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그날에야말로 소년은 진정한 힘을
영웅선망 2014-12-30 4
『1장』나는 분명, 검은 양(BLACK LAMBS)에 속해 있다.
신논현역, 신서울의 지하철역으로 매일 수 만 이상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신서울의 교통의 중심지라고 불러도 될 곳이다. 그런 곳에 또 새로운 차원종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나를 비롯한 팀의 멤버들은 이곳으로 파견됐다.
망할 놈의 차원종 자식들. 조금은 사람에게 쉴 틈을 줘야할 것 아니냐. 이건 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그래도 이런 지겨움을 달랠 필사의 무기가 나에게는 있다. 그것은 바로 최신형 게임기! 칩도 내가 요즘 즐겨하는 게임의 칩으로 가져와 지겨움을 달래기에는 최고 중에서도 최고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나는 시선을 게임기에 가져갔다.
“팀 검은 양(BLACK LAMBS)에 내려진 임무 설명을 하기 전에…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세하?”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던 게임을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멈춘 후, 귀찮음이 서린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벚꽃이 물든 듯한 연분홍색의 머리칼.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푸른 눈동자. 갓 짜낸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는 약간 분홍빛이 돌고 있었다. 팀 검은 양의 리더이자, 잘 놀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완벽주의자인 이슬비.
얼굴에 분홍빛이 돌고 있는 이유는 내 잘생긴 외모에 반해서겠지. 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역시나 추워서일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나도 지금 추워 죽겠는걸. 이런 추위에 홍조를 띄우지 않는 건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대체 왜 날 부른 거야?
“그야 게임하고 있지. 방해하지 마. 조금 있으면 보스 스테이지에 돌입한다고.”
“검은 양 수칙 제 1조 5항. 임무 중에는 게임기에 손대지 않기. 세하 때문에 제가 직접 수칙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지킬 생각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 그런 것도 있었네.”
“직접 복사까지 해서… 세하에게 전해주기까지 했는데 읽지도 않았다는 말이군요.”
아차, 이건 좀 위험하다. 슬비의 주변에서 냉기가 도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슬비는 차갑게 나를 노려봤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슬비에게 죽도록 맞았었다. 그때 슬비가 웃으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쓸모없는 손가락의 뼈들을 모조리 부숴드리죠.’
나는 그날, 진짜로 누가 말려주지 않았더라면 평생토록 손가락을 쓸 수 못할 번했다.
……하아,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 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손해를 보는 쪽은 내가 될 것이리라는 것을 충분히 육체로 경험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게임기를 재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보스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슬비는 게임기를 집어넣은 나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물론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얼굴을 붉힌 채 그렇게 고개를 돌리면 나도 남자인지라 설레 버리고 만다. 조금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그야 나도 18살이라고? 한창 성에 관심 있을 나이라고?
“하하! 음흉한 눈으로 슬비를 보고 있네!”
슬비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커다란 가슴. 이 아니라 길게 늘어트린 흑발의 여성. 슬비 못지않게 딱 봐도 미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외모다. 무엇보다 한 장만 걸친 와이셔츠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계곡을 이루는 융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뭐야, 이거. 차원종을 섬멸하는 조직이라더니 사실은 미소녀 조직인 건가. 그렇다면 나도 미소녀란 소리잖아. 설마 이런 건가? 자신을 남자로 알고 있는 미소녀?
그럴 리가 없지.
그것보다 뭐라고 말한 거냐. 저 가슴. 아니, 서 유리. 음흉한 눈? 뭐야 그건. 사륜안 같은 거냐. 꽤나 멋지게 들리지만 역시 결론은 내가 변.태라는 거 아니야.
“웃기는 소리다! 내가 저딴 빈약한 가슴을 음흉한 눈으로 바라볼 리 없잖…….”
그렇게 입을 뗀 순간 내 눈앞에 슬비의 발이 드리워졌다. 정말 더럽게 빠른 발차기다. 그런데 팬티도 보인다. 분홍색? 난 흰색이 좋다만. 왜 순수함의 상징이잖아. 흰 색은.
뻐억—
『2장』나는 분명, 최악의 적과 만났다.
“……까지가 이번 작전의 주요 임무입니다.”
슬비는 분홍빛이 도는 얼굴로 설명을 끝마쳤다. 슬비의 얼음 같은 눈동자가 한 차례 나를 쏘아본 것 같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나저나 무슨 여자의 발차기가 이렇게 아픈 건지. 아직까지도 볼이 따끔따끔하다.
슬비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생겼는지, 언제 게임을 할지 모른다며 주머니에 있던 게임기까지 뺏어갔다. 솔직히 좀 너무한 처사 같지만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무엇보다 무서워. 무섭다고 그 발차기.
“임무 수행, 시작합니다.”
기계 같은 슬비의 말에, 나와 유리는 각자 허리춤에 매고 있던 무기를 뽑았다.
내가 애용하는 무기는 검과 총을 합친 형태의 건 블레이드. 원거리와 근거리를 동시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 검은 양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무기다. 시선을 살짝 돌리니, 유리는 역시 내 예상대로 기계로 된 오른팔에는 특수 금속 소재로 되어 있는 태도를, 평범한 왼 팔에는 작은 권총을 장비했다.
그리고 리더인 슬비는, 몇 번을 봐도 신기하게 주변에 수 개의 단검들, 통칭 플라잉 대거들을 거느렸다. 슬비는 침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슬비의 눈에 애석하게도 한 차원종이 포착됐다.
트룹 배셔. 몸 군데군데에 털이 나있으며 한 손에는 망치를 쥐고 있는 차원종 중 하나였다.
“섬멸합니다.”
우리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슬비의 몸은 이미 트룹 배셔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키륵?」
차원종은 이제야 슬비의 기색을 눈치 챘는지 고개를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 슬비는 깔끔한 솜씨로 트룹 배셔의 몸을 플라잉 대거로 양단했다. 단말마를 내뱉지도 못하고 트룹 배셔는 반으로 갈라져 풀썩 쓰러졌다.
“휘유.”
언제 봐도 감탄할 만한 솜씨였다.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치자, 슬비는 그것을 들었는지 잠깐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
대체 왜 쳐다본 건데…….
그러나 마냥 불평하고만 있을 때도 아니었다. 자신의 동료가 쓰러진 것을 알아차렸는지 몇몇의 트룹 배셔가 슬비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빨리빨리 끝내자고.”
“하핫! 누가 더 많이 쓰러트리는지 내기할까?”
“난 특제 스트로베리 허니 버터 아이스크림.”
“그럼 난 초고속 제트기.”
뭐냐, 뭐냐 그거. 터무니없는 걸 말하지 말란 말이다. 유리는 가끔씩 나보다 더 남자 같을 때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초고속 제트기라니. 이건 절대로 지면 안 된다. 지면 적어도 파산이다. 내 소중한 보금자리 여기저기에 차압 딱지가 붙을지도 모른다.
“쏜다, 벤다! 서유리가 벤다! 땅땅빵빵!”
모 애니메이션을 표절한 것 같은 말을 하며 유리는 슬비에게로 달려드는 트룹 배셔 한 마리를 여유롭게 베어 넘겼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질주(疾走)’”
나는 재빨리 위상력을 펼쳐 신체능력을 상승시켰다. 온몸이 한층 가벼워진 느낌과 동시에 건블레이드를 역수로 쥐고 세 마리의 트룹 배셔에게로 돌진했다. 바람을 가르며 머리카락이 이리저리로 나부꼈다.
「키에?!」
순식간에 자신들 앞으로 육박한 나를 본 트룹 배셔들이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트룹 배셔들의 상황 따위, 봐줄 리 만무했다. 건블레이드를 쥐지 않은 왼손을 말아 쥐고, 그대로 트룹 배셔 한 마리의 옆통수를 강타.
트룹 배셔는 옆에 있던 자신의 동료들을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트리며 멀리 날아갔다. 이로써 상황은 2:1.
“역전(逆轉)”
쓰러진 트룹 배셔 중 한 마리를 건블레이드로 두 번 올려 베었다. 선혈을 흩뿌리며 공중으로 띄워진 트룹 배셔. 이로써 상황은 1:1.
「키르륵?!」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시야에 사라지자 트룹 배셔는 두 눈동자를 크게 떴다.
“발포(發砲)”
나는 건블레이드로 신속하게 트룹 배셔를 베어 경직을 준 후, 손잡이에 달려 있는 버튼을 눌렀다.
푸른 폭염이 피어났다.
트룹 배셔는 순식간에 상반신을 잃고 하반신만 남은 채로 딱딱하게 굳었다. 처리 완료. 나는 곧바로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트룹 배셔를 향해 점프했다. 차원종이든 뭐든, 특수한 장치가 없는 한 공중에서의 이동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중에 띄운 트룹 배셔 한 마리의 몸을 건블레이드로 가볍게 꿰뚫었다. 남은 것은 멀리 나가떨어진 트룹 배셔 한 마리.
“공파탄(攻波彈)”
건블레이드의 총구 부분에서 푸른 총탄이 발사되어졌다. 이제야 몸을 일으키는 트룹 배셔에게 정확히 착탄. 트룹 배셔의 몸에 바람구멍을 남긴 채로 푸른 총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우.”
피격은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완벽하게 올 퍼펙트 클리어. 게임에서도 지금처럼 움직인다면 어떤 게임이든 퍼펙트하게 올 클리어 할 자신이 있다.
“어이, 난 벌써 세 마리 째라고. 스트로베리 허니 버터 아이스크림을 살 준비는 됐냐?”
나는 자신 있게 가슴을 쭉 펴며 어디선가 교전을 벌이고 있을 서유리를 약 올리듯 말했다.
“도, 도망쳐어어어—!!!”
음, 이 가늘면서도 활기찬 목소리는 분명히 서유리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고, 숨에 차 있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미소녀가 나에게로 뛰어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오늘 무슨 고백데인가? 설마 얘들 마음속으로 나를 품고 있었던 건가. 하하, 이거 곤란하다고. 둘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해버리잖아. 그런 그녀들의 뒤로 그놈이 보였다.
“……뭣?”
나는 얼이 빠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을 리가 없을 놈이다. 이런 곳에 있어서는 안 될 놈이다.
열쇠 같은 형태의 구속구. 그리고 구속구 정중앙에 삐져나와 있는 얼굴. 짙은 청색의 몸은 푸른 산양을 연상케 했다. 등에 달린 흉악한 주홍색의 갈기를 휘날리며 그놈은 그녀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그놈이 달릴 때마다 두 팔목에 달린 굵은 쇠사슬들이 끌리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그놈을 본 순간— 내 몸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도 움직여서 그녀들과 같이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도망친다고 하여도, 그녀들과 같이 도망친다고 하여도 과연 저 녀석에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먼 곳에서 그놈의 비웃음이 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의 말이 들린 것 같았다.
‘불가능하다.’ 라고—
아니, 나는 도망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놈은 슬비와 유리를 쫓고 있었다.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듯 했다. 그녀들을 미끼로 삼는다면 분명 나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이래서 클로저 따위 하기 싫었는데.
“세하?!”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빨리 도망쳐요! 세하!”
유리와 슬비의 외침이 내 귀를 울렸다.
그녀들의 외침을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녀들을 지나친다. 나는 똑바로 그녀들을 쫓고 있는 그놈. 차원종 랭크 A랭크로 분류된 말랙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승산은 없을 터였다. 그것은 누구도 아닌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미소녀들을 죽게 할 순 없잖아!”
망할 놈의 엄마. 어릴 때부터 미소녀들을 지키라는 말을 노래 같이 해대서, 미소녀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고정되어 버렸잖아. 언제나 동경했던 엄마지만 지금만큼은 엄마라고 부르기도 싫다. 망할 쭈구렁탱이. 만약에라도, 정말로 만약에라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으면 내 목숨부터 지키라고 노래 부르게 만들 테다.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이미 나는 말랙과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드디어 말랙의 시선이 나를 담았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을 억지로 뿌리친다. 말랙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한 마리의 벌레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방심을 이용해서, 위상력을 최고로 출력시켜, 결전기를 먹여야 한다.
“질주(疾走)!!!”
말랙을 향해 초고속으로 내달렸다.
질주는 보통, 초고속으로 달려간 후 적의 신체의 주먹을 꽂아 넣는 식이다. 그러나 말랙은 나의 2~3배는 될 법한 거구. 그 거구에 내 주먹이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말랙의 눈앞에서 억지로 급제동. 신발의 밑창이 요란하게 깎아져 나갔다.
기회는 단 한 번. 말랙은 나에 대한 위험도를 모른다. 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그러나 나는 말랙에 대해 수많은 선배 클로저들에게 들었고, 엄마에게도 들었다. 그들의 입에서 들은 말랙의 정보를 합산하여 결론을 내보자면, 간단하다. 말랙은 강하다.
강하기에, 상대를 우습게 여기며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것만을 믿고, 나는 외쳤다.
“위상력 개방! 결전기, 폭령검(爆昤劍)!!!”
클로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차원종들과 싸울 수 있게 해주는 힘의 원천인 위상력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개방했다. 몸 주위로 푸른 오라가 돌기 시작한다. 곧바로 사고를 냉각시키고, 클로저들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칭송받던 그녀의 검술을, 나를 낳아준 그녀가, 내가 진정으로 동경하는 그녀가 직접 전수해준 검술을— 행사했다.
오른팔의 근육을 폭발시킬 듯이, 나는 건블레이드를 무차별적으로 말랙에게 휘둘렀다. 검술의 고수가 봤다면 엉망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난무. 푸른색의 검흔이 여기저기 말랙의 몸에 남는다. 많은 검격은 말랙을 보호하는 열쇠 같이 된 석조모형에 의해 튕겨나갔다.
「GRrrrrrrAaaaKkkkkkk!!!!!!」
말랙이 높이, 그리고 흉포하게 고성을 내질렀다.
수 없이 말랙의 몸을 베어나가면서, 나는 마지막의 때가 옴을 눈치 챘다. 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마 말랙에 의해 죽겠지. 그런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는 애써 그 두려움을 외면하고— 건블레이드의 내포된 화약을 터뜨렸다.
대폭발.
“하아… 하아…, 된… 건가.”
자욱한 폭연이 말랙의 거구를 통째로 뒤덮고 있다.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하여 말랙에게 공격을 쏟아 부었다. 이제 기도할 뿐이다. 말랙이 제발 쓰러져 있기를. 그러나 나의 그런 기도를 비웃듯이, 철컹. 하고 묵직한 쇠사슬들이 한데 맞물려 땅에 떨어진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설마, 설마 그럴 리가, 전력을 다했는데, 온힘을 다하여 위상력을 개발하고 엄마가 전수해준 결전기까지 행사했는데도 저 녀석은 아직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차례의 거센 바람이 일고, 말랙의 거구를 감추던 폭연이 흩어진다.
그리고 흩어져가는 폭연 속에서 그놈은 다시 나타났다. 자신의 몸을 억누르던, 그 힘의 행사를 억제하던 구속구를 완전히 벗어던진 채,
「G… Grrrraaak!!!!!!」
여태까지 쌓아온 분노를 모조리 터뜨리는 듯 했다. 나에게 받은 상처를 갚아주려는 듯, 그놈은— 커다란 턱을 활짝 벌리며, 울부짖었다.
“아… 아아…….”
죽음이 눈앞까지 드리워졌다. 말랙의 거구가 내 눈앞에 드리워지고, 그림자에 의해 내가 있던 곳이 어두워졌다. 말랙의 두 눈은 분명 나를 똑똑히 보고 있었다. 원초적인 본능, 두려움이란 단어가 내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움직이게 해주지를 않았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이렇게 끝나는 건,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허무하잖아?!
그리고 내 눈앞에, 연분홍빛과 짙은 흑발이 나부꼈다.
“너희?!”
이슬비와 서유리였다.
분명히 도망친 줄 알았는데. 아니, 그녀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던진 거였는데 왜? 왜 다시 돌아온 거야.
“목표 확인, 적을 섬멸합니다.”
그런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우리로서는 무리라고?
“쏜다! 벤다!”
그러니깐 말이야, 말랙은 도저히 우리들로는 무리라고?
그런데 왜, 나보다도 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왜? 왜 너희들은 내 눈앞에 나타난 거야.
“위상력 개방. 결전기, 버스 폭격.”
“위상력 개방! 결전기, 유리 스타!”
침착한 목소리와 활기찬 목소리. 그러면서도 떨리고 있는 목소리들이 한데 겹쳐지고, 그녀들의 기술이 말랙에게로 포화된다.
염동력을 최고치로 폭주시킨 슬비의 바로 앞, 말랙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버스가 나타나고 그대로 말랙을 찍어 눌렀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거대한 버스는 말랙의 몸을 짓누르는 채로 땅을 끌어 추가적으로 피해를 입힌다. 그리고 그 뒤로 곧바로 두 다리에 온 위상력을 집중시킨 유리가 질주하며 말랙의 주변에 별모양을 그렸다. 안 그래도 신체능력이 우리 셋 중, 가장 뛰어난 유리에게 위상력의 힘까지 더해지니 그 마찰열만으로도 유리가 지나간 자리에 불기둥이 치솟았다.
「Gr… Graaaaaaaaaaakkkkkkkkk——!!!!!!」
고막을 파열시킬 정도의 고성으로 말랙이 고통스럽게 포효했다.
이번에야말로 해치운 건가? 그놈은 쓰러져야만 했다. 결전기를 행사한 슬비와 유리는 명백히 지친 역력이었고, 나 역시도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 상태에서 다시 그놈이 일어선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진짜 너무하잖아, 이건.”
그놈은 몸 여기저기에 타버린 자국이 있고, 지금도 타오르고 있으면서도. 그놈의 몸 여기저기에 짓눌러져 썩어 들어간 자국이 있으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괴물인 건데!!!”
그놈은 다시 일어났다.
『3장』나는 분명, 가능성을 믿고 있다.
말랙이 걸어오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우리들을 향해 죽음의 철퇴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발자국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 셋 다 지나친 위상력의 개방으로 인한 과부하가 걸려버린 것이다.
“살아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내가 농담조로 묻자 슬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대답했다. 슬비의 가녀린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유리 역시, 슬비의 생각과 똑같은 듯 초조한 기색이 눈에 보였다. 아무리 내가, 그리고 그녀들이 클로저라고 한들, 우리들도 두려움은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공포는 당연하게도 있다.
“하아… 그렇겠지. 한 가지 더, 누군가가 미끼가 된다면? 미끼를 제외한 두 명은 살아나갈 수 있을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이야기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세하.”
가능성을 어림잡고 내뱉은 내 말에 슬비는 쐐기를 박았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영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하?”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엄마라는 작자 때문에 난 미소녀를 지켜야 하거든. 그러니깐—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내 게임기의 보스전은 네가 꼭 깨주라.”
“이 상황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것보다 당신이 미끼가 되는 것을 제가 허락할 것 같나요?”
“다 죽는 것보단 나아. 그리고 너희들은 지금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잖아? 유감스럽게도 나는 몸이 저리기는 하지만 움직일 수는 있어.”
“그런 행동, 리더로서 허락할 수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팀에게 소속감 같은 건 예전부터 없어서 말이야. 약속은 지켜주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너덜너덜해진 재킷을 턴 후, 건블레이드를 고쳐 잡았다. 슬비와 유리는 나를 막고자 하였지만, 그녀들의 몸은 지금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몸은 지금 움직인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소리였다.
“좋아.”
나는 힘차게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걸어갔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가 있는 말랙을 향해, 발걸음을 점점 더 빨리하며 전력질주—
말랙과의 거리가 10M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지면을 짓누르듯이 박차고, 말랙 또한 자갈들을 흩날리며 지면을 박찼다.
“하아아아아아아앗!!!!!!”
「Grrrr— Aaaakkk!!!!!!」
내 외침과 말랙의 포효가 겹쳐진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움직일 수 있으니까, 싸울 수 있으니까, 아직까지 몸이 움직이니까—
그녀의 말대로 미소녀들을 지킨다.
“발포!!!”
D급 차원종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발포는 말랙에게 있어서 파리가 앉은 것만도 못했다. 말랙은 내 공격을 무시한 채로 곧바로 근육이 터질 것 같은 굵은 팔을 휘둘렀다.
“느려!”
분명히 말랙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모두 위압적이며 강력했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면 바로 공격 속도. 날렵한 나에게 있어서 말랙의 공격은 그다지 못 피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스치기만 해도 지금의 나에게는 치명상 이상의 상처를 입혀줄 것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 더, 사고를 냉각시켰다. 억지로나마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렸다. 지금 내가 두려워할 것은 죽음이 아니다. 슬비와 유리가 죽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공포다. 그러므로 그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한 가지의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세다고 믿고 있는 사람. 지금도 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있는 사람. 지금도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 나를 낳아준 엄마. 내가 제일로 동경하는 그녀가 한 말을, 그 가능성을 믿는다.
왠지 눈 부근이 미칠 듯이 아려왔다. 근육질의 팔이 날아오고 있다.
『3.5장』나는 분명, 주마등처럼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세하야, 듣고 있니?’
‘응!’
‘우리 세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미소녀들을 지켜야 해. 그래야 멋진 남자거든.’
‘에에? 하지만 난 아무런 힘도 없는 걸?’
‘아니. 세하는 누구보다도 강해. 엄마는 알고 있어. 아직 세하가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뿐. 세하의 가능성은 엄마보다도 커. 아들한테 질투해버리는 나쁜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부럽네.’
『4장』나는 분명, 그녀들을 지키고 싶다.
이 대화의 내용을 나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지금도 한 글자 안 틀리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대화를 나눈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녀, 나의 엄마니까.
그녀의 등은 언제나 따스했다. 그녀의 품은 언제나 포근했다. 그녀의 웃음은 언제나 태양보다도 화사했다.
그런 그녀를 동경했다. 그런 그녀를 선망했고, 그런 그녀를 존경했다. 그런 그녀를 진정으로 따라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강해진 내가 미소녀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녀의 말을 믿는다. 그녀가 말해준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 가능성에 내 모든 것을 걸기로 하고, 다짐했다. 위상력을 개방하는 것만으로 말랙에게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하다면 위상력을 폭발시키더라도 나는—
나는—— 그녀들을!!!
“지키고 싶어!!!”
영혼마저 불태울 기세로 외쳤다.
『END』소년의 가능성이 꽃피다.
세하의 몸 주변에서부터 위상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으며,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방대한 위상력은 어디에 다 담아두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세하 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위상력은 폭주하고 있었다.
“저게… 정말로 세하의……?”
세하와 말랙에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직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이를 악물며 둘의 공방을 지켜만 보던 슬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때까지 본 적이 없던 위상력이었다. 과연 누가 저만한 위상력을 개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조차 들었다.
“저게 재능이란 건가, 질투 나잖아.”
슬비와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던 유리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런 유리의 심정을 슬비는 마냥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슬비는 그 누구보다도 유리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유리의 말대로 저것이야말로 압도적은 재능이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렇게 슬비와 유리가 저마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들의 시선에서 세하가 사라졌다.
「GAaaa?!」
슬비와 유리, 말랙의 시선에 세하가 다시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건블레이드가 말랙의 머리통을 조준하고 있을 때였다.
“공파탄.”
공기저항을 모조리 무시한 채로, 위상력이 응집된 강력한 포탄이 한 차례 건블레이드에서 쏘아진다. 그 다음, 쏘아진 포탄은 뭉게구름 같은 폭연을 이끌며 말랙의 몸을 관통했다.
「GAaaaaaa——!!!」
말랙은 아마 처음으로 진정하게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흘렸다. 그 거대한 거구를 한 발 물리며, 말랙은 세하를 향해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본다.
클로저와 차원종. 18년 전에 갑작스레 나타난 인류를 구원한 자들과 인류를 파멸한 자들. 차원 전쟁이라고 말해야 할 크나큰 사건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클로저와 차원종은 숙적관계였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관계다. 달라질 리가 없는, 바뀔 리가 없는 그런 관계.
한 차례의 시선이 맞닿고, 이윽고 다시 격돌의 시작.
세하의 건블레이드가 푸른빛을 띠며 말랙의 몸에 차곡차곡 상처를 입혀간다.
세하는 말랙이 휘두르는 주먹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여파로 인해 거칠게 날아드는 자갈들까지 피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정도의 공격은 허락해야 했다. 세하의 볼을 자갈이 갉아먹고, 신체를 크고 작은 아스.팔트의 파편들이 때렸다.
숙적관계에 선 그들은 그렇게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공격일변도의 자세로, 세하와 말랙은 검과 주먹을, 총탄과 포효를 교차해나간다.
검고 흰 검광이 수직으로 휘둘러지나 싶으면, 푸른 산양과도 같은 근육질의 팔이 수평으로 휘둘러진다. 푸른 포탄들이 여러 다발 쏘아져 나간다 싶으면, 곧바로 포탄의 기세를 늦추는 포효가 울려 퍼진다.
세하의 건블레이드가 내질러지고, 말랙은 구속구의 파편들을, 그리고 사슬을 채찍삼아 휘둘렀다.
두 개의 높은 금속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충격파들이 여기저기 퍼져 나간다. 선혈이 흩뿌려진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더— 더— 더——!!!’
지금도 평소 이상, 아니 그 몇 배의 속도로 건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는 세하였지만, 그 이상을 원했다. 그녀만이 닿았고, 자신이 쫓고 있는 절대의 영역으로 세하는 손을 뻗는다.
아직은— 닿지 않았다.
「GRrrrAaaaKkkk!!!!!!!!!」
말랙 역시, 차원문을 통해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구속구를 내던졌고, 처음으로 그 구속구를 무기 삼아 평소 그 이상의 전투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말랙은 그 이상의 경지를 원했다. 눈앞에 있는 소년을 도륙할 수 있는 그 경지를 원했다. 차원종이면서도 절대의 영역으로 말랙은 손을 뻗는다.
아직은— 닿지 않았다.
세하와 말랙은 안광을 흘리며, 무시무시한 격돌을 멈추지 않았다. 둘의 몸에서는 선혈이 그칠 줄 몰랐다. 벌써 길바닥에 그려진 선혈들로만 충분히 정신을 잃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세하와 말랙은 쓰러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억지로 자신들의 몸을 버티고 맞서 싸웠다.
세하와 말랙은, 그 어떠한 것과 비교를 불허하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세하와 말랙은,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세하와 말랙은, 서로를 쓰러트린다./도륙한다. 라는 집념만으로 버티고 있다.
세하와 말랙은, 그러기 위해서 절대의 영역에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다.
절대의 영역에 더 빨리, 0.1초라도 빨리 손을 뻗는 사람이 이 혈전의 승자였다. 그렇기에 세하는 외쳤고, 말랙은 포효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
「GRrrraaaaaaaaaa——Kaaaa!!!」
세하와 말랙이 서있던 지면이 음푹 패여 들어갔다.
“피… 해야 해요.”
“뭐?”
“조금이라도 멀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해요!”
평소의 모습 따위는 모조리 내던지며 소리치는 슬비를 유리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바로 살을 에는 오싹한 느낌에, 유리는 시선을 세하 쪽으로 주더니 그제야 슬비의 말을 이해했다.
슬비와 유리는 기어가듯 그곳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느꼈다. 세하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물론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폭풍치고 있는 위상력. 그것만으로도 그곳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둘의 직감과 본능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승부를 가름 지을 때는— 다가왔다.
“위상 집속검.”
한 차례 외친 후, 세하는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세하의 주변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던 모든 위상력들이 세하가 내뱉은 말에 건블레이드로 응집되고 있었다. 모이고 모여, 하나의 위상력의 검신을 만들어 낸다. 위상력의 검신은 보통 건블레이드의 3배 정도 되는 길이까지 뻗어나갔다.
그리고 세하는,
누구보다도 동경하고 있는 그녀를. 선망하고 있는 그녀를. 존경하고 있는 그녀를. 상처투성이가 된 등에 업었다.
세하는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지금에야말로 결전의 때였다.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녀의 말대로— 지키기 위해.
“결전기!!!!!!”
세하는 온 힘을 다하여 지면을 뭉개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Grrrak?!」
세하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말랙은 곧바로 세하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곳엔 햇무리가 있었다. 햇무리의 중심에 있는 것은 푸른 섬광을 넘실거리고 있는 세하.
“유성검(流星劍)————!!!!!!”
세하의 몸이 하나의 유성이 되어 그대로 말랙이 있는 곳을 향해 쇄도했다. 음속조차도 초월한 속도로 날아드는 세하를 말랙은 도저히 받아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포효했다.
그리고— 정말로 유성이 지면에 충돌한 것 같은 폭발음과 푸른 광명.
누구 할 것 없이 온 시야가 푸른색으로 뒤덮였다.
“……설마.”
“거짓말이지?”
짙게 일어난 흙먼지 속을 아연실색하며 슬비와 유리는 동시에 내뱉었다. 흙먼지 속, 검은 그림자가 두 개 있었다. 보통 인간과도 같은 크기의 그림자와, 그 몇 배나 될 법한 거구의 그림자. 그러나 슬비와 유리가 처음 봤을 때보다 확연히 그 거구는 작아져 있었다.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슬비와 유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쓰러트렸다고요? A급 차원종으로 분류되는 말랙을……?”
“눈앞에 두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네…….”
흙먼지가 걷혀간 곳에서는 신체의 절반 이상을 잃은 말랙과, 그 말랙의 몸을 입자 단위로 소멸시킨 듯한 아직도 푸른빛이 돌고 있는 건블레이드. 그리고 그 건블레이드를 쥐고 있는 선 채로 기절한 흑발의 소년.
분명히, 그 소년은— 일어날 수 없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뛰어넘어 A급 차원종인 말랙을 쓰러트렸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슬비와 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으니까.
슬비와 유리가 멍하니 신체의 절반 이상을 잃은 말랙과, 선 채로 기절한 세하를 보고 있는 것도 그리 긴 시간이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공에서로부터 요란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에야말로 소년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가능성을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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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번 올린 소설을 어딘가 부족하다 싶어, 이벤트가 끝나기 전 재빨리 한 차례의 퇴고를 끝마쳤습니다.
봐주신 형님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과 댓글 부탁드립니다.(굽신굽신)
지적할 점이 있다면 가차없이 지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