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어느 화창했던 가을날
순백의요우무 2014-12-25 0
“이세하, 타이탄 출몰이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다. 다만 과거와 비교하자면 이는 잘못된 표현일 것이다. 언제나 내 손에 들려있던 게임기는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다. 언제나 내 심기를 건들던 그 아이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과거와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어버렸다. 언제나 천진난만했던 이의 표정도 더 이상은 순진한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낯짝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겠는가. 그나마도 나를 격려해주는 그 남자 한명이 되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이것들이 모두 저 타이탄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출몰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시작되려는 날, 그 누구도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SS급의 차원종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네, 젖는 건 딱 질색인데.”
“어쩌겠어요, 이 근방에서 갑자기 무전이 끊겼다고 하니 누군가는 확인해 봐야죠.”
“그 게임기는 좀 놓고 말하지 그래?”
최근 들어 고등급 차원종들의 출몰이 잦아진 부산에 파견된 클로저 요원들의 무전이 두절되었다. 그에 이를 조사하기 우리가 보내진 것이다. 아마도 이동 중 차원종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정되지만 어째서 현황 보고 하나 없이 부산에 접근하자마자 수신이 두절되었는가에 대한 조사가 현 임무의 주목적이다. 본부에서는 실종 요원들의 생존 여부는 기대할 수 없으니 상황 정리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우리가 실종 지점에 다다름과 함께 비도 점점 억세져갔다. 만약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클로저 팀을 공격한 차원종들은 틀림없이 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어떠한 습격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 경로를 따라 이동해 보아도 중간중간에 몇몇의 차원종들과의 조우가 있었을 뿐 그 어떤 흔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에 김유정 요원이 본부에 연락을 해보았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슬비가 자판을 몇 번 두드리더니,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며 주목을 요구했다.
슬비는, 실종 전 클로저 팀이 보낸 무전과 무전 당시의 위치를 비교해 보았을 때, 무전의 내용이나, 무전을 보낸 시간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고 했다. 따라서 슬비는 두 개의 상황을 엮어 생각해본 결과, 작전지역의 중심에 무언가 특수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볼 가치가 있다며 이를 조사해 볼 것을 요청했다. 김유정 요원은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이대로 돌아가기에도 그렇고 무전 응답을 기다리는 것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단, 단순한 정찰 임무일뿐, 지나친 활동은 자제할 것을 일러두었다. 어떠한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만약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나저나, 슬비는 분명 무전 도달 시간의 격차가 접근도에 따라 길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종된 요원들의 위치도 이를 따라가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슬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가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마도 내가 듣고 있지 않았던 걸 수도…….
“따라서, 실종된 요원들의 위치는 지금 쯤 대략 이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보에 따르면 중장비들을 수송 중이었다고 하니 빨리 출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과연, 내 예상이 적중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에 대한 희망 또한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 현 목표는 실종된 요원들을 찾는 것을 주로 하고, 최대한 서로 거리가 벌어지는 일은 없도록 해.”
“네.”
“본부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나요?”
“아, 그래. 지금 유리가 헬기로 이동 중이라고 하니 곧 만날 수 있을거야.”
새로운 고공 낙하 기술을 시험한다던가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이전에 한번 들어본 적이 있다. 어떤 차원종의 능력을 기술화하여 클로저 요원들이 임무에 보다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서유리가 최초로 시험하게 된 것이다.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대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는 차량에 탑승해 목표 지점으로 이동 중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언젠가 내게 동기를 부여해주곤 했던 그런 광경이었다. 새파란 초목들, 새들은 지저귀고 개들은 이리저리 뛰다니며 춤을 춘다, 아니 춤을 추곤 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것은 불안한 목초들과 파괴만이 지나간 황무지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초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라고 그 모습이, 모든 것을 외면하던 나에게 마음의 환기를 시켜줬던 것이다. 그때서야 그 책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느낄 수가 없다. 과거의 감상은 그저 애들 장난처럼 변해버려 더 이상 내게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임무의 목적지일뿐.
“도착한 것 같네, 그런데…….”
“저건 차량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밖을 내다보니, 그곳에 있던 것은 확실히 차량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수송중이라던 중장비의 정체가 저런 것이었다니…….
그것을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의 목적은 적의 근거지에 최대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게이트를 확보하는 것, 저들이 수송하던 중장비란 다목적 이동식 초소다. 기지 자체가 엄청난 위상력을 내재하고 있는데다가, 접근하는 모든 차원종들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포탑도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더욱 이목을 끄는 것은 벌처스에서 개발했다던 차원 개방 이동기라고 불리는 순간 이동기이다. 안전상의 문제로 아직까지 사용된 적이 없다는 것이 공식 성명이었다만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초소에서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곤 우리를 살피며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들이 본부에서 파견한 수색팀인가 보군요. 김용식입니다, 굉장히 안 좋은 시기에 오셨군요.”
그의 목소리는 그렇게 거칠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갑옷은 거기에 웅장함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김유정입니다, 실종은 아니었나보군요. 본부와는 연락이 됬나요?”
“방금 연락 받은 참이었습니다.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자세한 이야기는 안쪽에서…….”
그는 몇가지 신호를 보낸 뒤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초소로 이동하면서 그는 자신의 팀이 겪어낸 여러 가지 무용담을 자랑했다. 맨손으로 중형 차원종을 제압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저 갑옷의 위력인가?
초소 안은 굉장히 편해보였다. 일반 사람에게가 아닌 군인으로서 굉장한 편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 통제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팀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사지에 소수로 투입되어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목표를 섬멸하거나, 아이템을 회수해오는 임무를 맡는 특수 강습팀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입고있는 갑옷들도 모두 그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작전의 경우 알 수 없는 신호를 발산해내는 무언가를 회수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현재의 기이한 현상의 주원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본부로부터의 직접적인 지원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현재 당신의 상관이 누굽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김유정 요원의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저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눈치를 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슬비가 김유정 요원을 대신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관은 유니온 본부이며, 현재 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한 상황임에 따라 작전권을 인수하겠다 그 말인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우리에겐 최고의 장비가 있습니다만, 당신들의 임무는 실종된 클로저 요원들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이 시간부로 당신들의 임무는 완료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당신들에게 더 이상 임무가 하락될 일은 없으니 우리와 합류하라는 겁니다.”
일리는 말이었으나, 김유정 요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요, 작전권은 넘기지 않겠습니다. 현재 우리의 목표는 이상현상의 정체를 밝히고 정보를 수집해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신에게 우리 요원들을 넘겨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이 말을 들은 김용식 요원은 상당히 불쾌해 보였으나 냉정함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당신의 뜻은 알아들었습니다.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만에 하나 생각이 바뀌신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곧 다시 만나게 될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초소를 뒤로하고 현장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슬쩍 슬비쪽을 바라보니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금 그 일 때문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만, 어느 쪽에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그저?
“확실히, 그 사람의 목적은 우리의 목적과 상충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장비들만 봐도 알 수 있어. 우린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렇긴 하다. 일반적인 임무에 저런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니까. 어쩌면 외곽부에 접근하기도 전에 후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저거너트………, 어째서 저것들이 이곳에?”
“저거너트요?”
“18년전, 차원문을 차단시킬 때 엄청난 수의 클로저 사상자를 낸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야. 어떤 방법으론가 모두 처리했다곤 하지만……, 18년 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녀석들이 어째서 이곳에?”
내 어머니는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차원문을 차단했다는 건가…….
어찌됐든, 저 녀석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18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긴 저희에게 맡기고 잠시 물러나 계세요.”
전투가 시작된 지 벌써 30분이 넘게 지났다. 고작 두 녀석을 상대하고 있을 뿐인데 체력은 바닥나고 저 녀석들은 도무지 쓰러질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대체 저 녀석들을 무슨 수로 쓰러트렸다는 거지?
그때, 어디선가 매우 친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꺄하하하하! 아, 도착했어.”
세 명의 사람이 헥사부사를 타고 달려왔다.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너무 무리를 하는 군, 다들 물러나있어.”
그 말을 꺼낸 건 바로 제이였다. 그리고 미스틸테인이 그를 뒤따랐다.
그들은 처음보는 모듈을 장착하더니 곧바로 저거너트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우리가 30분을 넘게 지속했던 전투를 단 20초만에 종결시켜버렸다.
“이야, 이거 정말 강력한데요? 이 엄청난 위력 좀 보세요!”
“다들 몸조심 좀 하라고, 건강한게 제일이니까. 이 녀석들이 뭐하는 녀석들인진 알고 덤빈건가?”
“아, 네. 뭐……, 대충은 알고 있었죠.”
“일단 돌아가도록 하자.”
제이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모두를 통솔했다. 예정되었던 대로, 아까의 그 초소로.
초소 앞에선 김용식 요원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맞았다. 그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기분 나쁜 띠웠다.
“어떠셨습니까? 저거너트를 처음 상대해본 소감이.”
“잡담은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러시죠.”
김용식 요원은 큰 소리로 전투 준비를 하라고 말하며 우리를 인솔했다.
상황실에서 제일 먼저 화제가 된 것은 당연스럽게도 작전권 문제였다. 그에 김유정 요원은 김용식 요원과 그 하의 요원들을 도우나 작전권은 넘기지 않겠다고 가력하게 주장했다. 김용식 요원도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상황에 따라 현 작전의 오퍼레이터는 슬비가 맡게 되었다. 가장 적합한 장비를 가졌단 이유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아이템 회수를 목적으로 한 강습팀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작전권에 관한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다음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어떻게 저 무식한 놈들을 처리하느냐, 그 답은 바로 제이 요원에게 지급했던 모듈에 있다.”
모듈이라면 방금 제이가 장착했던 그?
“이건 PE-1021라고 하는 특수 모듈이다. 차원 전쟁 승리에 대한 키포인트이기도 하지, 이것으로 우리는 과거의 차원문 혈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고작 저 모듈 하나로 전쟁에서 이겼다고요? 말도 안 돼요.”
“우리의 문제점은 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적들은 나날이 강해지는데 우리의 기술은 전혀 진보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상층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거너트를 무조건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것이 차원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이 안에는 우리의 적을 아는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의 연설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가 18년 전 차원 전쟁에 참전했다는 말도 들었고, 자신이 저거너트를 생포한 장본인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말해주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었다.
“그 갑옷은 무슨 특성을 갖고 있는 건가요?”
이렇게 물은 이유는 이곳의 요원들 모두에게서 위상력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육중한 갑옷들만이 눈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의 위상력을 방출해내고 있던 것이다.
김용식 요원은 날더러 눈썰미가 좋다며 칭찬하며 말했다.
사실 자신들은 클로저 요원이 아니었다고 한다. 위상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사실 군인이었고 과학자이기도 했다는 등 자신의 임무는 차원종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따른 기술을 창조해내는 것이고, 이 갑옷, 수트의 원형이 되는 것이 그의 첫 발명품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그저 피라미에 불과하지 않는 녀석들의 외피와 저거너트에 대한 기초 분석 자료만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이를 군용화 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목표가 생포 뿐 이라면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만 하다고 판단, 곧바로 저거너트를 생포해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수트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위상력이다. 김용식 요원의 박사로서의 견해에 따르면 저거너트의 무시무시한 방어력과 파괴력은 단순 외피와 체격에만 의존되는 것이 아닌, 위상력을 표면화시켜 그 위력을 기존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특수한 능력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김용식 요원은 수트 자체에 내재시켜 위상력 발현자가 아닌 일반인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것이다. 그리고 수트의 위력을 보강새주는 PE-1021 모듈에는 수트의 능력, 즉 저거너트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기술이 탑재되어있다. 문제는 이 모듈이 비록 토글 방식으로 사용되긴 하나, 그 순간 수트의 방어력도 손실되기 때문에 위상력 발현자가 아니라면 다소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기술을 이들은 천번이 넘는 작전에서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이때에도 김유정 요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이 말한 저거너트라는 녀석들은 분명히 차원 전쟁의 막바지에 소수만이 출몰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고요, 그런데 지금 녀석들은 도시 외곽에서 나타났습니다.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정유림 요원?”
김용식 요원이 단말기를 가리켰다. 그리고 정유림 요원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보시게 될 자료들은 모두 극비사실입니다. 18년 전…….”
저거너트의 첫 물몰 이후로 총 네 번의 출몰이 있었다. 네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특정 아이템을 사수하고 있었다는 것, 유니온 상층부에서는 그 아이템들의 보호를 위해 모든 관계 사건들을 비밀리에 처했다. 김유정 요원은 아무리 그래도 저거너트의 돌발적인 출몰에 어떻게 대비해서 그 누구도 저거너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냐고 의문을 표했지만, 저거너트의 출몰에는 일정한 위상력 파장이 발산된다는 것을 알아냈기에 다른 이들이 그들을 보기 전에 저거너트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즉, 우리가 이곳에서 저거너트를 맞이한 것은 의도된 상황이라는 의미일까?
정유림 요원의 말이 끝나길 무섭게 김용식 요원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런고로, 지금부터 우리는 저 멍청한 녀석들을 모두 몰아내고 아이템을 회수한 뒤 전원 무사 귀환한다.”
왠 일로 분홍머리 소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정말 자신감 넘치시네요.”
브리핑이 끝나고, 상황실을 나오니 모든 준비가 끝나있단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준비력이라면 어떠한 적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출발하기 직전, 김용식 요원이 차량에 탑승하며 말하길.
“아, 소개가 늦었군. 해골 군단 1대대장 김용식 대령이라고 하네.”
그의 모자에 박혀있던 문양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별 다른 이상이 보이나?”
“12시 방향에 저거너트 하나, 2시 방향 스캐빈저 다섯 그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독수리 1호, 준비됐나?”
시간은 대략 오후 6시경, 모두들 전투 상황에 분투하다. 김용식 요원은 이전보다 훨씬 비장해진 모습으로 작전에 임하고 있었다.
“좋아, 잘들 듣게.”
김용식 요원이 무전을 끝마치고 우리에게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정유림 요원의 저거너트에 대한 저격을 시작으로 스캐빈저 무리를 단번에 제압하고 10시 방향의 건물 창가에 잠복중인 녀석들을 처리한 후 표시된 지점에서 재정비한다. 알겠나?”
김용식 요원은 정유림 요원에게 몇 개의 탄창 묶음을 쥐어주며 작전에 돌입했다. 모두 권총 규격 탄창들이었다.
한번의 총성이 들렸다. 정유림 요원의 저격이 시작된 것이다. 곧바로 김용식 요원의 부대가 출동했다. 그들은 스캐빈저 무리를 단숨에 제압한 뒤 저거너트에게 곧바로 돌진했다. 순간 김용식 요원의 예측대로 창문에서 적들이 뛰쳐나왔다. 우리의 차례가 온 것이다.
모두들 전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잠복해 있던 적들의 수도 상당히 많았던 탓에 나는 눈앞의 정신이 팔려 내 뒤의 적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하야!”
그때였다. 바람이 거칠게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흑발의 장발을 한 소녀가 장검을 축으로 낙하하며 내 뒤의 적을 날려버렸다.
“자 자, 다들 차례대로 줄들 서라고.”
갑작스런 만남에 반응할 시간도 없이 적들은 계속해서 몰려왔다. 유리는 김유정 요원이 던진 탄창 묶음을 낚아채며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은 채로 끝이났다.
“일단 서둘러서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자.”
우리는 김용식 요원을 선두로 김유정 요원을 따라 목표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각 팀의 모든 멤버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유리는 곧바로 모듈을 지급받았고, 현재의 상황까지 전해받았다.
“멋진 낙하였어.”
“헤헤, 사실은 좀 조용히 떨어지려고 했는데, 뭔가 크게 떨어지고 싶더라고요.”
방금 유리가 사용한 기술이 연구 중이라던 그 낙하 기술이다. 유리가 말했던 대로 사실은 소리 하나 없이 잠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상황에 따라 위상력을 그대로 충격에 전이시켜 폭발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김용식 요원이 다가왔다.
“환대에 마땅할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이곳도 얼마안가 적발될 테니 모든 흔적을 지우고 이동하도록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큰 소란을 일으켰는데 우리를 추적하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추적대를 피하려다 오히려 그들을 만나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질 않도록 바라야할 것이다.
모든 흔적을 지우고 김용식 요원을 따라 건물의 틈 사이로 이동하는 중에 요원들의 수다소리가 들려왔다.
“크림슨 저거너트라는 녀석 들어봤습니까?”
“크림슨? 아,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그들은 저거너트의 변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차원의 기회주의자라고들 하지, 어떤 신호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대원을 암살하고 도망친다더군, 그것도 한 명씩 말이야.”
그 얘기를 듣다보면 유리가 사용했던 기술이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도망치지 않는 다는 점?
“쉿.”
김용식 요원의 지시에 모두가 멈췄다.
“저것이 바로…….”
“무슨 일입니까.”
다수의 저거너트들과 차원종들이 기묘하게 생긴 차원종을 중심으로 호위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전원 전투 준비.”
김용식 요원이 매복 지시를 내리고 습격 준비를 하려던 참, 그 차원종이 갑자기 이쪽을 주시하더니 괴음을 내기 시작했다.
“놈을 놓쳐선 안 된다!”
순식간에 상황이 변해버렸다. 김용식 휘하 대원들이 차원종들을 쓸어내며 목표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우리도 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용식 요원은 녀석을 코너로 몰으라며 소리쳤고, 적들은 다급해져 이쪽이 원하는 대로 몰아넣어지는 듯 했다. 목표가 열세에 몰리자 우리는 전투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김용식 요원이 적들에게 돌격하고 그에 따라 대원들도 공격을 감행했다. 그때, 차원종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위상력이 급격히 증폭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용식 요원도 이를 알아차리고 물러나려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어 차원종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쓰러졌고, 다른 대원들은 강해진 저거너트들을 상대하느라 목표 차원종이 그대로 도망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녀석을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져 전투를 뒤로하고 우회로를 뛰어가게 되었다. 누군가가 쫓아오는 듯 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째선지 그 사실을 인지하려고 하질 않았다. 그대로 몇 블록을 걸쳐 계속해서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여러 차원종들을 맞닥트렸지만 놈들은 현재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단 두 개의 소리뿐이었다.
“이세하! 지금 어딜 가는 거야!”
아, 뒤따라오던 것이 슬비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의 발길은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에 씌어 조종당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건을 일으키게 된 **점이 되고 말았다. 내가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된 것은 마지막 한 개의 소리, 가냘프면서도 내 귀에 못처럼 박혀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 단 하나의 어린 소녀의 신음소리였다.
소리를 듣는 순간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나에 의해 남겨진 파괴의 현장이 있었고, 지금까지 보기를 꺼려했던 현장이었다. 차원종의 거대한 검이 슬비의 몸을 관통한 채로 우두커니 서있는 그 모습의 정체는 바로,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다가오는 죽음, 그렇다. 유니온에서 연구 중이던 기술, 그 주체가 되는 존재 '크림슨 저거너트'가 슬비를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아니, 이건 결과론적인 얘기다. 정확히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파괴였다. 내가 이성을 잃고 독단적인 행동을 강행함으로써 일어난 파괴였음을 나는 직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두 번째 실수가 되었다.
나는 목표를, 추적 중이던 차원종에서 슬비를 암살한 저거너트로 바꾸었다. 그리고 녀석을 추적했다. 하지만 녀석은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암살에 성공하기만 하면 흡수한 위상력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어 도망치는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도시의 지형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순간 엄청난 지진이 일더니 고층 빌딩 한 채가 무너졌다.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타이탄이라고 불리는거대 차원종의 첫 출현 장면이었다.
출동 준비가 끝나고 나는 헬리콥터에 타기 위해 건물을 나섰다. 그와 함께 울려 퍼지는 함성은 명예의 함성이요 거짓된 함성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타인의 명성에 의한 기대의 함성이 울려퍼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짓된 사실에 의한 죄악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다. 사람들은 날더러 타이탄을 물리친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그것은 그저 단편적인 사실에 의해 생겨난 거짓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은가? 타이탄은 내가 일으킨 파괴다. 일반인들은 자신이 일으킨 파괴를 다신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싸운다. 소녀의 시기를 받으며, 어떤 남자의 가슴 아픈 격려를 받으며, 나를 거슬리게 하던 그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타이탄의 출몰은 나의 파괴였으나. 김용식 대령의 상처는 나의 파괴가 아니었다. 사실 나의 독단 행동마저 나의 파괴였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모든 게 놈들의 계략은 아니었을까? 사실 놈들을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까? 마치 저들이 우리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일까. 우리 모두가 그날 이후로 죽음의 시련을 받는 것이 모두 놈들의 능력이 아닌가. 우리는 더 이상 알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 날의 비를 맞지 않았던 이가 해결할 수 있다. 멀리서 내다보기만 하는 자가 아닌, 너무 가까워 발밖에 볼 수 없는 자가 아닌, 진실을 알 수 있는 자가 해결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 기록을 읽고 있는 클로저 요원이여,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나의 발목을 붙잡아 놓을 생각을 하질 않는 이 죽음 같은 저주를,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한을.
시간상의 문제로 약간 급전개시킨 부분이 다소 있습니다만 내용 전개상의 문제는 없도록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이게 필터상 걸리는게 좀 많네요
보.지 못하는 자나 보.지 못했다도 필터에 걸려서 다른거로 고치고 시,발점은 어떻게 방법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