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to - 00화

JJ아저씨 2015-07-27 0

사방이 미로처럼 얽힌 골목. 자주빛으로 물든 하늘에, 그림자로 끈적이는 길은 기분나쁜 위상력을 흩뿌려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겼다. 실제로도 인간, 클로저, 차원종에 상관없이 피와 내장이 벽과 아스 팔트에 처발라져 있었으니, 이곳 언더 그라운드의 주민들은 곧 이곳을 [식귀(食鬼)의 테이블]이라 부른다.

무시무시한 이름따위 상관없이 언더 그라운드의 골목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이가 있었다. 그야말로 기분나쁜 위상력이 흐르는 테이블에 딱 알맞게 올려진 음식처럼 맛있는 위상력을 흘리는 자였다.

"로니. 타깃이 토토영감의 문 앞을 방금 막 지나갔어."

무덤덤하게 내뱉은 앳된 목소리는 거미줄처럼 널게 퍼진 전깃줄을 매단 전신주의 위에서부터 들렸다. 곧 위상력에 흐려진 하늘에서 은은한 청색의 달이 떠오르니, 미약한 그림자가 바람에 펄럭이는 로브의 움직임을 비추었다.

[여기는 로니. 타깃을 포착했어. 포획 개시. 백업을 부탁해!]

무전이 잠잠해지자 펄럭이던 로브의 실루엣이 돌연 악마의 날개처럼 넓게 퍼졌다.

"포획 개시."

악마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먹잇감에 날아들었다.

*

"힉! 힉!"

어쩐지 재수가 없더라니! 속으로 연신 욕짓거리를 내뱉은 건달- 영배가 골목의 그림자에 숨어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엿먹을 일인가! 아침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밥 한술 밀어넣지 못하고 쫓기는 행세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선배랍시고 이딴 걸 맡긴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이야!

가엾게도 부들부들 떠는 거친 손 안에는 보자기를 씌운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언뜻 비치는 실루엣은 구의 형태를 취하기도했고, 혹은 큐브의 모양을 띄기도 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수시로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나가고 있었다. 대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안긴 장본인은 말했다.

"그것을 지키고 있어라. 그걸 하룻동안 지켜낸다면 너의 가입을 큰형님께 부탁해보겠다."

유니온도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는 조직의 2인자의 약속이었다. 믿을만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믿지않을 수도 없었다. 영배 자신은 그저 알량한 위상력으로 한량 짓이나 하는 건달이었고, 그는 거대 조직의 2인자였으니까. 분명 자신을 조직에 넣어준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단지 영배-자신이 살아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예상과 다를 뿐.

"빌어먹.. 빌어먹을..."

모두 이딴 것에 홀려 나를 죽이려하다니.. 영배는 넘치던 자신감만큼이나 넘쳐나는 공포로 절어있었다. 공복에 찬 위는 이제 뒤틀려 아플 정도였고, 아침나절부터 쫓기던 다리는 근육이 파였했는지 어쨌는지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생각했었다. 거대 조직의 일원이 되어 한량 짓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좋았지만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였다. 그 어느 보상도 목숨값보다는 못하리라. 하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야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라잖아?'

'이것'을 건네주든 말든 자신은 죽게 되어 있다. 그런 '게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것'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영배의 목숨따위는 '죽여두면 이것의 행방을 남이 모르게 되는 정도'였다. 너무했다... 너무하다.

"나..도 위상능력자..인데."

"'그것'을 들고서는 위상능력자니 하는 건 통하지 않지. 애초에 식귀의 테이블에 올라온 이상 인간이든 차원종이든 무슨 상관이야? 여기서의 목숨값은 다 거기서 거기야."

"힉!"

비명이 울컥하고 새어나왔다. 뚜벅뚜벅 여유로이 걸어오는 청록색의 실루엣은 뒷통수를 긁으며 다가왔다.

"자, '그것'을 내놓으실까. 참고로 위상전투는 하기 싫으니까 편하게 가자고, 형씨."

아직 앳되어 보이는 몸이었지만 위험한 냄새가 풍겨옴을 영배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뚜둑거리며 주먹을 그러쥐는 모습도 심상치않았다. 도망칠 수가 없다. 떨리는 다리가 더 이상은 무리라며 비명을 질러온다. 소년의 모습을 한 실루엣은 서서히 죽음과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 귀여운 꼬마야. 아쉽지만 그건 이 누나의 먹잇감이란다. 미안하지만 이 누나한테 넘겨주지 않으련?"

죽음까지 앞으로 한발자국, 그 한발자국을 남겨두고 끈적이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앙? 이 아줌마가 부끄럽게 누나가 뭐야, 누나가."

"어머어머. 그 말뽄새도 참 사랑스럽기도 하지. 의자로 만들어서 평생 깔아뭉개고 싶은 주둥이야."

"네 냄새나는 엉덩이를 핥기에는 너무나 고급스런 주둥이지."

"후훗. 더욱 더 맘에 들었어, 동생. '저것'을 손에 넣고, 너도 내 컬렉션으로 들고 가겠어."

순간 번쩍 떠오른 여자의 신체는 순식간에 소년에게 덮쳐와 금속 날붙이가 위험하게 붙어있는 채찍을 휘둘렀다. 대검을 휘두르는 듯한 갈라지는 공기의 마찰음이 오싹하게 들려온다. 벽과 바닥을 헤집는 채찍은 돌조각을 흩뿌리며 소년에게 짓쳐들었지만 소년의 위상력도 만만한 게 아니었는지 건틀릿 형 코어와 맞부딪치며 불꽃을 튀겨댔다.

"이런 **! 뭐하는 거야, 릴리! 얼른 도와줘!"

현란한 몸놀림으로 끈적한 여자의 공격을 막아가는 소년이었지만 점점 힘에 부쳐오는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날개를 편 그림자가 재빠른 속도로 여자의 간격에 들어갔다.

"로니, 너무 못싸워."

"시끄러워, 릴리! 그보다 빨리 저 할머니를 헤치우고 '저것'을 들고 튀자."

"오케이, 로니."

마찬가지로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한 로브의 인영은 자주빛의 불꽃을 뿜으며 여자에게로 날아갔다. 상황은 극에 달해 방어로만 치중하던 소년도 서서히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입술을 핥으며 색/기를 뿜어내던 여자의 인상에도 점점 짜증이 묻어나오기도 했고.. 영배는 어리둥절한 상황에서도 천천히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 이때 도망치지 않으면 분명 죽는다!'

다시금 역겹게 올라오는 공포에 영배는 경련을 멈추지 않는 다리를 두들기며 필사적으로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쳐나왔다. 다행히 그들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는지 비틀비틀 위태롭게 달리는 영배를 눈치채지 못했다.

"헉, 헉!"

몇분 뛰지도 않았는데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파온다. 비틀거리던 스탭은 꼬여서 넘어지길 수십번. 기어서 가더라도 영배는 도망을 멈추지 않았다. 영배는 누가 뭐라고 하여도 저 '죽음들'과 더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후욱! 훅! 훅!"

불빛이라곤 전혀 들지않는 계단에 도달하고서야 영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쉴 수 있었다. 아니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엉망진창이 된 채로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한가지 할 수 있다면..

"다, 담배.. 한모금만이라도 피고 싶다..."

그렇게 빈 순간 코를 찌르는 달달한 냄새에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이것은 분명 '담배냄새'다!

과연 눈 앞에서 붉은 점이 깜빡이더니 침이 꿀꺽 넘어가는 담배연기가 얼굴 가득 뿌려졌다. 영배의 눈은 공포로 얼룩졌다.

후욱하며 밝아진 붉은 점은 서서히 커다란 불꽃이 되어 피어오르고,

"헬로. 형씨. 오줌은 지리지 않았을랑가 모르겠구만."

장난기 가득한 사신(死神)의 얼굴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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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수십년 전 인간과 차원종의 차원전쟁 이후 거듭 싸움을 반복해 온 역사였지만,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세계는 격변하였다.

인간의 차원과 차원종의 차원이 융합해버리고 만 것이 그 이유에서다. 알 수 없는 상황에 서로 눈치를 살피던 인간과 차원종이었지만, 이윽고 영토싸움으로 번져 인간과 차원종의 싸움은 더더욱 진창이 되어버렸다.

인간과 차원종 차원의 융합 이후 어째서인지 위상능력자가 급강하였고, 차원종들은 차원종 나름대로 지휘체계가 잡히지 않아 서로는 격전격퇴의 나날을 보낸다. 그런 지지부진한 싸움도 어느덧 끝이 보였지만, 이미 세계에 멀쩡한 땅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인간과 차원종은 서로 큰 충돌을 일으키지 말자는 묵계(默契: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음. 또는 그렇게 하여 성립된 약속)를 나눴다.

그렇게 하여 인간과 차원종은 불안한 공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클로저스라 불리는 차원과는 별개인 페러렐 월드의 이야기이다.
2024-10-24 22:37:1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