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빠진 건 ( )

제이는제2 2015-07-28 0

 

 

 

"나,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엄청 센 괴물이 기다리고 있거든."

 

"아까랑은 완전 다른 표정이네.. 괜찮은 거야?"

 

"난 죽지 않아..죽지 않을 거라고.. 죽는건 그 차원종 놈일테니 똑똑히 지켜보라고!"

 

"응, 그래야 너 답지. 갔다 오면 음식 더 만들어 놓을 테니까 꼭 돌아와. 기다릴게!"

 

 

 

 

 

-

 

 

 

 

 

“당신이 키텐을 처리할 성공확률은 높지않아요. 김기태 요원도 출동을 거부한 상황이구요. 하지만 방금 아주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뭐야, 그래서 그 방법이 뭔데? 빨리 말해!”

 

 

 

 눈앞의 여자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듯이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띠었다. 다른 인간들의 표정이라면 상관하지도, 아니 상관 쓸 필요도 없지만 이 여자는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짜증나는 존재였으니까. 이건 내 온 몸에서 외치는 본능적인 방어의 신호였다.

저 음침한 미소의 여자에게 절대 말려들어서는 안 되는데.. 아, 이 목에 채워진 개목걸이만 없었다면 저 여자의 목은 벌써 몸에서 떨어져서 내 손 안에 있었을 텐데. 그럼 저 짜증나는 입을 제일 먼저 잘라내……. 내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침묵이 흘렀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순간, 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후훗. 당신 목에 걸린 초커를 이용할거에요. 이런 하찮은 개도 쓸모가 있다니 놀랍네요. 당신 의외로 기대 이상인데요?”

 

“리모컨은 꼰대만 가지고 있을 텐데? 착각도 정도껏 하라고.”

 

“본사에 부탁했어요. 좀 더 효율적인 요원 통제를 위해서요. 이걸 최대출력으로 작동시키면 초커는 폭발할거고, 당신을 중심으로 반경 몇 미터 정도는 완전히 증발할거에요. 그럼 키텐도 조금이나마 영향은 받지않겠어요? 우리가 키텐을 처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면 김기태 요원도 협력해줄거구요. 어떤가요? 이 완벽한 계획이?”

   

“이 망할 여자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그런 작전에 순순히 따를거같아? 이 나타님이!”

 

“하찮은 개 주제에 어딜 작전에 간섭하려는 거죠? 아무리 개라도 목숨은 부지하고 싶다 그런 자존심인가요? 아하하하! 하.. 버릇없네요.”

 

 

 

 찰랑,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내 보인 물건은 리모콘이였다. 그 여자, 처음부터 나를 이용해서 키텐을 처리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는 건가. 초커가 서서히 목을 조여 왔다. 이건 꼰대에게 몇 번이나 당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큭! 크아아아악! 그..그만해! 망할.. 윽!”

 

 

 

 그 여자의 그림자가 나를 집어삼켰다. 목소리를 내려고해도 그 말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다시 꾸역꾸역 목구멍을 비집고 들어와 삼킬 수밖에 없어 목이 탄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눈에선 의미 없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굳이 올려다** 않아도, 그 여자는 날 보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발밑에 엎드려 그저 살려달라는 본능밖에 남지 않은 인간의 몸부림을 즐기는 게 뻔하다. 그 여자의 웃음소리와 눈물로 뿌옇게 변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광경 속에서 난 처절하게 목숨을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큭.. 하아.."

 

“정신이 드나보죠? 역시 개는 주인 아래서 기고 있는 게 보기 좋다니까요? 자, 바로 출동해주세요.”

 

 

 

 목을 만져보니 초커의 열이 아직 남아있었다. 초커가 목에 걸린 후로 목 부분의 상처는 언제나 나을 기미가 없다. 따갑고, 쓰라리다. 언제나 남아있는 상처들은 전의 고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작동할 때마다 조여드는 감각에 살은 처참하게 짓눌리고, 뿜어내는 열기 덕분에 살은 붉어졌다.  

특경대 대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길목 곳곳에 서있고, 나를 보자 서로 수군거리기 바빴다. **, 망할 클로저들은 그렇게 어서오십쇼하고 기더니 나 같은 건 취급도 안해준다는건가.

 

 해질녘의 햇빛은 아직 눈부셨다. 낮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 내 그림자는 땅에 길게 늘어졌다. 몇 시간 뒤면 해가 완전히 지고, 내 목숨도 곧 끝나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작전 구역 입구에 도착하고서야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었다. 그 여자 앞에서 당당한 척을 다 해놓고서는 뒤돌아서서는 몸을 떨고 있었다니 한심했지.

 

 

 

 

 

 

  -

 

 

 

 

 

“하아..드디어 죽은 건가. **, 피가 다 튀었잖아.”

 

 

그 은발 여자가 아쉬워 할 얼굴을 상상해보니 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네. 아 짜증나, 짜증난다고! 언제 내 목을 날려버릴지 고민하고 있었겠지 그 여자? 하지만 다 소용없을걸. 왜냐면, 지금 이 나타님이 차원종 놈의 숨통을 끊어 내버렸거든. 아주 처참하게,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조각을 내버렸으니까.

저 괴물에게 마지막 칼질을 끝으로 쏟아지는 피 한 방울까지 내 눈으로 다 확인했다고. 이제서야 숨이 차오른다. 역시 끝까지 살아남는 건 바로 나라고, 이 나타님이라고. A급이니 뭐니 헛소리하는 유니온 소속 클로저놈도 한 방 먹여준 셈이군. 돌아가면 내가 이렇게 강하다는 걸 똑똑히 증명해보이겠어. 내가 언제까지 그 윗***들한테서 놀아날거같아? 전부 나를 우습게 봤다간 목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맞다, 그 포장마차 여자도 내가 살아돌아왔다는걸 알면 깜짝 놀라겠지. 쳇, 그 여자 이렇게 차원종이 날뛰는데도 장사질이나 하고 앉았다니 민간인주제에 너무 무방비하다고.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거야? 약해빠져선 마음에 안 든다니까. 괴물도 처리했겠다, 배도 고프고.. 가서 어묵인지 그거 말고도 다른 거도 달라고 해볼까.

 

 

 

 

 

 

오히려 약해빠진건 나였다. 낮은 가능성이라도 희망을 걸었던, 기대를 했었던 그 때의 나였다.

눈 앞에 주어진 적만 처리하면, 어떻게든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나에겐 크나큰 사치였다. 

 

 

 

 

 

 

“헉헉.. 너! 봤어? 이 나타님이 그 괴물을 죽이고 왔다고!”

 

“어..어서오세? 뭐야! 피범벅에.. 괜찮은 거야 너? 온 몸이 상처투성이잖아!”

 

“이까짓 상처전도는 곧 낫는다고! 그것보다 저 괴물을 상대하고 왔는데 봤지? 내가 안죽을거라고 했잖아!”

 

“미..미안한데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너 나 알아? 나는 널 처음 보는데.. 혹시 클로저야?”

 

 

 

 

fin.

 

 

 

 

약해빠진 건 바로 그 자신이었습니다.

 

 

2024-10-24 22:37: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