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클로저 요원 김기태의 상실

흰제비꽃 2015-07-22 11

  “앞으로 몇 달 이내에 위상력을 모두 상실하실 겁니다.”


  “……네?”


  이른 오후였다. 말간 빛이 안개처럼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건너편에 앉은 사내가 보였다. 무심한 얼굴로 진료표를 넘기고 있는 사내였다. 안경을 쓴 그의 어깨에는 새하얀 가운이 걸쳐져 있었다. 책상 위에 얹어진 검은 명패가 보였다. 비스듬히 내려오는 빛 때문에 이름은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보이는 글자라고는 그를 표현할 다른 말, ‘전문의’이라는 자그마한 단어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걸까, 방금 전에 들었던 그 말. 나는 되묻는 수밖엔 없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


  “인정하기 힘드시겠지만, ‘위상력 상실증’입니다. 처음에는 진행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어느 순간 위상력이 소멸해버립니다. 앞으로는 임무 수행은 최대한 자제해주세요. 위상력이 갑자기 사라지면 여러모로 위험합니다.”


  내 간단한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지나치게 길었다. 증상의 이름부터 경과 속도, 주의사항까지. 입을 어물거렸다. 들은 말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남은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상실’, 이라. 잃는다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득 욱, 하고 무언가가 올라오는 게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전문의가 말했다.


  “인정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클로저 요원 중에서도 A급이라고 하셨죠?”


  ‘클로저(Closer)’, 차원종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는 자. 그 말이 짊어진 책임감에 나는 멈칫했다. 눈앞에 있는 사내도 결국 민간인이 아닌가. 그는 내 화풀이 대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내 분노를 순식간에 잠재웠다.
  그러든 말든,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 정도 위치라면 여러모로 정리할 게 많죠. 단 몇 개월, 은퇴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은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못난 수습요원, 내 상관,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수많은 사람들. 내 앞에 앉은 남자에 그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혼란스러웠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잔인하면서도 상냥한 조언이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 입은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다. 전문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선을 내리니, 내 목에 걸린 명패가 보였다. ‘김기태’, A급 클로저 요원 김기태.


  너는 아무렇지도 않니, 나는 명패 속 자그마한 내 사진에 물어보았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



  그 후 며칠 동안은 악몽을 꾸었다. 밤이었다. 진득한 어둠이 날 붙잡고 늘어졌다. 바닥을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 옆을 바라보면 말라붙은 팔뚝이 보였다. 고목의 가지처럼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팔뚝을 타고 올라가면 내가 보였다. 그래, 나였다.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깨어났다.
  후우, 후우, 하고 숨을 골랐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데이비드 국장님]


  띡, 하고 스마트폰의 액정에 빛이 들어오며 떠오른 글자였다. 내 상관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나는 몸을 떨어대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통화 버튼을 밀어 넣었다. 이내 화면이 달라졌다. ‘데이비드 리’라는 글자가 상단에 떠올랐다.
  0:00, 그리고 0:01.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군, 김기태 요원. 요즘 잘 지내고 있나?]


  “……부하 직원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가지시는 편이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군, 사실 나도 무슨 일이 있어 연락했네.]


  그 목소리는 한없이 진중했다. 일처리가 분명한 그 점은 좋아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거 참, 새벽에 듣는 이야기치곤 조금 무거운 주제 같습니다만.”


  [그렇군, 저녁에 시간 되나? 술이나 한 잔 하지.]


  “아, 물론 국장님이 내셔야 하겠지만.”


  [하하, 이제 자네 봉급이 더 높지 않나? 아무튼, 그러도록 하지. 상관의 자존심도 있는 법이니. 그럼 밤에 보세.]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액정에 떠오른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5시 30분.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작전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는 시간도 이르고 늦음이 없었다. 몸을 일으켜서 나갈 채비를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올려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데이비드 리’, 나는 그 이름을 보고 생각했다. 이 이름을 알게 된 지는 얼마나 됐지. 아무래도 좋을까, 나는 스마트폰의 주소록을 열었다. 내 모자란 수습요원에게 오늘의 일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넘어갔다. 그리고 틱, 하고 통화가 시작됐다.



*



  [구조를 포기하도록.]


  “……아직 많은 민간인들이 남아있습니다.”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온갖 소음들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명확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시간의 광장’, 내가 선 지옥의 이름은 그랬다. 얼마 전까지는 지옥이 아니었을 테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차원종들은 흥분해서 날뛰었다. 피투성이였다.


  [다른 곳에도 민간인들이 많이 남아있네.]


  “그렇다고 민간인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명령일세, 김기태 요원. 그대로 따르게.]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김기태 요원!]


  빌어먹을, 나는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결국 끊진 못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민간인들을 버리고 갈 이유가 어디에도 없…….”


  [……반대편에 국회의원 가족이 있다고 하네.]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어졌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어들이 부유했다.


  [한심한가, 김기태 요원.]


  아, 하고 잠깐 입을 열었다. 메마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말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따르게.]


  나는 서서히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지옥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달렸고, 죽었고, 딸이 울었다.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클로저 요원인데, 내가 바로 저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
  무전기를 끊기 직전, 자그맣게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최후의 명령이었다. 아니.


  [……부탁일세.]


  부탁이었다. 거절할 수 없단 사실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단지 울적했다. 처음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만 누군가의 눈치를 ** 않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 후, 나는 시체들을 눈앞에 두고 울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그녀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클로저들은 모두 똑같아!", 소녀가 울부짖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내겐 용서를 빌 자격이 없었다.
  다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내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유니온을 바꾸고 싶지 않나?”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리. 그리고 지금은 데이비드 리 국장, 이었다.



*



  “얼마 전에 차원종에게서 연락이 닿았네.”


  술잔을 기울이던 도중, 데이비드 국장이 내뱉은 말에 나는 멈칫했다. 잠시 그 말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그 말의 뜻을 짐작했을 때, 술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켁, 켁, 하고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데이비드 국장은 그 정도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지 않나, 나한테 거래를 제안하더군.”


  “거래?”


  내가 되묻자 데이비드 국장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차원종 군단장 중 하나가 유니온 상층부와 손을 잡았다나 봐. 벌처스도 연관되어 있다더군. 그 녀석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힘을 빌려달라나.”


  “……거짓말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단 말이지.”


  술집에서 나오기엔 너무 대단한 주제였다. 비록 밀실에서 마시는 술이라곤 해도, 다른 감시가 붙어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데이비드 국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모해질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어차피 데이비드 국장의 일처리는 나보다 확실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거절했네. 단번에 유니온을 갈아치울 순 있겠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유니온을 갈아치운다, 라. 나는 술잔에 술을 채우면서 생각했다.


  “일단 강남이 불타겠고, 무엇보다 내통자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하나 필요해. 그것도 높은 등급의 클로저 요원이. 그리고 그 사람은 배신자로 낙인찍히겠지, 내 사람에게 그런 역할을 시킬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입 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술이 쓰다.


  “지금 저한테 은근히 압박 넣으시는 것 같은데요.”


  “하하, 그런가? 조금 아쉬움이 남아서 말이지.”


  그러면서 데이비드 국장은 큭큭, 하고 웃었다. 농담으로 한 말 같았다. 그러나 내겐 농담이 아니었다. 술 냄새가 올라왔다. 그 뜨거운 증기가 뇌를 때리는 듯했다. 기분이 딱히 좋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애써 기분이 좋은 척했다.
  전문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라.


  “그럼, 일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나저나 최근 무슨 일이 있…….”


  “하겠습니다.”


  응? 하고 데이비드 국장이 갸웃했다.


  “뭘?”


  “내통자 역할, 제가 하겠다고요.”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데이비드 국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아니, 농담이었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내 사람에게 그런 역할을 떠밀 수 없네.”


  내 시선을 읽으면서, 그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내가 진지하단 사실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자네는 S급 클로저 요원 심사가 눈앞이잖나. 조금 까칠한 점만 제외한다면 승급은 무난할 걸세. 이제 드디어 전**가 찾아오나 싶은데, 더더욱 그럴 수는 없지.”


  “……얼마 전에 ‘위상력 상실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국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결국 다시 다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물으셨죠, 국장님.”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그는 굳어있었다. 그는 얼마간 고민하는 듯 눈을 감은 채로 침묵했다. 이내 그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술잔에 술을 채워,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지 않고선 견딜 수 없다는 듯.
  데이비드 국장의 눈빛이 선명해졌다. 그는 아직 취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렇듯이.


  “유니온을 바꾸고 싶지 않냐, 고.”


  그는 시선을 피했다. 그의 시선에서 많은 고민들이 얼룩지기 시작했다.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직감했다. 데이비드 국장은 거절할 수 없다고.


  “도와주세요, 국장님.”


  내 마지막 부탁이었으니까, 그가 나와 약속을 지킬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



*



  미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상처 입는 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로 충분했다. 내 동료와 친구를 가리지 않았다. 모두에게 오만해졌다. 그 원인은 S급 클로저 요원 심사에서 탈락한 걸 빌미로 삼았다. 그로 인해 데이비드 리 국장에 대한 적대감이 생긴 척을 했다. 내가 초조해졌다고 생각한 건지, 지부장측은 내게 접촉해왔다.
  그 이후부터는 걸리는 부분도 없이 계획이 진행됐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인연을 끊었다. 이제 내 곁에는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사라져도 슬퍼할 사람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강남에 차원종들이 나타났을 때도, 재빠른 대처로 어떻게든 민간인들을 대피시킨 후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아직 스물도 채 되지 못한 클로저들이 내게 방문해서 화를 냈다. 어째서 출격하지 않느냐고.
  그래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서도 미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알고 보면 김기태 요원님도 좋으신 분이야, 무능한 나를 수습요원으로 써주셨는걸?”


  그러나 내게도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 멀리에서 검은 양 요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못난 수습요원, 오세린. 아무리 나쁘게 대해도 도무지 내게서 정을 떼려고 하질 않았다. 조금 더 험한 말을 해야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회색 머리와 빵 모자를 쓴 소녀를 향해 걸어갔다.
  심한 말을 해야 했다, 심한 말을. 반드시 해아먄 했다. 나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아앙? 무슨 소리냐.”


  오세린의 눈이 나를 향했다. 맑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모습만을 담았다.


  “내가 널 선택한 건…….”


  울컥, 하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내 폐부에 더러운 오물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네가 무능하기 때문이야.”


  그 말을 한 다음에, 오세린이 어떤 얼굴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검은 양’ 요원들이 노발대발했던 사실만을 기억했다. 분노, 혐오, 그리고 경멸.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단지 감내했다. 비바람을 맞는 바위처럼.
  그러나 그 어떤 감정도 오세린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울먹였다.


  “무능한 녀석을 뽑아야 내 평가가 오르니까, 너를 뽑은 거라고.”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뒤돌아섰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착각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걸었다. 걷다 보니 내 숙소였다. 내 머릿속에 수많은 추억들이 파편처럼 떠돌았다. 조각난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어떤 소녀가 하나 있었다. 정신제어가 가능한 위상력을 가진 소녀였다. 차원종들의 정신을 제어하다가, 높은 등급의 차원종에게 정신제어를 시도한 모양이었다. 그 차원종은 폭주했다. 피해가 많았다. 그녀는 그 이후부터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불렀다. 무능하다고, 무능하다고.


  그리고 내가 오늘 말했다. 너는 무능해, 무능한 게 유일한 존재이유라고.


  침대에 누워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사실은,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



  “내일 데미플레인으로 떠난다지?”


  사탕을 물고 강남을 내려다 볼 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니 데이비드 국장이었다. 흐, 하고 나는 얕은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사탕을 물었다. 바람은 차가웠다. 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렇다고 느끼는 걸까.
  데이비드 국장은 내 옆에 섰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멋있는 척은…….”


  내가 피식, 하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데이비드 국장은 웃지 않았다.


  “나쁜 척보단 낫지 않겠나, 김기태 요원.”


  “이제 위상력도 잃었는데, 아직도 요원 취급해주는 겁니까?”


  데이비드 국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했다. 그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데미플레인에 들어가면, 죽어. 장담하지. 그게 자네 목표인가?”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어요.”


  내 말에 데이비드 국장은 다시 하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꺾어 난간에 기댔다.


  “다른 방법도 있을 거야.”


  “군단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습니까, 알고 있으면서.”


  그는 나를 바라** 않았다. 그의 시선이 떨어졌다. 강남의 아래, 오로지 어둠 속으로.


  “배신자에 어울리는 사람은 이제 저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탕을 입에 문 채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도망치는 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아스타로트에게 투신한다. 그 다음에는 정보를 유출시키고, 힘을 최대한 소모시킨 다음에, 아이들에게 미래를 맡긴다.
  최고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벌써 가는 건가?”


  나는 흐, 하고 웃었다. 하늘 위를 가리켰다. 대규모의 차원문, 내가 들어가야 할 곳.


  “문 닫을 시간입니다, 국장님.”


  이제 나는 쓰레기였다. 아무도 내게 애도해주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더 이상 목숨마저도 유지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위상력을 잃었고, 그 다음에는 인연을 잃었고, 이제 목숨마저 잃어야 하는 빌어먹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었다. 까닭 없는 웃음이 내 목젖을 치고 올라왔다.


  “일해야죠.”


  A급 클로저 요원 김기태. 마지막 임무 수행을 위해 출격.



*



  그리고 나는 죽었다. 내가 생각해도 시시한 인생이었다. 검은 용들이 나를 붙들고 나락으로 몰고 갔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겁먹은 척을 했다. 만약 내가 했던 일들이 들통 난다면, 곤란해지니까.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안에는 순수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아스타로트는 코웃음을 치고 있을 뿐이었지만.
  수많은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나는 침전했다. 의식의 심연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죽어도 좋을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도대체 누구일까, 그러한 외침이 들려왔다. 내 시야가 온전히 암흑으로 물들었을 무렵, 나는 드디어 미소 지었다. 내 추억들이 흩어졌다. 지금까지 죽을 것처럼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단지 강해지고 싶었다. 단지 구하고 싶었다. 단지, 마지막까지 클로저이고 싶었다.
  내 삶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바로 나, 김기태의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다. 그러므로 나의 죽음조차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해서 불평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신기했다. 내 가슴은 평온했다.
  내 주머니 속에 품어두었던 명찰이 떠올랐다. 암흑 속에서도 그 자그마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니.


  질문했다. 내 마지막 질문이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미소 지었다.


  아아, 그래.


  나는 드디어 내 삶을 완결시켰다.


  나는, 죽을 때까지도 A급 클로저 요원 김기태였다…….


  그리고 내 의식은 암전했다. 그리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날,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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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눈앞이라 부랴부랴 쓴다!

2024-10-24 22:37: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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