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24-

PhantomSWAT 2015-08-15 7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SWAT'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흩어지는 양떼 -10-]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865



           [흩어지는 양떼 -1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958



           [흩어지는 양떼 -1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046



           [흩어지는 양떼 -1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123



           [흩어지는 양떼 -1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497



           [흩어지는 양떼 -외전-]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264



          [흩어지는 양떼 -1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2790




          [흩어지는 양떼 -1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065



          [흩어지는 양떼 -1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244




          [흩어지는 양떼 -1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504




          [흩어지는 양떼  -1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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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석궁을 장전했다.


몰아 쉬는 가파른 숨소리가 상당히 오랫만에 몸을 혹사시킨다는 증거같아

그녀는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한 그 거친 숨소리를 내는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 놔두었다.


후드에 파묻힌 머리가 왠지 모르게 더워 손을 들어 이마를 훔치자, 땀이 제법 베어 나왔다.


좍좍 쏟아지는 비는 그녀의 후드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달려서 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이 후드가 유니온에서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방수성을 지닌 것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땀이던, 비던. 물에 젖는 느낌은  빈말로도 그녀에게 좋은 기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전통에 남은 화살을 확인해 보니, 아직 그렇게 쏘아 댔음에도 스무발 남짓 남아있다는것이 신기했다.


얇기는 면도날만큼 얇지만, 너무 기다란 길이 때문인지 다들 무겁거나 거추장스럽지 않느냐는 말을 했었지만, 정작 그들이

이 전통을 들어본다면 가벼운 무게에 경악을 금치 못할것이 자명했다.


게다가 그녀는 가벼운 위상력 운용방식의 응용 으로 석궁과 함께

항시 그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주변경계를 하며 이동했다.


숲을 다 물로 잠기게 만들 작정인지 퍼붓는 빗 속에서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를 쫒아오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추적을 따돌린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울창한 나뭇잎 덕에 그나마 덜 젖은 나무 그루터기에 등을 기대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일이 이렇게 틀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의 직속 클로저 요원 팀 페가수스는 그 거창한 수식어에 맞지 않게도 차원종의 기습에 당했다.


물론 그들의 실력 부족이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었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한 때, 그들은 마침 다 부서져가는 제법 커다란 정자 밑으로 비를 피했고, 비가 저렇게 많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차원종들이 그들을 습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것이 그 원흉이라면 원흉이었다.


또한 그 정자가 위치한 지형은 나무들이며 풀들이 제법 울창하게 자라 있었는데, 풍경이 분위기 좋다면서 좋아하는 설화의

약간 풀어진 모습에 어쩌면 다들 그 복잡한 엄폐물로 바뀔 수 있는 풍경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진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막 식사를 마치고서 잠깐 교대로 돌아가면서 눈을 붙이기로 결정하고 막 순서를 정하고 있을 무렵,

그들은 소리 소문없이 닥 쳐왔다.


놈들이 먼저 노린 타겟은 예화였다.


예화는 몸을 비틀어 그 순간에도 치명상이 될만한 공격을 회피했지만, 완전하지는 못했고,

또한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하고있던 상태도 아니었기에 여자에게 난 상처 치고는 제법 큰 상처를 허리에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뒤는 사실 그녀도 그녀 자신의 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놈들의 체구는 작았지만, 놈들의 손에는 기괴하게 생긴 흑색 창이 들려 있었고,

등은 굽었지만, 그 굽은 등의 형태는 마치 아르마딜로같은 갑각류의 그것과도 같이 윤이 났기에 직감적으로 상대하기 쉬운 부류는 아니라는 것은 그녀 혼자만 느꼈던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습격이었지만, 그들은 정예요원이었다. 금방 다시 진열을 재정비...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그 일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수가 너무 많았다.


비가 내려서 더 그렇게 느낀것인지도 몰랐지만, 마치 유령같이 움직여대는 놈들의 수는 그 일대 전체를 덮어버린 듯 했다.


게다가 그들이 무수히 베어 넘겼던 A급 차원종하고는 느껴지는 위압감의 정도가 틀렸다. 


소은이 석궁을 장전하고는 재빨리 닥 쳐오는 한 놈을 쏘았지만, 두번째 화살을 장전하기도 전에 그녀는 석궁에 장전하려 뽑아든 화살로 옆에서 공격하는 차원종의 창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놈을 베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정신없이 교전하던 팀원들끼리 어느새 서로의 거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막 몇마리의 차원종을 더 해치우자, 그녀의 시선 끝에 설화가 작게 들어왔다.


제법 멀긴 했지만, 아직 보일 정도의 거리는 되었다.


그녀는 어깨에 공격을 허용하고 만 것인지, 피가 상당히 베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차원종들이 의도한것인지 몰랐지만, 리더인 그녀가 가장 많은 놈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상처나 상황들속에서도 냉정한 어투로써 서로 이제는 상당히 멀찍이 떨어진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각개전투를 펼칩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더욱 추가적인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팀원들의 놀라는 표정이 그녀의 눈앞에서 훤히 보이는 듯 했다.


그녀의 모습이 아직은 보일 정도의 위치었기에 소은은 결국 그녀가 왜 말을 멈추었는지 보고야 말았다.


왼팔을 창에 관통당했다.


어깨와 가까운 부분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녀의 팔이 더욱 무용지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침착했다.


오른팔로만 라이플을 들어 창을 찌른 차원종의 얼굴에다 탄창을 죄다 비울정도로 탄을 쏴댄 그녀는

숨이 끊어진 놈을 발로 차며 크게 외쳤다.


"산개! 일단 흩어지세요! 상황이 불리합니다!"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사람의 말소리였다.


아마 다섯...아니, 여섯시간은 흘렀을 터였지만, 서로의 행방은 묘연했다.


서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작전 지시 당시에 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종류의 임무를 맡게 될지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게 될것인지도 대충 짐작을 했기에, 세하의 형벌에 관해 그들이 관여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전화기며 GPS 무전기는 모두 압수당했다.


그들끼리만 통신이 가능한 구식 무전기가 하나씩 주어졌지만, 그마저도 아까 교전 중에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 무전기조차도 교신거리가 그다지 먼 것은 아니었기에 어찌되던 사실 상관 없는것이나 다름 없었다.


문득 자신의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것을 느끼고 그녀는 몸을 떨었다.


가을비는 제법 싸늘했다.


몸을 따듯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다 드디어 소은은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동굴같은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깊지도 않았고, 딱 비를 피할수 있을 정도로만 컸다.


막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는 점점 더 차가워지는 몸을 이끌고 배낭에서 고형 연료를 꺼내 아까 먹으려고 반쯤

따 놓은 건빵 깡통캔 안의 내용물을 쏟고 집어 넣은 후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그 다음에는 수통을 꺼내서 그 위에 올려놓았다.


물이 따듯해 질 동안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후드를 벗었다.


왠만하면 후드를 벗지 않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녀를 처다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굳이 쓰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배낭에서 방수시트를 꺼내어 몸을 따듯하게 감싸고, 뜨거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그녀는 한모금 더 물을 마셨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한동안.

아니, 제법 오랫동안 거울을 보 지 않았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것은 죽기보다 두려웠다.


복수를 행하고 나서 **온 죄책감은 생각보다 허무할정도로 약했고, 그런 자신이 무서웠기에 그녀는 자신을 보는 것 마저 삼갔다.


남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남에게 시선을 향하는것도 알리기 싫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자신이 더욱 싫었기에 그녀는 남에게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려 자신을 가리는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상처이자 동시에 그녀에게 죄를 잊지 않게 해주는 낙인이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타인에게 자신이 섞여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살인자의 위선인지를 곱씹으면서, 복수를 위해 한계를 여러번 뛰어 넘어가며 위상력을 사용했던 대가로 얼마 남지도 않은 생명이 다하기만을 조용히 사형수처럼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 사형수.


그것만큼 그녀가 그녀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그녀는 살짝 웃었다.


쓴웃음도, 비웃음도 아닌 그냥 허탈한 웃음이었다.


그녀 자신이 상처받아가면서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하는것인지 조차 잘 모를 '속죄'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인간관계를 포기할만큼 나약한 주제에.

언니의 복수를 이룰 생각을 했던 자신이, 그리고 그 모든것이 그녀가 알고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문득 자조하듯 미소짓던 그녀의 머릿 속에 세하의 모습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당신의 본모습이라면, 기꺼이.'


진심이었을까.


그렇게 추잡한 일을, 그렇게 저열하기 그지없는 살인을, 복수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그의 눈을 그녀는 어쩐지 마주볼 수 없었다.


그것이 어떤 연유에서건, 그를 생각하면 이상한곳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 그 소년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것이 동질감이던, 동정이던, 아니면 그것이 아닌 다른것이던.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제법 몸이 따듯해지자, 그녀는 배낭에서 지도와 GPS를 꺼내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그들이 향하던 SS급 차원종 예상 루트에서 한참을 벗어나버렸다.


사실은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잘 짐작을 못하겠지만, 아무튼 이동한 거리가 직선방향 에 가까운걸 생각하면 한참을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문득 지금 산속 어디선가 교전을 하고 있을 다른 팀원들이 생각나 그녀는 잠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그치면 그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소은은 지도를 접고는 자신의 양팔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그녀의 손목시계는 어느새 오후 12시를 넘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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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오두막의 허물어진 틈새 사이로 햇빛이 나직하게 들어왔다.


가느다랗게 흘러들어오는 햇살은  옅은 잠이 들었던 세하를 깨우기에는 의외로 충분했다.


막 깨어난 직후에 온 몸을 내달리는 몽롱한 느낌을 떨쳐내기 위해 그는 언젠가 그의 엄마가 가르쳐 주었던 대로

거칠게 눈을 비볐다.


눈을 세게 비비고 뜨자마자 눈 언저리를 홱홱 날아다니는 희끄무레한 초록 불빛이 사납게 그의 시야를

흐뜨려놓으려 발버둥치는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막 부서질것만 같은 오두막의 벽에 크게

갈라진 틈 사이로 물방울들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 위를 비추는것은 먹구름의 암울한 회색빛이 아니라

말간 가을햇살이었다.


천둥번개가 휘몰아쳤지만 용케도 깨지 않은 자신에게 조금 감탄하며 그는 몸을 일으키려 상채를 숙이려다

문득 자신이 누워서 잔 것이 아니라 앉은 채로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것을 깨달은 직후 등에 받혀오는 부드러운 무게감을 느꼈다.


잠들기 전에 유리와 등을 맞대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간신히 아직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 기억해 내고는


그는 잠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팔을 뒤로 돌려 그녀를 땅에 뉘이고는 조용히 그녀가 깔고 앉아있던

침낭을 꺼내 유리를 눕히고는 일어 섰다.


"이래서야 업어가도 모르겠어."


빰에 붙은 검은 머릿칼이 간지러운지 아니면 뭔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유리의 입

술은 살짝 미소를 띄며 휘어져 있었다.


세하는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버리고는 조용하게 경첩이 아직도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것이 신기한

다 부서져가는 문을 열었다.


어제부터 불어오던 비바람과 천둥소리는 어디가고 따뜻한 햇살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는 숨을 자신도 모르게 크게 들이켰다.


맑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그의 폐속으로 훅 들어갔다 천천히 빠져 나왔다.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그는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침 햇살을 받은 젖은 흙냄새, 어디선가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의 발자취.


그 모든 것 들을 느끼며 문득 하늘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어제의 그 먹구름은 어디러

가 버렸는지 티없이 깨끗한 푸른 하늘이 그의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동안뿐이였다.


재미있게도, 그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자마자 그 직후 떠오른 생각은

죄책감마저 들게 할 정도로 예리하게 그를 찔러들었다.


그렇지만 잠결에서 막 깬 잠시동안만이라도 그 생각을 잊고 있던 자신이 견디지 못할 만큼 미웠다.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슬비의 얼굴이 그를 재촉했다.


"이동하기 딱 좋은날씨네, 빨리 움직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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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슬비는 그녀를 마주 대한 순간부터 굳어버렸다.


검소한 셔츠 차림 위에 홀스터와 나이프가 수납된 벨트, 그리고 벽에 장식 겸 걸려져 있지만 결코 장식용으로 만

쓰이지 않음을 그 묵직한 기능미로 표현하고 있는 몇정의 총들 앞에 앉아 정성스래 총 하나를 분해한 채 정비

중이던 여자에게서는 그녀가 배경으로 가진 그 어떠한 사물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무장을 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클로저들 중에서, 하다못해 위상능력자가 아닌 특경대들보다도 무장의 정도는 간소했다.


무기 자체만도 이미 제식 무기로써 채용된지 꽤 되어보이는 무기들이라 더욱 초라해 보일지도

몰랐지만, 그런 점들을 다 제쳐놓아도 좋을정도로 그녀의 눈은 매서웠다.


"정찰 나간다던 김한검이 데려왔다는게 너구나."


냉정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슬비에게 말해왔다.


목소리에 자연스러울 정도로 배여있는 카리스마는 그녀의 이미지를 한층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서야말로 이들의 대장이 되기에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슬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널 구한건 내가 아니라 마침 정찰나갔던 우리 마을 민병대 소속 레인저야.

고마워 할거면 그에게 고마워해."


차가울 정도로 사무적인 말투에 슬비는 잠깐 대꾸할 말을 잃었지만, 슬비가 대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재차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난 이수진이라고해. 보다시피 이 마을의 민병대의 대장이야."


넌? 이라고 묻는 듯 한 턱짓에 그녀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는 대답할 말을 생각하다 말했다.


"이슬비라고 합니다. 다시한번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고 사무적으로 대답한 그녀의 빠른 말투에 수진이라고 이름을 밝힌 여자는 슬쩍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것없어. 편하게 행동해. 그리고 도움이라면 널 데려온 김한검이라는 레인저에게 고마워하렴.

나중에 그 사람이 있을때 네게 알려줄테니까 그때 만나서 인사하려면 그렇게 하고."


"네..."


그 말만 마치고는 수진은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았고, 자연히 의자가 비치되지 않은 방 안에서 슬비와 희진은 그대로 서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침묵이 진행되었다.


사실 제 3자가 그녀들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어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실내의 분위기는  완전히 이수진에게 주도권이 틀어잡혀있었다.


그것을 확연히 느낄 정도로 뚜렷한 그녀의 카리스마에 슬비는 내심 감탄했다.


차 한잔을 다 마실정도의 시간이 흘렀을때, 드디어 묵묵히 총을 손질하던 수진이 입을 열었다.


"여기에는 무슨일로 온거지?"


수진이 마치 캐묻는듯한 말투로 물었지만,

사실 직접 그녀와 대면하며 말하는 슬비에게는 그녀의 말투가 워낙 날이 서있는

공격적인 말투라서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었지, 그녀가 무언가를 캐내거나 추궁하기 위해 심문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슬비는 성의껏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구해준 이들의 리더라면 예의를 표하는것이 도리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수습클로저 요원으로, 특수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부상당했습니다."


말 끄트머리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의외로 수진은 살짝 놀란눈치였다.


"너 혼자?"


"아니요, 같은 팀 소속의 동료들 둘과...아니, 한명과 함께 임무 수행도중 부상으로 인해 낙오되었습니다."


실내가 그다지 밝지는 않았기에 슬비는 수진의 모든 표정이나 감정을 읽어 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스친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럼 동료들을 찾으러 갈 생각이니?"


수진은 다시 고개를 책상에 떨어뜨린 채 이제는 총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이 한 두번 무기를 조립해 본 이의 그것과는 숙련의 정도가 틀렸기에 그 능숙함에 슬비는 내심 놀라고야 말았다.


"네."


그때, 그녀가 그렇게 대답 한 순간 무언가 이상한 공기가 그녀의 주변에서 흐르는것을 그녀는 지금껏 전투를 경험했던 본능으로 느꼈다.


하지만 몸의 상태가 정상과는 다르게 피로에 절어 있는 상태인지라 이상한부분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한

슬비는 쓸데없는 생각을 고개를 휘저으며 흩어놓았다.


이윽고 다 조힙한 총을 한참동안 만지작 거리던 그녀는 탁자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 말했다.


"부상이 다 나으면 그때 다시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렴."


"...네"


슬비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빨리 아이들과 합류 하고 싶다지만, 몸이 이런 상태라면 합류하기는 커녕 더 위험할수도있다.


아직 그녀의 옷 안에 감춰진 몸에는 지혈이 완전히 완료되지 않은 상처를 감싼 붕대가 촘촘히 감겨 있을것이 뻔했다.


어쩔수없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명령을 따를수밖에없었다.


"그럼 나가봐."


명령하는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듯 한 목소리는 슬비를 거역하게 놔두지 않았다.


물론 거역한다는 행동에 득이 될 만한 의미는 없었지만, 말 한마디 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레 상대를 압도하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욱 큰 행동의 지시를 그녀에게 부과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천천히 문쪽으로 걸어가던 그녀의 앞에서 문을 막 열어주려 손을 뻗은 희진이 문고리를 잡았을때

슬비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진아, '규칙' 에 대해서 말은 해줬어야지. 혹시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규칙?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슬비가 알아 차리기도 전에 희진이 빙긋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응, 이 애는 막 깨어났어. 말 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야."


"그럼 네가 말해 주도록 해."


"알겠어, 그럴게."


별 일 아니라는듯 가볍게 대꾸하고는 희진은 슬비보고 나가라는듯 손짓했다.


슬비가 문 밖에 나서자 그녀 역시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둘은 말 없이 몇걸음 걸어갔다. 별로 말할 거리도 없었지만, 이 침묵이 어색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던지

희진이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미안해. 언니가 좀 그랬지? 원래 좋은 언니인데 감정표현이 좀 서툴러서 그래. 이해해줘."


희진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슬비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충분히 친절하신걸요. 그리고 처음보는 저에게도 저렇게 말씀하시는것도 감사드린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희진은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덩달아서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희진과 수진이 나누었던 대화에서 약간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생각나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규칙이라고 하는건 뭔가요? 아까 수진언니가 말하셨던..."


"아, 그거? 별거 아니야. 네가 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나으면 그때 이야기 해줄게.

마을에 들어와서 지켜야 할 수칙 같은거니까, 그렇게 신경 안써도 될거야."


그런가보다 하고 슬비는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잠깐 수진과 희진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의아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질문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언니라니? 혹시 친언니 인건가요?"


슬비의 질문에 희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 얼굴이 마냥 밝아보이지 않았던것은 어쩌면 해가 막 저물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슬비는 생각했다.


"언니께서 믿음직스러우시니까 의지할수있어서 좋아보여요."


그렇게 말하며 슬비는 어느새 붉게 타들어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늦은 가을이라 그런지 그 햇빛마저 투명해뵐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미소짓고 있는 희진의 웃음은 복잡한 감정이 뒤 섞여 있는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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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걷는것이 분명한 세하와 유리가 나뭇가지를 헤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벌써 시간은 저녁에 가까워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5시경. 늦어진 가을이라 벌써부터 해는 저물어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물론 그리 된다면 그들로써도 낭패였다.


휴대 손전등 등의 장비가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불빛을 노출하고다니며 산 속을 움직이는것은

고양이 앞에서 쥐가 강력한 치즈향 스프레이를 온 몸에 바르고 기어가는것만큼 몰상식한 행동임이 분명했기에 밤이 되면

그들은 불가피하게 움직임을 멈추어야만 했다.


"벌써 오늘도 해가 지는거야?"


유리의 탄식소리에 세하의 안색은 더더욱 나빠졌다.


슬비는 어디 있는지 몰랐다.


당연하듯이, 도움의 손길 없이 출혈량이 결코 적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었다면 그 최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확실해질 것임이 뻔했다.


슬비의 머리끈을 찾고 나서도 추적은 미궁에 빠지고야 말았다.


사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둘은 산 주변을 한바퀴 빙 돌아보며 겨우 흔적을 발견 했을 뿐이었다.


빗물에 용케도 씻겨나가지 않은

검붉은 핏방울들이 맺힌 붕대가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는것을 유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뻔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이 슬비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녀에게 붕대가 있는지조차도 몰랐지만, 그들이 간신히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출혈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갑자기 핏자국이 사라진것은 붕대로 지혈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붕대의 출처는 모르지만 핏자국이 없어지는

시점과 이 붕대가 떨어진 시점을 조합해보면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붕대를 가는 도중에 조금의 출혈이 있었는지 조금 더

떨어진 곳까지 핏자국이 남아있고는 그 뒤로부터는 자국이 사라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앞은 키가 큰 풀들이

제법 자라고 있어, 빗물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이 곳을 지나갔다는 흔적은 풀이 옆으로 부자연스럽게 휘어진 채로 남아 있어, 아직 흔적으로써의 역할이 다하지 않은 것 이었다.


그정도 상처에 붕대로 지혈을 한다는것도 미덥지 못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어쩌면 그렇기에 마치 벼랑 끝으로 몰린 심정이던 세하와 유리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어준 것인지 몰랐다.


"그래도 흔적은 찾았으니까. 여기 나무들이 많아서 잘하면 핏자국도 안지워진게 몇개 있을지도 모르겠어. 발자국이라던지..."


세하는 그렇게 말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럴 턱이 없었다.


지금 그들이 따라가는 흔적도 사실 거의 절반 이상이 감에 의한 것이었다.


비는 모든 흔적을 흐뜨러뜨렸다.


"혹시 나무를 잘봐. 끈이라도 묶여있을 수 있잖아?"


그렇지만 유리의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변은 휘어진 키 큰 풀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길은 커녕 몇년동안은 아무도 없었다는것처럼 깨끗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


유리가 이를 악물면서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세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낄 줄 알았다면.

결코 부담감이라는 이름의 핑계로 노력을 멈추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뒤흔드는 자기혐오를 주체할 수 없었다.


'철그렁.'


마침 발을 옮겨놓던 그의 발에 이상한 쇳소리와 함께 이질적인 물건이 밟혔다.


하마타면 균형을 잃을 뻔한 그가 비틀거리며 간신히 자리에 서는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균형을 잃었다는 생각보다도 먼저 그 소리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짓쳐들었다.


'금속 소리?'


유리가 깜짝 놀라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신발에 밟힌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는 어렵지 않게 그 물건을 찾을 수 있었는데,

다름아니라 그것은 황동색으로 가을하늘 아래 타들어가듯 져물어가는 햇빛을 번쩍번쩍 반사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동이라는것이 차원종이 쓰는 자원이 아닐 뿐더러, 인산의 손길이 닿은지 이미 오래 되어버린 야산의 길 한구석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가 천천히 앉아 그것을 집어 들자, 흙이 톡톡 털어져 나오며, 그가 밟아서 흙속으로 반쯤 파묻힌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피?"


탄피였다.


재미있게도 그 탄피가 다가 아니었는지 그들이 조금 고개를 돌려보자, 좌측 전방으로 쭉 뻗은 길목에 상당한 양의 탄피가 흩뿌려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응, 발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그가 아무 생각 없이 그리 추측한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오래 전에 이 산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면, 세월이 남겼을 녹슨 흔적이 없었다.


또한 깨끗하기까지 했고, 땅속에 묻히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무른 재질의 토양이라 그들의 발은 푹푹 빠질정도의 지면의 무르기가 낮았는데,

바로 어제 비가 내렸음에도 물러진 지면을 파고들어가지 않은것을 보거나

아직은 깨끗한 모습을 본다면 아무래도 비가 온 당일 발사되었거나 오늘쯤 발사가 된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의 옆에서 유리가 무릎을 굽히고 들여다보자, 그는 그녀에게 탄피를 건넸다.


사실은 그가 그 이상 탄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어서이기도 했다.


"이건... 도대체.."


건네받은 뒤로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바라보고있던 그녀는 눈쌀을 찌푸리더니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그에게 말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권총탄은 아닌것 같고, 소총탄같은데? 슬비가 총을 들고오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호...혹시, 차원종들중에 인간의 총을 쓰는 놈들도 있는건가?"


"설마, 차원종은 화약이라는 방식을 무기에 사용하지 않는걸. 아무래도 이건 다른 사람인 것 같아. 그리고..."


세하는 걸음을 옮겨 탄환이 제법 흐트러져있는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아니나다를까, 발자국역시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는 군용 부츠로써 성인 남성정도가 사용할 만한 크기의 발자국이었고, 하나는 조금 작았는데, 유리가 자신의 신발 밑을 보니, 수습 여성 요원들에게 지급된 여성용 기동화의 밑바닥과 동일한 생김새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슬비가 간 길을 잃진 않은것 같아. 하지만 이런곳에서 총알이 발사가 되었다면 우리가 듣지 못했을리는 없는데...그리고 왜 총을 쏜거지?"


그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그들이 온 방향이 아닌 한참 뒤쪽의 풀숲에 착탄지점이 보여 유리가 확인해 보니, 그곳에는 여덟에서 열마리쯤의 괴이하게

생긴 차원종이 몸이 탄환에 꿰뚫린 듯 한 상흔을 남긴 채 죽어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탄환은 그들의 목과 머리,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큼직한 젤같이 물렁거리는 곳 (확정지어 말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것들의 대부분이 탄환으로 인해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더욱 경이로웠던것은 그들이 몇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탄환이 이 풀과 나무가 빼곡한 지역에 단 한발도 빗나가 박혀있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정밀하게 탐색을 하지 않아서 몇발의 빗나간 탄환의 흔적을 찾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으나, 그것을 감안 한다 하더라도 사수의 능력은 정밀한 것이 분명했다.


'마치 설화 누나의 사격실력같아...'


세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화라면 탄피가 배출되지 않는 특수 라이플을 사용했던것으로 기억했다.


또한, 그녀가 이쪽으로 왔을 턱이 없었다.


물론 이러한 사격실력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지만, 페가수스팀의 리더인 그녀가 이러한 곳으로 왔을 턱이 없었다.


"일단 위상관통탄은 아닌 것 같은데, 일반 탄환에 위상력을 불어 넣어서 쏜 것 같아."


세하의 말에 유리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위상 관통탄은 일반 탄환과 다르게 탄환의 뒷부분에 오각형의 각인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일반 탄환과 위상관통탄의 구별법이었다.


그는 더 생각하다 머리를 휘저었다.


더 이상 생각하다가는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고민할 시간에 슬비를 찾아 나서는 것이 더욱 현명한 생각일 것임이 뻔했다.


발자국이 슬비의 것이 끊기고 남자의 군화자국이 쭉 이어졌으므로, 그들은 그 자국을 따라가기로 했다.


주변을 꼼꼼히 뒤 진 결과 슬비와 남자는 동행하기로 결정한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그 이상으로 그들이 추리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없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수색방향이기도 했지만 말이었다.


"여기서 무슨일이 있었던건 분명해. 제발 슬비에게 아무 이상도 없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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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가 발견된 지역을 위험하다고 판단한 세하는 그곳에서 빠르게 유리를 데리고 이탈했다.


차원종이던, 차원종과 교전한 무엇이던 그곳에 다시 들이닥칠 자가 누구던간에 쓸데없는 위험은 배제하는것이 가장 상책이었다.


그렇지만 희미하게나마 남은 발자국을 추적하는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걸음 얼마 못 가서 멈추고야 말았다.


"잠깐만 쉬었다가 가자, 서유리."


그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의 나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그녀의 평소와는 다른 행동은 아마도 초조하기 때문일까.


그는 흔적을 찾느라 숙이고 다녔던 허리를 피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섞이는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남자는 누굴까.

슬비는 안전할까.

자신들이 잘못 짚고 따라가는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거리가 흘러 넘쳤지만,

착잡한 유리의 표정을 봐서는 꼭 그만이 그런 걱정을 하는것은 아닌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유리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의 시선은 당황스럽게도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들이 슬비를 찾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로 어둑어둑해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수색을 계속했기에

그녀의 얼굴은 빛을 잃은 하늘처럼 약간 창백해보였다.


"왜 그래?"


그가 질문하였지만 유리는 대답대신 하늘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기서 새 두마리가 날고 있었는데, 한 마리가 떨어졌어."


"새?"


그녀의 팔을 따라 손가락의 끝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한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마리가 떨어졌다니?


갑자기 새가 급성 근육경련이라도 일으켜 추락한단말인가?


하지만 웃기지도 않은 그의 상상은 잠시였다.


작게, 이번엔 둘 다 집중해서 들었으므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던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한발의 총성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도 못하면서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뛰기 시작했다.


새 한마리가 다시 떨어졌다.


차원종이 총성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내놓는 인간이 만든 무기를 쓰지는 않는다.


사용자는 인간일 것임이 뻔했다.


총성이 울려퍼진 곳을 향하여 뛰었다.


아마도 사격술을 보아서 아까 그 남자가 아닐까, 그리고 그 남자의 발자국만 남은것으로 봐서 어쩌면

남자가 슬비를 이쪽으로 들쳐 업거나 해서 모종의 이유때문에 들고 온것이 아닐까.

드디어 붙잡았다는 생각보다 더욱 먼저 든 것은 슬비의 생사여부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듯했지만 그들은 상관없다는듯이 뛰었다.


몇분을 달렸을까, 총성이 난 곳으로 달려가다 보니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는것 같더니, 조금 더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몇명의 사람들을 빼곡히 들어찬 풀들 사이로 얼핏얼핏 볼수있었다.


세명의 여자가 소총을 등에 메고는 방금 전 날던 새와 어디서 잡았는지 모를 사슴과 비슷하게 보이는 동물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유리가 막 나서려는것을 세하가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위상력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들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누군지 몰랐으니 섣불리 나서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그녀들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녀들의 신발은 흙투성이 부츠를 신고 있었지만, 크기로 보나, 모양새로 보나 군화는 아닌 것 같았다.


"저 여자들은 아닌것 같아. 어떻게 하지? 물어볼까?"


세하가 그렇게 묻자 유리는 자신에게 묻지 말라는듯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그녀들의 행동을 주시하기로 하고는 세하와 유리는 배낭에서 쌍안경을 꺼내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는 쌍안경이 나을 터였다.


쌍안경으로 잠깐 세 여자들을 바라보던 유리가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 아마 아까 본 탄피들은 저 총들에서 나온건 아닌 것 같아.

저건 사냥용 엽총인걸. 저런걸로 위상관통탄을 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사냥용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살상용 무기와 비교해서 파괴력이 떨어지는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상관통탄을 제작할 때에는

군인들과 특경대가 사용하는 대 차원종용 무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 놓기에, 엽총으로 격발 시에는 그 위력이 최대한 발휘되지 않거나 탄이 총 안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그럼 아까 그 흔적은...리더는...어떻게 된거지?"


자신 조차 답을 내지 못하면서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머리로 연관점을 찾아보려 애를 쓰더라도 결코 머릿 속으로 명확히 도출 되는 답은 몇가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가 쌍안경을 건네받고 막 초점을 맞추던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한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들켰나 싶어 순간 몸을 움찔 했지만, 다음 순간 그 여자가 보인 반응은 놀라웠다.


곧장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휙 반바퀴 돌려 그가 있는곳에 정확히 조준했다.


숙련된 군인이라고 할 만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기에 세하는 더욱 놀랄수밖에 없었다.


"거기있는거 알아! 나와!!"


풀 뒤에 숨어있던 유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세하를 처다보았다.


저들이 위상력자는 아니므로, 총을 쏜다고 하더라도 납탄에 대해서는 위상력으로 몸을 감싸 피해를 없앨 수 있다.


그렇지만, 만일 저들이 위상관통탄을 가지고 있다면? 이 차원종이 득시글대는

숲에 위상관통탄 없이 들어온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것을 저들 역시 알 터였고, 따라서 저들이 위상관통탄을 가지고 들어왔을 확률 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어쩔수 없이 세하는 유리에게 눈짓을 했고, 유리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일어 섰다.


그들이 풀 숲 사이에서 나온것을 확인했을때는 이미 세 사람 모두가 총으로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움직이면 쏘겠다는 말과 함께 그들에게 총을 겨눈채 천천히 다가왔다.


세하는 아예 처음부터 일어날때 혁대에 비끄러 매어놓았던 건블레이드를 슬쩍 손으로 잡고서 일어났지만, 아직은 거리가 있어 건블레이드가 정확하게 식별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덧 서로의 얼굴이 어느정도 보일정도로 다가오자, 갑자기 한 여자가 새된 목소리로 비명지르듯 외쳤다.


"유니온? 뭐야, 이번에 또 뭐 때문에 온거야!"


잡아먹을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것을 보고 세하는 자신과 유리의 어깨에 붙어있는 유니온 완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유니온 소속의 일원인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듯 했지만, 그보다는 그의 머리속에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도약력이라면 위상력을 동원해서 충분히 이 거리를 순식간에 좁힐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저들에게 슬비의 행방을 물어보려면 그 방법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협박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저들이 순순히 대답할지는 의문이었다.


"무기를 버려. 그럼 이야기를 들어주지"


그 말에 세하와 유리는 서로를 잠깐 바라보고는 이를 꽉 깨물고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세하는 건블레이드를, 유리는 카타나와 피스톨을 바닥에 떨어뜨리는것을 확인하자마자 여자들은 신속하게 달려들어 무기들을 발로 밀어 옆으로 치우고는 그들을 사냥감을 묶을때 사용하던 케이블선으로 손을 묶었다.


금새 와이어가 그들의 살갗을 깊이 파고 들어 빨갛게 만들었다.


"잠깐만요, 우리는 하나만 물어보러 온..."


세하가 소리쳤지만 그녀들은 아랑곳 하지않고 멀리 걷어찬 무기를 각각 집어 들고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제 우리는 외부인은 믿지 않아. 특히 클로저들은. 무기의 종류를 보니까 클로저 요원이겠지. 안 그래?"


"맞아요. 저흰 클로저 요원이라 이 산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동료를 잃어버렸어요.

분홍색 머리를 한 이슬비라는 요원이에요. 혹시 보셨나요?"


그렇지만 여자들은 싸늘하게 웃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그 기분 나쁜 웃음에 뭐라 항의하려던 세하는 그들이 뒤어 대답한 말에 가로막혀 아무 말도 할 수없었다.


"너희같이 영악한 놈들이 힘들게 살고 있던 우리를 죽이려했어. 우린 이제 아무도 믿지 않아."


순간 세하는 뛰쳐 나갈뻔했지만, 이성이 그를 제지시켰다. 마을?


처음 그는 이들이 거절하면 무조건 위상력을 발휘시켜서 모조리 제압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근거리인 만큼, 손이 묶여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클로저의

기동능력을 따라올 수는 없을것이 뻔했다.


게다가 그녀들의 총은 총신이 기다란 장총이었으므로 근거리에서는 그만큼 불리할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마을이라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들중 슬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마 이들을 제압해버리면 마을로 가는 길을 알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그는 잠자코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유리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그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곧 그들은 뒤에서 총부리로 찔러대는 탓에 마을로 가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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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 않고 딱 적당한 만큼만 소란스럽고 활기차던

마을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고 느낀것은 아무래도 그녀의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슬비는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문이라고는 작게 난 것 하나밖에 없는 방이었지만, 그 창문으로도 도시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자동차소리따위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므로 갑자기 말수와 거리에 왕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녀와는 별로 관계 없는 일일 것은 자명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직감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마침 문이 열리고는 희진이 물컵과 몇가지 먹을거리를 쟁반에 들고 들어오는것을 보고 슬비는 조금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사냥꾼들이 누군가를 데려온 모양이야."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희진은 약간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본 슬비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외부인이 이 마을을 찾았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워서 웃는 웃음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외부인이 찾아오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요 근래 갑자기 횟수가 많아 졌구나."


"누구죠? 누굴 데려온다는 거에요?"


슬비가 다급하게 묻는것이 아마도 자신들의 동료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말하는것이라고 생각한 희진은 쓰게 웃었다.


이 어린 아가씨는 아직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알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 이곳에모르는 척 남아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너도 보러갈래?"


"네."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희진을 천천히 따라갔다.


마음같아서는 빠르게 걷고 싶었지만, 온몸의부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널찍한 공터에 무릎꿇려진 채 앉아있었다.


인원은 더욱 늘어나 이제는 일곱명의 여자들이 그들의 주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10대로 보이는 이들부터 30대로 보이는 이들까지 나이는 각각 틀려보였지만, 한결같이 총을 그들에게 정확히 겨냥하고

있단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아파..."


세하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옆을 돌아보니 유리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케이블선이 강하게 묶여 있어 피도 잘 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철사인지라 더욱 강하게 그들의 통증을 유발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살갖이 베여 나가는 듯한 통증이 그들을 엄습했다.


그가 유리의 손목을 보니, 그녀의 손목에 채워져있는 케이블선은 어느새 그녀의 하얀 피부를 붉게 만들었다.


세하 역시 쓰라렸고 불편했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슬비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아직까지는 이들에게 반항하는 행위를 보여서는 안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사실, 그들의 눈 앞에 겨눠진 총구보다는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것은 금방이라도 돌팔매질이라도 할 것 같은 사람들의 분위기였다.


아이들 몇몇도 보였지만, 아이들을 보호하고있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그들에게 적의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사람들이 여자라는 사실에 그는 잠깐 눈쌀을 찌푸렸다.


사실 이렇게 그들을 제압하고 있는다는 행위는 위상력자가 아니라면 남성이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넓은 공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남자는 찾기 어려웠다.


"정말이에요, 저희는 잃어버린 동료를 찾으러 이곳까지 왔다니까요!"


그가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을것이란 생각은 정확했다.


대답조차 없이 무표정하게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여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 속에서 분노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단호했다.


"너희를 믿을수는 없어. 곧 이곳으로 대장님이 오시면 그때부터 너희들을 심문하고, 대처법을 강구하겠다."


그들중 한명만이 그렇게 대답했을 뿐, 다른 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행동만으로도 이들은 훈련된 조직적인 무장단체라는것을 세하는 눈치 챘다.


이곳의 방위대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똑같이 노려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시야의 한구석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인영을 보고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치 않은 몸.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다가오는 그녀는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리야! 이세하!"


멀리서부터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쩌면 환청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그것은 현실이라고 그들은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유리는 비명지르듯이 외쳤다.


"슬비야! 살아 있었구나!"


이윽고 다가온 슬비는 유리에게 다가갔지만, 갑자기 그녀를 가로막는 총대에 멈춰 서고야 말았다.


"이들에 대한 처분은 아직 하달되지 않았다.

너라고 다를건 없어. 넌 잠들어 있던 시간에 이미 이곳에서 치료를 해주기로 결정이 났던것 뿐이다.

외부인이라면 우리의 말에 따르는것이 좋을걸."


슬비는 잠깐 그 말을 한 여자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한걸음 뒤로 물러 섰다.


이들에게 굳이 나쁘게 보일 필요는 없었다.


또한 그들이 선택권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저 이를 꽉 물고는 유리와 세하에게 말했다.


"날 찾아오느라 많이 힘들었겠네. 고생 많이했어."


"슬비야..."


유리는 우는 듯 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그 이상의 말을 잇지는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고야 말았다.


세하가 옆에서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니, 그녀는 감정이 복받쳐서인지, 아니면 안심을 해서인지 우는것 같았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런 그녀의 울음이 오늘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서 우는 것이었기에 그는 슬쩍 미소지었다.


"리더, 미안해. 내가 미숙해서..."


"됐어. 나도 그 순간에 내가 공격당할줄은 몰랐는걸. 이래봐도 나 지금 붕대로 상반신은 덮여있다니까?"


그녀 역시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화를 낼줄 알았지만, 사고보다는 서로를 만났다는 사실이 더욱 기뻐서인지 그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그 순간, 공터의 한 편에서 총을 든 몇명의 여자들을 동반한 채,

거의 통일되어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약간 차별화 된 복장을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셔츠 차림에 각종 무장을 둘렀지만, 놀랍게도 그런 것들이 그녀의 매력을 더욱 더해주는 듯 보였다.


어쩌면 저 차림이 말하는것은 그녀가 다른 여자들의 상관이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잠깐 세하와 슬비를 바라보던 그녀는 입을 열어 슬비에게 말했다.


"이들이 네 동료인건가?"


"네. 제 동료들이에요"


슬비는 급하게 눈을 비비고는 대답했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생각보다 귀여워서 세하는 자신도 모르게 픽 웃고야 말았다.


"경비대장. 풀어줘"


슬비에게 말을 건네었던 그녀의 말에 경비대장은 잠깐 그녀를 바라보고는 혁대에서 나이프를 한자루 꺼내고는 그것을 뒤로

돌려 톱같이 우툴두툴한 부분을 밖으로 가게 잡았다.


"유니온입니다. 괜찮을까요?"


"괜찮아."


못미덥다는듯 잠깐 그녀를 바라본 경비대장이라 불린 여자는 고개를 잠깐 숙이더니, 유리와 세하에게 다가가서는

그들의 손목을 나이프로 썰어 풀어주었다.


드디어 지속적으로 예리하게 파고들던 와이어의 고통에서 벗어난 그들은 두 손목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 섰다.


"첫출발이 좋지는 않았지만 반갑다. 난 이 마을의 대장인 이수진이라고 해.

우리 마을은 고립되어있어서 외부인에 민감할수밖에 없어.

양해하길 바란다."


"네. 이해합니다. 저는 이세하, 이쪽은 서유리라고 합니다."


그의 대답에 잠깐 재미있다는듯 수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 잠깐 이채로운빛이 돌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돌리고는 슬비의 뒤를 따라온 여자에게 지시하듯 말했다.


"희진아. 우선 이 아이들의 무기와 짐들은 일단 보관해둬. 그리고 상황이 정리되면 나에게 데려와."


"알겠습니다. 언니."


"대장이라고 불러."


무뚝뚝한 대답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희진이라고 불린 여자는 싱긋 웃고는 둘에게 따라 오라는듯 손짓을 했다.


막 둘에게서 떨어진 소총수들이 자리를 떠나자 그들은 슬비와 희진을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다.


"대장님! 동문 방향으로부터 외부인을 한명 더 찾았습니다.

무장해제상태로 만들었습니다만, 저항을 하지 못할정도로 중상입니다. 치료가 시급합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다급하게 말하는 여자는 자신의 말의 빠르기 만큼이나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마도 어딘가로부터 급하게 뛰어 온 듯 했다. 그녀의 말을 뒷받침해주듯,

공터의 저편부터 몇명의 사람들이 느린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희진의 얼굴엔 놀란듯한 표정이 번졌다. 그녀로써도 이런 일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손님이 꽤 많은데. 누구지?"


유리와 슬비, 그리고 앞장서던 희진도 멈춰 섰다.


수진마저도 놀랍다는듯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클로저인가?"


"예. 동문방향으로 큰 부상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붕대로 지혈했습니다만, 치료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그들이 몇마디 말을 하는 사이에 저편에서 다가오는 몇명의 사람들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세하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거대한 석궁이었다.


사람이 운용하기 어려울. 아니, 들기조차 거추장스러울 기다란 석궁은 한 경비병 여자의 등에 메어져 있었는데,

무장해제를 시켰다는것으로 보아 그것이 동문쪽으로 찾아온 이의 무장인것 같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그의 눈에 익은 것이었다.


그는 경비병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사람을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바라보았다.


요원복. 익숙한 검정색이 베이스인 기능미 넘치는 요원복.


밋밋한 장식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스러운 굴곡을 드러낸 약간 작은 체형에 가냘퍼보이는 다리.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거의 누더기가 된 채 쓰여진 후드밖으로 비져 나온 꿀빛같은 머릿칼.


그 너무나도 익숙한 형체를 본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고함지르고야 말았다.


"소..소은누나?"


경비병이 부축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지,

눈을 가린 후드때문에 보이지도 않을 시선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 확실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그는 아연해진 채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녕...세하..야."


특유의 차가운 말투가 어쩐 일인지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챈 그가 이상을 감지했을때, 그녀는

바로 세하의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는듯 입을 연-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그녀의 위태로운 몸은 결국 그에게 쓰러지듯 안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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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팬텀입니다

많이 늦었죠?

변명은 없습니다

그냥 엘세이드님도 저도 하던일에 치여서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ㅠ



사실 UCC컨테스트 팬소설 작품에 우리 갓세이드님의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우수요원이 아닌 수습요원이라는게 살짝 아쉽기는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에요. 축!하!해!주!세!요!



[단편] 석양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3395




사실 요즘 작성하고 엘세이드님의 수정본을 받고 읽을때마다 흥미진진합니다.

(내가 첫 독자에요! 흥칫뿡!)

그리고 좀 더 좋은 작품을 쓰실 기회도 많을실텐데

제가 괜히 합작을 요청해서 엘세이드님의 발목을 잡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글 보시면 아마 저 잔소리 먹을수도)

대화도 하다보면 워낙 성격도 좋으시고 능력도 좋으신분이라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암튼 궁시렁 되는 소리는 여기까지하고

보여드릴께있어요. (주섬주섬)





 




엘세이드님이 그리신 그림입니다.

 이쯤되면 이분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제가 손고자라서 그림 못그리는데

참 신기해...










요거는 채색한겁니다.

영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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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읽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25화로 다시뵙겠습니다.

2024-10-24 22:38:1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