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클로저라니?! 1화 양치기(하)
최대777글자 2015-08-10 2
.
.
.
‘...이크, 너무 생각없이 뛰었나.’
몇몇 구름들을 통과하면서 날아가던 도중, 내가 무의식중에 유니온 건물을 향해 도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근처에 유니온건물의 옥상 외에는 착지할 장소가 없는데, 미리 데이비드한테 전화라도 해둬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속의 전화기를 꺼내어 버튼을 몇 번 누르자 번호목록에 있는 번호가 0이라는 것이 보였다.
“......그 때 번호라도 물어볼 걸 그랬구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나, 벌써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왕 사이킥무브를 시전한 거, 착지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쪽에 위상력을 모았다.
‘어라? 옥상에 아무도 없다?’
지금 그걸 생각할 겨를은 없다. 일단 내 허리부터 신경쓰자... 고 생각한 순간 헬리포트의 위에 성공적으로 착지했다. 내 발이 헬리포트에 닿음과 동시에 주변으로 엄청난 풍압이 일어났으나 다행히 옥상에 파손될만한 물건은 없었다.
“쓰읍.... 휴우! 좋아, 허리에 무리가 안 갔다...”
라며 안심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옥상문이 열렸다. 문이 전부 열리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자연곱슬의 약간 긴 머리, 검은색과 흰무늬의 넥타이, 코트 안에 단정하게 입혀져 있는 양복과 목이 아닌 어깨에 걸쳐져 있는 회색 스카프,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올곧은 눈빛, 다름아닌 데이비드다.
“오, 데이비드! 여기 네가 비워놓은 거야?”
“...이제 형한테는 거부권이 없어.”
나는 분명히 반가운 말투로 데이비드를 불렀으나 데이비드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린 후에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파손될 물건은 없었지만, 헬리포트는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다이나믹한 착지였는데 바닥이 그걸 버틸 리가 없었다.
“....미안하다.”
“하아...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따라와.”
옥상에 떨어졌던 게 나라는 걸 확인한 데이비드는 곧바로 뒤돌아서 옥상을 나갔다. 그의 말에 따라서 나도 그의 뒤를 따라가려던 찰나 데이비드가 다시 뒤돌아서 내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뭐냐 이건.”
“혹시 누군가가 알아볼 수도 있으니 이거라도 쓰고 따라와.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반말을 해야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 점 신경쓰도록 하고.”
“그, 그래도 봉지는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거기다가 롯x리아라고 쓰여 있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눈구멍도 뚫어놨다. 일단 누군가가 나를 눈치챈다면 나도 곤란하니 잔말말고 봉지를 뒤집어썼다. 그런데 이거, 생각했던 거보다 편한데....? 이거 자주 써먹어도 좋을 것 같다.
.
.
.
“국장님 뒤에 저 사람 뭐야...?”
“몰라... 국장님 암살하려는 걸지도...”
한순간이라도 이걸 자주 쓰고 다녀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같다.
‘어이, 아무리 그래도 암살은 좀 아니지... 아무리 복장이 수상하다해도 본인이 부른 거란 말이야...
“도착했네, 여기가 국장실일세.”
...한순간 이게 미x나 하고 생각했으나 아까 반말을 써야할 테니 신경쓰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국장이라... 이 녀석, 성공했군.’
국장실의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충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옷걸이에 요원복과 책상에 얹혀 있던 이상한 가면이 눈에 띄었다. 절대로 데이비드가 저런 것들을 사용할 것 같지 않았다.
“이제부터 형은 정체를 감추면서 클로저로서 검은양을 뒤에서 몰.래. 보조해야해.”
가장 중요한 부분인 몰.래.를 강조한 데이비드가 책상위에 있던 가면을 집어들었다. 반은 하얀 바탕, 반은 검은 바탕에 하얀 바탕쪽은 검은색으로 울고 있는 표정이 표현되어 있었고 검은 바탕쪽은 하얀색으로 웃고 있는 표정이 표현되어 있었다.
“...이 대화내용 도청당할 위험은 없는 거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거 받아.”
“이 가면은...?”
“절대로 얼굴을 노출해서는 안 돼. 형이 살아 있다면 약점을 잡히는 건 시간문제이니 활동하는 게 드러나는 것도 자제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거야. 알겠지?”
새삼 이게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좀 더 무서운 걸 떠올리자... 지수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벌집으로 만들어줄까, 별모양으로 썰어줄까?”
“아니, 최소한 목숨만은 살려줘...”
이런 상황이 되겠지. 그녀가 건블레이드를 들고 그런 무서운 말을 입에 담을 것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형이 입고 활동할 옷은 저기 준비해뒀어. 취향이 예전이랑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디자인한 거야.”
“너 내가 수락한다는 걸 전제하에 저걸 만든 거냐?”
“그야 당연하지. 슬슬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지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 녀석, 상상 이상으로 계획적인 놈이구만...’
이 나이까지 되어서 나보다 어린, 그것도 옛날부터 알고 있던 녀석한테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열등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보다, 아까 검은양팀이 차원종들을 처리하러 갔는데.”
“그런데?”
“어떤지 한 번 볼래?”
“...그럴까.”
그러자 데이비드가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지난번에 파일에서 본 이세하라는 아이가 싸우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고 있었다.
‘저 녀석이라는 말이지...’
“지수처럼 건블레이드를 들고 싸우는 건가... 폼이 너무 엉성한데? 위상력을 조절하는 것도 잘 못하는 것 같고. 저 정도면 수습요원 되기도 힘들 것 같군. B급 차원종한테도 간신히 이길 것 같은데.”
“하하, 자기 아들한테 너무 혹평인 거 아니야?”
“...”
어째서인지 싸우는 폼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상력을 다루는 법도, 자세를 잡는 법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허 참... 그만 볼래.”
초등학생의 학예회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난 당분간 어디에서 지내야 하는 거냐? 집이 대전에 있다보니 이 근처에서 대충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도 이미 준비해뒀어. 이 주소로 가면 될 거야. 형은 당분간 ‘강수현’이라는 이름으로 지내야 하고.”
“어어... 고, 고맙다.”
데이비드가 내민 종이를 받고 가면을 썼다.
“참고로 형은 검은양들을 보좌하며 이세준이라는 본명 대신에 ‘양치기’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게 될 거야.”
“...그 거짓말쟁이?”
“형은 존재 자체가 거짓된 사람이니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냐.”
옷걸이에 걸려 있던 요원복을 들어 팔에 걸쳤다. 그리고 국장실을 나가려 문손잡이를 잡은 순간...
“참고로 검은양 임시본부는 바로 아래층의 오른쪽 끝에 가보면 있어.”
“...고맙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국장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왔다. 계속해서 그대로 내려가 건물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검은양 임시본부의 존재가 약간 신경쓰였는지 내 발은 어느샌가 데이비드가 알려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검은양 임시본부라... 응?’
걸음이 멈춘 곳의 끝에는 초라한 문과 손글씨로 ‘검은양 임시본부’라고 쓰여진 방이 있었다.
‘...허허.’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짓고 문을 열자 보인 건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짐과 청소도 끝나지 않은 약간 더러운 방이었다.
‘...옛날생각나네.’
그때도 이런 초라한 곳에서 작전을 브리핑받고 팀끼리 수다도 떨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곳곳을 둘러보니 각자의 개인물품도 조금 보였다.
‘게임기? 이건 분명히 그 세하녀석의 물건이로구만. 아, 내 아들이지...’
라며 내 아들이라는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차, 게임기 놓고 갈 뻔했... 누구세요?”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발견한 누군가가 내게 질문했다. 침착하자, 난 지금 가면을 쓰고 있으니 들킬 일은 없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보인 건 아까 영상으로, 예전에 파일로 봤던... 다름아닌 이세하, 내가 지금까지 있는지도 모르던 내 아들이었다.
“...저기요?”
“....”
“동생, 거기서 뭐...”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가 또 나를 보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어떻게든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자 창문이 보였다.
“저, 저기?”
나를 부르는 말을 무시하고 창문을 열어 창틀에 발을 얹었다.
“자, 잠깐만!”
그대로 사이킥무브를 사용하여 그곳을 탈출했다.
.
.
.
“뭐였던 거야...?”
“동생, 아까 그 남자는 누구지?”
“몰라요,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못 봤는데...”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