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소설 - 下[1]

계란튀김정식후루룹 2015-06-13 3


 술 마시는 소설 下편. - 부제 : 제저씨 호강하는 소설.





 눈을 뜬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잔액이 줄어든 통장이었다. 하하 그래도 가면이가 뒷수습을 어떻게 잘 해줬나 보구나… 나는 내가 방금 막 일어나서 조제한 숙취 해소용 건강 음료를 마셨다. 그러자 두통이 한결 가시며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두통이 해결되자, 어제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 굳게 결심했다.

 "검은양 팀의 어른으로서. 절대로 우리 애들에게는 술을 가르치지 말아야겠어… 정미는 가르치는 게 더 좋을지도?"

 결심을 한 뒤에는 뭐. 언제 나와 똑같다. 늘 그렇듯이 요원복을 챙겨 입고는 출근한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 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유정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얼굴을 찌푸리는 게 숙취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이봐. 유정 씨.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제이 씨 오셨군요!"

 유정 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반기며 웃음을 짓다가 숙취 때문에 다시 찡그렸다. 예쁜 얼굴을 찡그리는 게 보기가 나빠서 나는 아침에 미리 챙겨온 숙취 해소용 건강 음료를 유정 씨에게 하나 주었다.

 "유정 씨. 이거 내가 만든 숙취 해소용 건강 음룐데. 마시면 조금 좋아질 거야."
 "아. 고마워요. 제이 씨."
 "아. 근데 먹으면 살이 조금 찌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어."

 물론 그런 거 없다. 내가 누군가? 약 조제의 달인인 제이다. 그냥 유정 씨를 놀리려고 해준 말이었다. 예상대로 유정 씨는 뚜껑을 따려던 건강 음료를 나에게 집어 던지듯 돌려주며,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사. 소. 한 부작용?? 지금 살이 조금 찌는 사소한 부작용이라고 했어요? 제이 씨!!!"
 "왜 그래? 유정 씨는 거기서 살이 조금 찌더라도 귀여울 것 같은데 말이야."

 화를 내려다가 내가 한 말에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심히 귀여웠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유정 씨의 차림새가 어디 가려는 차림새였기에 슬슬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유정 씨에게 받은 건강 음료를 주머니에 넣었다, 꺼내며 이번 음료는 부작용이 없는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제야 안심하고 마시는 유정 씨는 건강 음료를 마시고 나자 한결 좋아진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제이 씨. 어제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글쎄. 왜 그러는데 유정 씨?"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유정 씨의 말에 몸을 흠칫 떨었지만, 유정 씨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실 어제 술을 마신다고들 해서, 오늘은 숙취로 고생할 것 같아서 아무런 일정을 안 잡아뒀거든요. 그런데 평소 같으면 집에 갔을 애들이 제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해서요. 마음 같아서는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급하게 유니온 경상도 지부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죠."
 "경상도 지부? 거기라면 거리가 꽤 되지 않나? 무슨 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조금 빠듯한 거 아니야?"
 "그래서 원래는 차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오늘만 특별히 선우 란 씨에게 부탁해서 그, 헥사부사? 그걸 타고 가기로 했어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문득 유정 씨의 말에서 어색한 부분을 느끼고는 설마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유정 씨는 헥사부사에 타는 게 처음인가?"
 "네. 그런데요?"
 "God Bless You. 힘내 유정 씨. 응원할게."

 나는 차원전쟁 시절. 전장에 나가기 직전에 한 동료가 항상 말하던 말을 유정 씨에게 말하며 유정 씨의 죽음에 애도를… 아, 아니 유정 씨를 걱정해 주었다. 품 안에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비싼 재료가 잔뜩 들어간 나의 스페셜 멀미약을 꺼내 유정 씨의 손에 꼭 쥐여주며, 나는 유정 씨의 안녕을 기원했다.

 "어, 어라? 제이 씨? 제이 씨!!"

 나는 유정 씨의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숙취가 심한지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있는 미스틸의 모습이었다. 저건 그냥 내 건강 음료를 한 잔 주면 괜찮아 질 것 같았다. 우리 동생은 늘 그렇듯이 PSP를 들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 다만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평소에는 게임을 하면서도 주변을 조금씩 신경 쓰는 모습이 보였는데, 지금은 오로지 게임에만 모든 정신을 쏟아부으며 마치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듯한… 아. 그렇구나. 나는 동생의 상태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리를 살펴보았다.
 유리는… 누,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질 않았어?! 썩은 생선과 같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유리는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릎을 꼭 껴안은 채로 앉아있는 유리는 마치 인형과도 같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유리와 동생의 모습에 대장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뜻밖에 대장은 멀쩡한 모습으로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트북이 뭔가 어색하다? 아… 정정하겠다. 대장은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노트북의 화면을 두들기며 키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하… 만약 책을 들고 있었다면 거꾸로 들고 읽고 있었으려나?
 일단은 가장 무난한 미스틸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미스틸에게 다가가 건강 음료를 건넸다.

 "미스틸. 이건 이 형이 만든 숙취 해소용 건강 음료야. 마시면 한결 좋아질 거다."
 "우으으~ 고마워요.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야."

 미스틸은 내가 만든 건강 음료를 먹고는 한결 좋아진 표정으로 자리에 엎드렸다. 상태를 보자니 아마 잠이 들 거 같았다. 그래 한숨 푹 자고 나면 숙취도 많이 풀릴 거다. 첫 관문인 미스틸을 쉽게 격파한 나는 자신감이 붙어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관문인 유리에게 도전하기로 했다.
 유리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어떻게 해야 저 죽은 눈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고는 조심스럽게 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유리야?"
 "말 걸지 마요 아저씨."

 … 죽은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내 목이 잘릴 것 같은 예리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유리의 모습은 정말…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일단 뭐든지 말해보자는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유리 네가 어제 술…"
 "오빠앙♥"

 주정을 한 것 때문에 충격이 큰 것 같은데… 에? 어라? 응?! 으, 응?! 뭐지?!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내가 당황하는데 유리가 평소처럼, 아니 평소 이상으로, 어색함이 느껴질 정도로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헤헤. 어때요 오빠? 이건 우리 아빠한테도 인정받은 안마 라구요? 에헤헤헤"
 "유, 유리야 너 왜 그래?! 역시 어제 술… 으헉?!"

 마신 게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잘 보니 유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오, 오빠! 목마르지는 않으세요? 제가 물 떠다 드릴까요?"
 "어… 그, 그래 고맙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쯤 되자 이제 나도 눈치를 챘다. 유리야…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나 보구나. 평소에 내가 그렇게 구박을 해도 나오지 않던 오빠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말이다. 가만? 유리가 그렇다는 건 혹시…

 "여기 물 떠왔어요!"
 "응. 고마워. 그런데 이런 부탁하기는 미안한데 우리 동생 좀 잠깐 불러줄 수 있을까?"
 "아니에요. 오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야 이세하!!"

 유리는 내 부탁 아닌 부탁에 활짝 웃으며 세하를 불렀다. 물론 세하는 현실의 감각을 모조리 끊어버린 채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유리의 부름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유리는 아무리 불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는 세하의 모습에,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결국, 유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세하에게 다가갔다. 에구. 저러다가 우리 동생이 아끼는 PSP 부서질라. 나는 유리가 가져다준 물을 홀짝이며 흘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생 어제 술."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유리가 '어제' 랑 '술'이라는 단어에 움찔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우리 동생의 반응이 정말 격했다. 동생은 PSP를 내려놓는 것인지 내려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게 책상에 PSP를 올려두고는,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제이 형! 부르셨어요?"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난 이만큼이나 활짝 웃는 동생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유리와 동생이 이런 반응을 보여주자 장난기가 생겼다. 나는 슬쩍 대장님을 바라보며 기대되는 얼굴을 했다. 자 우리 여왕님은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까?









 술 마시는 소설 - 下[2]로 이어집니다.

 허허. 말년 작가님을 비롯한 작가님들이 웹툰 분량이 오버될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기분일까요? 3편으로 기획된 이 소설은 결국 분량이 오버되어 4편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4편도 됐는데 5편도 돼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는 한데. 소재 상황을 살펴보니 아마 4편 분량이 조금 많아지면 많아졌지, 5편은 안 나올 듯 합니다.
 다음 편이 드디어 술 마시는 소설의 마지막 편입니다!… 는 오늘 안에 쓸 수 있을까요? 아마 내일 저녁에나 올라오지 않을까 싶네요. ㅋㅋㅋㅋ


 덤+

 유정 씨는 헥사부사에 탄 뒤, 제이 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나 뭐라나?
2024-10-24 22:28:4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