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늑대개 캐릭터 단편 : 환생 (上)
윈스텀 2015-07-30 0
찐득한 피냄새가 비릿하게 흘러나왔다.
민현은 자신의 몸 주변에 흐르는 검은 사철(沙鐵)들을 보고 경악했다. 진짜? 진짜로 내가 벌인 일이란 말인가? 자시에게 되물어보아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피는, 다름아닌 자신의 부모님의 것이었으니까. 어머니는 소파에 모로 누워 쓰러져 있었고, 아버지는 책상에 앉은 채로 등 뒤에 얇은 사철 자국을 남긴 채 앉아 있었다. 거실에 놓인 고딕풍의 괘종시계가 시간을 알렸다.
댕-댕-댕.
벌써 열두시다.
“오.....빠?”
두 눈을 부릅뜨고 치켜본 시선의 끝에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 마치 딸 같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부모님을 보고 경악했다.
“꺄아아아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낭패다. 보면 안 될 것들을 보고 말았다. 이어서 남동생도 거실로 나왔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십여분 쯤 지났을까, 멍한 눈으로 동생이 민현에게 물었다.
“이거, 형이 그런거야? 왜.....? 형이 왜? 형이 왜 부모님을......!”
이어지는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민현은 그대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주머니엔 가진 돈 한 푼 없었지만 그는 거리로 달리고 또 달렸다. 여동생의 까무러칠듯한 비명은 덤이었다. 거리를 한달음에 내달려왔을 때 패트롤 카의 사이렌소리가 명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게 무엇이든 간에, 지금은 살아남는게 먼저였다. 매캐한 사철 냄새가 자욱하게 민현의 뒤를 스물스물 따라오고 있었다.
**
“수고 많았어요. 이걸로 구로역 인근의 차원종은 모두 처리가 되었어요. 다음 임무를 하달하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아요, 그럼.”
홍시영은 보고를 하는 내내 시종일관 깐깐한 태도를 유지했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이 이렇게 말한 건 아니다. 코흘리개에서 겨우 벗어난 애송이들이, 차원력인지 위상력인지 하는 힘만 믿고 나댔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조금은 ‘어른’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홍시영은 늘 하던대로 초커의 폭발 장치를 이러저리 만지작거리며 희미한 조소를 머금었다.
“어이, 아줌마! 이제 이거 풀어줄 때도 됐잖아? 구로역에 쓰레기들까지 소탕했으면 말이야.”
“나,나타 님! 감시관님한테 무례해요!”
“시끄러, 레비아. 애초에 네가 너무 착한거라고는 생각 안해? 이딴 놈들을 위해서 왜 우리가 개고생을 해야 하냐고, 생각해 봐!”
“그, 그건 그렇지만.......”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클로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나타의 모습을 홍시영은 잠시동안 쳐다보았다. 이러니까 내가 이 일을 못 그만두는거야, 애송이들.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타와 레비아.
벌처스의 처리부대, 통칭 ‘늑대개’의 팀원들이다.
대외적으로는 ‘검은양’팀의 보좌를 맡고 그들이 처리하지 못한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떠맡는 팀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벌쳐스 내부에서 위상력 강화를 위해 조심스레 연구하는 팀이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인간형 차원종’을 팀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고. 시영은 브리핑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겨보면서, 그래도 고지식하고 딱 막힌 유니온보다는 개방적인 벌쳐스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홍시영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면서 나타와 레비아에게 말을 건넸다.
“시간도 남았으니 휴식을 취하라는 말, 못 들으셨나요?”
나타가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일정거리 이상 벗어나면 폭발시킬거면서 말은 많아. 얼른 임무나 내놔.”
“레,레비아는 괜찮아요.”
“정말 자유를 줘도 쓰질 못하는 분들이로군요, 호호호. 알겠어요. 그럼 바로 다음 임무를....”
띠리리링!
경쾌한 멜로디가 홍시영의 휴대폰에서 울렸다. 벌처스 대원의 전화였다. 홍시영은 전화를 받는 내내 네? 라던가, 그럴수가 있나요?, 너무 심한 거 아녜요? 같은 의미심장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냈다. 길게 이어진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누른 홍시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또 일이 생겼네요.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재밌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또 뭐야?”
“차차 말해드리죠. 후후후.”
**
“여기부터는 제 1급 보안구역입니다. 차용하고 계신 출입증을 여기에 스캔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그리 하지.”
트레이너는 목에 걸고 있던 벌쳐스 전용 출입증을 대원에게 맡기면서 흘깃 그를 훔쳐보았다. 위상관통탄이 12발로 들어있는, 거기에 연사용으로까지 설계된 MK-9A1 모델이다. A급 차원종 대적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이렇게 실전용으로 배치한걸 본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라는 얘긴데......이거 골치아프게 됐군.’
“다 됐습니다. 원래는 안되는 건데, 트레이너님이라 특별히 면회 제한 시간은 없게 해드렸습니다. 단, 안전을 위해 위상관통탄으로 무장한 대원 2명이 트레이너님을 호위할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상관 없소.”
트레이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보안구역 A 섹터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철골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 고대의 미로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트레이너는 몹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참기로 했다. 대원의 안내에 따라 B 섹터로 들어가자, 이내 통유리로 제작된 방이 하나 나왔다. 수감자용 면회실처럼 여러개의 구멍이 뚫린 곳 사이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핏기하나 없는 얼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자망하고 있는 모습. 트레이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만나서 반갑다, 김민현. 아니, 신서울 최악의 연쇄살인마라고 해야하나?”
“.........”
창 너머의 김민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트레이너는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김민현의 표정에 개의치 않으며 말을 계속했다.
“십대떄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거리로 나와 위상력을 개방해 무차별적으로 시민 14명을 살해, 이후 7년간 도망자 신세가 되다 다시 신서울 복구 현장에 나와 4명을 연속살해.....이거 참 대단한 녀석이군, 네놈도.”
“.......당신은 뭐요?”
“내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김민현. 네가 누군지가 중요하지. 어쨌든 가공할 만한 살인 경력으로 신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자수.......게다가 자수할 때 위상력도 모두 억압한 상태로 거의 ‘투항’에 가까웠다지. 그리고 지금 이 제 1급 보안구역에 수감 중. 여러모로 참 재밌는 녀석일세.”
트레이너는 그렇게 말하며 노려보는 김민현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예상대로다. 이 녀석은 일말의 감정이 없는 살인병기가 아니다. 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나한테 온 용무가 뭡니까? 이런 잡소리나 늘어놓으려고 온 거면 돌아가는게 나을 겁니다.”
“용무야 있지. 아주 중요한 용무. 아, 대원, 담배 한 대만 태워도 되겠나? 늘 큰일을 앞두고 나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말이야.”
대원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지포 라이터를 꺼내든 트레이너는 담배에 불을 댕겼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자, 트레이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길 나가고 싶지 않나, 김민현?”
“...........뭐라고?”
“나가고 싶지 않냔 말이다. 왜 자수를 했는지는 몰라도, 이런 곳에 오래 있다간 썩어 문드러진 시체와 다를 바가 뭐냔 말이지. 어차피 대법원 공판에서 종신징역형을 받았잖나.”
“저의가 뭐지?”
“재밌는 말을 하는군. 종신징역형인 네놈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다. 간단히 말해서.”
김민현은 눈을 번쩍 치켜들고 구속구에 감긴 팔을 들어올린채 유리창에 코를 박았다.
“자세히 말해봐, 형씨.”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나서 후- 하고 뱉은 트레이너가 이내 답했다.
“사실은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팀이 있어. 팀의 이름은 ‘늑대개’. 말 그대로 위상능력자중 질 나쁜 놈들을 모아서 만든 팀이지. 거기에 자네가 리더로 들어와줬으면 하네만.”
“리더?”
“그래. 리더. 지금 팀원은 고작 두명이야. 그것도 십대 어린애들이라고. 제딴에는 위상능력자라고 설치는 놈들이지만, 실제로 정신연령은 코흘리개만하다고. 그래서 팀에 리더가 필요하다. 그 포지션에 네가 딱 알맞아. 이해했나?”
거기까지 말을 마친 트레이너는 다리가 아팠는지 자리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이리저리 조작했다. 아마 김민현의 대답을 기다리는 투였다. 민현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남자가 하는 말이 허풍 같지는 않다. 실제로 대원들이 일개 회사인 벌쳐스 직원을 여기까지 들여보내줬고, 남자가 하는 말도 그럴싸해보였다. 더군다나, 이 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다시 여동생과 동생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오해를 풀어야.....
“대답이 늦군. 아직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나?”
“......좋아. 늑대개인지 **개인지 들어가주지. 나 같은 쓰레기도 필요하다면 말이야.”
트레이너는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 좋다고. 어이, 대원! 이자의 구속구를 풀어 줘.”
“네? 하지만!”
“자네같은 말단이 토를 달 일이 아니야. 유니온, 아니 유니온보다 높은 분들의 결정이다. 최악의 연쇄살인마 김민현이 벌쳐스 처리부대 ‘늑대개’의 리더로 들어간다. 현 시간부로 결정된 일이야.”
“........알겠습니다.”
대원은 마지못해하며 유리창 너머로 들어가 김민현에게 씌워진 차원의 구속구를 해제하고, 이어서 문을 열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김민현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트레이너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아주 바싹 말랐군. 그래서야 되겠어? 어디가서 밥이라도 먹지.......”
쉬익!
날카로운 사철이 트레이너의 왼쪽 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타격은 유효했다. 간발의 차로 왼쪽 눈은 실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치명상이었다.
“크악! 네놈......무슨 짓을......”
베일에 싸인 늑대개 단편 : 환생 (中)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