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bgm 주의] 제이와 유정의 경우

에오니안 2015-07-18 7




그저 수면에 잠겨가는 달을 줄곧 바라보고만 있었다.
점점 멀어져만 가는 빛을 향해 뻗은 손은 파문을 만들어 달의 파편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그래, 나는 언제나 겁쟁이일 뿐이다.
그토록 원하는 그 빛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 소망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꼭두각시가 저 빛나는 광원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일—일어—일어나시라니까요!!!”
“우왓 깜짝이야! 어 유정씨? 왠 일로 여기에… 아 저번에 준 다이어트차가 다 떨어졌나?”
“아니에요! 저번에 제출하라고 한 시.말.서! 아직도 제출 안 하셨죠!”

아차… 깜박했다. 그래도 힘들여서 용을 잡고 온 사람보고 시말서를 쓰라니… 유정씨도 참 너무하네~
뭐, 그만큼 걱정해준다는 뜻이니 나야 기쁘지만.

“아, 그래도 다이어트차는 필요할지도…”
“자 여기” 빠르게 차를 건내준다.
“아, 감사합니—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시말서요 시말서! 나 참, 무리하지 마시라고 말한 게 언제인데 또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되고…!!”

화난 말투와는 다르게 눈가가 붉다. 전투가 끝난 것이 언제인데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일까?

“미안, 유정씨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더 조심하도록 하지.”
“뭐…뭐에요! 절 위해서라니! 저는 딱히 제이씨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거든요!”

귀까지 빨개져서 소리치는 유정씨. 자신도 모르게 손부채를 펄럭이고 있다. 이 아가씨, 반응이 참 귀엽군.

“그!래!도! 제이씨가 다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테인이와 유리는 서로 질세라 울지, 슬비는 침울하지, 세하는 어쩔 줄 몰라 하고… 국장님도 캐롤도… 그리고 저도…”

그녀의 큰 두 눈에 점점 물기가 차오른다. 그렁그렁해진 눈을 숨기려는지 유정씨는 획 돌아서고 만다.

“정말 미안…”

면목이 없어져 한차례 더 고개 숙여 사과한다. 유니온에 다시 소속된 이상 내 몸은 나만이 것이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제 내가 다치면 팀원에게도 폐를 끼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그만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녀’의 아들뿐만이 아니다. 내가 다치면 누가 그 아이들을 지킬까? 아픈 것은 어른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정… 훌쩍. 정말… 잘 알아들은 거 맞죠?”

돌아선 채 말하는 유정씨. 훌쩍거리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아아, 여자나 울리다니 남자로서 부끄럽군.

“약속하지. 그러니 진정해 유정씨. 눈물은 아껴두었다 기쁠 때 흘려주라고.”

유정씨는 눈가를 두어 번 훔치고 휙 뒤돌아 나를 마주본다. 봐봐, 눈 주위가 빨갛잖아. 연하게 했던 화장도 다 번져 모처럼 예쁜 얼굴이 안타깝게 됐다고.

“누… 누가 울었다는 거에요! 정말, 제이씨는 매번 그래 놓고서는 제게 아무것도…”

부끄러운 듯 웃는 얼굴이 사랑스럽다.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유정씨의 미소다. 다른 남자가 본다면 순식간에 포로가 되었겠지.
아, 데이비드 형이 유정씨한테 집착하던 이유도 설마…?

“저기, 유정씨.”
“네에~?”

어라? 무언가 이상하다. 늘어지는 발음에 순식간에 나긋나긋해진 목소리. 새빨개졌던 아까와는 다르게 은은한 홍조가 하얀 볼 위로 떠오른다. 이것도 매력적이지만, 유정씨???

“아~ 목이 말라서 여기 있는 음료수 좀 마셨어요~ 차암… 제이씨 때문에 이렇게 목이 마르다구요~?”
“유정씨. 대체 뭘 마신 거야? 잠시 이리 줘봐.”
“싫어요! 이것도 제이씨가 만든 건가요? 맛있네요~”

꿀꺽꿀꺽 찰랑이던 붉은 액체를 반 이상 비워버린 유정씨. 참 호탕하게도 마시는구나. 그런데…

“내 건강주(酒)?!? 잠깐 유정씨!”

야단났다! 이 아가씨 저번에 재해복구 때의 일 기억 못하는 건가! 평소에는 플레인게이트에서 얻은 녹즙을 두는데… 하필 알코올이 땡겨서 꺼내놨을 때…!
흔들흔들~ 벌써부터 헤롱대는 유정씨를 보니 이대로 있다가는 유정씨의 흑역사에 새로운 한 줄이 그어질 것이 뻔하다. 서둘러 말려보자.

“유정씨! 그거 술이야! 더 이상 마시면 안돼. 어서 내게 줘!”
“뭔가요 제이씨! 제게 그런 거 말고 다른 할 말 더 있지 않나요?”
“아니 미안하다는 얘기는 아까 했잖—”
“그 이야기~~ 그 이야기 말고요! 이제 맨날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질렸다구요~~”

이 아가씨는 대체 무슨 말을 원하는 것일까? 이제 취기가 완전히 올라왔는지 하얀 피부 위에 도드라지는 홍조가 더욱 더 색채를 가해간다. 아이도 아니고 참.

“유정씨, 술버릇 고치지 않으면 결혼은커녕 남자친구도 못만들거야?”

헤실거리던 유정씨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진다. 아까 울어서 그런지 조금 부은 눈이지만 여전히 투명한 눈동자를 하고 있구나. 무심코 빠져들고 있는 나에게

“제이씨. 제이씨는 제가 정말 남자친구를 못만드는 것처럼 보여요?”
“으…응? 아니 나도 그게 궁금하긴 했지만… 그럼 왜 여태—“
“하아… 못만드는게 아니라 안만드는거에요. 제이씨랑 만난 후로도, 유니온 내부에서만 대쉬 많이 받았다고요?”

어라, 아까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똑바르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색/기가 넘치고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어딘가 가라앉은 듯, 슬픈 듯한 느낌이 난다. 잠깐, 대쉬를 많이 받았다고? 이 씁쓸한 기분은 뭐지?

“바보”

툭, 하며 유정씨가 머리를 내 가슴팍에 기댄다. 당황스러움에 입술만 뻐끔거린다. 꼴사납구나 나.

“사실 알고 있어요. 항상 제이씨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유…유정씨?”

‘그녀’이야기인가. 항상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그녀’에 대한 감정. 도연씨에게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그녀’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알라우네를 처치하고 ‘이상적인 이성’을 유추해내는 데서 나왔다는 말을 들은 것일까? 유정씨는 분명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향한 감정은 이제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 그럼 말이에요…”

울먹이는 소리. 가냘픈 어깨가 조금씩 떨린다. 항상 당당하게 작전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사라지고, 내 눈앞에는 한 명이 가련한 여인이 기대어 있었다.



“저를 더 이상 착각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와르르 하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정씨는 기어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다. 아니야. 내게 있어 ‘그녀’는 단지…!



“난 그저 동경했을 뿐이야!”

힘없이 기대어 있던 유정씨의 어깨를 잡아 떼어내며 눈을 맞춘다. 흔들거리는 눈동자. 점점 벌어지는 그녀의 큰 눈이 나를 주시한다. 무언가 기다리는 듯, 호소하는 듯한 눈길이 나를 불안하게 올려다본다.

“난 그저, ‘그녀’를 따라잡고 싶었을 뿐이야! 아무것도 없던 내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홀로 싸우던 내게 손을 내밀어준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아아 나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분명 여느 사춘기 소년들이 할 듯한 말을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다. 마음속에 굳게 걸려있던 자물쇠가 하나 둘 풀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나는 그녀를 동경하고 있었을 뿐이다. 꼬맹이 시절의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눈앞의 이 여인을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왜 나의 기분을 몰라주는지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기분이다.

“유정씨, 한 번 밖에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줘. 나는 당신을—“

문득 불안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와 내가 어울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휘젓는다. 남자라면 이제 물러서지 말자. 먹먹한 가슴을 붙잡고 힘껏 외친다.



“좋아합니다!!!”

“…!!!”

크게 떠지는 두 눈. 천천히 고이던 눈물은 이제 더 이상 숨기지도 않는지 마음껏 양 볼에 흘러내리고 있다. 아무런 말이 없는 그녀의 반응에 살짝 걱정이—

“…!”

순간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을 스친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제이씨?”

갑작스러운 일에 어느새 울음을 그친 그녀는 킥킥 하고 소악마 같은 작은 웃음 소리를 낸 뒤에

“그럼 시말서 잘 부탁해요!”

라고 하며 몸을 휙 돌려 걸어간다.



“어라 유정언니 어디 안 좋으세요? 얼굴이 새빨개—“
“아아아아!!! 슬비야!! 벌써 돌아왔구나! 자, 자 저기서 새로운 작전을 브리핑해줄 테니 어서 따라와!”
“어라? 그럼 제이 아저씨도—“
“여자! 그래! 여자끼리만 하는 작전이야! 자자, 유리를 빨리 찾아보자꾸나!”
“어, 어 언니??”

유정씨는 그렇게 슬비의 팔을 붙잡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난 그저 아직 따스한 느낌이 남아있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에오니안입니다.

오늘은 제이와 유정의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세하/유리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ㅠㅜ 스토리 라인을 짜기 위해 아직 노력중이에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작품에서 봐요!

ps. bgm은 studio tiara의 Umbrella_inst.ver 이며 상업적 용도가 아니면 자유이용 가능합니다.
http://lovetrue-emotion.net/studiotiara/instrumental
2024-10-24 22:36:4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