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늑대개-나타 ] 나타이야기
리스쿠 2015-07-02 0
나타 캐릭터의 프롤로그 형식으로 마구 상상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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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였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추운지 저마다 옷깃을 여미며 갈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건널목 앞에 서있는 다정한 모자도 그 중에 하나였다. 어린아이가 길이 미끄러운지 엄마의 손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마냥 꼭 잡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엄마가 길을 재촉했다. 아이는 총총걸음으로 겨우 엄마를 따라 횡단보도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아이였던 소년이 엄마를 기억하는 마지막은.
그 기억의 날 이후로 소년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머리와 눈 색이 자신도 모르는 새 변했으며 있는지도 몰랐던 아버지의 존재와 새로운 가족. 소년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지위를 가진 듯했다. 여러 사람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TV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마중 나온 여자와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저 아이가 전에 말했던 그 아이인건가요?”
“...잘 부탁해. 이제부터 내 아들이니. 곧 호적에도 올릴 생각이야.”
“당신!! 아무리 그래도 저런 아이를 호적에 올리면...!”
“저런 아이라? 저런 아이 하나 못 낳은 주제에 건방지게 대들지 마. 위상력 조차 각성하지 못한 아이를 내 아이라 할 수 있겠어?”
그 이후 아이의 새로운 엄마가 된 그녀는 늘 아이를 괴롭혔다. 마치 존재 자체가 싫다는 듯이. 그녀의 이유 없는 괴롭힘은 아이가 소년이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 되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위상능력자였기에 가까운 친구조차 없었던 소년에겐 안식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타박과 소년의 엄마에 대한 모욕이 이어졌고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조차 소년을 괴롭혔으며 그 집에 데려온 아버지란 남자는 자주 집을 비웠다. 그렇게 둘 곳 없는 소년의 마음은 한 켠에 켜켜이 쌓여 썩어 들어갔다.
고독한 소년의 힘든 일상을 깨어버릴 날이 오기 전까지는.
소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유난히 조용한 집안에 조근거리는 말소리가 크게 들렸다. 소년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말소리를 따라갔다.
“이제와서 왜 재조사를 한다는 거야? 확실히 사고사로 처리했었잖아!.......뭐? 누가 조사를 시작해? 그이가 그럴 리가 없어!......아냐. 그럴 리가...그건 그이도 동의했었다고. 그 여자를 사고사로 위장시켜 죽이는 거에 대해서.....그래. 애는 그 상황에서 위상력을 각성해 못 죽였지만 그래도 여자는 죽였다고.”
그 소리가 소년의 심장을 내려쳤다.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 그녀였다는 사실에 온 몸의 피가 들끓었다. 소년은 늘 참아왔었다. 그녀가 자신을 버러지라 부르고 엄마를 멸시할 때도, 그녀의 아들이 학교 애들을 이끌고 자신을 괴롭힐 때도, 언제나 소년은 자신을 억누르며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참아왔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소년의 자상했던 엄마를 죽였다. 아버지란 인물은 그걸 묵인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가족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지? 왜 참으면서 살아왔던 거지? 그 사실을 깨달은 소년의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알았어. 일단 좀 더 알아봐. 누가 시킨 건지. 나도 방법을 찾아볼테니.”
“....당신이.”
“뭐..뭐야! 버러지같은 놈! 언제 왔어?!”
“당신이 제 엄마를... 죽인 거냐?”
“버러지 주제에 엿듣기나 하고...! 당장 안 나가? 이래서 저급한 것들은!”
“죽인..거냐고.”
소년 주변의 공기가 차분했으며 집안조차 소년에게 동조하는 듯 적막에 휩싸였다. 적개심을 가득 품은 소년의 눈에 추궁당하는 것이 분하기라도 한 듯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비춰졌다.
“.....그..그래. 내가 죽였다! 다 자업자득이라고! 넘볼 걸 넘봐야지! 막 굴러먹던 근본도 모를 천한 것이 그깟 실험으로 애** 낳았다고 기어오르는 걸 어떻게 두고 봐!”
소년이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앞 뒤 일을 따지기엔 소년은 너무 어렸다.
한 번도 배운 적 없지만 자연스레 떠오르는 동작이 있었다. 마치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소년은 자세를 잡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랏빛의 위상력을 풀어내었다. 섬뜩하게 빛나는 보랏빛이 적의를 담아 날카롭게 빛을 더할수록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져갔다. 소년에게서의 적의가 너무도 명백해 그녀는 아마 다음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버러지 주제에.”
그녀의 말을 신호로 소년은 적의를 살의로 바꾸었다.
“죄수번호 1032. 면회다.”
그 날 이후부터 소년의 이름은 1032였다. 아버지란 인물은 소년에게서 종적을 감추었고 그렇게 홀로 남겨진 소년은 재판과정에서 고아였고 도둑이었다. 그 집에서 몇 년 살았다는 것도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조차 없었다. 오로지 40대의 여성과 10대의 남아를 죽인 사실만 있었다. 거기다 위상력을 각성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살인에 위상력을 이용했다는 죄까지 더해 무거운 징역을 선고받았다. 수감된 이후의 소년의 삶은 한마디로 무리에서 버려진 늑대와 같았다. 본래대로라면 소년원에 수감되어야 했지만 위상능력자를 수용할 시설이 없어 일반교도소에 수감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접한 어른들의 세계는 나이어린 소년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위상능력자라는 이유로 배척받고 어리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았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거쳐 소년은 한 마리의 늑대가 되고 나서야 그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약육강식과 고독. 그것이 소년이 성장하면서 배운 유일무이한 삶의 자세였다. 그런데 면회라니. 지난 세월 간 소년을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교도소의 죄수들이 아니었다면 소년의 존재는 이미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소년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설마 그 꼰대일까. 방치만 해두다 불리해지니 자신을 지워버린 꼰대. 인생의 전환점에서부터 어른에게 배신과 냉대만 받은 소년은 외로웠기 때문이었을까? 아주 잠시나마 그 꼰대를 믿어보기로 했다.
소년에게 채워진 무겁고 거대한 위상력 억제기가 끌리면서 내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면회실에 도착한 소년의 앞에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은 지난 세월보다 더 긴 듯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 보는 이였다. 말끔한 정장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 외 알 안경. 하지만 그는 소년이 그토록 혐오하는 어른이란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그래. 네가 1032?”
“.....”
잠시나마 기대했던 게 바보 같아 소년은 대답할 순간을 놓쳐버렸다.
“..흐음, 일단 난 벌처스 관계자라고 알아둬. 내가 널 보러온 건...높으신 상부의 연줄로 널 구제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거든.”
“꼰대가 쓸데없이 이제와서 구제? 그딴 거 생각 없어.”
“....징역 60년. 상당히 길다고? 아무리 위상능력자라도 60년이면 인생 확 말아 먹는 거야. 그래도 좋아?”
“그러건 말건 그쪽은 신경 끄시지? 어른이란 허울 좋은 꼰대들은 믿을게 못되거든. 특히 당신이 말하는 상부의 연줄이 한때 내가 아버지라고 여겼던 꼰대에게서 나온 거라면 더더욱 사양이라고.”
소년이 말을 마치며 살인했을 때의 감각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소년이 으름장을 무시하고는 자신이 할 말을 이었다.
“널 구제하고 나도 이익을 얻을 방법을 찾다 부사장이 좋은 제안을 냈어. 벌처스에 처리부대를 새로 신설할거야. 부대이름은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우선 그곳에 널 용병으로 고용하고 싶은데. 네가 처리부대로 활동하면 징역도 어느 정도 감면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이를테면 위상능력자 전용 귀화시스템의 초안정도?”
그는 소년이 말을 꺼낼 새도 없이 바로 다음 이야기를 척척 진행시켰고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소년은 불쾌한 기분을 한껏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서류상에 넌 존재하지 않는 아이라서 이름이 없어. 이러면 곤란하니까 내가 좀 생각해 봤는데 네 이름. 나타, 어때? 죄수번호 1032이면 밖에서 임무 수행할 때 시선이 좀 그렇잖아? 입장 상 유니온과 협력관계라서 시선도 중요하거든. 그리고-.”
“멋대로 자꾸 끌어 들이지마. 관심 없으니까.”
소년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허리를 자르며 일어났다. 그의 강압적인 태도와 웃는 낯짝이 소년에게 누군가를 연상시켜 불쾌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무례한 소년의 행동에도 그는 하던 말을 계속 했다.
“봉신연의....라고 중국신화소설인데 알고 있어? 그 속의 등장인물인 나타....넌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너와 좀 닮아있거든.”
소년은 아무 말 않고 간수에게로 향했다. 간수는 그와 소년을 번갈아 보며 쳐다보다 소년의 날카로운 눈빛에 말없이 수감시설로의 통로를 열었다.
“다음에 보자. 나타.”
그는 돌아선 소년을 향해 외쳤지만 소년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코웃음치고는 통로로 나아갔다.
“다시 볼일 없을거다. 꼰대-.”
그렇게 헤어졌던 것이 바로 지난주. 나타는 지금 상황이 매우 황당했다. 느닷없이 교도소에서 목에 무언가가 채워져서 풀려나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이송되어왔다. 그리고 다시 볼일 없을 거라 비웃었던 그가 나타를 환영하고 있었다.
“여-. 다시 만나서 반갑네. 나타.”
“....뭐야. 당신. 분명히 싫다 했을텐데?”
“이제부터 넌 명령을 받아 그걸 수행해야 해. 자, 이건 네 실적에 따라 형량을 감면해준다고 사법부와 유니온이 정식으로 협약을 맺은 서류.”
그가 건넨 서류를 나타는 읽지도 않고 버리며 말했다.
“장난해?! 누가 이딴 거 한댔어? 나보고 지금 꼰대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죽어도 사양이라고 했잖-! 크아악!!”
나타는 갑작스런 고통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극한의 고통. 죽여 본 일은 있어도 죽임을 당할 뻔한 적은 아직 없었다. 아니, 교도소에서 였던가. 우두머리가 재미로 시작한 사냥게임. 약한 자신은 사냥당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죽을 뻔했었다. 끔찍한 고통과 공포. 그것이 되살아나 나타를 덮쳐왔다.
“명령에 불복하면 지금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늑대를 길들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통이 끝났다. 숨이 멎을 정도의 통각에서 해방된 나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숨을 쉬느라 바빴다.
“허억..헉...”
그는 숨을 몰아쉬는 나타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집지키는 개가 되었으니 착실히 일 해주겠나? 나타. 넌 더 이상 풀어놓은 늑대가 아니니까. 자, ‘물어와’ 정도는 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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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의 등장 퀘스트에서 연상되는 것을 토대로 써 본 글입니다.
나타와 세하는 라이벌 관계이지만 둘의 공통분모가 있는 라이벌 구도가 더 맘에 들어 나타도 어른을 매우 싫어한다는 설정도 넣어봤습니다. 거기다 세하와 나타의 차이점도 여러개 넣어봤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