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소년은 도심을 가로지른다.

세하뿅 2014-12-30 2

 게임은 좋아한다. 무엇이든 한만큼의 대가가 톡톡히 돌아온다. 공부를 하면 지식이 오르고, 운동을 하면 근력이 오르고, 여자애들이랑 말만 해도 저절로 호감도가 오른다. 그야말로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들. 그것들을 게임속 에선 이렇게나 간단히 실행시킬 수 있다. 마음을 졸이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플레이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무엇이든지 된다. 게임속 캐릭터들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한창 공부를 하여 지식을 쌓아도 부족한 내 나이 18살. 허구한 날 게임이나 하고 있다고 꾸중이나 듣고 앉아있다. 그럼에도 게임기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왜냐고? 만약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를 안하게 되면 게임속 캐릭터는 어떻게 되는거지?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캐릭터들은 고민이 없는 대신 생각도 없다. 누군가 명령하지 않으면 단지 시체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명령을 하여 미래를 만들어주는 것이 나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것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해도, 얼마나 열심히 플레이를 해줘도, 캐릭터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세상속에 같혀 바깥에 있는 나란 존재를 눈치채지 못 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무엇이든지 아는체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나는 진짜다. 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나다. 오직 나뿐.

 만약에 내가 만든 미래가 좀 엉터리면 어떠하리,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부터, 혹은 아예 처음부터. 갓난 아기때라도 상관없다. 어짜피 다시 태어나는 인생. 그날 하루를 조금 실패해도 되돌리면 된다. 무언가를 실패할 것 같으면 그전에 먼저 세이브를 한다. 마치 보험처럼. 내 인생도 이렇게 보험처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보험이래봤자 이미 일이 다 끝나고 난 뒤의 해결책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도 일이 시작되기 전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 이렇게 잔인한 현실이 과연 게임을 따라올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없을 거 이다.

 어하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난 게임을 좋아한다. 현실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미지의 영역안에 발을 들여놓아 현실에게서 등을 돌렸다. 남들은 이런 나를 보고 현실을 외면 한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이다. 이렇게나 즐거운 세상이 있는데 뭐하러 그 잔혹한 곳을 마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위상력이란게 나에게 생겼을 때에는 솔직히 조금은 기뻤다. 마치 마법 같지 않은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 그런것이 나에게 생겼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였다. 한때 영웅이었던 엄마를 중심으로 내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름들은 나에게 잠재력이 아주 높다며 축하한다고들 말해주었지만 사실 이런게 생겼다고 축하받을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젠 나도 밖에 있는 저 우글우글하고 무섭게 생긴 차원종 이란 것 들과 싸우게 되지 않는가. 이것이 과연 축하할 일인가. 어른들은 정말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 인가. 아니면 단순한 겉치례인가.

 뭐가 어찌되었건 나의 운명은 같을 것 이다. 엄마랑 똑같이 클로저가 되어 차원종들을 잡는것.


 엄마가 영웅인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높은 잠재력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그런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단지 저 두가지 사실로 인해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대감을 멋대로 키워가고 있다. 나란 존재의 속은 보이지 않고, 이세하 라는 나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채 그처 '영웅의 아들'로 보고 있다. 날 그렇게 가둬 두지마. 난 엄마와 달라. 겉치례 같은건 필요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조길 바라는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왜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 조금만 눈을 돌리면 당신들이 상상도 못한 내가 거기에 서있어. 아니면, 그런 나를 보기 싫은 거야?

 '게임폐인인 이세하'를? 그래서 '영웅의 아들'인 나를 보는거야?


 -그 이후 귀찮은 방과후 활동이 시작됬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게임을 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분명 오늘도 엄마가 뭐라 하겠지만 뭐 어때 평소처럼 내 방에 들어가 게임만 하면 잠잠해 지겠지.

 오늘은 출석체크와 동시에 지령이 떨어졌다.

 '강남역에 출현한 차원종들 제거.' 물보듯 뻔하다. 아니면, 나에게 이것 이외의 다른 명령이 있던가? 귀찮다. 방과후를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도 엄마에게 등떠밀려 어영부영 들어오게된 이 지루한 곳을. 오늘도 이 삭막한 곳에서 나를 치유해 주는건 게임밖에 없다.

 유정이 누나와 떽떽거리는 이슬비의 잔소리에 못이겨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났다. 오늘도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늘 보던 C급 차원종들. 오늘도 너희들이 나의 게임시간을 방해하는 구나. 하루라도 안나와주면 어디가 덧나니?

 "빨리빨리 덤벼! 난 시간 없다고!"

 귀 귀우릴리가 없는 소리를 외치며 오늘도 차원종들을 향해 나아간다.


 -승급시험.

 수습요원으로 진급하기 위한 일종의 겉치례. 그것도 상층부에선 우리를- 검은양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그 겉치례 조차 너무 혹독하다. 이럴거면 차라리 정식 요원들을 투입할 것이지 왜 우리 같은 아이들을 투입시켜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는지. 무능력한 것들이 자기배를 채우겠답시고 사로 아옹다옹 하는 것 조차 알아버리는 이런 시대에 새삼스레 너무하다느니 뭐니 말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 만큼은 말해두고 싶다.

 '난 어찌되도 좋으니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아마 다른 애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아니, 적어도 나는 조금 다를 것 이다. 뒤에 '게임 좀 하게.'가 들어가니. 어쩔수 없는 본능인것 같다.

 설마 아주 조금 이 일에 의욕이 생겼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변덕이다. 열심히 하겠다던가 그런건 아니고 아주, 아주 조금만 더, 해보기로 했다.

 '영웅의 아들'이 아닌 '이세하'가 말이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수습요원이 되고 나서 얼마뒤. 정식요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이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나도 엄마와 같은 정식요원이다. 아니, 엄마는 이젠 요원이 아니지만 한때는 그랬다. 아주 위대한 요원. 과연 내가 정식요원이 되봤자 정말로 엄마를 따라 잡을 수 있을까. 설령 따라잡는 것 까진 못해도 '아 조금 하네.'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만약 내가 이번 시험에 떨어지게 된다면 모두를 실망시키게 되는 것 일까. 기대해달란 소린 입도 뻥긋 안한 내가 떨어지면 왜 멋대로 기대를 한 어른들이 실망을 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검은양의 다른 요원들도 실망할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시험따위, 안치는게 나은게 아닐까. 영웅처럼, 엄마처럼은 되지 못해도 난 '이세하'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까. 높디 높은 기대감에 같혀있는 나를 이런 시험 하나가 꺼내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저 시험을 치르고 나면 기대감의 벽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일까.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통과를 하든, 못하든, 그건 '영웅의 아들'이 아닌 나 '이세하일 것 이다. 적어도 통과를 한다면 '잘했네.' 라는 칭찬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기대의 벽 이란건 더 높아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벽안에 같혀있는 '이세하'는 아무도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주면 어떠하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 언젠가 벽 바깥으로 나올 '이세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날이 올때까지 '이세하'는 얌전히 벽을 두들기면 된다. 언젠간 이 벽이 허물어 조금이라도 금이 갈때 사람들이 '어?' 하는 정도로 놀랄 것이다. 자신들이 쌓아올린 커다란 벽을 조그마한 '이세하'가 무너뜨렸을때 그들이 나를 보고 미소지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들 뿐이다.


 "빨리빨리 덤벼! 난 시간 없다고!"




 누군가에겐 들리길 원하며 외친다.




 내달린다.






 오늘도 소년은 도심을 가로지른다.

2024-10-24 22:21:2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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