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의 늑대, 푸른 개

SPYAIR 2015-06-24 4

아직은 겨울의 쌀쌀함이 가시지 않은 봄날의 평범한 아침, 태양빛이 눈을 비췄다.


"으..."


눈부시다.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쳇... 짜증나..."


겨우 눈을 떴다.


...뜬 거 맞나?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제보니 뭔가가 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뭐야, 이거..."


하고 눈을 가리고 있는 무언가를 치웠고,


"우아악?!"


난 괴상한 소리를 냈다. 내가 치운 것을 본 소감이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건, 한 여자의 팔이었다.


"뭐...뭐... 뭐야! 넌! 넌 뭐냐고!"


"으음..."


은색 장발을 가진, 내 또래의 여자였다.


아니 뭐, 모르는 여자가 갑자기 내 침대 위에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것 쯤은 상관없다. 옛날에도 자고 일어나보니 모르는 녀석이 동료라며 내 방에 있을 때는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과 이 여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두 개 있었다.


이 여자는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지만, 그 녀석들은 어딘가에서 시체가 되어 널부러져 있다는 것과,


적어도, 그 녀석들은 옷은 제대로 입고 있었다는 거다!


왜 입고 있는 거라곤 와이셔츠 한 장에, 흰 팬티 한 장 뿐이냐고! 보는 내가 더 민망하단 말야!


"이봐, 여자! 일어나 보란 말야!"


"으..."


여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더니 눈을 두 번 깜빡인다. 그리고,


"...잘 잤어?"


"원래 잘 잘 계획이었는데 어느 누군가께서 잠을 확 깨워서 잘 못잤다. 왜!"


"...그랬구나... 안 됐네... 그럼...잘 자..."


다시 눈을 감고 눕는다. 이불까지 덮으면서.


"눕지 마!"


"...우아아..."


덮은 이불을 치우자, 몸을 감싸안고 떨기 시작한다.


"...으으... 추워..."


"추우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으란 말야!"


"...으... 알았어..."


떨며 일어난 여자는, 와이셔츠 단추를 아래서부터 풀기 시작한다.


"으아악! 뭐하는 거야! 장난하냐!"


"...? 왜 그래?"


"옷을 입으랬지, 누가 벗으랬어! 심지어 남자 앞에서 뭐하는 거야!"


"...옷을 입으려면... 일단 이걸 벗어야 입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부끄럽지도 않냐!"


"...? 뭐가?"


그러더니, 다시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제꼈다.


"아오, 그냥 내가 나가있는다!"


"...왜?"


"몰라도 돼!"


문을 세게 닫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같이 있던 녀석들은 기본 상식같은 건 결여되지 않았는데, 저건 뭐야!







"...그럼 이거로 오늘 조회는 마치겠다."


벌처스 사장, 내가 부르는 말로는 꼰대의 말이 끝났다.


벌처스에는 아침마다 이런 귀찮은 조회가 있다.


뭐, 조회라고 해 봤자 오늘 해야 할 할당량, 주의사항 등 별 시덥잖은 것들 뿐이다.


"아, 참. 나타, 넌 잠시 나 좀 보자."


"알았어."


마침 나도 저 꼰대에게 볼 일이 있었는데, 잘 됐구만.




'사장실'


왜 여기 이름이 꼰대실이 아닐까, 참 아쉬울 따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두 얼굴이 있었다.


"여, 왔냐."


"...안녕."


우선 한 명은 내가 잘 아는 얼굴의 꼰대. 담배를 물고는 한 손을 들고 나를 반기고 있다.


아침의 그 여자였다. 이번엔 다행히도 와이셔츠 한 장에 팬티 한 장으로 반기고 있진 않았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 색과 흡사한 흰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여자는 흡사 소풍이라도 나가는 듯 한 차림새였다.


다만, 보통 소풍가는 여자라면 옆에 자신의 몸 만한 낫을 들고 다니지는 않겠지.


"그래서, 꼰대. 저 여자는 대체 뭐야?"


"...우우... 내 인사 안 받아줬어..."


무시했다. 바보같은 녀석에게 어울려주기 싫다.


"누구긴 누구냐. 평소처럼, 너의 파트너가 될 녀석이다."


"난 옷 한 장이랑 팬티 한 장만 입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자랑은 파트너 하기 싫은데. 적어도 상식이 있는 거로 가져오란 말야. 망할."


"...옷이 두 벌밖에 없어... 그래도... 팬티는 많아... 볼래...?"


라고 말하면서 앉은 채로 손을 치마 아래로 집어 넣...으면 안 되잖아!


"필요 없어! 니 팬티따위에 관심 없다고!"


"...우..."


삐친 표정으로 손을 옷 안에서 빼낸다.


"이봐, 꼰대! 나보고 지금 저런 노출증 환자같은 여자랑 파트너를 하라고?! 장난해?!"


"하기 싫어도 하게 될 거다."


"헹! 어떻게? 해 보시던가!"


꼰대는 리모컨같이 생긴 걸 꺼냈다.


"그 목걸이로 충격 요법이라도 가해주랴?"


"헹!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거든?"


"너 월급 감봉."


"정말 훌륭한 파트너를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돈으로 위협하다니, 역시 꼰대들은 더럽다.


"쳇... 귀찮게 됐구만."


"뭐, 그럼 잘 부탁하마. 너에게 말해둬야 할 게 몇 개 있다."


내 목의 목걸이만큼이나 귀찮은 게 하나 더 추가됐다. 에휴.













꼰대에게서 그 여자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그 여자가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 어딘가에서 어릴 때부터 전투병으로 길러졌다는 듯 하다.


즉, 전투용 용병이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면 싸우는데 걸림돌이 되진 않겠지.


어릴 때부터 전투만으로 길러져서 그런지,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되어 있단다. 그나마 기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교육받긴 했다나 보다.


하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맨정신으로 그런 옷차림은 안 할테니.


그리고 그 여자의 이름을 들었다. '레비아' 라고 했다.


남을 이름으로 부르는건 원래부터 귀찮다. 그냥 여자라고 부를 거다.


그리고 아까부터 이렇게 혼자만의 생각이 많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이다.


뒤에서 쫄래쫄래 쫓아오는 한 여자로부터 말이다.


돌아봤다. 내가 멈추니까 자신도 멈추고는 그 붉은 눈동자로 가만히 날 쳐다본다.


"야, 여자."


"...응?"


"왜 나한테 계속 붙어있는 거야. 귀찮게."


"...아저씨가... 그러라고 했어..."


망할 꼰대. 애초에 혼자서 다니는게 편한데 이런 건 왜 붙이고 난리야.


"쳇, 맘대로 해. 하지만 여자, 난 너 신경도 안 쓸 거니까."


"...레비아."


"뭐?"


"...여자가 아니라... 레비아... 내 이름..."


"니 이름이 레비아건 뭐건 난 신경 안 써. 애초에 누굴 이름으로 부르는 것 따위 질색이라고."


"...으응..."


조금은 상처받은 듯 하다. 쳇, 알 게 뭐람.


"...저기, 나타 군."


순간 발을 헛디뎠다.


"켁?! 뭐냐, 그 뒤의 '군' 은!"


"...그냥 나타라고 부르기... 쑥스러워서..."


"팬티 한 장에 옷 하나 걸치고 부끄러운 줄은 모르는 여자가 쑥스럽긴 무슨. 참나."


"...우우..."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건데?"


보나마나 시덥잖은 거로 불렀을 거다.


"...이제... 같이 활동하는 거... 맞지...?"


"뭐, 그렇게 된 거지."


"...그럼... 팀... 맞지...?"


"일단 같이 다니는 거니까, 팀이라고 하는게 맞겠지."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살짝 웃었다. 수줍어서 웃는 듯 했다.


"...그럼... 팀 이름... 짓자..."


역시. 생각대로 시덥잖은 거였다.


"뭐하러 지어. 그런 의미없는 거."


"...있어... 의미..."


에휴. 어쩔 수 없지. 그냥 비위나 맞춰 줘야겠다.







"그.러.니.까!"


어느새 난 제안한 사람보다도 훨씬 열정적으로 팀의 이름을 짓고 있었다.


"마스터 오브 다크 플레임! 얼마나 멋지냐!"


"...바보같아..."


"너 지금 내 네이밍 센스를 무시했냐?! 그러는 너는 얼마나 멋진 이름인데?"


적어도 마스터 오브 다크 플레임보단 멋진 이름으로 했겠지.


"...늑대개."


"뭐...?"


"...이 이름이... 좋아..."


뭐냐, 이 대충 막 지은 듯 한 이름은...


"뭐, 그 평범한 이름에 뜻이라도 있어?"


"...응... 들어줄래...?"


뭔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뭐... 들어 줄게."







여자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가 살던 곳은 해외의, 전기도 통하지 않는 그런 시골이었다.


그녀에게 부모는 없었다. 어린 시절 집에 들이닥친 불한당 때문에 부모님은 모두 죽고, 자신 혼자만 부모님에 의해 숨겨져서 살았다.


그 후, 정처없이 떠돌다가 숲을 발견한 것은, 그녀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누군가가 숲에 버린 집을 발견해서 그 곳에서 생활했다. 마치 숲에 사는 한 마리의 동물처럼.


어느 날, 그녀는 그 숲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추억의... 소년이라고... 난...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


숲에서 바라본 하늘을 아직 덜 차올랐지만 꽤 둥근 모양의 달이 채우고 있었다. 소녀는 그저 숲 속을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아직 밤이었지만, 그렇게까지 어둡진 않았다.


이 시간에 누가 이 숲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숲 속을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와 부딪힐 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마 부딪힌 소년도 그랬을 거다. 소년도 누군가 이 시간에, 이런 숲에서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한 적 없을 것이다.


그 소년도 아마 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발이 가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게 부딪힌 두 남녀는, 사정도 잘 모른 채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아... 아야... 아이고... 엉덩이야..."


"...아파..."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이 부딪힌 자를 확인한다.


소녀는 자신과 부딪힌 검은색 단발머리의 남성을, 소년은 자신과 부딪힌 은색 장발머리의 여성을 확인한다.


"...누구야...?"


"그러는 넌 누군데? 이런 산 속을 함부로 다니는 건 위험하단 말야. 특히 너같은 여자애가."


"...안 위험해..."


"위험해. 특히 너같이 예쁜 여자애는 이상한 사람들이 잡아갈 수도 있단 말이야."


소녀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예쁘...다니...?"


소년은 웃는다. 웃으며 달빛에 비친 소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검은 눈동자도, 그 은빛의 머리카락도... 너 참 예쁘다."


소녀는 갑작스런 소년의 말에 어쩔 줄을 모른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은 소년의 말에 대답하듯이 빛났다.


"...뭐... 뭐야... 그게...갑자기... 이상해..."


소녀는 쑥쓰러워 고개를 숙인다.


"그나저나, 넌 이름이 뭐야?"


"...레비아..."


"레비아라... 이름도 예쁘네. 아, 내 이름은 존이야. 반가워, 레비아."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되었다.


존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그에게도 부모는 없었다. 엄마는 자신을 낳고 사망, 아빠는 그를 이 숲에 버리고는 도망가 버렸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아빠에게서 버려진 걸 깨닫고는 울음을 터뜨렸었으나, 그렇게 있어봤자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 숲에서 살아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숲 어딘가에서 집을 발견해서, 그 곳에서 주인 몰래 숨어서 살았다는 모양이다.


"...근데... 그게... 우리 집이었다니..."


"평소에는 잘 찾았는데, 그만 오늘은 길을 잃었지 뭐야."


자신의 외모를 칭찬해주던 소년이 알고보니 집에서 몰래 살고있던 손님이었다니. 참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인연이었다.


"...앞으론... 숨지 마..."


"응...?"


"...같이... 지내자..."


"어, 저... 정말이야...?"


"...응... 같이...살자..."


"고... 고마워! 고마워, 레비아!"


소년은 소녀를 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그만... 숨...막혀..."


남자아이가 자신을 껴안고는 기뻐하는 것을, 여자아이는 힘들어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들에게 의지할 어른이 없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직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 모자랄 아이들이 직접 물을 얻고, 식량을 찾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갔다.







별이 잘 보이는 언덕 위, 어린 아이 두 명이 앉기 적당한 크기로 잘려진 나무 밑동이 있었다.


존과 레비아는, 가끔씩 그 나무 밑동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늘을 보는 날이었다.



그와 그녀가 만난지 얼마나 지났을까, 만났을 때 차오르지 않았던 달은 어느새 둥그런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달빛이 강하게 비췄다.


"레비아, 넌 꼭 늑대같아. 한 마리의 예쁜 은빛의 늑대."


"...늑대가... 예뻐...?"


"응. 뭐랄까... 고귀하고 아름다운 느낌이야. 레비아처럼."


"...내가 늑대같은 건지... 늑대가 나같은 건지... 하나만 해 줘..."


"하하, 글쎄."


그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힘든 시간을 잊을 수 있었다.


"한국에는, 벌처스라는 기관이 있대."


"...들어 봤어... 유니온도 있잖아..."


그 당시, 한국의 유니온은 유명했다. 차원전쟁을 끝낸 알파퀸이라는 사람이 한국인이었으니까.


존이 말을 꺼낸 벌처스라는 곳은 유니온 협력기관으로 알려져있었다.


"우리 나중에 크면, 그 곳으로 가서 같이 일하자."


"...왜 하필 거기야...? 유니온은...?"


"유니온은 위상력? 인가하는 그런 힘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걸로 알고있어. 차원종을 잡는 게 임무라고 들었으니까."


"...그런가..."


소년은 아까 하던 말을 이었다.


"아, 아까 하던 말 계속. 같이 벌처스에서 일하는 거야."


"...존이랑 같이라면... 좋아..."


그녀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오, 좋아! 그럼... 우리, 팀 이름 지을까?"


"...뭐야 그게... 유치해..."


"아냐! 엄청 멋진 이름을 지을 거니까, 기대하라구! 음..."


그러고는, 존은 몇 십 초간 고민하는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음... '늑대개'. 이거 어때?"


"...왜 그런 이름이야...?"


"레비아 넌 한 마리의 은빛의 늑대. 난 그런 널 지켜주는 충견이 되겠어. 그러니까, 늑대개."


"...푸훗..."


레비아는 웃었다.


"어... 왜 웃는 거야? 이상해? 다른 이름으로 할래?"


당황해서 허둥대는 존의 모습을 보고, 레비아는 그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니, 좋아. 고마워, 존."


달빛은 조용히, 밝게 그들을 비췄다.










"뭐,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 여자가 팀 이름을 늑대개에 집착하는 이유를 대강 알 것 같았다.


"...팀 이름은... 늑대개가... 좋아..."


"...잠깐, 그럼 내가 개가 되는 거냐?"


"...나타 군은... 개같아..."


"너... 그거 욕이냐...?"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뭐, 팀 이름은 그거로 한다 치고, 그래서 그 존이란 녀석은 어떻게 됐는데?"


"...죽었어."


이런. 안 좋은 곳을 찌른 것 같다.


"...아니... 죽였어..."


어이, 잠깐... 죽였다는건...


"...내가... 죽였어..."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노을빛의 여느 저녁이었다.


레비아는 평소라면 돌아올 시간에, 돌아오지 않는 존을 기다리며 걱정하고 있었다.


"...늦네... 가 볼까..."


혹시 모를 불안감에, 그녀는 집안에 있던 낫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존... ...존... 어딨어..."


작은 목소리로 존을 부르며, 레비아는 숲을 걸어갔다.


그러던 중,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존?"


그녀 자신이 낼 수 있는 꽤나 큰 소리로 존을 불렀다.


"오지...마...!"


존의 목소리였다.


"...존...?"


"...이 쪽으로... 오지... 마...!"


"...무슨... 일이야...?"


레비아는 그의 경고를 들었지만, 존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존과, 성인 남성 셋이 있었다.


남성 둘은 쓰러진 존 앞에 있었고, 다른 남성 한 명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존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토막에 피가 묻어있었다.


"뭐야... 여자애잖아...?"


한 남성이 레비아 쪽을 쳐다봤다. 다른 남성도 그녀를 쳐다봤다.


"일단 잡아놔."


"레...비아... 도망...쳐...!"


"...어...?"


존의 말을 듣고 빠르게 몸을 뒤로 돌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레비아는 성인 남성에게 왼팔을 잡혔다.


"...놔...!"


오른손으로 들고있던 낫으로, 남성의 손목을 강타했다.


"아악... 이 년이...!"


약했다. 피만 날 뿐, 베이진 않았다.


"윽...!"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맞고, 레비아는 쓰러졌다.


"레비아...!"


"넌 닥치고 있어!"


퍽. 남성이 존의 배를 발로 찬다.


"커헉...!"


"야... 나 이 년 죽여버려도 되냐...?"


레비아의 머리를 잡고 끌고오는 남성이 씩씩거리며 물었다.


"아흑...아...파...!"


"아파...? 아프냐...?"


남성이 레비아를 보며 화낸다.


"그만...둬...!"


"이 자식도 시끄럽네. 먼저 우리쪽 사람을 죽인건 너잖아? 어디서 피해자인 척 연기야!"


"먼저... 있는 거 다 내놓으라고 한 게... 누군데...!"


아마도 그들은 사냥꾼인 듯 했다.


"아, 짜증나. 그냥 둘 다 죽여버릴까...?"


손목을 다친 상처로 짜증내는 남성이 말했다.


"야, 여자. 살고 싶냐?"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있던 남성이 말했다.


"아...으윽..."


"뭐, 대충 그렇다는 걸로 받아들이고."


남성은 레비아를 존쪽으로 던져 버렸다. 아까 빼앗았던 낫도 던져주었다.


"그거로, 그 자식 죽여. 그럼 넌 살려주마."


레비아는 혼란에 빠졌다.


죽인다...?


자신이, 존을...?


레비아는 낫을 들었지만, 이거로 어떻게 해야할 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레...비아..."


존이 그녀를 불렀다.


"...존...!"


레비아는 그를 보았다.


존은 레비아의 손을 잡았다.


"미안... 지켜줬어야 하는데... 못... 지켜줬네..."


"...아냐... 아냐... 존..."


레비아의 눈은 어느새 눈물로 가득 차있었다.


"...레비아...


...마지막까지... 널... 지켜줄게..."


존은 잡고 있던 레비아의 손을,


낫을 쥐고있던 레비아의 손을,


자신의 목으로 빠르게 끌고갔다.





순식간이었다.


존의 목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피를 흘리게하는 낫이 박혀 있었고,


그 낫을 박은건 자신이었다.


낫을 뽑는다. 그러나 존의 목에선 피가 멈추지 않는다.


아냐,


아냐,


아냐,


이건 아냐.


레비아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이건 아냐. 아니라고.


"뭐야, 진짜 죽였네."


"쩝. 뭐, 할 수 없지. 이 계집은 어떡할까?"


"죽이긴 뭐하고, 그냥 팔아버릴까?"


이런 남성들의 말조차, 그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냐.


아냐.


존을 죽인건 내가 아냐.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아냐?


그럼... 누가...?


존을 죽인건...?


"야, 계집."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는 사람.


성인 남성이다.


존을 죽인건...?


그래. 내가 아냐.


존을 죽인건...


"...너..."


그 남성을 바라보는 레비아의 눈은,


"...죽일 거야..."


남성의 목이 내뿜는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레비아의 몸에선,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성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자신이 모두 죽여버린 뒤였다.


레비아는 존을 보았다. 이미 그는 움직이고 있지 않다.


레비아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봐, 여기야! 여기서 위상력 반응이 감지됐어!"


몇몇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여기 사람들이 쓰러져있어! 다 죽은 것 같은데?"


누군가 레비아를 보고 말했다.


"잠깐만! 여기 살아있는 여자아이가 있어!"


그들은 다가와서 레비아에게 묻는다.


"네가... 이들을 죽인 거니?"


레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 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쩌죠?"


한 남자가 다른 이에게 묻는다.


"뭐, 비켜봐. 내가 말하지."


목소리가 굵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에 담배를 버린뒤 짓밟아서 끈다.


그리고 레비아 앞에 앉는다.


"안녕, 난 벌처스의 사람이란다. 들어본 적 있니?"


레비아는 존이 언젠가 말했던 기억이 났다. 고개를 끄덕였다.


"본론만 말하지. 너, 우리랑 함께 가지 않을래? 널 벌처스의 요원으로 만들어 주마."


레비아는 고개를 돌려 존을 바라봤다.


"...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 주마. 같이 간다면 말이지."


레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존을 응시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그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숙소까지 데려가 줘라. 그...교관한테도 연락해두고. 아마 내일이면 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지. 아, 참. 이름이 뭐니?"


"...레비아..."


"그럼, 잘 지내보자고, 레비아."


남자 몇이 레비아를 데리고 숲 밖으로 나간다.


레비아는, 존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 후로... 전투를 배우고... 이렇게 된 거야..."


그 뒤로 몇 년 간, 훈련받고 전투병으로 됐다는 건가.


"참 어린 시절 힘들게 사셨구만."


"...나타 군은...?"


"나? 난 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말이지. 그냥 정신차리고 보니 여기서 일하고 있었지 뭐."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뭐,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도움될 것 하나도 없다.


"근데, 궁금한 건데 그거랑 네가 옷을 잘 안 입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그 집에서 살 때... 옷이 두 벌 밖에 없어서... 더러워 질까봐... 평소에... 벗고 살았어..."


"그...남자랑 같이 있을 때도...?"


"...응..."


"역시 노출증 환자 맞잖아!"


지금이 나아진 거라니 그건 그거대로 다행이지만...


"...팀 이름은... 늑대개로 해 주는 거 맞지...?"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뭐, 괜히 싸울 때 귀찮아지지 않도록 충고라도 해 둬야겠다.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난 싸울 때 널 지켜줄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지만, 노력은 해 줄게. 발목이나 잡지..."


돌아보니, 낫의 손잡이를 껴안고 자고 있다...


"아 정말 귀찮게... 땅바닥에서 자면 어쩌자는 거야..."


귀찮지만, 일단 나보고 이 녀석을 맡으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원하지 않던 파트너를 얻어, 그 파트너가 자고 있는 걸 업고 돌아가는 운수 더럽게 없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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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소년은 어쩌죠?"


레비아를 데리고 간 요원 둘을 제외하고는 남은 요원 둘과 간부 한 명이 남아서 현장을 보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것은 머리를 강타당해 출혈로 사망한 성인 남성 하나, 목이 날아가서 사망한 성인 남성 하나, 멀쩡하지 않은 시체

하나.


그리고, 목 앞부분에 구멍이 난 채 쓰러진 소년이었다.


"...이봐, 부활 캡슐 있나?"


"없습니다. 저번에 실수로..."


"...뭐 그렇다면."


간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활 캡슐을 꺼내 든다.


그 캡슐을 소년의 입 안에 넣고, 목으로 들이민다.


소년의 목의 상처가 아물어갔지만, 흉터가 남았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소년의 목에 장착시켰다.


"꼴 보기 싫은 상처는 안 보이는 게 좋겠지."


남자는 일어나며 담배에 불을 지폈다.


"이 녀석은 내가 키워보도록 하지."


"저...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방금 전 감지된 위상력은 한 명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어. 어쩌면 이 아이에게도 잠재적인 위상력이 있는 지도 모르지."


후, 하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남자는 말했다.


소년의 머리카락은, 검은 색이었지만 살짝 푸른 빛을 띈 검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정신을 차리려면 삼 일은 걸릴 거다. 순간적 쇼크로 신체 기능이 손상됐을 수도 있고,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군."


그 말을 듣고, 요원들은 소년을 들어올려 차에 태웠다.


남자는 담배를 다시 버린 뒤 밟아서 껐다.


"...늑대라도 보고 울부짖을 듯 한 달이구만."


보름달에서 벗어난 둥그스름한 달을 보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차에 탔다. 차는 병원을 향해 이동했다.




삼 일 뒤, 소년은 깨어났다.


소년의 몸은 건강했다. 신체 기능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만,


"여긴... 어디죠...? 뭐지...?"


소년은 기억을 잃었다.


남자는, 정신을 차린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년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넌 우리 팀의 일원이다. 임무 중 심하게 다쳐서 기억을 잃은 듯 하다. 너, 이름은 기억하나?"


"이름... 이름이... 뭐지...?"


소년은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렸다.


남자는 그런 소년에게 말했다.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가 널 도와주마."


그런 남자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소년은 묻는다.


"당신은 누구죠...? 전 누구죠...?"


"난 뭐, 그냥 별 볼일 없는 꼰대다. 그리고 네 이름은..."


자신을 꼰대라고 소개한 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타. 그게 네 이름이다."


존. 그런 이름이었던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네, 잘 부탁드려요, 꼰대 씨!"




소년, 나타의 목에 있는 목걸이 장식이 순간 빛났다.

2024-10-24 22:29: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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