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15-

이케아라 2015-07-16 4

인류는 하늘을 동경해왔다.

고대시대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보고 갖가지 신화와 전설을 창작해왔고,

문명의 발달이 시작되자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비행기를 발명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늘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광활한 세계인 우주를 활보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륙해냈다.검은 양 팀의 제이는 인류의 터무니없는 발전에 내심 감탄해하면서도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 대한 원망을 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흐읍...!"

 

어딘가 위태로운 듯한 목소리로 숨을 고르고 있는 제이는 광활한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있을 때 와 비슷한 부유감, 아면을 강타하며 숨쉬는 걸 방해하는 공기와, 온몸에서 비 오듯 흐르는 비지땀까지... 평소의 어른스러운 태도대신 공포에 질린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제이는 전쟁과 실험의 후유증으로 다양한 질병과 신체적인 장애를 갖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성가신 게 바로 고소공포증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엔 그나마 부유감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버틸만했지만, 이런 식으로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며 하늘을 누비는 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 같았다.

참고로, 이곳은 미국의 허**판이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물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비행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제이를 비롯한 수백 명이 넘는 위상능력자들이 사이킥무브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우와아아아아~! 신난다~~!!!"


 

유리의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클로저 들도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유리를 비롯한 다른 클로저들은 등에 매달려있는 줄을 꽉 붙잡은 채 순수하게 풍력만을 이용해서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비행기창고에서 발견된 낙하산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위상능력자가 순수하게 위상력에만 의존해서 수km나 떨어져있는 거리를 이동했다간 도중에 위상력을 전부 소모해버려서 나중에 전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이킥무브로 최대한 높이 하늘을 도약한 다음 낙하산을 펼쳐서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5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겁니다."

 

최전방에서 비행하고 있던 C급 클로저가 제이를 비롯한 A급 클로저들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아무리 차원종을 대거 격퇴했다곤 해도 적은 수많은 차원종 소환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척후병을 세워두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클로저 중 한사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모든 클로저들에게 통신을 연결하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슬슬 착륙하도록 하죠. 혹시라도 놈들이 군수물품을 이용한 방위시스템이라도 깔아놓았다면 큰일이니까."

 

위상능력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천적은 다름 아닌 현대병기다.

차원종의 공격이라면 위상력의 내성으로 큰 피해 없이 부상을 면할 수 있겠지만, 그와 정반대되는 물리적인 공격엔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항에서 습격을 받았던 검은 양 팀의 서유리는 대장급 스케빈저의 공격을 정통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고, 세하는 A+급 차원마수인 키텐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 정도니까. 이렇게 차원종과 클로저의 위상력엔 어떻게든 내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지만, 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현대병기 앞에선 조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대에 착지를 시작했다

 

"~~~!"

 

명랑한 자세로 땅에 착지한 테인이의 목소리가 클로저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저렇게 어린애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전장을 함께 누비고 있다는 사실때문인지 클로저들의 얼굴엔 자기혐오와 같은 죄책감이 드리워져있었다. 물론 미스틸 뿐만 아니라 슬비,유리, 그리고 병실에 입원한 세하도 청소년에 불과한 애들이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보호대상의 이미지를 화신화한 듯한 어린애가 전장을 누비고 있었으니

평소에 품고 있던 죄책감이 더 짙어졌나보다.

 

"와아...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동굴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미스틸이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클로저들이 착륙한곳은 테러조직의 본거지로 예상되는 대동공의 입구였는데, 수십 미터를 가볍게 넘길 듯한 너비와, 그 안에서 작게 울려 퍼지고 있는 동굴의 메아리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선 방범시스템을 깔기가 힘들었나본지 별다른 위험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대부분의 클로저가 무사히 도착한 걸 확인한 지휘관이 소리쳤다.

 

"그럼 이제부터 각 팀별로 작전을 하달하겠습니다! 관리요원들은 지금부터 팀원들에게 작전 내용을 설명해주십시오!"

 

A급 클로저의 말에 곳곳에 퍼져있던 위상능력자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검은 양 팀의 관리요원인 김유정도 자신이 관리하는 어린 팀원들을 소집해 작전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다 모인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할게. 우리 팀은 5명중 2명이 전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적진에 침투하는 건 무리야. 그래서 이 동굴의 입구를 지키는 걸로 작전을 바꿨어. 이제부터 이곳에 있는 클로저들이 테러조직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이 동굴에 침입할 예정이니까, 우린 도망치려하는 조직원들을 여기서 붙잡아두거나, 부상을 입어 이탈한 클로저들을 보호해야 돼."

 

"쉽게 말해서 후방지원부대 같은 거군."

 

제이가 유정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하자, 그의 말에 긍정하듯 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강남에선 유니온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움직일만한 요원이 저희들밖에 없었지만, 이번엔 수백명이나 되는 클로저들과 함께하는 공동작전이기 때문에 청소년으로 구성된 검은 양 팀은 작전실행의 우선순위가 떨어지니까 별로 위험하진 안을 거 에요."

 

데이비드의 검은양 프로젝트는 위상력의 열화가 시작되기 전의 클로저들을 선별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이 성년이 아닌 청소년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인권의식이 투철한 요즘시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차원종의 출현이 빈번해져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증가하고, 민간인이 위상능력자를 괴물 취급하는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렇게 어린애들도 전선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린애들을 최전선에 투입시킨 건 유니온 상부의 인간들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클로저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직접적인 전투가 적은 지원부대에 검은 양 팀의 임무를 배정할 수 있었다.

 

"그럼 유정언니. 이 작전에서 저희들은 할일이 별로 없는 거에요?"

 

"아니, 그건 아니야. 지금 막 다른 요원들이 동굴에 진입했으니까, 그들의 전투를 모니터링하면서 적절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혹시라도 테러조직이 함정을 파 놓았을 수도 있으니까 이 근처를 더 조사해볼 필요도 있어."

 

김유정이 노트북을 꺼내 화면에 나타나있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곳엔 빠른 속도로 전환되고 있는 동굴안쪽의 모습이 촬영되고 있었다.

 

"정식요원복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한건가요?"

 

슬비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김유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맞아.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거든. 일단 슬비랑 테인이, 유리는 이곳에서 노트북을 지켜봐줘. 만약 기계에 전원이 꺼지면 저기 있는 기술팀한테 가서 이걸 맡겨주렴."

 

"? 유정언니는 제이아저씨는 뭐 하실건데요?"

 

콕 집어서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 역할을 부여한 유정에게 유리가 질문을 던졌다.

 

"나랑 제이씨는 다른 A급 클로저들이랑 같이 작전을 수정하고 검토해야 되거든. 금방 끝날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 알았어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리와 테인, 슬비를 남겨두고 유정과 제이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회의를 진행하려고 하는 클로저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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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야~! 안에 있어?"

 

유니온본부의 세하의 병실 앞에서 세린의 예의바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하고 상대방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범절이지만, 이 병실엔 세하한명밖에 입원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소리를 질러 그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것이다.

한번 문밖에서 질문을 던진 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세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혹시 또 게임하고 있는건가?'

 

세하는 평소엔 예의바른 청소년이지만, 게임을 할 때만큼은 모든 감각이 게임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뭐라 말해도 듣질 않는다. 그런 세하를 다루기 위해선 슬비처럼 게임기를 강탈해 협박하거나, 그의 어머니 서지수처럼 압도적인 살기(?)를 내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린은 위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잔잔한 전자음과 함께 깔끔한 움직임으로 열린 문안으로 들어서자, 세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병실을 둘러봤다.

 

"어라...?"

 

평소 같았으면 책이라도 읽을법한 자세로 게임을 하고 있었을 세하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디 간 거지? 몸이 아픈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좋을텐데..."

 

세린은 세하의 파트너로써 오랫동안 병실을 들락날락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하의 몸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세하를 치료하고 있던 건 유니온의 박사들이었고, 자신은 그저 그의 곁에서 간호만 도왔을 뿐이니까.

아직도 세하의 중상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 세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니엘 아저씨?"

 

"...! 세린양. 마침 여기에 계셨군요."

 

보기만 해도 듬직한 인상을 팍팍 안겨주는 거구의 중년남성이 얼굴에 맺혀있는 땀방울도 닦지 않은 채 숨을 고르며 세린에게 말을 걸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엔 작은 과일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꽤 오랫동안 달려온 듯 가볍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 괜찮으세요?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유니온 본부는 워낙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시설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다니엘 정도 되는 전문보디가드라고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까지 오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세린이 그의 모습을 보고 뭔가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을 짐작했지만, 그래도 타고난 배려정신덕분에 그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일은 잊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세하군은 어디 있죠? 이제 완전히 다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아무래도 없는 것 같군요."

 

다니엘은 밝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더니, 이내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거한이 예쁘게 장식된 퇴원축하선물을 들고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게 엽기적 이었나본지 세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저도 방금 와서 잘은 모르겠어요... 세하가 어디 갔는지 짐작되는 곳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어쩌면 잠깐 화장실에 간걸지도 모르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죠."

 

다니엘은 근처 의자에 걸터앉은 뒤 포장되어 있는 과일들을 하나하나 꺼내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세린도 그의 일을 거들면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씨. 작전에 투입된 클로저들은 지금 어떻게 됐죠?"

 

"지금 시각이면 테러조직의 소굴에 도착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중 일겁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군요."

 

어딘가 감상적인 눈빛으로 말하는 다니엘을 보고 세린의 표정이 쓸쓸하게 변했다.

제이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만약에 정말로 테러조직과 유니온이 손을 잡았다면... 작전에 투입된 클로저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짜고 치는 연극만큼 결과가 뻔한 건 없다.

유니온과 테러조직이 무엇을 꾸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이가 말한 가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검은양팀을 비롯한 수 백명의 클로저들이 유니온과 테러조직의 마음대로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한 생각으로 상념에 빠져있었을 때, 다니엘이 문득 생각이 떠오른 듯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위상능력자들이 본부에서 이탈했을 때 차원종 출현경보가 울렸다더군요."

 

"차원종이 유니온본부에 출현했었다고요?!"

 

차원종들에게 있어선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는 이곳에 차원문이 열렸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린이 경악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듯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 다행이 D급 차원종이 몇마리 소환된 것 뿐이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사건을 조사해본결과 위상력억제기를 담당하던 관리인이 실수로 억제기 전원을 꺼버렸다더군요. 자연적으로 발생한일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다니엘은 세린이 놀란 이유가 유니온본부가 위험지대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 일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지만, 세린은 그의 말을 듣고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위상력억제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전원을 껐었다고...?'

 

이젠 유니온과 테러조직의 관계에 심증과 물증까지 판명됐다.

정말로 제이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세린이 확실한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유니온본부의 최상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했다.

 

하지만.....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차원종 출현경보가 세린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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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이번에 세하의 위상력을 정주행했습니다. 설정오류가 몇가지 발견되서 이걸 수정하고 향후 이야기를 고치는등

여러모로 수고가 많이 따르더군요. 그나저나 점점 클로저스 덕력이 떨어져서 큰일입니다. 글쓰는 의욕이 저하되고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완결을 내고야 말겠습니다. (+_+)


2024-10-24 22:36:4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