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zers]-15금/시즌1완/나의 세하가 이렇게 여신일 리가 없어-(완 -상)
내앞에무릎꿇어라 2015-07-03 1
제이는 오늘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언제나 아침 운동을 위해 6시엔 기상을 했었지만 오늘은 5시에 일어났다.
“…너무 멋 부리면 우스워 보이려나?”
제이는 이것저것 옷을 갈아입어보며 고민했다.
솔직히 이 나이에 처음으로 데이트 때문에 옷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이는 무려 한 시간 넘게 고민하다 결국 세로 줄무늬의 검은 색 와이셔츠에 짙은 남색의 청바지, 붉은 색 넥타이에 마찬가지로 짙은 남색의 조끼를 걸쳤다.
소매는 걷어 올리면 단추로 고정시킬 수 있었다.
제이는 옷을 입고 언제나 끼는 노란 선글라스가 아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엔 검정 페도라를 썼다.
그러고 나니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너무 멋 부렸나?”
제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왼팔에 시계를 차고 집을 나섰다.
‘세하는 무슨 옷을 입고 올까?’
괜히 기대 되었다.
세하는 아침부터 난관에 부딪혀 있었다.
‘나한텐… 여자 옷이 없었어!’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급하게 마련한 교복과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검은 양 유니폼 정도겠다.
세하는 얼마 안 있으면 약속 시간에 늦는다는 초조함에 옷장을 뒤졌다.
하지만 옷장 안에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옷이 없었다.
고민하던 세하는 무언가 결심한 듯 옷장에서 옷을 꺼내 걸치고 집을 나섰다.
“후후후후….”
제이는 괜히 날씨가 더 좋아 보이고 세상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에 빠져 있었다.
들뜬 기분에 가벼워진 발걸음을 의식하지도 못 하고 경쾌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한 제이는 시계를 살폈다.
‘약속 시간에서 20분 전. 정확하군.’
제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섰다. 20분 정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제이는 세하가 어떤 옷을 입고 올까 기대하며 조금 ** 같은 웃음을 흘렸다.
눈을 감은 채 혼자만의 상상에서 세하의 옷차림을 망상하던 제이는 탁탁탁하는 가벼운 발소리와 귀를 간질이는 귀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아저씨~!”
“이제 오… 세하야?”
“하아…. 하아…. 하아… 네?”
제이는 세하를 보며 얼굴을 잔뜩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세하는 운동화에 얇은 후드만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드가 헐렁거려서 밑까지 가리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상의만 입고 있으니 그 길이가 굉장히 짧았다.
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세하의 상기된 목덜미와 촉촉한 입술 사이로 뱉어지는 거친 숨결,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는 가슴골에 집중했다.
그 순간 제이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 아저씨?!”
“응? 아아…. 코피구나. 하하. 별 것 아니란다.”
“별 것 아니긴 뭐가요! 얻어맞은 것도 아니면서 피가 흐르는데! 약은 먹고 왔어요? 자요.”
“응… 고맙구나. 약은 미리 먹고 왔지.”
제이는 세하의 걱정 섞인 타박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 하고 실실 웃었다. 그리고 세하가 건네는 손수건으로 코피를 슥슥 닦았다.
세하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접어 메고 온 가방에 툭 던져 넣었다.
배낭 형 가방 외에 없던 자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어깨에 걸치는 가방이었다.
화려하지도, 가죽으로 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제이는 오히려 그게 학생다운 풋풋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아저씨.”
“응?”
“일단 옷부터 사러 가요.”
“…그래. 그러자꾸나.”
제이는 세하가 후드를 아래로 살짝 당기면서 홍조가 피어오른 얼굴로 말하자 조용히 군침(?)을 꼴깍 삼키면서 대답했다.
세하는 제이와 가까이 붙어 걸으며 상점가로 갔다. 옷가게와 식당이 대부분인 상점가는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침 9시가 되기 10분 전이었기에 모든 가게는 열려 있었다. 세하와 제이는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갔다.
꽤 규모가 있는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간 세하와 제이는 여느 커플처럼 이것저것 꺼내보고 있었다.
“이런 건 어때요?”
“으음…. 아니야. 세하한테는 이렇게 프릴이 많은 건 안 어울려. 음, 혀… 아니 아저… 음….”
“?”
제이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세하를 흘끔흘끔 보다가 말을 이었다.
“오빠는 이런 게 더 어울린다고… 봐.”
“…….”
“….”
세하는 제이의 ‘오빠’라는 호칭에 얼마 전에 했던 고백이 생각나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제이도 괜히 부끄러워져서 딴 데를 보며 딴청을 부렸다.
그렇게 어색해진 게 버티기 힘들어진 세하는 황급히 제이가 골라준 옷을 뺏어들고는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제이는 붉게 변한 볼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가까운 의자를 가지고 와 피팅룸 앞에 앉았다.
한편, 피팅룸으로 들어간 세하는 제이가 고른 옷이 블라우스뿐이라는 걸 들어와서야 깨달았다.
세하는 대략 1분 정도 고민하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제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응? 왜 부르니, 세하야?”
“아저씨가 골라준 거 블라우스뿐인데요?”
“….”
제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분명 그가 고른 것은 순백의 블라우스였다. 그렇다면 거기에 어울릴 만 한 옷이 뭐가 있을까?
‘여자’라고 보일 정도로 성숙한 느낌이라기 보단 아직 덜 영근 풋풋한 소녀의 느낌이 더 강했다.
제이는 불현 듯 떠오른 이미지에 한 벌의 옷을 골랐다. 그건 새하얀 원피스였다.
아무런 무늬도 장식도 없었고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제이는 반드시 어울릴 거라고 확신하며 세하에게 건넸다.
세하는 문을 살짝 열고 팔만 꺼내 제이가 건넨 원피스를 받아들고 문을 닫았다.
“원…피스?”
소매가 없고 재질도 상당히 얇았다.
세하는 뭐든 상관없다는 생각에 순순히 갈아입었다.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제이가 골라준 것이 아닌가.
그것 하나면 충분히 입을 가치가 있었다. 거기다 자신이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세하는 다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왔다. 제이는 세하를 보자마자 씩 웃었다.
“어, 어울려요?”
“응. 아주 잘 어울려.”
아무런 무늬도 없었기에 오히려 청순해 보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저 밋밋하게 수수한 원피스가 어떻게 저리도 예뻐 보이는지.
언젠가 TV에서 누군가 말했던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제이는 클로저스 요원 전용의 블랙 카드를 꺼내 일**로 결제해버렸다.
한 때 차원 전쟁의 잊혀진 영웅으로 활약했던 그였기에 가지고 있는 재산도 상당할 것이었다.
세하와 제이는 상점가를 나와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제이와 세하는 검은 양 요원이었기에 이렇게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기분 좋다….”
별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선선한 공기를 느끼며 함께 걷는 것만으로 세하는 행복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차원종과 싸우는 나날에서 한 걸음만 떨어져도 이렇게 평화롭다.
이렇게나 행복하다.
세하와 제이는 한가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공원길을 걸었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길가에서 먹을 걸 사먹으면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별로 한 건 없지만 행복한 한 때를 보낸 둘은 저녁을 먹은 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오늘 즐거웠다, 세하야.”
“데이트는 아직 안 끝났어요.”
“응?”
제이는 미성년인 세하가 늦게 들어가면 자신이 알파퀸에게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거라는 강한 예감에 세하를 집으로 보내려 했다.
물론 어제 봤던 그 아련한 미소를 생각하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알파퀸도 무서웠다.
그런데 세하가 아직 데이트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제이는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집으로 가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어떻게든 납득시켜야 했다.
“아저씨.”
“…세하야?”
“저 오늘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제이는 벼락이 머릿속을 강타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이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세, 세하야. 지금 집에 가지 않으면 형이 위험해….”
세하는 아무 말 없이 제이의 팔에 팔짱을 끼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모텔이 있었다.
‘언제 이런 곳으로 들어온 거지…!’
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골목으로 자연스럽게 데리고 온 세하에게 놀랐다.
역시 알파퀸의 자식이라는 건가. 알파퀸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몰래 술을 먹여서 덮쳤다고 했었다.
“아저씨.”
“세하야. 취했니?”
제이는 세하가 원해서 몇 모금 줬던 칵테일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세하의 얼굴은 붉었다.
“제가 취한 것 같아요?”
“….”
그렇게 물어보면 또 대답하기 곤란하다.
확실히 세하가 꺼낸 말은 여자애라면 얼굴이 붉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말이었으니까.
“아저씨. 아니, 오빠. 저요. 남자로 돌아갈 지도 몰라요.”
“…뭐?”
쿵.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게…?”
“어제 온 전화 있잖아요. 그거 캐롤리엘 누나한테서 온 거였어요. 남자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이 만들어졌대요.”
“….”
“오빠랑 마지막으로… 제가 오빠를 좋아했었다는 증거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싶어요.”
제이는 세하의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갈등했다.
미성년자인 세하에게 그런 기억을 줘도 괜찮은 걸까, 아니 그 전에 법적으로 괜찮은 걸까.
어른이기에, 알고 있기에 드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들은 세하의 파르르 떨리는 어깨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자 전부 날아가 버렸다.
지금 눈앞에서 용기를 쥐어 짜내고 있는 여자에게 실망을 안겨서야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하는 그 날 처음으로, 외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