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비와 세하와 유리의 3각4정 -4화-

코노카 2015-08-06 0

'여긴...'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천장과 빛나고 있는 백열전등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느낀 감각은 병원 특유의 약품냄새와 머리에 약간씩 잔류하는 통증, 왼쪽 팔에 묘한 위화감이었다.


'그렇구나. 나...'


아직도 머리가 멍한 채였지만 이슬비는 어느정도 자신이 이렇게 된 상황을 이해했다. B급 차원종 말렉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관리부족으로 쓰러져서 작전을 망쳤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극심한 자기혐오가 머리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이세하에게 주의를 해놓고 정작 자신이 작전 수행중에 쓰러지다니.


'한심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세하와 유리가 병상의 옆에서 앉아있는것이 보였다. 두 사람도 슬비가 눈뜬것에 눈치챈듯. 의자에서 일어나며 병상으로 다가왔다.


"슬비야아아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


먼저 서유리가 반쯤 우는 표정으로 달라붙어왔다. 이슬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나 그것을 제지할 힘도 없어서 한숨을 내쉬며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니까. 몸살일 뿐이니까 무사하다고 했잖아?"


"그치만! 그치마아안!!"


"네가 애냐. 나참, 슬슬 떨어지는게 어때? 이슬비도 괴로워 하잖아."

"앗. 미안 슬비야!"


"... 나라면 괜찮아. 그보다 이세하. 너 그 팔..."


"응? 이거?"


문득 이슬비가 이세하쪽을 바라보며 얘기하자. 이세하가 붕대를 감고 고정시킨 오른팔을 살짝 들어올리더니. 뒷머리를 긁으며 시선을 돌렸다.


"별거 아니야. 좀 넘어졌을 뿐이지."


"에이~ 별거 아니긴. 슬비를 지키려다 다친거잖아! 영광의 상처..."


"시, 시끄러! 그 이상 말하지 마!"

"뭐야~ 세하 너 부끄러워 하는거야? 이럴땐 귀엽다니까~ 게임만 할땐 완전 폐인같지만."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렇게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슬비는 이해가 됐다. 위상력이 없을때 차원종의 공격을 받고도 무사한 이유가 아마도 이세하가 자신을 지켜줬기 덕분이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슬비는 부끄러움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쁘다는 감정을 순수하게 느끼고 있었다.


'왜? 어째서..?'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올려봤지만 그 이상한. 낯간지러운 듯한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이상한 감정에 당혹해하고 있을때. 갑자기 서유리가 손뼉을 짝. 치더니 이제 생각난듯이 웃음을 띄웠다.


"아~ 그러고보니, 슬비는 오랫동안 누워있어서 목이 마르겠네! 내가 가서 음료수좀 사올게!"


"아. 그런거라면 나도..."


"안돼! 세하 너는 슬비 옆에 있어! 한명이라도 옆에 있는편이 좋잖아?"


"... 아, 그렇군. 알겠어."


따라오려는 이세하를 저지한 서유리는 그대로 재빠르게 병실을 나가버렸다. 결국 병실에 남게된 이세하는 뺨을 긁으며 의자에 앉아 이슬비를 바라보았다.


"뭐 어디 불편한데는 있냐?"


"... 없어. 열도 많이 내려간 모양이야. 근데... 말렉은?"


입원해서까지 작전을 걱정하는 이슬비를 바라보며 이세하는 마음속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체를 하며 말했다.


"말렉은 널 공격하고 그 뒤에 바로 도망쳐버렸어."

"...어째서 포위망을 푼거야?"


이슬비는 자기가 무심코 말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조용히 말했다.


"...뭐?"


"그대로 추격했으면 말렉을 처리할 수 있었어. 어째서 포위망을 풀고 말렉을 놔준거야?"


"그야, 네가 쓰러졌으니까 서유리도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너도 알잖아? 서유리녀석이 얼마나..."


"그렇다고 해도 작전은 말렉의 섬멸이었어! 어째서 멋대로 자신의 위치를 이탈한거야? 나보다도 말렉의 섬멸을 우선시 해야했어!"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세하의 화난듯한 말에 이슬비는 그제서야 자신이 내뱉어버린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자신의 실책에 대한 자기혐오와. 갈곳 없는 분노를 이세하에게 풀어버렸다는걸 깨달은 이슬비는 당황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 나, 이런 말을 하려던게... 그러니까..."


자신의 한심함과 자기혐오가 한없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이슬비는 조금씩 자신의 눈가가 흐릿해지는걸 느꼈다. 이윽고 눈가에 맺힌 눈물은 방울이 되어 뚝뚝. 이슬비의 하얀 손등에 떨어졌다.


"나...나...."


"이제 됐어. 이슬비."

"되지 않았어. 나. 리더 실격이야... 어째서. 그런 말을..."


"이슬비."


"나, 난.. 검은양팀에 남아있을 자격이 없어... 바보같아... 그런 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이슬비!"


이세하의 고함에 이슬비가 고개를 들자. 이세하는 여태껏 보여주지 않은 웃는 얼굴로 다치지 않은 손을 이슬비의 머리위에 툭, 올렸다. 이슬비가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물 젖은 눈을 깜빡하고 있을때. 이세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보야. 넌 누구보다 잘하고 있어. 서유리도 나도. 네가 없었으면 진작에 당해버렸을걸? 네 지시가 없었으면 마음대로 날뛰다가 둘다 당했을거라고. 그리고 네가 쓰러진 이유. 혼자서 검은양팀의 사후처리나 보고나 서류같은거 혼자서 다 해서 그런거지?"


"... 그, 그건..."


확실히 이슬비가 두사람에게는 비밀로 도맡하서 하던 일이었다. 팀원을 쉬게 해주고 복잡한 일은 도맡아서 하는게 리더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자신에게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그.. 뭐냐, 조금 적당히 하는 성격이라. 네 그런... 노력하는 모습,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없는 검은양 팀은 상상도 안간다고. 그리고 말이야.. 가끔은 나나 서유리를 써먹어도 되는거 아니야? 서류 처리같은건 젬병이지만. 사후처리같은건 잘 할 수 있다고?"


"... 이세하.."


이세하가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슬비는,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까의 고마움이나, 창피함과는 다른, 초조와 닳은 감정이지만 절대로 싫지는 않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이슬비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검은양팀에서 나간다던가 어울리지 않는다던가 하는 말은 하지 말라고. 네가 나가면 나도 탈퇴해버릴거니까. 뭐 서유리도 그렇겠지만."


이세하도 약간 부끄러운지 뺨을 붉히며 하는 말에, 이슬비는 무심코 풋하고 웃어버렸다.


"뭐, 뭐야? 뭐가 그렇게 웃겨?"

"아니야, 네가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게, 너무 생소해서."


"... 큭, 나도 진지할땐 진지하게 한다고..."


삐진듯이 고개를 돌리는 이세하를 이슬비는 어느새 웃음을 띄우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


다시 한번 자신의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대본 이슬비는 조그맣게 응. 이라고 납득했다. 그리고 이세하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지은적 없는 미소를 띄우며.


"고마워 이세하."


라고, 이세하가 놀랄만큼 망설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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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손해보는 역할이라니까..."


서유리는 등을 자판기에 대며, 다 마신 깡통캔을 검지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러자 깡통캔은 캉, 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 세하, 이 바보녀석."


서유리는 한마디 툭 내뱉고. 그대로 휴식실에서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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