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대는 소를 겸한다.
한국의나나야시키 2014-12-30 3
대는 소를 겸한다. 여러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고, 한국 내에서라면 꽤나 통하는 격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세하는 이런 격언 따위 믿지 않았다. 믿고 말고 이전에, 그가 게임 외에 제대로 된 관심을 가진 채 알고 있는 것은 차원종과 위상력에 대한 조금의 지식 뿐. 이런 격언은 들어본 기억도 없었다.
“그러니까 게임기는 작은 편이 좋다니까!”
“아, 그래….”
들어본 기억이 없는 말이라고는 해도 그가 그 격언을 들었다면 충분히 흥분했을 것이다. 그의 신조는 그야말로 작고 컴팩트한 것이 제일. 휴대폰이고 뭐고 다 커지는 것을 지향하는 시대에서는 반역자일지 몰라도, 그는 절대로 그 신조를 굽히지 않았다. 신조를 굽히지 않는 포인트가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의 유감스러운 인생이 전력전개로 펼쳐지고 있었지만.
“하지만 화면이 큰 게 보기 편하지 않아?”
“게임은, 단지 보인다고 다가 아냐!”
“그야 그렇지만.”
폐허가 된 역 주변에서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는 게 한석봉은 굉장히 껄끄럽고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화를 적당히 끝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귀찮음을 다해 ‘그야 그렇지만’이라고 힘주어 말했건만 입을 다물려는 눈치는 없었다. 오히려 입가가 씰룩거리는 게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다.
게이머의 귀감이라는 점에서 평소에는 존중하고 존경하는 절친이지만 뭐라고 할까, 열정이 지나쳐서 귀찮은 점도 있는 것이었다. 게임에만.
“좋아. 내가 작은 것의 장점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마.”
“아, 아냐. 괜찮아.”
귀찮거든. 한석봉은 금방이라도 입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독설을 집어 삼키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이런 점만 빼면 취
미도 맞는 좋은 친구에, 짝사랑하는 여자와 우선 같은 직장인 녀석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제쳐두고라도, 막말을 했다고 전하기라도 했다가는 이미지가 어떻게 구겨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흠흠, 그러면 우선 평소의 장점부터 시작하지.”
완전히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는 자세였다. 손에 쥔 게임기마저 내려놓고, 일하러 나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빼는 일도 없는 이어폰마저 빼고 세하가 입을 열었다. 완전히 망조.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의리 없는 놈으로 찍힌 끝에 그 직장 동료 여성에게까지 차여서 독거노인이 되는 엔딩이 확정이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자, 먼저 첫 째.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하다.”
“…그, 그렇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확실히 공감은 할 수 있겠지만, 석봉은 말을 만든 사람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즐길 수 있는 걸 피하려고 하겠냐. 당신은 뭐 자기암시라도 됩니까.
슬슬 귀를 닫고 몸에서 힘을 뺀 채 청취하는 척이나 할까—라고 생각했던 석봉의 눈에 섬광이 달렸다. 다크서클로 파묻힌 눈에 빛이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라고 하면 당연히 하나. 마음 속 그녀를 봤을 때.
그 본인인 이슬비가 서유리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자, 둘째! 듣고 있냐?”
“에, 어? 아아.”
미안합니다. 뭐라 근거를 이야기한 것 같지만 모든 감각은 마이 러블리 엔젤 슬비에게 폴 인 러브. 같은 의미 모를 말을 속으로 지껄이면서 석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수긍. 앞에 있는 남자 인간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오오, 가까이 오신다. 라고 생각하며 유례없을 수준의 집중력으로 발소리를 듣는 석봉이었지만 표정이 굳고 말았다. 발소리가, 멈췄다.
빛보다 빠르게 눈을 돌려서 확인한 슬비는 멈춰 있었다. 아무래도 앞의 남자 인간과 석봉이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라도 생각했는지 적당히 뒤에서 거리를 둔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 예쁘다.
“어쨌든 둘째라고, 둘째! 한 손에 전부 잡힐 크기라, 잡기 좋다!”
아니, 너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귀 아프다고. 너의 그 썩을 목소리가 우리의 슬비님께 들리지 않겠냐. 귀가 썩는다고.
평소의 감정에 반감이라도 더해졌는지 슬슬 숭배에 가까운 생각을 시작한 석봉이었지만 그런 낌새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더러워진 눈매도 가려주는 다크서클이 이때만큼은 고마웠다.
“생각해봐. 커봤자 한 손에 안 들어온다고. 그러면 그 뭐냐, 손에 넣고 하는 쾌감이 덜하지 않냐?”
“그런가?”
난 별로. 라는 의미의 그런가, 였지만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네놈은 얼마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거냐. 비언어적 표현은 전혀 인식을 못하는 거냐. 석봉의 안에서 세하의 입지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은 친구였건만, 그런 이미지는 이미 사라진 채였다.
“그럼 셋째! 뛰거나 해도 아프지 않다!”
“아, 그러니까 주머니에 넣었을 때 이야기?”
귀찮음이 극에 달한 나머지 낮게 깔려서 잘 들리지도 않는 크기의 목소리였지만 세하는 용케도 들었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큰 게임기는 주머니에 넣으면 허벅지가 심하게 아프기는 하다.
“뭐, 그렇기는 하지.”
“좋아. 너도 이제 슬슬 이해를 하는구만.”
아니. 아니거든.
석봉이 외치는 마음의 소리는 닿지 않고.
“넷째! 일반적으로 작은 편이 예쁘지!”
“어, 확실히 크면 둔해보이기는 하지만….”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디자인인 엣지나 플랫디자인의 경우는 크면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큰 디자인은 뭘 해도 둔하고 여백이 많아 보이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생각해 봐. 내가 크기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외형도 중요하잖아. 안 그래?”
“기왕이면 그런 게 좋기는 하지.”
“암, 암.”
뭘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거야. 그 팔짱은 왜 끼고 잘난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데. 동작 하나하나가 석봉에게는 어째서인지 전부 거슬렸다. 그리고 그는 곧 깨달았다. 뒤에 여신이 있기 때문에 앞의 오징어가 거슬린다는 사실을.
“다, 다섯 번째.”
“또 있어?”
“이, 이게 마지막이다.”
소재가 떨어졌구만,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쉰 채 석봉은 듣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에 때려치우기는 좀 아까웠기도 했고, 뒤에서 그녀가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크면 말이지. 큰 거는 그렇잖아. 종종 외형이 변형되잖아.”
“아—. 그런 점도 있네.”
큰 게임기는, 일반적으로도 메탈이나 플라스틱 제품은 크기가 크면 잘 휘기도 하고 부품이 습기로 변형이 일어나기도 한다. 석봉도 전에 ◯SP를 잘못 보관했다가 액정이 휘어서 오열한 기억이 있었다. 안에 있는 메모리도 프레임과 함께 휘어서 쓸모가 없어졌고.
지난 일인데도 슬쩍 눈물이 나오는 일이었다.
살짝 맺힌 눈물을 닦고, 적당히 수긍을 해준 뒤 도망가기 위해 석봉이 고개를 들었다.
“힉.”
사악, 이라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기세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그와 그 앞에서 돌처럼 굳은 세하의 모습. 그 원인은 세하와 강제로 어깨동무라는 이름의 관절기를 거는 유리와 평소의 무표정에 홍조와 미소가 묘하게 첨가된 채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슬비였다. 후자의 경우는, 미묘한 표정과 분위기가 평소와 달라서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었다.
“자아—, 이세하. 말해보실까.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는가?”
“맞아. 나도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싫어도 궁금해지니까.”
석봉은 슬비의 목소리가 묘하게 부드러운 점이 신경쓰였고, 세하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고 있는 점이 부러웠다. 무서웠지만 부러웠다. 어쨌든 부러웠다. 그 옆에 있는 유리야 뭐 뭘 하든가 말든가.
“우리는 그냥 궁금할 뿐이니까. 정직하게 말해도 돼.”
“맞아.”
“아니, 그냥 남자끼리의 대화거든!”
그 순간, 무서울 정도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버둥거리는 이세하는 버려두고 도망가기 위해 석봉은 발을 돌렸다.
“잠깐, 어딜 도망가?”
어차피 역사라는 넓은 공간. 당연히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서유리의 강한 악력이 어깨를 붙잡지만 않았더라면.
“아, 잠깐 물건 정리하러….”
“좋아. 알았어. 나중에 해.”
“맞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지?”
평소라면 네, 물론입니다! 하고 엎드려 절할 슬비의 만류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논외였다. 여기에 있다가는 죽는다. 뭘 잘못한지도 모른 채 생명을 뜯긴다. 그런 예감만이 머릿속을 폭풍우마냥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좀 급해서….”
“호, 역시 ‘작은 쪽’이 좋으니까 큰 사람 이야기는 듣기 싫다는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
“모른 척해도 소용 없어. 다 들렸다니까.”
아니 진짜 영문을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외치고 싶은 남성 2인조였지만,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 자체에는 동감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큰 소리로 떠드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어.”
“게임이 그렇게 싫냐!”
“잡아떼도 다 들었어.”
“그러니까 대체 뭘 들었다는 건데!”
여자 둘의 손에서 묘한 빛이 나는 게 위상력을 쓰는 것 같았지만 세하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의미없는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굉장히 안쓰러운 광경이었지만 당사자가 아닌 유일한 사람, 한석봉은 그 나름대로 어깨의 격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헤헤, 커서 미안—.”
“이, 이세하 네 취향이 그렇다는 건 잘 알겠지만 크게 이야기하는 건 파렴치해.”
두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세하가 밟히고, 어깨의 고통과 긴장으로 굳어버린 채 움직이지 못하던 석봉에게도 손이 뻗쳤다.
“민간인한테 위상력을 쓰는 건 좀 아니지?”
“그렇다고 생각해.”
죽지는 않겠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주마등처럼 여러 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작으면 한 손에 잡힐 크기라 좋고, 뛰거나 해도 아프지 않고, 작은 편이 예쁘고, 크면 모양이 잘 변하면서, 남자의 대화.
서유리는 커서 미안합니다.
석봉은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정답을 찾았다.
***
석봉과 세하가 정신을 차린 것은 쓰러지고 대략 3시간 뒤.
일어나고 나서 어떻게든 해명을 해내기는 했으나, 세하는 뭐로 오해를 한 것인지 캐묻다가 결국 다시 같은 이유로 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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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설정 잡는 중에 머리랑 손 푸느라 찌끄린 잡글... 내가 뭘 쓴 거지.
밤에 쓴 잡글은 절대 백스페이스를 누르지 않는다는 신조에 따라 쓴 물건이라 이상. 완전 이상. 애들 말투도 성격도 나는 모르겠다. 에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