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bgm주의) 애증

세가은 2015-07-26 0









벌쳐스에 입사한자도 얼마가 흘렀는지 모르겠다

몸이 망가진 이후론 그다지 인생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오로지 복수심과 썩어가는 몸뚱이에 지지 않기 위한 악만으로 버텨온 생애였으니까...

독가스는 그렇게 내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감정까지도 송두리째 뽑아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누구보다도 악독하게 살아왔다



"이.. 이... 빌어먹을 여자가아아아아아...!!!"


"에잇~!"


"크...크아아아악....! 이.. 이... 네년만큼은..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언젠가 반드시!!"



흥... 개 주제에....


기르는 개가 일반인에게 신분을 노출하였다길래 그 계집애의 기억을 소거했더니 저 난리를 피울줄이야

개도 인간에게 연민 같은걸 품을 줄 아는 모양이지?


난 그날 이후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대어본적도 기대게 놔둔적도 없었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을테니까...



구로역이라는곳으로 발령을 받고 넘어온 첫날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를 들이 마실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져갔고 폐가 쑤셔서 견디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개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 덤빌게 뻔하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다만

개를 보내고 난 후엔 언제나 벤치에 쓰러져 죽은듯이 누워있는것으로 간신히 하루 하루 버텨나갔다.




생리까지 겹쳐 유독 몸상태가 안좋던 날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개를 멀찌감치 보내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터에 몸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면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다.


"악... 아으으윽...! 뭐.. 뭐야 갑..자기...... 아직 안돼..! 아직 죽을수 없.... 아아아....."

속이 메스꺼워 먹은것을 전부 토해내고도 속이 진정되지 않자 더이상 나올게 없는 속에선 위액이 직접 토해져 나오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보고도 다들 토사물을 밟을까 신경만 쓸뿐 나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으니 실망은 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죽는다는게 아쉬울뿐..........



다시 눈을 떴을땐 따뜻한 온기가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난 죽고 말았구나... 아쉬운데......


"아! 정신이 드셨습니까?"


"에...?"


주변을 둘러보니 저승은 아니었고 역 내무실... 인듯 했다.


"주민분이 여성이 역사에 기절해있다고 신고해주셔서 모셔왔습니다. 몸에 큰 이상은 없고 과로로 쓰러지신거 같다고 해서 병원대신 이곳으로 모셔왔습니다"


큰 이상이 없을리가 있나... 어떤 돌팔이인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잘못 짚었구만


"아 네... 혹시 제가 기절한 사이 고등학생 정도의 파란머리 남자애가 왔다가지 않았나요?"


"아뇨 제가 발견한 후로 한 30분정도밖에 안지났고 그 사이에 그와 비슷한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불행중 다행이군... 일단 인사는 해야겠지?


"생명의 은인이신데 혹시 성함이라도 알수 있을까요?"


"아하하 아닙니다! 특경대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가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아.. 저.. 저기...."


뒤돌아가는 그를 붙잡아서 난 무슨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그 후로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가슴 한켠이 뻥 뚫린듯 한켠이 아리기 시작해왔다

결국 내장이 썩어문드려져서 죽은 살덩어리로 변해가는건가....


 

개가 임무를 나가면 매일 구로역 기둥뒤에 숨어 그를 훔쳐보는 일이 잦아졌다.

왜 그날의 일이 자꾸만 떠오르는걸까

내게 남아있는 감정따윈 없을텐데..

 

가슴 졸이며 뛰는 가슴과 금방이라도 뛰쳐나갈것 같은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지난날 내 몸상태를 알아채자 도망간 남성들을 생각하며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감정을 사그라뜨렸다.



그렇게 평화로이 지내던 나날이 끝나고 그렇게 찾아 해메던 헤카톤케일의 파츠들을 칼바크턱스란 미치광이가 숨겨두었단 소식을 전해들었다.

내가 당한것을 그대로 갚아줄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 기회가 되어줄 이 병기

그것으로 내 최후도 장식이 되겠지


그 장렬한 죽음을 위한 계획이 차례차례 진행되어 가고, 

이윽고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칼바크의 연구소 문을 열자 재앙이 쏟아졌다며 민란이 일어난것이다.

뒤에서 저 능글맞은 전직클로저놈이 부추겼겠지... 빌어먹을 자식...


**개나 트레이너는 민간인을 공격하는건 따를수 없다며 강렬하게 저항해왔고, 나에겐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타! 저기 서있는 특경대에게 가서 민란을 진압해달라고 해야겠어요! 앞장 서시죠"

한걸음 한걸음.. 그에게 다가갈수록 가슴은 터져나갈것 같았고, 심장이 뛸때마다 격통이 몸을 엄습해왔지만 낌새를 눈치채게 해선 안된다...


"특경대 채민우 경감님이시죠? 용건만 간단히 말하죠. 저기 있는 폭도들을 제압해주세요"


"초면에 대뜸 찾아와 무슨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특경대는 민중을 지키기위해 존재하는것이지 공격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그는 내 얼굴따윈 기억도 나지 않는듯 무척이나 성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상관은 없다... 지금은 내 목적이 더 중요하니까....

지금은.... 지금은........


"호오 그러신가요..? 듣자하니 경감님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해서 우리 벌쳐스사의 의학품이 없으면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신 제 뒷조사까지 하신겁니까?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군요!"


"거절하시는걸로 알아들어도 될까요?"


"큭......... 아.. 알겠습니다..... 저들을 진정시키겠습니다...."


오는 내내 휑한 부분이 찢어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참 가슴을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어가며 참으려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진통제 약효가 떨어진것도 아닌데...

금방이라도 가슴이 찢겨져나갈것 같은 고통이 전신에 메아리 쳤다.


"헤에 뭐야 아줌마 꼰대보다 더 악질인데 그래?"

**개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며 빈정거렸고,


"에잇!"


"크으윽..! 가..갑자기 뭐야!"


"개 주제에 누구 맘대로 떠들라고 했죠? 당신 목소리만 들으면 스트레스로 위가 쓰려 죽겠으니 당장 나가서 칼바크의 연구소 주변이나 청소하고 와요!"




개가 투덜거리며 사냥을 떠나는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걸 확인한 후 발길을 돌려 다시 채민우 경감을 찾아갔다.


"뭡니까.. 아직도 나에게 요구할것이 남았소? 더이상 나에게 뭘...."


"고맙습니다........"


적잖게 당황한듯 했다. 허나 예상대로 그는 되려 불 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뭐하자는겁니까 지금? 사람가지고 노는것도 정도껏.."


"얼마전 구로역에 쓰러져있던 여인을 기억하시나요...?"


"구로역... 쓰러진여인...? 그런일은 워낙 비일비재 해서 잘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대뜸 무슨소리신지?"


"제 몸은 불의의 사고로 망가질대로 망가져 그날 당신이 절 내무실에 뉘여주시지 않았다면 죽었을몸이에요..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하고 몹쓸 부탁까지 시키고 말았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말을 끝내기 무섭게 뭔가 말하려는 그에게 달려들어 말하지 못하도록 내 입술을 마주 포갰다. 

감상도 잠시 눈에 얼이 빠진 그의 모습이 비치자 이성이 돌아오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 저.. 그... 그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라곤 하나 뿐이었다...





기억소거





"잠시 이것 좀 바라봐 주시겠나요...?"


볼이 빨개진채로 순순히 내 말대로 기억소거 장치를 바라보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로 했다


"당신이 그때 절 구해주었다면... 이어질수도 있었을까요...?"


"그게 무슨..?"





-펑!





가사상태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며 멍 해진 사이 얼굴에서 뭔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게도 눈물이 남아있었구나.... 매말라버린줄 알았건만 후훗....


약 3주치 기억을 날려버렸으니 그는 이제 정말로 날 구해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인연이니까...


다만.....



"정신이 좀 드시나요?"

옅은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는 내게 머리가 띵한듯 채민우 경감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 네 괜찮습니다... 머리가 좀 멍하긴 하지만..."


"그럼 다행이군요..! 전 벌처스의 홍시영 감시관이라고 합니다. 채민우 경감님 맞으시죠? 

갑작스레 죄송하지만 지금 민란이 일어나서 골치가 아픈데 우리쪽엔 여유 인력이 없거든요? 특경대측에서 진압을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초면에 대뜸 찾아와 무슨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특경대는 민중을 지키기위해 존재하는것이지 공격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호오 그러신가요..? 듣자하니 경감님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해서 우리 벌쳐스사의 의학품이 없으면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신 제 뒷조사까지 하신겁니까?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군요!"


"거절하시는걸로 알아들어도 될까요?"


"큭......... 아.. 알겠습니다..... 저들을 진정시키겠습니다...."



분을 삭히지 못해 부들부들 떨며 대원들에게로 가는 그를 쓸쓸히 쳐다보며 서있었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한참이나 눈을 뗄지 못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구로역이 주홍빛 노을로 물들어 갈때까지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영영 흐르지 않을것 같던 시간이 흘러 임무를 마친 **개가 멀찌감치 보일때 쯤 간신히 이 한마디를 남길수 있었다




"미안해요......."

2024-10-24 22:37: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