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단편] 어느 클로저스 요원의 죽음 (完)

샤를로트코르테 2014-12-26 13

하늘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은 게 어언 3일쯤 됐나보다. 장마철을 알리는 먹구름이다. 비는 오는 둥 마는 둥 하다가도 팍 쏟아지길 반복했는데, 지금은 다짜고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로 흐린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장악해버린 먹구름들은 마치 이 세계와는 별개의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참 기분 나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상처 부위를 손으로 지압하고 있었지만 예사 상처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느려지고 있는 심장박동에 맞춰서 퍼부어지는 피가 몸 안에서 누군가가 펌프로 끌어 올리는 것 같아서 새삼스레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손을 가슴에 얹고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느릿하고 미약하지만 아직도 뛰고는 있었다.


두근… 두근…


피는 빗물과 섞여서 물통에 퍼진 물감처럼 붉은색을 옅게 퍼뜨리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거겠지. 하고 욱신거리는 상처부위를 꾹 쥐어 오므렸다. 그런다고 상처가 붙을 일은 없을뿐더러 순간적으로 무척 아파서 곧 관두고 말았다. 


지금 내 배는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서 그 틈으로 손을 넣으면 내장이라도 만져질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처지가 로드킬을 당해서 죽음을 앞 둔 개와 같은 꼴이다.


마지막 보는 하늘이 맑았다면 좋았을텐데―




정신을 차렸을 땐 한 남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왁스 바른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진한 갈색으로 염색을 한 사람이다. 선글라스를 차고 있어서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남자의 이름은 ‘한기남.’ 벌처스라는 기업에서 수상쩍은 일을 하는 사내였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마지막에 볼 사람의 얼굴 치고는 참 독특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팔목을 꾹 붙잡았다. 손아귀 힘이 꽤 강해서 뼈가 욱신거릴 정도로 아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나에게 바싹 다가온다. 그가 바른 미약한 스킨냄새마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기남은 나에게 속삭였다.


“형씨, 죽어 가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씩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그의 가식적인 웃음이 평소였다면 얄밉게도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나를 살려줄 거라는 일종의 확신이 있어서였을까.


난 그마저도 없는 힘을 죄다 실어서 딱 한 마디 했다.


“죽나보네요.”


그리고 힘겹게 미소 지어 보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본다면 오늘 아침부터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시간 전의 이야기다.




아침 7시가 되면 기상을 한다. 그 시간이 되면 미리 타이머를 맞춰준 뉴스 채널로 맞춘 TV가 켜졌기 때문에 그 소리로 깨는 것이다. 그리고 멍하니, TV를 한 5분가량 바라보며 앵커가 떠드는 내용을 머리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오늘 새벽, 서울 강남의 구로역에서 발생한 의문의 전자파장에서… 클로저 요원들이 투입하여…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밥맛 떨어지는 뉴스다.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마지막 구절을 머릿속으로 몇 번 되새김질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을까…. 어젯밤 구로역에서 차원종들과 싸웠을 때 만났던 그 소녀는….


지그시 뉴스를 시청하며 어젯밤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구로역에서 보았던 그 소녀는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은발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 분명 보았지만 그렇게 현실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환상 같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차원종이 출몰한 지역에서 유령처럼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꿈같다고도 생각했다. 소녀는 거대한 차원종이 내 시야를 잠깐 가렸을 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았다고 상부에 보고도 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어제의 생각을 정리하는 도중, 어김없이 초인종 벨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이 시각만 되면 찾아오는 아이다. 그런 명령을 내렸었다. 


사실 그녀가 밸을 누른 것은 그저 형식적인 겉치레일 뿐이다. 우리 집 현관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졸려…”


그녀의 이름은 ‘선우 란’이다. ‘클로저스’의 일원 중 한 명으로, 소속 된 팀의 이름은 ‘슈팅스타’다. 유감스럽게도 란은 지금 훈련생 신분이었고 슈팅스타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지만 그녀를 관리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김시환이다. 슈팅스타의 리더를 맡게 되고서부터 자질구레한 일만 늘어나서 평소 불만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불만은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또 폭주 뛴 거야?”


“서울에서 대전까지… 40분.”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표정은 무언가 자랑스러운 업적 달성을 부모에게 보고하는 어린애 같았다. 


“조금만… 자고….”


다짜고짜 내가 누워 있는 소파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오므려서 그녀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꼴도 참 웃기는 노릇이라 결국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다리를 베개 삼아 머리를 대고 누웠다.


“시환 선배 다리… 단단해. 말 같아…”


“저기....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의 직장상사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다리에 눕는 건….”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말했지만 듣는 척도 안하고 고개를 내 배 쪽으로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녀를 저지할 수도 없었다.


“좋은… 냄새가 나서…. 남자 냄새….”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잠들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장 깨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한 30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기에 관두었다. 잠이 부족해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것도 팀 전력에 있어서 손해니까. 밤에 폭주를 뛰어서 전투력에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한 훈계는 그녀가 깬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의 구로역은 활기가 넘친다. 차원종의 출현으로 민간인의 출입은 금지되었지만, 그것들을 막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다.


“핵사부사!! 엔진의 진동이 내 심장까지 닿고 있어!!!”


헥사부사는 란의 오토바이 이름이다. 그것만 타면 눈에 뒤집혀 버리는 그녀였다. 거친 숨을 내쉬며 시퍼렇게 뜬 눈은 마치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의 광신도를 연상시켰다. 그녀의 종교가 125cc 싸구려 바이크 개조교라면 충분히 교주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분 빨리 가는 거에 신경 쓰다간 50년 일찍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내가 말했지만 그녀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나보다. 거친 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팍은 핵사부사의 식지 않은 열기와도 같아서 그녀의 코가 엔진이라면 거기서 연기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날 바라보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잡았다.


“내 심장! 이렇게나 두근거리고 있는데…!”


말하고서 내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순간 당황했지만 거부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의 발달하지 않은 가슴은 빨래판 같아서 젖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자라면 갖고 있을 가슴살이 빈약해서 갈비뼈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체형인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땀에서 나오는 열기가 촉촉이 스며든 셔츠 안에 그녀의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엔진처럼 쿵쾅거리고 있다. 이것이 란의 심장인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폭주 외길 인생 10년. 이런 거?”


“이럴 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헥…헥…. 그녀의 숨결이 나한테까지 닿는다. 어쩌라는 거지 대체. 이 녀석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전투 능력은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재능은 모두 라이딩에 몰아져 있어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럼에도 우수한 라이딩 능력 덕에 우리팀 슈팅스타의 훈련생으로 배속 받은 상황이었고, 난 이 그룹의 리더니까 그녀를 관리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가 내게 도움이 될 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려.”


“읔......”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만 하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환자처럼 삶의 기력을 소진해버리는 여자니까. 란에게 오토바이는 베터리와 같아서 함께 있지 않으면 삶의 에너지가 곧장 고갈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그녀이기에 제대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헥사부사의 기동성을 살려 부상자를 이동시키거나 무전통신 수단이 차단되었을 때, 즉각적인 상황 보고 및 지원요청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물론 그런 임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슈팅스타에서는 그런 인재보다는 전투력이 강한 쪽을 원하고 있으니 내심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생각은 이걸로 끝.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슈팅스타 팀원들에게 연락이라도 해보려던 찰라,


“충성! 오늘은 좀 늦으셨습니다!”


특수경찰대대 예하, 차원문 철거중대의 낙하산 소대장 송은이씨가 웃으며 경례를 취했다. 예전에 아프간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는 소문은 아마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무용담이자 그녀의 이력이다. 그것 뿐. 그것만으로 소대장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머지않아 중대장까진 오르고도 남을 위인이다. 아니, 대대장 혹은 여단장까지 노려볼지도 모르지. 그녀의 전투능력은 클로저스의 능력에 버금갈 정도로 발군이라는 소문이다. 더군다나 전쟁을 오랜 세월 겪어온 군인 특유의 뛰어난 직감과 부하들을 통솔하는 능력도 발군. 그런 보고서를 눈대중으로나마 훑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원래 근무지역은 이곳 구로역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이 전투력 발군에 일기당천, 천하무적의 호걸인 여자가 어째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강남에서 썩고 있느냐면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다. 그 게으름이 나태한 것을 넘어서 전쟁을 치룬 사람들 특유의 대충대충, 일단 살고 봐야지. 하는 천성인지라 위험한 지역 근무에는 막상 투입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그녀가 근무하면서 부하들에게 ‘대충대충 하라고!’ 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부하들에게는 좋은 리더로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임무를 맡기고 있는 특수경찰대대측에서도 꽤나 골치를 썩 힐 것 같은 인물이다. 영화에서 보면 상관의 후퇴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더 큰 대의를 위해 부하들과 함께 분골쇄신하다가 결국 부하들만 살리고서 자기 혼자 죽을 법한 전형적인 주인공 모습인 것이다. 


애초에 강남역에서 근무하고 있을 사람이 여기까지 지원을 나온 걸 보면 이곳의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 여자가 나에게 먼저 경레하며 다가온 것 또한 무언가 일이 있어서겠지. 


“무슨 일인가요?”


“오늘 새벽에 저희 부대원이 정찰을 나간 도중 민간인 여자아이를 보았다는 보고가 있어서요! 민간인이 있을 리는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혹시 어제 차원종과 전투 중에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는 흔적을 본 적이 없는지 물어보라고 김유정씨가 그랬어요.”


“김유정씨라면… 그 신입 유니온 요원이요? 그 사람이 왜죠?” 


“저도 잘 몰라요. 그녀가 차기 클로저 요원들의 관리직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긴 하니까… 뭐, 이런 거라도 확실히 해놔야 실적이 붙지 않겠어요?! 아무튼 본 적 없는 거죠? 보고는 제 선에서 끊습니다? 잘못 봤겠죠. 민간인이라니.”


“네. 민간인이 있을 리가 없죠.”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어제 있었던 일이 불쑥 머릿속에 드러나 예삿일로 여길 수만은 없었다. 나도 보았었다. 민간인 소녀. 혹시나 민간인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분명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송은이씨는 나에게 경례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머리를 바싹 깎아서 누가 봐도 신참으로 보이는 특수경찰 한 명이 송은이에게 달려왔다.


“충성! 보고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거 꼭 상부에 보고해야만 하니? 잘못 본 걸로다가 소대원들 고생시키는 것도 꽤나 민폐라고.”


“하지만…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얀 머리의 여자애에요!”


“너만 본 거잖아. 지금 이 요원님께도 여쭤봤는데 민간인 흔적은 없다고 하셨어!”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닙니까! 만약에 정말로 민간인이었다면….”


“어이쿠 됐네요. 너 어제가 첫 투입이었지? 그러니까 혼란스러워서 헛것을 본 걸지도 몰라. 차원종들은 공간을 일그러뜨리면서 나타나지. 징그럽지…. 그래서 거기에 사람인지 뭔지도 모를 이상한 걸 보고서 착각한 게 분명해.” 


요원은 잠자코 있었다. 송은이는 ‘어제 못 본 드라마나 봐야겠다..’ 혼잣말을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남은 요원은 뭔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저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그 요원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곤 곧장 경례를 취했다.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툭수경찰대대 차원문철거중대 소속, 채민우 경위입니다!”


그의 굳게 다문 입과 짧게 깎은 머리카락을 보니, 신참이라면 갖고 있을 파릇파릇함이 더욱 두각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을 읽어본다면 그 속엔 말로 차마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끓고 있는듯해서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믿음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여자아이를 보셨다면서요.”


“네! 보았습니다. 키는 한 140쯤 됐고 은색 머리카락에… 아마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네! 그러니까….”


그가 말하길, 오늘 새벽에 순찰을 나간 때였다. 송은이는 순찰 예정지역의 입구에서 잠을 잤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대원들만 도심을 순회하라는 명령을 내린 채였다. ‘대충대충 해!’ 라고 송은이가 말했었다. 


분명 사람이 있을 리는 없었을 테니 소대원들도 은이의 말에 따라 대충대충 산책을 하듯 순찰을 돌았다. 상부에서 유도리 없는 명령이 떨어져 소대원들을 힘들게 할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이런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채민우는 무너져가는 상가 건물 골목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을 목격했다. 소대원들에게 잠깐 멈추라고 자시한 뒤, 자기가 먼저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본 것은, 무너진 건물 파편을 의자삼아 앉아 있는 어린 소녀였다. 은발의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꼬마였다.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혼자니?”


채민우가 말했다.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님은 어딨어? 다른 사람들도 혹시 있니?”


그러자 소녀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묵묵히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도와줄게. 일단 나랑 함께 가자.”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는 표현이었을까? 하지만 이 어린아이를 이곳에 혼자 남겨두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 억지로라도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야! 채민우! 거기서 뭐해?!”


소대원들 중 한명이 골목길 시작 부근에서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채민우가 ‘여기 사람이…!!’ 말하며 소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믿어주질 않더라고요….”


채민우는 자신이 말한 내용에 확신은 없었던 것인지 겸연쩍게 웃었다. 


“사라진 여자아이…. 호러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란이 말했다. 그녀는 손으로 내 셔츠 자락을 꾹 쥐었다. 무서운 건가..


“귀신같은 거라기엔 너무 생생했는데.”


민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가 본 것이 만약 내가 어제 보았던 그 소녀라면 그녀는 아직도 위험지역인 구로역 시가지에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마음에 무척 걸렸기에 채민우를 돌려보낸 뒤, 헥사부사의 의자를 툭 쳤다. 그러자 란은 불안한 듯 말했다.


“이동이야?”


“구로역 시가지로 가볼까 하는데.”


“설마… 방금 말했던… 그 여자애… 찾기?”


란의 표정이 순간 사색이 된다. 아무래도 귀신 관련한 것에는 약한가보다.


“헥사부사로 구로역 시가지는 달려본 적 없지? 거기에 차도 없어서 도로가 뻥 뚫려있을 텐데.”


란의 눈이 빛났지만 완전히 수긍한 건 아니었다. 시선을 아래로 깐 뒤 곰곰이 생각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잠깐만 돌아보고 오는 거니까.”


란이 말했다.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으므로 미리 난 헥사부사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른 타. 운전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니까.”


란은 헥사부사에 올라타 곧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엑셀을 놓았다가 풀었다하며 엔진을 가열시켰다. 난 란이 언제 출발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의 배를 붙잡았다. 군살 없이 튼튼한 배다. 


“더 꽉 붙잡으라고!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더욱 꽉 붙잡았다. 옷 너머로 느껴지는 란의 복근은 말랑말랑한 피부 속에 단단한 근육을 감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허리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밀착시키고 나서야 란은 헥사부사를 출발 시켰다.




구로역의 시가지는 복구가 완전히 이루어진 곳이 아니었다. 구로역 근처는 군에 관련 된 시설 진입 및 보급을 위해 어느 정도 복구를 이루어놓은 상태였지만 시가지 전체를 복구한 것은 아니었다. 잘 포장 된 도로만이 사람 손이 닿아서 차원전쟁이 일어나기 전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들은 무너졌거나 반파 된 상태인지라 정말로 밤에 보면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헥사부사를 프로 라이더처럼 기울여 멈추자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어쩌면 타이어가 갈리면서 생겨나는 연기일지도 모르겠다. 란은 폭주의 열기로 달아올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아까 계기판을 보니까 500키로까지 찍었던데. 125cc 주제에….”


폭주를 한 것에 대한 투정이었지만 란은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였나보다.


“개조! 개조!! 시환오빠가 준 부품 덕분에 더 빨라졌어!”


예전에 하도 헥사부사를 험하게 몰았기에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타라는 의도로 서스펜션을 비롯한 기타 잡다한 부품들을 제작하여 건네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 부품 중에 125cc 엔진으로 이런 ** 속도를 내도록 만드는 물건은 없었다. 오히려 부품들을 제대로 조립만 했다면 헥사부사가 더욱 안정적이 되면서 약간은 느려졌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디를 어떻게 개조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헥사부사에 내려서 시가지 내부를 탐색했다. 란에게는 헥사부사에서 대기. 무슨 일이 일어나면 무전을 취하라는 명령을 내려두었다. ‘나도… 데려가면… 안 돼?’ 하면서 굶주려 호소하는 고양이 눈을 했었지만 그녀는 전투에 도움이 안 되니 대기하는 게 속 편했다. 그리고 헥사부사에서 내리기만하면 주변사람의 기력까지 빠져버릴 것 같은 암울함의 절정인 오로라를 내뿜었기에 나와 동행하면 힘들어질 뿐이었다.




시가지 안쪽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시체처럼 남아 있는 건물들은 지난날의 잔재. 예전에 있었던 차원전쟁을 상기시키는 역사적인 유적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곳에 민간인이 있을 리는 없다. 절대로 없을 것이었다.


어제의 기억을 곱씹어 소녀를 보았던 곳까지 갔다. 차원종과의 싸움으로 거리와 건물이 부셔진 흔적을 찾아 갔더니 의외로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무언가의 환상이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 소녀는 구로역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원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원종들이 침략하기 전의, 활기차고 아름다웠던 대한민국 어딘가의 그리운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보길 바라고 있어서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수색은 여기서 중단하기로 했다. 역시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건물의 부셔진 잔재를 보며 괜히 아픈 기억만 억지로 꺼내든 기분이다. 이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원전쟁 이전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정신은 이미 과거로 돌아간 채다. 그 시절의 추억을 몇 번 곱씹다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면 이곳에 부셔진 건물마냥 나의 마음도 어딘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것이다. 아름다워서 열어보려고 하면 그 속에 안 좋은 것이 들어있다. 열어선 안 되는 상자를 억지로 열려고 하는 것도 미련한 짓이니 선우 란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돌아가는 길에 차원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푸른색 스파크가 튀기며 이공간이 이 세계에 나타나려하는 공간의 뒤틀림. 하나 두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였다. 난 곧장 무전기를 들어서 란에게 연락했다.


“란! 들려? 지금 당장 본부에 알려! 차원종들의 출현이다. 내 위치는一”


차원공간이 생성되면 일시적으로 무전이 마비된다. 무전기는 치직거리는 시끄러운 잡음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툭, 무전기를 바닥에 떨구었다. 무전이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차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뒷말은 이을 수가 없었다. 공간의 뒤틀림 중,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타난 생명체. 아니, 인간. 어제 보았던 소녀가 차원종들처럼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슬픈 표정이었다.


“미안해요.”


소녀가 말했다. 어떻게 인간이 차원종처럼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나타날 수 있지? 잘못 본 것은 아니다. 분명히 내 눈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소녀에게 무심코 다가갔다.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보려 했다. 하지만 손이 닿기 전, 그녀는 한 발짝 물러나 나의 손길을 거부했다.


“저는 이제 차원종이에요. 인간이었지만… 더 이상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어요….”


울먹거리며 소녀가 말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두어 번 혼잣말로 읊조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 쥔 손으로 닦으며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 보아도 인간 소녀임이 분명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적잖게 놀란 것은 사실이었지만 소녀가 무섭거나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한 걸음 더 다가갔지만 소녀는 날 피해 한 걸음 물러설 뿐이었다.


“제가 따르는 그 분께서 저에게 힘을 주셨어요. 그리고…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해요. 아저씨는… 아저씨가…”


뒷말을 차마 다 하기도 전에 차원종들이 나를 의식하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급 차원종들이다. 팔과 다리가 송곳같이 뾰족한 모양이고 그걸로 사람을 공격하는 녀석들. 일단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도와줄게.”


말하고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흠칫 놀란 소녀가 고개를 들어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여웠다. 마치 오래 전 잃어버린 나의 여동생처럼.


  


차원종 한 마리가 나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화살처럼 빠른 공격. 아찔하게 피한 뒤, 체인으로 녀석의 목을 감아 조였다. 힘을 주자 녀석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졌고 선이 잘린 마리오네트처럼 허망하게 무너져버린다. 이걸로 한 마리.


나의 무기는 체인이다. 하나가 아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총 4개씩 양손에 8개의 체인을 신체의 일부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위상력이다. 


앞에 5마리의 위상종이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양 손의 체인을 넓게 휘두른 뒤 그물처럼 가운데로 모아 녀석들을 포박했다. 그리고 전기를 흘려보낸다. 사람이라면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고압전류가 체인을 통해 위상종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런 도중에 체인 그물을 피한 두 마리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날 노리며 달려왔다. 거리는 40미터 가량. 체인을 곧장 하늘 높이 휘둘러, 4개의 체인을 하나로 모은다. 팔뚝만한 쇠파이프 모양으로 얽힌 체인은 곧장 오른쪽 녀석의 머리위로 빠르게 낙하했고 체인을 맞은 녀석이 반으로 갈라져버렸다. 녀석이 있던 자리는 체인 끝이 박혀서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남은 한 마리가 날 향에 달려온다. 불과 3미터 정도 되는 거리다. 녀석은 도약했다. 날카로운 팔 끝을 나에게 겨눈다. 앞으로 1미터. 거의 근접했을 때, 모든 체인을 회수해, 머리 위로 돌렸다. 마치 방어막처럼 돔 형태로 움직이는 체인은 믹서기처럼 녀석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이걸로 끝. 차원종은 모두 제압되었다. 이제 이 거리에 남은 건 은발의 소녀와 나 뿐이다.


“괜찮니?”


말하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두려움 따윈 없어보였다. 


나는 소녀의 키에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울먹거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저씨 같은 사람이 진작에 절 도와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소녀가 말하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서 나도 그녀의 등을 위로하듯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아저씨랑 함께 돌아가자.”


“그럴 수는 없어요. 전 이미 차원종인걸요.”


알 수 없는 얘기를 한 뒤, 포옹을 풀고 날 바라보는 소녀. 그녀의 양 손이 내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미안해요.”


그리고 다짜고짜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 눈을 홉 뜨고 말았다. 소녀와의 입맞춤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온 몸의 기관이 그녀의 입으로 빨리고 있는듯한 감각이 전신을 휘저었다. 무언가가 내장을 쥐어짜고 목구멍 너머의 어딘가로 빠르게 흡수되어지고 있었다. 힘이 풀려버리고 위상력도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사태를 파악한 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녀는 나의 위상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기에 감전 된 사람처럼, 이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줄 알면서도 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간신히 힘을 짜내어 소녀의 몸을 밀칠 수 있었다.


“무슨 짓이야?”


숨이 헐떡거린다. 순간적으로 모든 위상력이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 엄청난 손실이 곧 몸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 있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온 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버렸다.


“위상력을 흡수했어요. 이걸로 저는 더 큰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겠지요.”


아까의 슬퍼보였던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흡혈귀의 은밀한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 그녀는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자신이 맛보았던 것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것에 어떤 희열감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녀의 표정은 황홀감에 가득 젖어있었다.


“너 대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지고 말았다. 일어서려고 해보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아 있는 위상력이라곤 체인의 휘둘림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거의 잃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위상력을 소진했다고 하더라도 체인의 휘둘림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있을 터였다. 근육의 힘을 모두 소진했다고 그 부위가 본래 기능을 못하는 게 아니듯이, 위상력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순간 불안해졌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니 불가능한 일일 텐데.


설마… 내 위상력이 소진 된 게 아니라, 잃은 것인가…


두려웠다. 위상력을 잃어버린 난 평범한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으로 따지면 손과 발을 잃은 것이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실감이 곧 공포로 변환되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아저씨… 이제야 알아챈 걸까? 위상력이 상실되었다는 걸.”


소녀의 손이 내 턱을 어루만졌고 고개를 쳐들게 했다. 꼴사납게도 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젠 반대 입장이 된 것이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녀가 울고 있었지만 지금 울고 있는 것은 나다. 차이가 있다면 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를 보며 안타까워했다는 것이지만 지금 소녀는 날 바라보며 우월감 섞인 눈으로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쩐담? 그리고 앞으로 더 미안한 짓 할 건데 이해해줄 수 있겠지? 인간형 차원종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쪽에 알려지게 되면, 아직은 곤란하거든.”


후후, 도도하게 웃으며 소녀는 물러났다. 공간의 일그러짐이 나타나고 대부분의 차원종들이 그러하듯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건 또 하나의 차원문이었다. 거기서 나온 것은 아까 상대했던 하급 차원종이었다. 녀석이 나를 노리고 투벅투벅 다가왔다. 이대로 죽는 것일까. 녀석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겠지만 아직 아주 약간의 위상력은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일어나서 전투태세를 갖춘다. 녀석에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체인을 위로 올려, 공중에서 세로 그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공격이 될 리는 없었다. 차원종 근처에도 못 간 체인은 엉뚱한 곳에 맞아서 바닥에 작은 흠집을 낼 뿐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흐린 하늘이다. 아마도 곧장 폭우가 쏟아질 것이었다. 차원종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녀석의 팔이 내 몸을 관통하리라. 난 눈을 지그시 감았다. 클로저 요원이 된 후로 죽음은 항상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선우 란. 문득 그녀가 헥사부사를 타고 씨익 웃는 얼굴이 그려졌다. 어째서 그 아이가 지금 순간에 떠오른 것일까.


천둥이 치는가 했더니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엇이던 부수고 올 것 같은 장갑차의 엔진소리와 흡사한 빠른 소음이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소리는 익숙한 것.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그것은…


“우리 선배한테 뭐하는 짓이야!!!!!”


골목길에 무너져 내려있던 건물 자제를 밟고 도약한 헥사부사의 앞바퀴가 차원종의 몸을 찍어 눌렀다. 란은 숨을 헐떡이며 다짜고짜 나에게 화를 내었다.


“뭐하는 거야! 왜 공격 안하고서 멍하니 있는 건데!!”


위상력을 잃었다고는 차마 말을 못해서 그저 씩 웃었다.


다행이다. 변함없는 란의 생기발랄한 얼굴을 보니 위상력을 잃어서 좌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헥사부사의 뒷좌석에 오르려던 찰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마음 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생각이었지만 잠시 잊은 것 뿐. 란은 우리팀의 최약체이다. 그런 그녀가 차원종을 단 한방에 물리쳤다고? 문득 바퀴에 깔린 차원종을 살펴보았다. 살아있다. 녀석은 바퀴에 깔린 어깨를 잘라나고 송곳모양 팔로 란을 찌르려고 하고 있었다. 


“위험해!”


순간 무슨 생각이었을까. 위상력을 쓸 수 있어서 녀석의 공격 따윈 방어할 줄 알았던 평소의 습관이 나와 버린 것일까? 녀석의 배가 나의 배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너 이자식!”


란이 헥사부사의 뒷바퀴를 들어 올려 녀석의 몸을 찍어 내렸다. 박살난 차원종은 아지랑이처럼 이 세상에 연기로 사라졌다.


“괜찮아? 선배!”


“응…”


대답하고 최대한 멀쩡해 보이도록 과장되게 미소 지었다.


“지금 그 표정 엄청 무서운 거 알아요? 눈도 쫙 찢어져갖고 무기 밀매나 할 것 같은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러니? 하하.”


갖고 있는 위상력 전부를 상처부위에 쏟아 내었다. 상처회복 따위가 아니었다. 상처의 현상 유지였다. 피를 흘리는 것을 멈추는 것이 고작인지라 상처부위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뭐해요? 얼른 타요.”


내 상처의 존재를 모르는 란이 활기차게 말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으로 활약해주면 좋을텐데.


헥사부사를 타고 달리며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탑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픈 것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물론 란에 대한 걱정이었다. 위상력을 잃은 내가 앞으로 슈팅스타의 리더로써 활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제부터는 란 혼자서 슈팅스타와 함께 해야 할 것이었다. 


“란,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려?”


“물론! 헥사부사를 타면 나의 심장은 폭발할 것처럼 두근두근…!! 이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지!”


“그럼, 가슴 만져 봐도 돼?”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려서 나를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라고 했어?”


“가슴 만져 봐도 되냐고.”


히익. 소리 없는 비명을 란이 질렀다. 


“미쳤어? 시환 선배, 드디어 ** 거야?!” 


“네 심장. 두근거린다며. 그 부분. 아침에는 자기가 만져보래 놓고선.”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게…!!”


난 다짜고짜 란의 가슴에 손을 데었다. 어차피 빨래판처럼 가슴이 없다시피 해서 가슴살을 만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쿵쾅거리고 있는 란의 심장 박동을 손으로 느낄 뿐이었다.


“뭐… 뭐해?!”


얼굴을 붉히며 그녀가 날 바라본다. 난 씨익 웃으며


“잘 쿵쾅거리고 있네. 앞으로도 쭉 쿵쾅거려줘.”


내가 말해놓고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내뱉어버렸다.


“댁이 그러지 않아도 잘 할 거거든요? 어서 손 떼!”


손을 때고 그녀의 배를 꽉 붙잡았다. 상처의 고통이 너무나도 심했다.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을 정도로 아찔한 고통이 쉴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온 몸이 식은땀 투성이었지만 다행히도 란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지휘본부에 돌아가면 당장 치료부터 받아야하겠지만 위상력을 잃었다는 말을 그녀에게 어떻게 해줘야할지가 걱정이었다. 미안해, 이제부터 리더를 맡을 수는 없게 될 것 같아. 라고 시작하는 게 좋을라나.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떠오르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지휘소에 거의 도착할 때쯤,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차원종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차원종 조기경보는 없었는데?!”


란이 소리치며 헥사부사를 더욱 빠르게 몰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는 차원종 몇 마리를 아찔하게 피해서 달렸지만 결국 포위당하고 말았다. 


“**, 이것들이 쳐들어오면 본부에 있는 민간인이랑 비무장 특수경찰들이!”


“위험하겠지.”


난 헥사부사에 내린 뒤 란에게 말했다.


“여기는 내가 버티고 있을게. 네 말대로 이놈들이 지휘본부까지 들어가 버리면 특수경찰들의 피해가 발생할지도 몰라.”


“잘 버텨요.”


툭 말하고서 헥사부사를 몰려고 하는 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어쩌면 이게 그녀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크게 내질렀다.


“심장! 쿵쾅쿵쾅!”


대답은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차원종들을 곡예와 같은 기술로 요리조리 피해서 돌파할 뿐이었다. 


이제 죽는 걸까.


하늘에서 지금 막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한기남씨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라고, 아주 뻔하고 전형적인 대사를 내뱉었으니 그에 대한 나의 응답도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 어울렸다. 그런 재미없는 대화를 끝으로 기남 아저씨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전화로 본부에 나의 현 상황을 보고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능력 부적합’ 이었다. 너무나도 쉽고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해직통보를 받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인정 없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위상력을 잃은 것도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게 직업까지도 잃은 것이다. 너무나도 쉽게 버려진 인생이다. 그리고 죽은 인생이었다. 차마 다른 요원들에게 나설 용기도 나지 않아서 나는 곧장 어딘가의 그늘을 찾아 잠적해버리고 말았다. 이 세상의 가장 그늘 진 곳으로. 무덤과도 같은 곳으로 내 스스로를 내몰고 싶었다. 그렇게 클로저스 요원이었던 김시환은 죽음을 맞았다.


직업은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기남씨의 추천으로 벌처스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 그를 선배로 모시며 일에 대한 이것저것을 배우다가 친해져서 언젠가부터 아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이끌었던 슈팅스타 팀원들에 대한 소식도 아저씨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내가 떠난 후로 슈탕스타의 팀원들은 각지로 흩어져서 팀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란은 내가 잠적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왜죠? 왜…!!!!” 너무 크게 소리쳐서 우는 바람에 목소리가 다 쉬었다라고 아저씨가 말해주었다.


다른 팀원들도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은 물론 란이었다. 그녀는 유감스럽게도 클로저스를 관두게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직업은 클로저스와 연관 된 것으로, 요원들의 이송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끔 퀵서비스 같은 것으로 부업도 한다던가.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을까? 아저씨에게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런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현재 나는 구로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로역에서 이런 사건을 당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데도 어째서 구로역이냐면 전직 클로저스 요원으로써의 집념같은 것이랄까. 누구도 인정해주는 사람 없겠지만 적어도 다른 요원들이 나와 같은 불상사를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던 바람이 컸던 것이다. 


어느 날, 아저씨가 말했다. 신입 클로저 요원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구로역에 파견 나왔다는 것이다. 이름은 ‘서유리’ 라고 했다. 강남에서 근무하고 있던 아저씨가 여러모로 부려먹었으니 이제 내 차례라나 뭐라나. 하긴 신입 클로저요원들은 벌처스가 이용해먹기 딱 좋은 상대이다. 1000만원을 줘도 안 할 일을 뚝딱 해내고 오면 내가 고맙다면서 싸구려 실드나 포션 따위를 줘버리면 어지간히도 신나하는 족속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의 신입 시절이 생각나서 씁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손님은 그 신입 요원인 ‘서유리’ 였다. 


“손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그녀에게 말했다. 서유리는 다짜고짜 무언가를 슥 들이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이 오토바이 부품이요! 고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만든 오토바이 부품. 이것이 들어가는 오토바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리라. 


서유리에게 이런 저런 사정을 듣고 보니 지금 이 역에는 선우 란이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우 란, 참 그리운 이름이었다.


거의 도망치듯 잠적해서 그 동안 연락도 안하고 지냈던 나였지만, 그녀가 지금 이곳에 와있다니 내심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심장은 아직도 그 때처럼 쿵쾅거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레 내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 박동을 확인한다.


두근…두근…


적어도 내 심장은 이렇게 뛰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살아있으니까.


란이 있다는 역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한 발짝 내딛었다. 물어봐야지. 아직도 너의 심장은 그 때처럼 뛰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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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환과 선우 란의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김시환은 구로역에서 암시장을 열고 있는 벌처스 사람이에요~! 구로역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길어서 읽어주실지 모르겠네요;;;;


혹시 재밌게 읽으셨다면 추천도 한 방 꾹! 부탁드릴게요~!^^


2024-10-24 22:21: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