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지 준비용 맛보기 단편] 닫는 자들 ~ Closers ~
안유민 2015-01-02 3
닫는 자들 ~ Closers ~ [프롤로그]
“그럼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가?”
삐쩍 마른데다가 적당히 흘러내리는 주황색 선글라스를 찼고, 하얗게 탈색된 머리는 마치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마냥 비실거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확실한건 단 하나.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J 요원 님.”
“그렇댄다, 얘들아. 이제 좀 쉬겠구만… 휴가다, 휴가!”
J라고 불린 백발의 남성은 자신들 주변에서 앉아있던 소년과 소녀들을 향해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특경대로 보이는 남성은 여전히 뻣뻣하게 서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되지도 않은 흑발의 소년은 앉은 채로 콜라를 들이켰다. 톡 쏘는 청량감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텁텁한 맛에 한숨을 쉬었다.
“역시 냉장고에 넣어 둘 껄 그랬나….”
흑발의 소년은 조금 툴툴거리며 여전히 미지근한 콜라 캔을 들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잠깐 생각을 했다.
칼바크 턱스. 검은 번개의 남자.
그는 분명 유능한 유니온의 연구원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왜 우리, 유니온을 적대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검은 머리의 소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에 쥔 콜라를 들이켰다.
“여전히 애매한 맛이야.”
“세하 꼬맹이, 적당히 마셔 둬. 철수할 준비를 해야지.”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매가 흉악한 덕분에 억지로라도 쓰고 다니는 청년, J가 검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세하라 불린 소년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도 하늘을 응시하며 J에게 물었다.
“어째서… 칼바크 턱스는 유니온에게 등을 돌린 걸까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잖냐. 꼬맹아. 일단 그 녀석은 차원문을 열려고 했어. 엄연히 반역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건 유정 양에게도 들은 사실이니까.”
“분명 유정이 누나도 그랬었죠? 아마.”
기분 탓이 아니다. 세하라 불린 검은 머리의 소년은 알고 있었다. 칼바크 턱스, 그는 배신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있다면 역시 유니온에게 버려진 일이겠지.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지 못한 채로 은폐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고서 만난 존재들. 그게 바로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 차원종. 그들이 사용하는 이름은 정확히 ‘이름없는 군단’ 이었다.
“그러고 보니 애쉬와 더스트 인가.”
“뭔가 짐작이 가는 점이라도 있는 건가요, J 형?”
J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숨을 쉬며 세하의 말에 답했다.
“아니, 그만두자. 확실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저희가 해냈네요, 형.”
“해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이게.”
J는 회의에 빠져 들었다. 백발이 무성한 그는 차원 전쟁의 참여자이기도 하며, 개인 사정 상의 이유로 은퇴한 클로저. 전장에서 공훈을 세운 퇴역 병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진 않았다. 실제로도 J는 눈 앞에 있는 소년의 어머니와도 알고 있다.
알파 퀸. 차원종의 재앙이자 대량 살상의 마녀. 그런 사람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세하라는 소년은 그런 부분에 있어 조금 꺼리는 편이 있기에 J는 구태여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는가? 간단한 이유다.
본인이 싫어한다. 자신도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한다면 건강이 최고다, 라는 투의 이야기 외에는 없다.
그렇기에 J는 결단코 세하의 어머니, 알파 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번 작전도 좋았다. 꼬맹이들 치곤 제법 하던데.”
“별 말씀을요. J 선배 님도 대단하셨어요. 유정 언니께 들은 부분에 대해서 거짓은 없네요.”
“하하, 역시 리더라서 그런가? 꼬맹이가 재밌는 말도 다 할 줄 알고. …입증된 사람이라, 재밌군 그래.”
백색의 사내, J가 눈 앞의 소녀에게 칭찬을 하면서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칭찬의 대상이 된 분홍색 단발의 소녀, 이슬비는 가만히 보면 무뚝뚝해 보였지만 눈 앞에 서있던 사내, J에 대한 호평을 거두지 않았다.
이들은 위상 능력자로서, 통칭- 클로저(Closer)로 구성된 팀인 ‘검은 양(Black Sheep)’ 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상 클로저들의 세계이자 조직인 ‘유니온(Union)’ 에서도 꽤 배척받는 존재들로, 어째선지 쉽사리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분홍 빛의 소녀와 백색의 사내가 이야기를 하던 차에 끼어든 것은 길게 뻗어내린 흑색 장발의 소녀. 분명 프로젝트 검은 양의 멤버는 다섯. 그러나 두 명 빼고 남는 세 명은 전부 동갑내기 친구인 셈이다.
“헤에, 그치만 J 아저씨. 클로저 요원으로 복귀한 이유가 처음엔 정말 연인에 대한 복수거나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복귀한 줄 알았다니까?”
“…나 참, 그런 이유였으면 차라리 속이라도 편했겠다. 욘석아. 아저씨… 아니, 오빠라고 불러. 오빠는 지금 전신이 아파서 고통스러우니까 말이다. 뭐든 건강이 최고야, 건강이.”
검은 장발을 길게 흐드러 뜨리는 소녀, 서유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이가 받아치듯 J는 호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입 안으로 우겨 넣었다. 보통 환자라면 전선에서 싸울 사람도 아니건만, 그는 어째선지 전선에 나서서 손수 싸우고 있었다.
그가 먹은 약물은 전부 건강식품. 시시건건 약물을 오·남용 하는 그에게 있어 이제 일과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되었다. 남자가 시시 때때로 해줘야 하는 그런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도 설명이 부족하지 않달까.
칼슘, 마그네슘, 오메가 3… 정말로 효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의구심이 들 정도로 J는 약을 먹어 치웠다. 그러자 그런 모습을 본 소녀들, 서유리와 이슬비가 적절히 태클을 걸었다.
“으와, 아저씨. 그렇게 약을 먹고도 괜찮은 거야?! 안 비싸!?”
“돈 문제도 돈 문제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먹어댔다간 J 선배 님의 몸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어요.”
“걱정 마라, 얘들아. 난 이렇게 먹어줘야 몸이 살아나거든. 왜, 그거 있잖아.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못 끊는거. 펴야 살 것 같다고 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이런 각종 건강식품을 제때 제때 먹어주지 않으면….”
J는 입을 열다가도 끊었다. 이래선 약쟁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되니까. 사실 그런 모습에서 이미 J는 약쟁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건강이 제일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하질 않나, 당장 애들이 보는 앞에서 건강식품을 가지가지 골라서 잡수시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누가 약쟁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미 글러먹은 셈이다.
“J 형은 뭐 안드세요?”
“이미 먹고 있잖냐.”
“…약이요?”
“그래. 이거 먹으면 돼. 뭐… 사실은 맥주가 더 좋지만.”
세하가 J에게 묻자 J는 약통을 가볍게 꺼내들고 툭툭 쳤다. 칼바크 턱스의 체포 임무가 끝난 후, 검은 양의 멤버 전원은 제각기 다른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알다시피 세하는 미적지근한 콜라를 마시고 있었고 슬비는 빵을 씹으며 강남에 있을 때에 알게 된 포장마차 ‘여우네’ 의 주인, 소영이 만든 특제 드링크를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말야, 아저씨. 매번 볼 때마다 어깨가 결리니 손이 춥네 뭐네 하면서도 그런 약을 돈 주고 사서 먹을 의리라도 있는 거야?”
유리는 적당히 웃으며 손에 든 컵라면을 들이켰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J는 가볍게 대꾸.
“의리, 라… 그렇다고 보기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약을 먹지 않으면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해두마. 뭐, 작전 중에 다치면 보험처리야 되겠지마는.”
이게 나이를 먹은 위상 능력자인가? 하고 주변에서 음식을 섭취하던 소년과 소녀들은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이었다며 속으로 생각하는 검은 양의 멤버들. 실제로도 틀리지 않았다. J는 정말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부터가 딱 한 마디로 완전귀결이 되는 사람이었다.
‘얘들아, 아프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야.’를 매번 외치는 사내인데 어찌 그리 생각하지 않겠냐만.
“그럼 오늘은 임무도 종료했겠다, 해산할까? 갑자기 술이 땡겨서 말야.”
J는 구로역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린 아이들을 이끄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맥주가 마시고 싶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
한석봉이라는 아이가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 아이에게서 술을 사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기 혼자만 있을 때의 이야기. 검은 양의 멤버들은 J를 제외한 전원 미성년자. 그런 아이들 앞에서까지 술을 마셔대고 싶진 않았기에 조금 참기로 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J 선배 님.”
“아저씨, 다음에 봐! 몸 조심하고!”
“형, 진짜 몸 관리좀 조심히 하세요.”
‘하여간, 하나같이 귀여운 녀석들이야.’
자신보다 열 살은 족히 어린 아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받자 J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등을 돌렸다. 어서 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입 안 가득 흘려넣고 싶었다. 담배는 피지 않지만, 술은 마시고 싶다. 성인으로서, 그리고 일이 끝난 직장인으로서 술은 하나의 문화가 될 정도로 파급력이 강한 물건이었으니까.
“…잠깐, 큰일 났어! 모두들!”
먼 발치에서 달려오는 여성. 갈색 장발에 파란 코트, 그리고 ‘Union’ 이라고 적혀 있는 명찰. 그녀는 프로젝트 검은 양을 관리하는 요원, 김유정이었다.
J는 다급해보이는 표정의 그녀를 보고선 생각했다. ‘집에 가기는 글렀군.’ 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금주라도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야, 유정 양.”
“그, 그게! 신강 고등학교에 차원종이 출현 했어!”
관리요원 김유정의 다급한 외침에 당장 식사를 하던 신강 고등학교의 학생 세 명과 병약한 요원 한 명은 벙 찐 표정으로 응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리 학교에 차원종이… 나타 났다구요?”
“…응,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야.”
“그럼 지금 신강 고등학교는요?! 요원이 있을 텐데요?”
J를 제외한 검은 양의 멤버들은 전부 당황한 투로 입을 열었다.
“까짓거 별 수 있나. 딱봐도 요원의 출발이 늦은 모양이군. 결론은 우리가 가**단 거잖아.”
“일단 출격을 부탁할게요!”
**. 오늘도 맥주를 마시기는 글렀군. J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 안에 약을 털어 넣었다.
“얘들아, 가자. 너희들 학교니까 지키러 가야지?”
J는 그런 말을 하면서 여전히 주머니에서 건강식품을 꺼내 우물거렸다. 평상 시보다 더욱 많은 양을 씹어대는 그는 적잖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물론 티를 내진 않았지만.
“J 씨, 부탁 드릴게요! 저도 곧장 따라갈 테니까요!”
김유정 관리요원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J는 역 주변에서 멍하니 죽어있던 이동에 특화된 요원, 선우 란에게 다가갔다.
정말 묘한 기분이 들어. 느낌이 영 좋지 못해. 차원전쟁을 경험한 사내는 불안함에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