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꿈과 현실 -1-

작가지망생 2014-12-31 2

정의의 히어로라는 것은 굉장히 듣기 좋은 말이다. 그 호칭에 담겨있는 의미는 선의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곧잘 말하지 않던가. "나는 커서 정의의 히어로가 될거야!" 라고. 좋은 마음 가짐이다. 어린 시절 부터 착실하게 꿈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러나 그 꿈 또한 나이를 점차 먹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저 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현상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 이라고.


현실이라는 녀석은 꽤나 복잡하면서도 심플한 녀석인데, 때로는 냉정하면서도 잔악무도 하며, 한 편으로는 친절하게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 방법이 매우 거칠고 차가워서 그럴 뿐이지, 그것이 만인공통 모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한 많은 이들이 멋대로 현실에는 한계가 있지, 같은 말을 해댄다. 스스로가 그 벽을 만들어버리고 포기한 주제에, 현실이라는 것이 벽을 만들어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이라고 변명이나 해대는 것이다. 참으로 꼴볼견이다.


자신의 나태함과 나약함이 허상의 벽에 바보처럼 가로막혀 평생을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에 얽메여 살아간다. 그것이 낙오되어간 사람들의 삶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현실적인' 꿈을 꾸지 않으면 낙오되는 자, '비현실적인' 꿈을 가지는 것 조차 포기해야하는 이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것은 우스갯이야기로 치부될 뿐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기만 할 뿐인 세계였다면 그래도 사람들의 걱정거리는 그렇게 많아지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대체 어느 누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문제거리를 증식시킨 존재의 등장을 감히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대 예언가인지 대 사기꾼인지 모를 유명한 양반인 노 모씨도 그것 만큼은 예언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그 골칫덩이라는 것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였으니까.


소위 차원종이라 불리우는 녀석들의 등장은 실로 대단했다. 제대로 군사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국가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군사력이 제대로 갖추어진 강대국들 조차 놈들의 처리에 상당히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마치 경로를 알 수 없음에도 자꾸 집 안에서 출몰하는 바퀴벌레들 처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세계에 나타났다. 화려하게 공간을 비틀여 열고 나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공간 자체를 초전박살 내며 밀고 들어온 녀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의 등장과 동시에 또 다른 이형의 존재가 등장했다. '클로저스'. 어린 아이들이 품었던 꿈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어쩌면 그 자체일지도 모르는 이능력자들의 화려한 데뷔였다.


차원종 녀석들을 보이는 족족 쓸어버리고, 그렇게 공적을 쌓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간다. 그것만으로도 사회에 끼치는 파장은 어마어마해서 특정 단체나 집단에게는 되려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평화만 지켜진다면 큰 문제는 없으니 그런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클로저스라 불리우는 이능력자들이 강력한 군대, 혹은 경찰과도 같은 공권력보다 훨씬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각국은 빠르게 발맞춰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강력한 클로저스를 자신들의 국가로 영입하기 위한 수속 절차, 그리고 그들의 위상능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도록 전문적인 커리큘럼 및 연구기관의 설립. 거기에 어느정도의 투자를 해두는 것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보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클로저스란...앞서 말했듯 정의의 히어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는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녀석들은 그저 정부의 녹이나 타먹는 개에 불과한 놈들이라고.


"1500원 이에요."


여경찰이 캔음료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와 계산대 앞에 내려놓자 언제나처럼 바코드를 찍고, 정해진 가격을 불러준다.


"우와, 비싸네!"
"요즘 같은 세상에 안 비싼게 어디 있어요."
"그, 그것도 그렇네...하하. 외상은......?"
"안 돼요."


짧은 갈색 단발머리에 20대 초중반 정도의 귀염상의 여경찰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귀염성에 마음같아선 넉살 좋게 외상 한 번 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갈색 단발 머리, 두꺼운 위상 방탄복과 흰색 바탕의 군복 차림의 여경찰은 이미 요주의 인물이었다. 요컨대 블랙리스트라는 것이다.


"지난 번에도 외상해가셨잖아요."
"그, 그거야...아직 월급이 안 들어와서?"
"월급이 들어오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요."
"큭!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성실히 일하고 있건만, 내 노력을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매일 꾸벅꾸벅 졸고 계시잖아요. 가게 안에서도 다 보여요."


진짜 졸고 싶은 건 이 쪽이다. 밤새 일하느라 다크써클이 눈 밑까지 축 쳐져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건만, 그런 사람 앞에서도 용케 꾸벅꾸벅 졸다니. 괘씸해서라도 여기서는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석봉아...이 누나를 보고 동정심이 들거나 하진 않아?! 매일 같이 격무에 시달리면서 파견 임무까지 나가고, 거기에 클로저 요원들 한테도 매일 치이고, 부하한테도 구박 받고!"
"마지막 부분은 제대로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쨌든! 그런 누나를 위해서 캔음료 하나 정도는 공...아니, 외상으로 달아줘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
"방금 거저 먹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데헷, 혀를 내밀며 웃어보이는 이 누나를 이 이상 상대하고 있다간 내 라이프 포인트가 더이상 버티지 못 할 것 같다. 손님이 없다면 없는대로 가게 정리도 하고, 가게 주위의 청소도 빨리 끝내두고 싶다. 그리고 느긋하게 게임을......


"후, 알았어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니까 다음엔 외상값부터 제대로 갚아주세요."
"와, 고마워~! 잘 마실게!"
"절대 공짜로 준 거 아니거든요? 공짜로 받은 것 처럼 기뻐하시면 곤란해요!"


후다닥 캔음료를 들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누나에게 몇 마디 쏘아붙였다. 정작 본인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가서 시원스럽게 음료를 들이키고 있지만.


한숨을 쉬며 계산대에서 빠져나와 물건이 쌓여있는 판매대로 향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신논현역의 한 편의점이다. 워낙 경기가 불황인 탓에 물건의 발주는 사흘에 한 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판매대에 쌓여있는 물건의 양은 실질적으로 그렇게 많진 않았다. 보통의 편의점이었다면 이정도 양의 물건, 이틀이면 전부 동이날 것이다.


'차원종 출몰 지역과 가깝다고 해서 손님이 뚝 끊겼으니까 말이지.'


이 가게의 점주는 하루에 딱 한 번만 이 곳을 방문한다. 바로 나와 교대해줄 때이다. 그래서인지 가게의 관리, 물건의 발주, 현금의 전자 입금 등의 부분은 전부 내게 맡기고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손님이 확 줄어들어 오랫동안 일해온 나만이 이 곳의 유일한 알바생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가게에 12시간 넘게 알바생 한 명을 홀로 놔두고 있으면 불안해할 법도 한데, 쿨가이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점주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적어도 내가 푼돈을 들고 도망칠 학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크써클이 축 쳐져서 왠지 기분 나쁘기까지 한 내 인상을 보고도 용케 믿어주는 점주가 고맙긴 하다.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거고, 역시 업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밤 11시부터 일해서 다음날 정오까지. 그 이후에는 느긋하게 점심까지 잡수시고 온 점주와 교대하여 저녁 시간대를 맡겨둔다. 저녁 8시가 되면 점주가 문을 잠궈두고 멋대로 퇴근해버리는데, 밤 11시에 온 내가 다시 그 문을 열고 업무를 계속 한다.


'애초에 시간대 설정이 잘못 됐어...이런 음침한 역에 어떤 손님이 밤늦게 오겠느냔 말이야.'


밤늦게 오는 손님은 간간이 순찰을 돌던 경찰, 혹은 늦게까지 임무를 보다 귀환한 클로저 요원 정도 뿐이었다.


낮이 되면 그래도 여기저기서 몰려든 구경꾼, 매스컴 기자들, 다수의 클로저 요원들이 손님이 되어주니 매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가장 피곤하고, 가장 손님이 많이 몰리고, 가장 쉬고싶은 시간대를 자신이 맡았다는 점을 납득하기 싫은 것이다. 쉬고싶다. 게임하고 싶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방에 박혀있고 싶다.


'안 되지 안 돼. 니트 근성으로 버티다간 게임 계정비가 부족해서 게임을 못 하게 된다고. 그럼 말짱 도루묵이잖아?'


내 일생, 게임 계정비과 생활비를 위하여 이 한 몸 바치겠다.


그렇게 축 쳐진 상태로 좀비처럼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물건 정리를 끝마쳤을까,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아 가게 밖으로 나와보았다. 플랫폼 위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조금 전에 캔음료를 외상으로 떼어간 특경대 대장 송은이 누나. 그리고 그 누나의 부하들.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는 안 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학생들?'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열댓명 정도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여서 날라리처럼 보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단정하게 머리를 정돈해 차분한 모범새처럼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염색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확 튀는 분홍빛 머리를 발견했을 땐 가발이 아닐까 의심되기도 했다.


'뭐지? 내 또래의 아이들이 이 곳을 찾는 건 꽤 드문데. 현장 학습이라도 온 건가?'

나이로치면 중학생인 나이지만, 현재 학교는 다니고 있지 않다. 수업보다 재밌는게 게임이었고, 학교를 가는 것 보다 게임 속의 던전을 돌아다니는게 훨씬 더 나았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많은 도심지의 시내가 아닌 이런 곳에 일터를 잡았었다. 여기라면 또래의 아이들과 마주칠 일도 적으니 괜한 트러블이 생길 이유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야, 저 열차 움직이긴 할까?"
"내가 위상력 써서 밀면 움직일지도 모르지, 킥킥."
"거기, 장난치지마!"


대화하는 것을 슬쩍 엿들어보니 아무래도 클로저 요원인 듯 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인솔 교사도 없이 저만한 수의 학생들이 굳이 이런 위험 구역까지 올리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저렇게나 어린 나이에도 클로저 요원이라는 점이 조금 믿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나......"


이 쪽은 그저 편의점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며 게임 계정비 겸 생활비를 벌고있는 일개 게임 폐인일 뿐이다. 저런 부류와는 애초에 사는 인생 자체가 다르고, 바라보는 시야도 다르다.


저들과 나의 위치는 평범한 일반인 A 와 주인공 A,B,C,D...... 인생의 주역으로써 가장 빛을 발할 때인 저들은 분명 나같은 녀석보다도 더 대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테지. 별로 부럽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그저 '재능' 이란 걸 타고나며 저렇게나 차원이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거구나, 하고 멋대로 납득할 뿐이다.


개개인의 인생이란 건 저마다 다른거다. 불행한 녀석도 있는가 하면, 행복이 끊이지 않는 녀석도 있다. 행복이나 불행이 적당히 겹쳐져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보내는 녀석도 있다. 그러니 특정한 인생을 두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있더라도, 끔찍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고있더라도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오케이 아닌가?


덧붙이자면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장시간 일을 하는 건 역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정당한 노동을 통해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받는다. 그리고 그 대가를 또 다른 곳에 지불하여 그에 상응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평범하든, 불행하든.


오랫동안 저 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다크써클이 낀 얼굴로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음습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한창 때를 넘기고나면 남는 시간 동안은 편하게 앉아 게임기를 두들긴다. 매일매일이 반복되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 나는 이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오오, 이런 곳에도 편의점이 있네?"
"목마른데 잘 됐네. 난 음료수나 좀 사련다."
"난 콜라!"
"야, 천원 줄테니 빵 두개 사고 잔돈 500원 거슬러와라."
"머리에 총 맞았냐?"


물건 정리를 끝내고 계산대로 돌아오니 때마침 조금 전 역에 도착한 학생무리들이 편의점에 들어섰다. 대여섯명 정도의 남, 녀 조합은 꽤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애나 어른이나, 시끄럽든 조용하든 똑같은 손님이다. 나는 즉시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학생들이 물건을 가져오길 기다린다.


"아저씨 이거 얼마...음? 아저씨가 아니네?"

뻗친 갈색 머리의 한 남학생이 빵과 음료수를 들고와서 계산하려다 내 얼굴을 보고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온다. 지금껏 손님들에게 나이로 질문을 받은 기억은 없다. 다크써클이 워낙 심하게 낀 탓에 체격이 조금 왜소해보여도 20대 초반 정도로 다들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몇 살이에요?"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오는 탓에 순간적으로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다, 결국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16살입니다."
"오, 동갑이야!"
"뭐야, 요즘에는 중학생도 아르바이트 할 수 있어? 차원종들 때문에 고등학생 이상 아니면 못 쓰는 거 아니었나?"
"요새 불경기다 뭐다 해서 서민분들의 등골이 뽀개지고 있으시다잖냐~, 그정도는 너그럽게 봐줘야지! 그쵸?"


나에게 동의를 묻는건가?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주니 킥킥 웃으며 좋아라한다. 이런 타입의 학생들은 조금 귀찮긴 해도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크게 트러블은 일으키지 않는다. 빨리 계산이나 하고 가버렸으면 좋겠다.


"어라? 그런데 우리야 임무때문에 그렇다 쳐도, 보통 지금 시간대에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던가? 보통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야?"


긴 흑발을 가지런하게 정돈한 여학생이 의문을 표하자 다른 학생들도 그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듣고보니 그러네. 저기, 학교는 어쩐거에요? 땡땡이?"
"......"


나는 땡땡이를 칠 정도로 불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굳이 어느쪽이느냐고 한다면 매우 성실한 쪽이었지. 실실 웃으며 그런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아뇨, 사정이 있어서......"

"이 시간대에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사정이라니, 그냥 편하게 학교 가기 싫었다고 하면 되잖아요~? 사실 우리들도 임무 때문에 이 곳에 온 거지만 학교 가기 싫은건 마찬가지거든요! 그래. 동류네, 동류!"


뭘 멋대로 같은 취급하는거냐. 나와 너희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살아가고 있는 인생도, 그 인생에서의 신분적 위치도. 심지어는 대인 관계조차도.


"민아, 너무 짓궃게 말하지마~. 사정이 있으시겠지."
"아, 하긴 그렇지? 같은 나이인데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걸 보면 사정이 없을리가 없겠지~? 계산이나 해주세요."


쿨하게 여학생의 말을 받아넘기며 지갑에서 체크 카드를 꺼내든다. 클로저 요원들에게 지급되는 카드와 비슷한 디자인의 카드

였는데, 일반적인 군청색의 컬러와는 다르게 옅은 희색 컬러 카드였다.


"...1만 700원입니다."


금액을 말해주며 카드를 긁고, 계산을 끝마친 후에 카드를 돌려준다. 빵과 과자, 음료수 조금 산걸로 1만원을 가볍게 넘는 금액에 놀랄법도 하건만, 금액따위는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 모양인지 쿨하게 물건들을 가져간다.


"아, 영수증은 됐어요~."


카드로 계산하는 손님 치곤 꽤나 오랜만에 듣는 대사이다. 포스기에서 뽑혀나온 영수증을 구겨 휴지통으로 던져넣고 나는 다시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는다. 문이 여닫히며 그 사이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저 사람 정말로 우리랑 동갑일까?"
"글쎄, 내가 보기엔 대학생쯤 되보이는 것 같은데?"
"대학생 치곤 키가 너무 작은데? 왠지 다크써클도 껴있어서 기분나쁘고~."
"그보다 안전한 시내에서 일하지 않고 굳이 이런 곳 까지 와서 일하는거보면 좀 불쌍하다. 이런 곳은 웬만하면 사람 잘 안 쓰잖아? 위험하니까."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아르바이트 하는 놈들이야 다 자기 인생에 맞춰 사는거지 뭐."


조금 거슬리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저들이 뭐라하든 나와는 관계없으니까.

2024-10-24 22:21:3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