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차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붐비는 휴게소였지만, 각 도시에서 출몰한 하급 차원종 무리의 습격에 근처 도시와 휴게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살당한 후론 사람의 '사'자도 찾아볼 수 없다.
당연하겠지만 차원종에게 점거당한 지 세 달 후인 지금까지도 휴게소에 있는 식료품들을 노리는 차원종 잔당들이 남아 안 그래도 쑥대밭인 주변을 망쳐놓고 오염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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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르릉...
흙먼지를 휘날리며 도로 위를 시원하게 달리는 수송용 장갑차 2대. 앞뒤 벙커와 양 옆구리에는 새하얀 페인트로 [P.A]가 적혀있다. 단단한 방탄 강판 속에는 특수부대나 입고 다닐법한 복장을 하고 있는 남녀들이 줄을 맞춰 벽에 붙어 앉아 있었다. 셔츠, 바람막이, 재킷 등, 자기 편한 대로의 옷을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옷엔 하나같이 [P.A] 명찰이 박혀 있었다.
"어이, 아직 멀었어? 벌써 2시간 째라고."
입고 있는 셔츠에 우락부락한 근육 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흡사 조직의 큰 형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가 오랜 이동이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인상을 쓰며 우악스럽게 팔짱을 끼고 신경질적으로 한 쪽 다리를 덜덜덜 떨었다. 그런 남자의 발치엔 전신이 칠흑으로 물들어 있는 가시 박힌 모닝스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이 신경쓰든 말든, 가만히 앉아있는 게 고문이라도 되는 건지 연신 투덜투덜대는 덩치의 옆 자리에는 끝에 투명한 유리 구슬이 박혀 있는 스태프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사제가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아... 돌아버리겠네 진짜..."
"정신 사나우니까 그 입 좀 다물어요 인한 아저씨."
계속 궁시렁대는 '인한'이라고 불린 남자의 입을 다물게 만든 건 운전석 뒷자리에 있는 검은 포니테일의 여성.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른 이들과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가운데가 길게 패여 있는 장검을 바닥에 꽂고, 잡고 있는 손잡이에 이마를 기댄 채로 말한 그녀의 말에 인한은 못미더워하는 듯 하면서도 투덜대는 걸 그만두고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고쳐 썼다.
"저기 아저씨... 청심환이라도 하나 드실래요?"
"청심환? 아니 됐어. 그거 물 없이 먹으면 목구멍에 걸려가지고 켁켁거리게 되잖아. 그거 없어도 알아서 할 테니까. 나 분노 조절 장애같은 거 아니거든."
사제 비스무리한 여자의 손이 뭔가를 꺼내려고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는 걸 본 인한이 손을 저으면서 던진 농담에 긴장이 역력하게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던 이들의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하유빈? 청심환 있으면 줘 봐. 긴장 좀 풀게."
"네? 아아 네. 여기요... 꺅!"
무안한 기색을 띠며 다시 요조숙녀처럼 스태프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으려 하유빈이 리더로 추정되는 여자의 말에 움찔하며 되물었다가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는 청심환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려다가 순간 덜컹거리는 차체 진동에 넘어질 뻔한 걸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발의 소년이 얼른 일어나 잡아줬다.
"조심하세요."
"아, 죄... 죄송합니다. 여기 있어요 언니."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백발의 소년은 지나치게 소심한 것 같은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하유빈의 손에 들려 있던 청심환을 포니 테일의 여자에게 건네줬다. 청심환을 받아 든 그녀는 곧바로 입 안에다가 청심환을 집어넣었고, 막 물병을 건네려던 하유빈이 깜짝 놀라 말했다.
"어? 물하고 마셔야 하는데...요? 지수 언니?"
그러나 하유빈의 반응에도 아랑곳않은 지수의 입에선 마치 알사탕을 깨 먹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하유빈은 당황, 강인한은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
까드득... 까득
꿀꺽
"......깨 먹으니 드럽게 맛없네."
"물하고 마셔야지 멍청 대장아. 청심환 처음 먹어 봐?"
"그래, 청심환 처음 먹어보네요. 왜요?"
"노답."
뒷맛이 상당히 쓴 지 하유빈이 내민 물통을 받아들고 내민 혀를 콸콸 적시던 지수에게 인한이 혀를 차면서 핀잔을 줬고, 울컥한 지수가 탁 소리나게 물병 뚜껑을 닫고 눈을 흘기자, 자기가 내뱉은 말에 대해 살짝 찔렸는 지 인한은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 휴게소다."
그 때,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자그마한 창문으로 창 밖을 내다보던 소년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얼떨결에 따라 창문 밖을 쳐다봤다.
"천안 휴게소... 300M라. 멍청 대장. 저기서 우동이라도 먹고 가면 안 돼?"
"아저씨,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거든요?"
"2분 후 천안 휴게소에 진입합니다."
"차원종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수의 질문에 조수석의 군인이 얼핏 환자의 생명 신호기에서나 볼 법한 바이탈(Vital) 사인과 부채꼴 레이더가 돌아가는 납작한 기계를 잠시 들여다보고는.
"약 100마리 가량의 차원종을 레이더에서 확인. 전부 위상력이 고만고만한 걸로 봐서는 전부 C급으로 추정됩니다."
"100마리? 꽤 되는데... 어떡할 거지 대장?"
쿵
군인의 보고에 굴러다니던 모닝스타를 주워들고 장갑차 바닥을 향해 가볍게 내리친 인한이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반사되는 검신에 얼굴을 비춰보고 있는 지수에게 물었다. 그에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기고 아무 말도 않던 지수가 검을 들어 인한을 가리켰다.
"아저씨. 혼자서 차원종 나부래기들을 상대하면 몇 마리까지 죽일 수 있어요?"
"뭔 뜬금없는 소리야. 굳이 말하자면 팔 한 쪽 날아가도 30마리 이상은 박살낼 수 있는데."
순간 얘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으로 지수를 쳐다보던 인한이 대답은 해 주려는 지 팔짱을 끼고 칙칙하다 못해 어두운 사막색의 천장을 올려다보고 낮게 침음성을 흘리다가 한 쪽 눈썹을 찌푸리면서 약간 애매(?)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1호차 능력자 5명에 뒤에 있는 2호차 4명... C급 차원종 100마리라. 좋아, 뒷 차에 있는 녀석들한테 전해."
검 손잡이에 달려있는 탄창을 장전한 지수가 손으로 검신을 훑으며 말했다.
"휴게소의 차원종을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린다고."
[작가의 말]
꾸꾸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