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단편]Close to you:검은양들의 휴가~그 멤버의 취미생활:이세하 게임편
시소나 2014-12-31 6
*본 작은 신강고등학교 임무완료 후의 짧은 휴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강고등학교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Close to you
Episode : 검은양들의 휴가 ~그 멤버의 취미생활 : 이세하 게임편~
“좋아, 이제 공간절단기가 코앞이야!”
오늘도 역시 사냥은 순조롭다.
세하의 시선은 손에 쥔 게임기에만 집중되어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뒤에서 게임기의 화면을 훔쳐보는 것도, 그 누군가가 자기가 속한 클로저 팀 ‘검은 양’의 리더인 이슬비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던전 플레이가 끝나고 랭크가 매겨지는 화면을 눈여겨보던 슬비가 입을 열었다.
“늘 보는 거지만 말이야, 그게 그렇게 재밌는 거야?”
원래 버릇대로라면 이어폰을 꽂는 통에 듣지 몰랐을 테지만, 비상경보가 많은 클로저의 임무 탓에 상시 귀는 열어놓는 상태다. 세하는 평소와는 다른 슬비의 태도에 어리둥절해하며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향했다.
“어? 뭐야, 갑자기 관심을 갖고. 답지 않게.”
“내, 내가 관심 가지면 이상해?”
“아니, 뭐 딱히 이상할 것까지는 없는데…….”
아무래도 수상쩍다는 느낌이 드는 건 게이머로서의 직감일까. 살짝 고개를 비켜서 시선을 피하고 있는 슬비의 행동이 아무래도 평소와는 달랐다. 세하는 다시 게임기의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평소라면 분명 게임기 끄라고 난리도 아니었을 테니까 말야.”
“임무 중이 아니라면 나도 그렇게 닦달하진 않아.”
“아 네, 그러세요.”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네 태도가 문제라고 주구장창 늘어질 설교가 목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슬비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저 묵묵히 다시 게임을 시작한 세하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 전, ‘검은양’팀의 관리요원인 유정 언니와 제이 아저……오빠와의 대화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좀 더 친해지는 방법?”
작전 보고를 끝내고 복도로 나온 유정을 슬비가 학교 옥상으로 이끈 건 3분전.
캔커피를 마시며 유정은 차분하게 슬비의 말을 들었다. 자신은 팀의 리더니 뭐니 서론은 길었지만 요컨대 팀원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말인 듯 했다.
“네, 결론을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네요.”
“후후, 기쁘구나 슬비야. 네가 그런 걸 상담해오다니.”
솔직히는 무슨 심경의 변화인가 싶다. 늘 완벽주의에 사람을 휘두를 줄만 알던 아이가 스스로 팀원들과의 친분을 쌓는 법을 배우려고 하다니.
“리, 리더로서 친목을 다지는 것도 필요하다 싶어서 그런 거예요.”
“응?”
슬비가 말을 더듬는 건 불필요하게 드러난 감정을 숨길 때마다의 버릇이다. 평소처럼 말했다면 역시 슬비답구나하며 이해했을 유정이었지만 최근 딱딱한 태도가 누그러진 슬비는 말을 더듬는 일이 많아졌다. 이건 역시…….
“역시 세하 때문이니?”
“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언니?”
분명 슬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려 했겠지만…….
유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좀 전까지 슬비가 들고 있던 캔커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염동력이 발동한 모양인지 캔뿐만 아니라 내용물까지 공중에 둥둥 떠 있다. 슬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염동력으로 솜씨 좋게 내용물을 다시 캔 안에 담았다.
“역시 신경 쓰이나보구나.”
슬비는 캔커피를 양손에 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정이 슬비의 심경변화를 눈치 챈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칼바크 턱스를 마주친 구로에서의 작전 이후였을까.
그 때 아이들은 서로를 알게 된 것이다. 계기는 애쉬와 더스트의 발언으로 세하의 어머니가 차원전쟁의 대영웅 ‘알파원’ 서지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검은양팀에서는 유정과 제이 정도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솔직히 세하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테인이는 아직 어린애고 유리는 솔직한 타입이니까요. 아니, 사실 검은양팀 멤버들에 대해서 전부 잘 알지 못해요. 제이 아저씨의 과거에 대해서도 하나 아는 것도 없고 테인이가 어째서 한국까지 와서 팀에 속해있는 건지, 유리는 왜 그렇게 공무원을 꿈꾸는 건지도……뭐 하나 알지 못해요.”
리더 실격이에요.
비록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 그런 뜻일 것이리라. 유정은 슬비가 얼마나 완벽주의자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
“이봐, 리더. 그렇게 따지면 그 누구도 서로를 알지 못해.”
삐꺽거리는 옥상 문을 뒤로한 채 걸어온 것은 제이였다.
“아저씨…….”
“오빠라고 불러.”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뭔가(아마도 비타민)를 우물거리면서 걸어온 제이는 유정의 옆에서 난간에 등을 기댔다.
“나도 너희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게 아니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겠지. 예를 들어 슬비 너는 너 스스로 너의 과거이력에 대해 갓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 곧장 이야기할 수 있겠냐?”
“그건…….”
“마찬가지야. 나 역시 말하지 못하는 게 있고, 세하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말하기 껄끄러운 것들 쯤 하나씩 갖고 있고, 그걸 안다고 해서 관계가 돈독해지거나 그런 게 아냐.”
유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관리요원인 자기가 아니라 같은 검은양이 하는 이야기가 보다 설득력 있을 테지.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건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세하의 어머니가 그 ‘알파원’이라는 걸 알고, 슬비 너는 세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지?”
“…….”
슬비는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반가워, 내 이름은 이슬비. 검은양팀의 리더가 되었어. 잘 부탁해」
「……」
「저기……」
「……어? 미안. 뭐라고 했어? 이 스테이지 다 깨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뭐?」
「……오케이, 깼다! 근데……넌 누구야?」
「……」
그 이후에도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야, 이세하! 또 게임하고 있지!? 너 진짜 임무 중에 그러면 게임기 부숴버린다, 진짜!」
「알았어, 알았다구, 정말」
「야, 의욕이 없어도 적어도 태도는 보여줘야 할 거 아냐! 밥은 먹고 왔어? 패스트푸드로 때우지 말고 좀!」
「아, 시끄러. 네가 내 엄마냐!?」
그저 게임중독자에
의욕 없는 위상능력자.
클로저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물러나있어. 네 염동력으로 방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냐」
A급 차원종 말렉 앞에서, 등으로 자신을 가려주는가 하면,
「그저, 사람들을 구하는 게 클로저의 일이고, 결국 나는 클로저니까」
차원종에게 투항하려하는 구로의 난민들을 구하자고, 결심을 굳혀주고,
「절반은 사람이잖아요. 그렇다면 구해주고 싶어요」
칼바크 턱스를 구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해주고,
「우왓! 갑자기 무슨 짓이야!」
감사의 표시로 유하나로부터 키스를 받았을 때는 쑥맥처럼 볼썽사납고……그 때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기분이 나빠졌지만,
「내 등 뒤에 숨어있어! 내가 꼭 지켜줄 테니까」
학교친구인 정미를 구할 때는 이제 어엿한, 자신이 목표로 하는 클로저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아뇨, 그렇다고 해서 알게 된 건 없었어요.”
결국 돌이켜보면 세하의 어머니, ‘알파원’ 서지수와 관련된 부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슬비 자신이 알고 있는 세하는, 단지 게임을 좋아하며 건방지고, 고민하면서도 의욕 없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갖지 않으면서도 늘 자신의 앞에 서주는……검은양팀의 스트라이커였다.
“그래. 결국 지내다보면 알게 되는 게 더 많은 거다. 사람을 안다는 건 결국 정보의 문제가 아니야. 프로필만 확인해서는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프로필을 다 안다고 해서 그 사람 그 자체를 알게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까 슬비야.”
여전히 선글라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슬비는 자신을 온화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야. 모른다는 걸 깨달았으니 좀 더 알아 가면 되는 거지.”
그건 살짝 등을 떠밀어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알아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어른으로서 조언을 하자면, 취미를 공유하는 거려나.”
“취미…….”
잠시 고민하는 눈빛을 보이던 슬비는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네, 알겠어요. 그냥 좀 더 친해져볼래요.”
그래서 현재.
어떻게든 세하의 취미에 관심을 쏟아보는 중이었다.
등 뒤에서 지켜보면서.
지켜본다.
“오, 파편조각이 하나 더!”
“…….”
지켜본다.
“이제 동기화인자를 얻으려면…….”
“…….”
지켜본다.
“…….”
“…….”
지켜본다.
“쳇.”
몰입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던 세하가 자세를 풀며 등을 폈다. 뒤에서 지켜보던 슬비 역시 살짝 뒤로 물러섰다.
“왜 재밌게 하다가 갑자기? 아직 안 끝난 거 아니었어?”
“그렇게 뒤에서 지켜보는데 할 맛이 나겠냐. 오늘따라 왜 그래, 도대체.”
세하는 몸을 돌려 의자 등받이에 턱을 괴고 슬비를 올려다보았다.
신강고 1학년 C반 교실.
세하나 유리의 위상력이 흔적을 남기고 있어서인지 그나마 멀쩡한 교실이다. 슬비의 반인 E반을 비롯한 다른 교실들은 크리자리드 블래스터와의 전투에서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검은양팀의 휴식공간으로는 이 곳 C반이 배정되었다. 현재 작전통제실인 교무실과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네, 네가 민감한 거야! 딱히 할 일이 없어서라구. 유정 언니나 은이 언니, 캐롤 언니는 바쁘고, 제이 아저…오빠는 광합성해**다고 나가있고. 테인이랑 유리는 매점을 **보러 갔는걸.”
“하던 대로 장비손질이나 하던지, 그 ‘4주후 차원전쟁’인가나 보던지.”
“사랑과 차원전쟁이야.”
“아무튼.”
“TV도 안 들어오고 DMB로 재방송도 안하고 위상력 탓에 통신상태가 안 좋아서 녹화본 다운로드도 안 되고. 장비손질은 이미 다했고!”
“아, 알았으니까 염동결계를 펼치지 마! 위험! 우왓!”
“미, 미안.”
서둘러 단검을 집어넣었더니 그제야 세하는 안심하는 얼굴이 되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널브러트렸다.
“하여튼 뭘 하고 싶은 건지…….”
다른 곳은 역광이 비추는 탓에 세하는 창가자리로 일부러 골라 앉은 것이었지만, 그 탓에 창턱에 기대어 앉은 슬비가 자기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고개를 들어 슬비를 바라보니,
어느 새 깨진 유리창 틈새로 분 바람이 햇볕을 막기 위해 쳐놓았던 커튼을 걷어내고,
자연스럽게 햇살을 머금은 분홍빛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돌린 채 살짝 상기된 슬비의 얼굴을 간질이고,
세하에게까지 불어왔다.
살짝, 좋은 냄새가 났다.
‘가까운데…….’
‘그러고 보니 가까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서로가 몰랐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
“응? 아, 아니 그게…….”
잠시 넋을 놓고 슬비를 바라보던 세하는 슬비의 말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갑작스럽게 분 강풍에 의해,
젖혀진 치마 틈을 보고 말았다.
굳이 소감을 말해보자면,
하얗다.
확, 하고 덮여진 치마 위로 슬비가 얼굴을 붉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이,”
“이?”
“이세하 이 **에에에에에에에!”
“아니 왜에에에에엣!?”
눈을 크게 뜬 상태로 세하가 기억하는 건 슬비의 비명과 염동력에 의해 의자 째로 교실 뒤편에 처박히는 감각(롤러코스터와 비슷했다)이었다.
“세하가 잘못했네.”
“세하 형이 잘못했어요.”
매점에서 살아남은 과자 몇 봉지를 들고 온 유리와 미스틸테인은 상황보고를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러니까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니까! +10강을 넘어서는 행운처럼 갑작스럽게에엣!”
살짝 귀 옆을 스치고 지나간 칼날에 세하는 입을 다물었다.
슬비는 어째선지 아직도 얼굴을 붉힌 채였다.
“가, 갑자기 빤히 본다했더니, 이,이, 이세하 이 치한!”
“아니, 진짜로 마치 평타캔슬을 위해 커맨드를 쳐 넣는 순간 만큼밖에 ** 못했다니까! 그냥 단지 하얀 이팩트가 지나가는 정도로오오옷!”
두 번째 칼날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세하의 국부 바로 앞이었다.
위상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순간 지릴 뻔했다.
“슬비야, 그 쯤 해둬. 분명 세하가 잘못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고자가 되면 슬비 네가 평생 책임져야해.”
“내 패, 팬티를 본 사람이 날 평생 책임져야겠지, 무슨 소리야!”
“아니, 그건 무슨 정조관념이야! 너 진짜 ‘사랑과 차원전쟁’ 애청자 맞아아아아앗!”
세 번째 칼날이 조금 더 가까이 꽂혔다.
이건 위상능력자라도 분명 지렸다. 게임을 오래해서 반응속도가 빠른 세하라 다행이었다.
“세하 형, 얼른 슬비 누나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하세요! 바른 생활에서 배웠어요! 화해는 빨리 할수록 좋대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요!”
“아니, 테인아. 진짜 형이 잘못한 거 없거든? 그리고 너 한국말 참 이상하게 잘해…….”
“세하 형, 사냥은 허가된 지역에서만 해야 하는 거예요. 여자 속옷은 불법지역이잖아요!”
“아니, 얼추 보면 맞긴 한데……테인이 너도 참 성실하구나.”
“전 사냥꾼이니까요!”
엣헴, 하고 가슴을 펴는 미스틸테인의 앞에서 세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곤 볼을 붉힌 채 아직도 부들거리는 슬비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왠지 쑥스러워져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미, 미안.”
“흐, 흥.”
그제야 슬비는 단검들을 거두어들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적막한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유리가 나섰다.
“자자, 그러지들 말고 과자나 먹자. 유정 언니나 은이 언니도 다 같이 와서 파티하기로 했으니까.”
“유리 누나, 다른 사람들도 부르러 가요! 아직 캐롤 누나나 정미 누나한텐 말 안했어요!”
“그렇네! 같이 부르러 갈까?”
“네!”
“정미정미야? 어딨니~!?”
무슨 흐름을 탄 건지 유리와 미스틸테인은 재빨리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교실 안은 어색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
“…….”
평소와 같았으면 ‘게임이나 해야겠다’라면서 게임기를 켤 세하였지만, 아무래도 좀 전 같은 상황이 있고나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가 없다. 슬비 역시 세하의 눈치만 살피면서 앉아있는 상태. 세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의자를 끌고 슬비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 뭐야 갑자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화 풀어.”
슬비의 바로 옆에 의자를 두고 앉은 세하는 슬비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기분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만 막상 하고 보니 쑥스럽다.
“화, 화 안 났어.”
“자.”
“응?”
세하는 칠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옆자리의 슬비에게 게임기를 내밀었다. 칠판에는 미스틸테인의 검은양 낙서들과 함께 ‘이제 신강고는 우리의 것!!’이라는 둥 유리가 크게 써놓은 글씨들로 가득했다.
“아까부터 관심 있어 했잖아.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었냐고.”
“아,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널 내비 두고 게임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나 혼자서 멍하니 있으면.”
“읏…….”
어느 새.
정말로 어느 새일까.
그렇게 주변에 관심 없이, 혼자서 게임만 하던 세하가.
자신과 같이 다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꿈을 꾸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고.
이렇게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게 된 건, 정말로 언제부터였을까.
“뭐야, 안 해볼 거야? 아무나한테 주는 거 아니라구.”
보다 못했는지 세하가 억지로 슬비의 손을 잡아 게임기를 쥐어주었다. 그 몸짓과 손에 맛닿은 체온에 슬비는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고 메어지는, 지금도 차원전쟁에서 희생된 부모님을 떠올릴 때면 나타나는 현상과도 비슷했다.
“그,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해볼게.”
“지금 꼭 정미 같았어, 너.”
“누가 츤데레라는 거야!”
“아니, 딱히 츤데레라고는 안했는데.”
살짝 볼을 부풀리면서 슬비는 게임기를 양손에 쥐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직 켜지지 않은 검은 화면이다. 슬비는 그대로 멀뚱멀뚱 있다가 괜스레 세하의 눈치를 살폈다. 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 나이 되도록 게임기 한 번 안 잡아보고 뭐했어.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처, 처음일 수도 있지 뭐.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데?”
“왼쪽이 앞뒤하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거고 오른쪽 버튼들이 플레이버튼이야. 위쪽 양옆 버튼도 써야해.”
그러니까 이렇게 쥐라구.
세하는 제대로 게임기를 잡지도 못하는 슬비의 손을 잡아 모양새를 갖춰줬다.
슬비는 살짝 숨을 멈췄다. 요원복 장갑은 벗어둔 채라 맨살 그대로다. 어떻게 이런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걸까.
‘남한테 관심이 없으니 자기도 모르고 하는 거겠지만…….’
왠지 그런 걸 의식하고 있는 자신이 한스럽다. 슬비는 세하의 아무렇지도 않은 옆얼굴을 살피며 역시나 아무 생각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부드러워……게다가 작아.’
세하는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따지고 보니 여자애의 손을 잡아본 건 이게 처음이었다. 살짝 긴장됐다.
‘그보다 이렇게 작은 손으로…….’
그러고 보니 항상 임무 뒤에 치료를 해준 건 슬비였다. 어째서 그 동안은 몰랐을까. 이렇게 작디작은 손으로 그녀가 그렇게나 그 누구보다 애쓰고 있었다는 걸.
그저 옆에 있는 게 당연했고 게임을 할 때마다 옆에서 잔소리해대는 게 당연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걸 당연하게 여겨왔던 걸까.
“이, 이제 잡는 법은 알았어.”
“아, 응.”
세하는 동요를 숨기며 손을 뗐다. 슬비 역시 말을 더듬지 않으려고 애쓰며 게임기의 화면만을 주시했다. 세하의 얼굴을 지금 봐버렸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 로고가 오고 간 후 화면에는 게임 타이틀이 하나 비춰졌다. 게임기에 삽입된 소프트, ‘차원전쟁’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오, 오른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봐. 그게 확인버튼이자 공격버튼이니까.”
“으, 응…….”
어색해하면서, 서로 말을 더듬어가면서 둘은 사이좋게 게임을 시작했다.
답답한 플레이를 보다 못한 세하가 열이 뻗쳐서 뒤에서 슬비의 손을 잡고 대신 플레이하는 상황이 올 때까지는.
“아니, 아니지! 거기선 그렇게 하면!”
“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거기’, ‘그거’라고 하면 알 수가 없잖아!”
“자, 거기선 이 버튼을 누르는 거라고. 이 버튼이 회피니까 치고 빠지고!”
‘어쩐지 소란스럽네. 벌써 시작했나?’
유리와 미스틸테인의 파티를 벌이자는 말에 이끌려 C반 앞에 온 유정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여했다. 자기 혼자 들어가서 왠지 아이들의 좋은 분위기를 깨뜨려버리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송은이 경정이나 제이와 같이 같은 어른들끼리 모여서 가지 않으면…….
“어라, 왜 안 들어가세요, 언니?”
“아, 유리야. 그게 다른 어른들은 아직 안온 거 같아 어색해서……근데 그건 다 뭐니?”
발밑으로 툭 떨어진 건 과자봉지였다. 산더미만큼이나 쌓아올린 과자봉지를 양손으로 안은 유리는 기운 없는 표정을 해보였다.
“말도 마세요, 언니. 글쎄요, 제이 아저씨가 또 자긴 허리가 아프니까 무거운 건 못 든다잖아요.”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무거운 건 들지 못한다면서 미스틸테인을 목말 태운 제이가 옆으로 다가섰다.
“여하튼 앞뒤가 안 맞는다니까요.”
“응? 근데 안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건 유리나 미스틸테인 군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었니?”
“아뇨. 아까 세하랑 슬비만 남아있었는데요, 세하가 임무 중에 게임하는 것만 아니면 두 사람이 그렇게 시끄러울 리가…….”
궁금증이 도발했는지 과자를 내려놓고 교실 문을 살짝 열어본 유리는,
탁하고, 다시 교실 문을 닫았다.
어째선지 귀까지 빨개져서는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왜 그러니, 유리야?”
“아, 아니, 저, 그게…….”
“아, 세하 형이 슬비 누나를 뒤에서 안고 있어요! 저 알아요, 저게 백허그라는 거죠!”
“어허, 애들 정신교육에 좋지 못한 장면이군.”
제이의 어깨 위에서 교실 상단의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본 미스틸테인이 신나서는 외쳐댔다. 어째선지 제이 역시 발뒤꿈치를 올리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응?”
유정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혼란에 잠겼다.
분명 자신과 제이가 상담해준 내용은 어떻게 하면 멤버, 특히 세하와 친해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였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이가 ‘취미를 공유해보라’라고 했었을 텐데…….
“어? 혹시 취미의 공유라는 게 설마!”
혹시 슬비의 취미인가! 슬비의 취미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물 시청이고, 슬비가 열광하는 드라마는 ‘사랑과 차원전쟁’이라는, 애정과 치정어린 파국과 관련한 드라마다. 혹시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 못하고 실제로 해보려는 시도가 덧대어진 결과 이런 상황이……!
“어라, 김유정 관리요원님! 유리랑 제이 씨에 테인이도! 여기서 파티한다는 거 아녔어? 왜 그렇게 서있는 거야? 과자 먹으러 왔는데.”
경악의 상황에서 느긋하게 걸어온 건 송은이 경정이었다.
“아, 아니, 송은이 경정님 그게…….”
“으, 은이 언니, 그게…….”
“와, 저 처음 봐요! 두 사람이 저렇게 사이좋은 거! 저도 엄마랑 아빠가 저렇게 사이좋아서 태어난 거겠죠?”
“너무 보면 못쓴다.”
은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교실 문 앞으로 다가가서는,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데 다들? 뭐 못볼 거라도 안에 있어?”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어…….”
“…….”
“…….”
“으, 은이 누나? 이제 온 거에요?”
“은이 언니?”
“어……응. 아무것도 아냐……. 그럼 수고해…….”
힘없이 문을 닫은 송은이 경정.
교실밖에 있던 사람들도 일동 침묵 상태였다.
“아, 하하, 하하하하.”
송은이 경정은 얼빠진 웃음을 흘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모두들 클로저closer니까 서로 저렇게 가깝게, 그러니까 close하게 있는 거겠지? 아하하하! 모어more 모어more 클로저closer! 클로저 투 유closer to you! 아하하하!”
머리에선 식은땀이 나고 있지만.
“아니, 무슨 생각하고 계신 거에요!”
쾅하고 교실 문이 열리면서 슬비가 뛰쳐나왔다.
“누, 누나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뒤이어 세하도 쫓아 나왔다. 그러고는,
“……아.”
“아…….”
어색한 눈 마주침이 다시 침묵을 불러왔다.
일명 검은 양들의 침묵.
“……다들 이상한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죠?”
난처하다는 듯한 세하의 말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미스틸테인이야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고, 유리는 딴청을 피웠지만.
“해피 벌쳐스! 아, 아니, 신강고 임무 완료를 축하드립니다!”
“Amazing! 역시나 벌쳐스네요, 여기까지 와서 광고라니.”
“좋은 근육이네요. 근섬유를 기계로 바꿔볼 생각 없나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이제 밀린 애니나 봐야겠다능!”
어른들이 술잔을 부딪치며(김가면 씨는 주스) 왁**껄해지면서 그들의 작은 파티는 시작됐다.
세하와 슬비는 관리요원인 김유정에게 남녀가 밀실에서 가까이 붙어있던 상황에 대해 설교를 듣고는, 지금은 송은이 경정이 가져온 TV에 게임기를 연결해 함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하하하하! 얼마나 열이 뻗쳤으면 그렇게 뒤에서 잡아먹을 듯이 하고 자기가 컨트롤을 했겠어! 아하하하!”
과자를 입에 털어 넣으며 기분 좋게 말하는 송은이 옆에서 유정은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곤란해요. 청소년기에 애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래요, 잘했어요, 유정 씨. 어른으로서 설교는 해야 하는 거니까. 어쨌거나…….”
송은이는 난리를 피워대며 대전게임을 하고 있는 세하를 옆에서 조용히 투닥투닥거리는 슬비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참 사이좋다니까요, 쟤네들.”
“그래요. 처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했는데.”
“이렇게 보면 역시 애들은 애들이네요. 저희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닐지…….”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저 애들이라면.”
그렇게 파티는 무르익어갔다.
선우란이 칠판에 멋지게 헥사부사를 그려놓자 미스틸테인은 열심히 색칠을 하고,
제이는 갖가지 사탕을 섞어놓은 사탕주머니에서 홍삼 캔디만 골라내고,
유리와 다시 친한 친구가 된 정미가 함께 방송부에서 가져온 마이크와 스피커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자 정경대원들이 모여서 박수를 치고,
거듭되는 정도연의 신체 기계화 권유에 벌쳐스의 김가면이 곤란하다는 듯 웃음 짓고, 캐롤리엘이 재조합해 만든 알코올 음료를 마시고는 박심현이 쓰러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런 모습이 원래 있어야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앞으로 있을 크나큰 사건에 대항해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잠시나마 되찾은 평화를 누렸다.
사실 어물쩍 넘어갔지만, 세하와 슬비를 백허그한 상태로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두근대면서 게임을 했었다는 건 안 비밀. 잘됐네 잘됐어★
Close to you Episode : 검은양들의 휴가 ~그 멤버의 취미생활 : 이세하 게임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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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to you 에피소드는 계속됩니다!
Close라는 단어는 '닫다' 는 뜻만 아니라 '가깝다'는 뜻의 중의성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