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생일선물(많이 늦었지만 세하생일기념으로 끄적끄적..)
Jerniti 2015-06-10 19
검은양팀 동아리실, 슬비가 유정에게 보고하러 간 지금 이곳에는 4명의 멤버들이 제각각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우선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화면을 눌러대며 게임에 열중하는 세하와 헤드폰을 착용하고 리듬을 타는 유리.
스케치북을 펴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미스틸과 다리를 떨며 노트북으로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고 있는 제이가 각각 자신들의 자리에서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달칵.
대화가 없이 침묵이 이어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고, 슬비가 유정과 함께 동아리실로 들어온다.
유정이 짝짝 박수를 치며 다시 한 번 시선을 모으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얘들아~ 이제 가도 좋아."
"후우..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다들 내일 봐요."
가장 먼저 자리를 뜬 건 세하.
그는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듣자마자 핸드폰을 챙겨 동아리실을 나갔다.
"오늘 세하 무슨 일 있었니? 아까부터 계속 저기압이던데..."
유정의 말에 옆에 서있던 슬비가 움찔한다.
이를 놓치지 않은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슬비야 왜그래? 세하랑 싸웠어?"
"아..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까 내가 저녀석 게임기를... 부쉈거든..."
말을 마친 슬비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 몇 시간 전 -
"하앗!"
콰과과광!
께에에엑!!!
차원종들의 발 아래에 비스듬히 꽂힌 슬비의 단검이 있는 위치에서 별안간 불기둥이 솟아올라 차원종들을 불살랐다.
"집속탄 생성이다!!"
아직 공중에 뜬채 남아있는 차원종 잔당들을 향해 푸른 구의 형태를 지닌 전하 집속탄이 생성되어 날아갔고 남은 차원종들은 공중에서 소멸해버렸다.
슬비는 공중에 그대로 떠서 아래쪽을 돌아보았다.
"이세하, 그쪽은 어때?"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어서 건블레이드를 한쪽에 내려놓고 쭈구려 앉아 게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세하를 찾아낸 슬비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리더니 이마에 혈관마크가 여럿 생겨났다.
"이세하, 임무 수행중에 게임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니?"
불만을 담아 한마디 했지만 세하는 여전히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타난 차원종들은 전부 처리했잖아."
그렇게 말하는 세하에게서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왔다.
마침내 세하의 무성의한 태도를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슬비가 염동력을 이용해 세하의 손에 있던 게임기를 강제로 빼앗아버렸다.
"야! 이슬비! 무슨짓이야? 이리 내놔! 거기 되게 중요한 챕터라고!!"
세하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애초에 달란다고 순순히 돌려줄 생각이었으면 뺏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에 공중에서 팔짱을 끼고 슬비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세하... 너는 도대체가 클로저라는 자각이 있는거니? 어쩜 매번 이렇게..."
철컥.
'지금 여기서 네가 행한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냐면...'이라는 주제로 열변을 토하고 계신 이슬비 선생님의 설교를 안절부절 못하며 듣고있던 세하가 순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건블레이드를 들어 슬비쪽으로 겨누었다.
"자.. 잠깐 이세하? 너 무.. 무... 뭐하는 거야?!"
돌변한 그의 태도에 슬비가 당황하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횡설수설했지만, 세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의 공파탄이 쏘아져나와 순식간에 슬비의 옆을 스쳤다.
키야아아아악!!!
곧바로 그녀의 등 뒤에서 비명과 더불어 스케빈저가 타들어갔다.
적의 최후를 목격한 세하는 그대로 건블레이드를 거둬 어깨에 대며 슬비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너나 조심하라고, 다칠 뻔 했... 야! 야! 안돼!!!"
방금 전의 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일순간 휘청인 슬비는 금방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그녀의 등 뒤에 둥둥 떠있던 세하의 게임기는...
"안돼에에에에에에!!!!"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는 게임기를 향해 세하는 몸을 날리며 팔을 최대한으로 뻗어봤지만...
파삭.
아**트 바닥에 부딫혀 세하의 멘탈이 부서지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장렬히 최후를 맞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뒤.
"저... 저기 이세하....."
"........."
"미.... 미안해....."
"......"
"그.... 그리고.... 고.. 고... 고마워....."
"........"
".......이세...하....?"
강남 상공에 한 남자의 절규가 울려퍼진 이후, 그는 공허한 눈으로 일관하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아, 그렇게 된 거였군."
"그치만 이건 세하 형이 좀 심한 것 같아요.. 슬비 누나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사과했는데... 미스틸은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테인이의 말도 맞지만 세하동생이 일부러 그럴 녀석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잖아, 그냥 속상해서 그러는걸거야 너무 신경쓰지 마 대장, 그런 의미에서 한잔만 딱 마시면 기운이 솟아나는 이 제이 특제 건강차를 한잔..."
"됐어요 제이 씨..."
테인이와 제이 씨가 시무룩해있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렇지만 건강차는 마음만 받을게요... 아무래도 영 그러네요...
그래도 위로받으니까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아...
"그보다 이제 슬슬 말하지 그래? 대장 세하동생 좋ㅇ.......쿨럭!"
자.. 잠깐만요 제이 씨 그게 무슨!!
벼락같이 손을 뻗어 은근한 웃음을 흘리며 비밀을 누설하려던 제이씨의 입을 틀어막았다.
휴... 다행이야..
"자... 잠깐만요 제이씨 저좀 봐요."
일단은 막았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 발설해버리실 거야.. 확실해...
결국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고 나보다 체격조건이 월등한 제이씨를 질질 끌고 동아리실을 나왔다.
그 무렵 세하는...
으아아.... 내가 미쳤지... 아까 왜그랬을까... 게임기 때문에 슬비한테...
하.. 게임기는 또 사면 되고 세이브칩이 무사하니 된 건데... 무엇보다 슬비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내가 왜그랬을까?? 혹시... 화난 거 아냐?
화났을거다.. 그녀석 성격에 백프로 화났을거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는데 내가 왜... 아오....
집에 들어온 후 바로 침대 위에 널브러져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침대 위를 뒹굴기를 반복한다.
하... 후회된다 진짜로.
아오... 내일부터 어색해지는거 아냐? 슬비 얼굴을 어떻게 **....
똑똑...
"아들~ 무슨 일이야? 오늘은 게임도 안하고."
내가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방에만 틀어박혀있자 이상했는지 엄마가 방문을 열어본다.
"안좋은 일이라도 있니 아들?"
"그런 거 아니에요."
"왜~~ 슬비랑 싸웠어?"
헐... 엄마?????
혹시 오늘 나 미행이라도 했어요?
역시 아줌마들의 촉은 무섭다.
그보다.. 싸운건 아니지만 왠지 싸운것처럼 되버렸다.
"그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괜한 얘기 하지말고 나가요!"
아, 이러면 안되는데.. 말을 더듬으니까 뭔가 진짜 싸운것처럼 보이잖아?!
아니나다를까.. 엄마는 나를 장난스럽게 째려보며 툭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어머머머, 아들! 여자 기다리게 하는거 아니다? 그러다 슬비 뺏긴다 너어~"
.........
"...아 엄마!!!!"
** 이런 거 싫은데...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놀리는게 그렇게 재밌어요?
아오 쪽팔려... 쥐구멍이 아니라 개미굴이라도 있다면 숨고싶다.
이거 최소 한달짜리야...
-
"언제부터 알고계셨어요...?"
검은양팀의 임시본부가 있는 유니온 사무실건물의 옥상, 살살 불어오는 조금 늦은 오후의 바람을 맞고 있다가 뒷짐을 지고 서있는 제이씨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태도는 완전히 아저씨인데...
"꽤 됐지, 저번 벚꽃놀이때 처음 알았으니까 말이야."
예상 밖이다.
벚꽃놀이라면 지난 봄에 벚꽃길에 출몰했던 차원종들을 없애고 복구된 후에 유리의 제안으로 유정 언니까지 다함께 꽃놀이를 갔던걸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은 6월이다.
"그... 그때부터 눈치채셨다구요...?"
나조차도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린다.
제이씨는 보일듯 말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장이 세하녀석을 대하는 걸 한번이라도 주의깊게 지켜본 사람들은 다 알걸?"
으으.... 정말 완벽하게 부끄럽잖아....
화악! 하고 피어오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제이씨가 겨우 들을 수 있을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렇게 티.. 티.. 많이 났나...요...?"
사실.. 세하에게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알아채줄래?'라는 의도를 전하려고 알게 모르게 티를 많이 내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는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정작 당사자인 세하는 전혀 모르고 제이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만 내 의도가 노출된 모양이었다.
하아... 한숨밖에 나오지 않아... 이세하.. 둔탱이...
제이의 눈 앞에 있는 이 소녀는 눈을 몇 번씩 씻고 찾아도 빈틈이라곤 보이지 않던 평소의 그 완벽한 리더의 모습은 어디로 숨었는지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고 그저 부끄럼 많은 열여덟 소녀의 풋풋한 수줍음만이 가득한 채였다.
이런 리더의 모습을 마주한 제이는 사람 좋아뵈는 미소를 머금었다.
'청춘이구만.. 하핫'
"동생이 워낙 이런 쪽으로 둔해서 그렇지... 엄청 티났다고 대장, 차라리 고백해** 그래?"
고백이라는 단어에 슬비는 아예 잘 익은 홍시가 되어 두 팔까지 휘적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고고고고....고백이요?!"
"그래, 어쩌면 동생도 대장을 마음에 두고있을지 모른다고?"
"네에에????"
슬비의 눈은 '그런 건 절대로 상상할 수 조차 없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곧바로 슬비는 제이의 주장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치만 걔는 저같은건 안중에도 없던걸요.. 둘만 있어도 게임기 아니면 핸드폰만 쳐다보고.. 맨날 틱틱거리기나 하고... 절 좋아하기는 커녕 여자로 보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따지면 대장도 똑같잖아?"
말하는 도중에 제이가 대뜸 말을 끊고 돌직구를 날리자 움찔하고 몸을 움츠리는 슬비.
"제... 제이 씨!"
"하핫.. 진정해 대장, 진정하고 들어봐, 한번만 용기내서 눈 딱 감고 좋아한다고 얘기해보라고."
그러나 말을 마친 제이가 바라본 슬비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이는 눈이었다.
"그.. 그치만 만약에.. 차... 차이면요...?"
동시에 두려움 또한 담고 있었다.
"거절당하고 나면 어색해져버리잖아요... 그렇게되면 저한테 있어선 친한 사람이 한 명 사라지는 거잖아요... 이제 그런건... 싫단 말이에요..."
이야기하면서 그런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슬비의 눈은 어느새 불안에 떨리고 있다.
'아아.. 그런 이유였나? 뭐... 무리도 아니지...'
그제야 그녀가 왜 좋아한다는 걸 알아채고 나서도 오랫동안 고백하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헤아린 제이였다.
확실히, 어린시절 부모를 모두 여의고 외톨이로 지금까지 버텨온 슬비에게 지금의 검은양 팀은 미스틸테인처럼 가족.. 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세하와 어색해진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제이가 생각하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지만.
"근데 대장."
"네...?"
"과연 세하를 마음에 두고있는 여자가 대장뿐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날카로운 지적, 슬비는 입을 꼭 다문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제이의 말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슬비의 눈에 비친 이세하라는 남자는 확실히 게임밖에 모르고 게임을 제외한 다른 일에는 의욕 제로의 귀차니스트지만, 모든 사람들을 상냥하게 대해줬다.
이런 그의 태도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 더 나아가 연심을 품은 사람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잘 생각해보면 요즘 세하를 대하는 정미의 모습이 어딘가 많이 누그러져 있다던가 하는 등의 사실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린 슬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지 대장? 어렵겠지만 용기를 내 보라고, 어차피 사귀게 되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거 아니야?"
벌써 거기까지 들킬만큼 티가 났었나 싶은 슬비가 다시한번 놀랐지만 어쨌든 그녀는 어느정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제이 씨.."
한층 부담감을 덜어낸 얼굴로 베시시 웃으며 슬비가 감사를 표한다.
저녁노을에 비친 그 얼굴은 제이의 시선으로도 꽤 예뻤다.
"후- 이런것도 어른의 역할이니까 말이지."
올라올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얼굴로 슬비가 내려가고 난 뒤, 제이는 하늘을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원 참... 나란 녀석은 내가 생각해도 참 밥맛 떨어지는 놈이군."
'애들 앞에서는 멋있는 말 잘만 해대면서 왜 유정 씨한테는 그 짧은 한마디를 못하는지... **'
텅 빈 옥상 난간에 기대어 지는 해를 감상하던 제이는 왠지 뚱해진 몸을 이끌고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
달칵.
"그래서 말인데~ 아! 슬비슬비야~"
제이씨와의 상담을 마치고 내려와 동아리실 문을 열자마자 유리가 달려들어 날 껴안았다.
"꺄앗! 뭐.. 뭐하는거야 서유리!"
놀람과 부끄러움이 섞여 유리의 허그를 풀어내려 했지만 역시 유리 얘가 힘은 정말 세다..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벗어날 수가 없어.
내가 포기하자 유리는 덧니를 내보이며 헤-하고 웃었다.
...역시 저 미소를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아무래도 사람을 힐링시키는 힘이 있나봐.
그.러.나.
조용히 유리의 품속에서 힐링(?)하려던 나를 절망시키는.
유리의 쌍봉우리가.... 등에 와닿자 왠지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남자들은 큰 걸 좋아할까....?
저.. 정신 차리자 이슬비!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거야...
내가... 조금만 컸으면... 세하도 나한테 관심을 좀 더 가져줬을까...?
"내일 세하 생일이잖아! 같이 케이크 만들자!"
유리의 품속에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즈음, 날 정신차리게하는 유리의 한마디.
"내일이 이세하 생일이라구?"
"응! 그러니까 다같이 깜짝 놀래켜주자!"
"우와! 재밌을 것 같아요 누나!"
유리가 박수를 치며 동참을 유도하고. 테인이가 해맑게 웃으며 동조했다.
"그렇군, 집에 가서 이 제이의 특제 건강 드링크를 만들어야겠어."
언제 내려왔는지 제이씨도 (당사자는 전혀 관심없을 것 같은) 의욕을 불태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남자는 역시 오빠라는 단어를 붙이기보다 아저씨가 어울린다.
"좋아! 케이크 만들 제료 사러가자! 제이 아저씨 꺼는 별로 인기 없을 것 같지만... 렛츠 고~"
"쿨럭! 유리야, 너 말에 가시가 있잖아?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 오빠라니까?"
"네~ 네~ 알았어요 아.저.씨!"
"쿠...쿨럭...."
그대로 각혈할 것 같은 제이씨를 뒤로하고 나는 유리에게 이끌려 이곳 저곳을 돌며 케이크를 만들 재료와 여러가지 장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네 집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우리집이 제일 적합할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유리는 오랜만에 우리집에 들어와서인지 신이나서 방방 뛰었다.
어쨌든, 우리는 늦게까지 맛있고 예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힘을 냈다.
중간에 유리가 생크림을 얼굴에 묻힌다던지 초콜릿 녹여놓은 걸 찍어바른다던지 하는 등의 장난으로 몇차례 부엌이 난장판이 되기는 했으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케이크는 무사히 완성되었다.
밤이 늦은 관계로 유리는 집에 가지 않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원래 요즘 바빠서 못 본 사랑과 차원전쟁 예약녹화분을 봐야했지만.. 늦게까지 유리 장단에 맞춰주다보니 역시 몸이 힘들다.
"재밌었다.. 그치 슬비야?"
"응... 그러네.."
가만히 누워있는 내 옆으로 유리가 바짝 붙는다.
"헤헤.. 슬비슬비한테서 좋은 냄새 난다..."
얘.. 얘가.. 사람 쑥쓰럽게...
은근슬쩍 유리와 거리를 둔다.
부.. 부담스러운건 아니지만.. 너무 붙었잖아 유리야...
싫은건 절대 아닌데 쭉 혼자 지내다보니 아직 이런건 많이 어색하다.
"너.. 너무 붙지 말아줄래 유리야?"
"에에~ 우리 슬비 부끄러워한다~"
"아... 아니야!"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말하자 유리가 풀이죽은 목소리로 몸을 늘어뜨리며 날 붙잡았다.
"그럼 슬비는 나랑 같이 자는거 싫어?"
울먹이기까지....
그건 반칙이잖아 유리야.... 그러면 내가... 뭐가 되니...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거짓말같이 살아난 유리가 내 두 볼을 잡고 이리저리 늘리며 장난친다.
"그치그치? 헤헤... 슬비슬비는 피부가 부드러워서 좋단말이야~"
......또 속았어....
하지만 어쩌면 이런 유리가 있어줘서 내가 조금씩 변해갈 수 있는거니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고마워 유리야.. 내 맘 알지..?
"아... 아으... 어우이... 아이아아...(아... 아우... 서유리.. 하지마-)"
피곤함도 잊고 침대 위에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동안(거의 유리가 대화를 주도했지만.) 밤은 점점 깊어갔고, 우리는 어느새 고른 숨소리를 내며 편안히 꿈나라로 가는 표를 끊었다.
-
다음날 아침, 먼저 눈을 뜬 건 나였다.
"으음...."
눈을 뜨기 전, 몸의 왼쪽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우음... 이모.... 여기 차돌박이.... 3인분 추가요... 음냐음냐..."
꿈에서도 한우를 찾는 유리는 이불을 다 차버리고 배를 훤히 내놓은 모습으로 잠에 빠져있었다.
유리를 보고 작은 한숨과 함께 티셔츠를 내려주고 차낸 이불을 얌전히 덮어주고 있자니 저절로 얼굴에 엷은 웃음기가 가미된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아이같아서.
부엌으로 나와 유리 몫까지 간단하게 토스트를 만들어낸 다음 허기를 채우고 편하게 외출할 채비를 했다.
쪽지와 함께 토스트에 랩을 씌워 식탁 위에 놔두고서 도심의 복합 쇼핑몰로 향한다.
좋아하는 남자애의 생일인걸 바로 잔닐에야 알다니.. 이런 빅 이벤트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질책하던 나는 이제 세하의 생일선물로 뭘 사주는게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날엔 임무가 끝나고 유리와 케이크를 만드느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막상 주려니 뭘 줘야할지 도통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게임기가 연상된다.
어제 본의 아니게 부숴버려서 미안한 것도 있고 이걸 선물해주면 제일 좋아할것 같기도 하니 게임기를 선물할까 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크나큰 걸림돌이 될 비싼 가격과 더불어 이걸 선물한다면 또 늘 그랬듯 게임 삼매경에 빠질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마음을 알아주기 이전에 나에 대한 관심도를 조금이라도 높여줬으면 하고있는 시점에서 게임기를 선물하는 건 영 별로인 선택지다.
응, 이걸 사주면 정말 나는 쳐다도 안보고 게임만 할거야! 그러니 안돼.
같은 이유로 게임 팩도 기각.
핸드폰 케이스는 얼마전에 바꿨으니 이것도 탈락.
그러고보니 세하는 무겁다며 목걸이나 손목시계같은 악세사리도 하고 다니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한숨만 푹푹 쉬게된다.
꼭 좋은 선물을 주고싶은데....
그때였다.
평화롭던 일대에 차원종 경보가 울려퍼진다.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여 우왕좌왕 대피하는 시민들, 이곳은 까딱하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강남의 중심가다.
클로저 일을 꽤 오래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원종 경보가 울리면 순간 몸에 힘이 팍 들어가며 긴장하게 된다.
서둘러 요원임을 밝히고 관계자들과 협력해 시민들 대피를 도왔다..
다행히 평소에 대피훈련이 이루어졌고, 몇차례 대피령이 내려진 적도 있어서인지 시민들은 신속하게 대피를 마쳤다.
곧 특경대도 도착할것이고 팀에게도 지금쯤 호출이 떨어졌겠지.
대피가 마무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문이 열리고, 보기만해도 속이 뒤집히는 차원종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근데 적수가 너무 많잖아!
아스타로트도 잡힌지 오래인데 뭐가 이렇게 많은거야?!
평소 나타나던 머릿수보다 두 배 이상은 많아보였다.
그래도 일단 차원종 처치는 당연한 처사이니 섬멸 작전을 시작해야겠다.
물론 그 전에 가지고있지 않은 무전기 대신 핸드폰으로 유정 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언니! 강남역 근방에 차원종들이...!"
[곧 애들을 보내줄게 슬비야!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피해 안생기게 시간만 벌어줘, 할 수 있지?]
"네 언니!"
상황 보고까지 마쳤으니 이제 움직여보자!
"목표 확인, 적을 섬멸합니다."
한편, 세하와 슬비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세하의 파티 준비에 들떠있었다.
호출을 받고 급히 동아리실로 나왔을 때, 세하에게 어째서 셋이 같이 오냐는 질문을 받고 뜨끔했지만 건물 앞에서 만났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여기까지는 평소 상황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들의 수가 많은데다 먼저 현장에 투입된 슬비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과 귀차니즘에 쩔어있던 세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어서는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까륵....
눈앞에는 여러 종류의 차원종들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게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스케빈저와 트룹도 보였고, 합성차원수도 몇 개체가 눈에 띄었다.
가이스트 무리도 섞여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차원종 무리를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결전기 레일 캐논!"
솔직히 혼자서 한꺼번에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내가 많이 없애두면 제이씨나 다른 애들이 편해지니까 힘내보자!
동시에 머리색과 비슷한 섬광 여러 줄기가 등 뒤에서 뿜어져나와 차원종들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틈을 주지않고 전하 집속탄과 화염 폭풍등의 공격을 몇차례 퍼부으며 몰아붙이자 상당수가 정리된 듯 보였다.
"하아..."
거세가 몰아치느라 단시간에 많은 위상력을 뽑아냈더니 약간의 두통과 함께 몸이 조금 둔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당장 큰 위험은 없어보이니까 괜찮겠지...?
슬비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현장에 거의 도착한 나머지 멤버들의 시야에 슬비가 보인다.
"야 이슬비-"
선두에 있던 세하가 멀리 보이는 그녀를 발견하고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그녀의 머리 위 공간에 커다란 차원문이 생성되었고 엄청난 덩치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동시에 허리에 찬 무전기에서 유정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직.. 조심해! A급 차원종 반응이야!-
"뭐... 뭐라고요?!"
다만, 무전기를 소유하지 않은 슬비는 이 통신내용을 들을 수 없었고, 이 순간에도 그 커다란 차원문을 통해 넘어온 존재는 슬비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고 있었다.
"?!"
슬비의 위로 낙하중인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세하는 즉시 사이킥 무브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가속하면서 있는 힘껏 외쳤다.
"피해 이슬비!!!!!!!"
그의 외침을 들은 슬비가 자신의 위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황급히 피하려고 했으나, 차원문과 슬비 사이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늦은 상황, 그녀는 본능에 따라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고막이 찢어질듯 천지를 울리는 충격음이 주위를 뒤흔들었고.
"이슬비!!!!!!!!!!!!!"
세하의 부르짖음이 뒤를 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앗!!!!"
그는 위상력을 개방하고 날아오는 가속도를 이용해 질주를 시전했다.
"비켜!!!!!"
콰아아앙!!!
크오오오오!!!!!
엄청난 위상력과 가속도의 힘으로 전혀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말렉이 몇 발짝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 뒤를 따르던 제이가 말렉은 피했지만 이 거대한 차원종 개체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날아간 아**트와 시멘트 등의 파편에 맞아 부상당한 슬비를 찾아 빼냈고, 유리와 미스틸이 말렉의 시야를 교란시켰다.
"이슬비! 슬비야!!!"
"대장! 정신차려봐! 대장!!"
뺨을 톡톡 치며 흔들자 정신이 들었는지 슬비가 눈을 떴다.
"우욱...."
다행히 말렉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처가 꽤 깊어보였다.
게다가 이미 가진 위상력의 태반을 써버린 뒤라 피해가 더 커진 듯했다.
평소 날카롭게 자기에게 핀잔을 밥먹듯이 주고 하루가 멀다하고 인생의 낙 게임기를 빼앗아가는, 융통성이라곤 없는 리더였지만 세하는 그런 그녀에게 언제부터인가 연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이가 차원종에게 부상당해 이렇게 기운없는 얼굴을 하고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있는걸 보고있자니 너무나 화가난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저 망할 차원종에게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게도...
"으으....."
"가만히 누워있어 대장."
세하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자책하는동안 슬비가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려 하고있었다.
제이가 말리고 나섰지만 슬비는 눈앞에 차원종이 나타나 도심을 헤집어놓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수 있냐며 싸워**다고 제이에게 강력하게 어필했다.
"가만히 있어 이슬비.."
"뭐? 이세하.. 하지만.."
세하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자기 전투상황에선 자기 몸이 어떻게 되던 차원종 처치를 우선시하는 슬비가 가만히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저렇게 다친 주제에 뭘 더 싸우겠다고 하는거야..'
"좀... 다쳤으면 가만히 쉬고 있으라고! 왜 전부 혼자 짊어지려고 하는데? 너 바보냐? 가끔씩이라도 좋으니까 다른사람들에게 기대어보기도 하라고!!"
"이세...하..."
참지 못한 세하가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자 슬비와 제이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술비는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동생.. 명언이구만.."
씨익 웃어보이는 제이를 보며 세하는 놓고있었던 건블레이드를 다시 집어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슬비 옆에 있어주세요 아저씨, 저는..."
"세하야~~ 우리 힘들어~~~"
"좀 도와주세요 세하형~"
"......저 빌어먹을 말렉을 이기고 올게요..."
"그렇게 하지 동생."
제이의 답을 듣자마자 세하는 말렉을 향해 날아올랐다.
"유리랑 테인이는 나머지 잔당들을 부탁해, 저놈은 내가 없앤다."
"그치만 세하야 혼자서는...."
"저녀석은 세하형한테 맡겨두자구요 누나."
유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세하를 바라봤지만 미스틸은 그런 세하의 눈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유리를 안심시켰다.
"자, 조무래기들을 처리하러 가요 누나!"
미스틸과 유리가 여기저기 흩어진 다른 차원종들을 없애러 가고, 세하는 실컷 난동을 피우고있는 말렉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살기로 가득했고, 몸에서는 푸른 위상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기세를 느꼈는지 말렉또한 세하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으르렁거린다.
크르르르....
"....슬비를 저렇게 만들다니... 너는 오늘 죽었다..."
빠드득, 세하는 이를 갈며 재빠르게 말렉의 품 속으로 돌진했다.
크워어어!!!
말렉이 그를 견제하려 왼팔을 들어 펀치를 날렸지만 빠르게 피한 덕에 불발, 공격을 피하는 사이 건블레이드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자 그는 무기를 고쳐잡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날 화나게 한 이상.. 너 따위가 막을 순 없어."
고쳐잡은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가득 담아 힘껏 휘두른다.
이미 엄청난 위상력에 둘러싸여 그 형태가 애매하게 되어버린 건블레이드는 자신을 쥔 세하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말렉의 가슴을 베어나갔다.
크오오오오!!!!!!!!!
"아직 안 끝났다구."
퍼엉! 퍼엉! 펑! 펑!
말렉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지만 세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춤을 추는 건블레이드, 그에 따라 말렉의 가슴에도 상처가 늘어간다.
"이건 좀 뜨거울거야!"
퍼엉!
말렉의 가슴 깊이 폭령검을 써낸 세하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공파탄과 발포를 연달아 쑤셔박았다.
"터져라!"
크아아아아!!!!!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말렉이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세하는 어느새 말렉의 품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폭풍같이 몰아쳤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도는 위상력은 줄기는 커녕 처음보다 더 큰 위압감을 주며 넘쳐흐르고 있다.
공중에서 말렉의 등을 조준한 세하는 그대로 목표를 향해 빠르게 내리꽂혔다.
"별빛에 잠겨라!!!!!!!!!!!!"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어!!!!!
말렉의 육중한 몸체가 서서히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진다.
곧 말렉의 시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분해되어 사라졌고, 세하는 이마를 한 번 쓱 훔친 뒤 나머지 차원종들을 하나 둘 처치해가기 시작했다.
평소의 그 귀차니스트 이세하가 맞나 싶을정도로 지금의 세하는 차원종 소탕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지켜보던 슬비와 제이는 그의 색다른 모습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그 중2병에 귀차니스트에 게임 폐인인 이세하가 맞나요...?"
"나도 믿기 힘들지만 세상에 세하동생은 한 명 뿐이라고 대장..."
사실 제이도 슬비를 다치게 한 원흉인 말렉을 처치하고나서까지 이렇게 열심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두사람이 감탄하고 있는 그때에도 세하는 쉼 없이 차원종들을 베어냈다.
위이이잉-
철컥.
한켠에 얌전히 누워 회복에 전념하던 슬비의 귓가에 불길한 소리가 포착된 건 바로 그때였다.
차가운 기계가 돌아가며 무언가가 장전되는 소리.
불안감에 휩싸인 슬비가 상채만 일으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이 다친 것에 분노하여 차원종들을 처단하고 있는 세하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늘따라 그의 뒷모습이 멋지게 보이는 건 기분탓일까.
그리고,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방금 전 세하가 베어버려 포신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이스트 중장병이 살아남아 자기를 베어버린 남자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하나뿐임에도 흔들림 없이 조준을 마친 포신이 점점 가열되어간다.
세하는 여전히 눈앞의 차원종들을 베어내기 바쁜 상황.
생각할 틈도 없이 슬비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대장! 어디가?!"
슬비의 돌발행동에 제이가 뒤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그녀의 시야에는 등 뒤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앞에만 집중하는 세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위상력도 거의 바닥나 염동력을 쓰기도 힘들뿐더러, 애초에 정신을 집중해 염동력으로 세하를 옮기는것 보단 그가 피격당하는게 빨라보였다, 물론 생각에 앞서 몸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지만...
펑!
"이세하!!!!"
가이스트 중장병의 레이저 캐논이 발사된 것과 슬비가 세하의 이름을 외친 것은 거의 동시 타이밍이었다.
앞에 있는 스케빈저를 막 베어낸 세하가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슬비는 쭉 뻗은 두 팔로 세하의 상체를 꼭 끌어안았다.
곧이어 세하의 시야가 순간 푸른빛으로 가득찼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
뒤늦게 외팔이가 된 가이스트 중장병을 발견한 제이가 달려가 그 존재를 지워냈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 이슬비...?"
갑자기 안겨버린 슬비때문에 중심을 잃고 휘청인 세하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쩌다보니 슬비가 세하를 덮치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렸고, 둘의 얼굴은 아주 조금의 거리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공중에서 만난다.
여느 때였으면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뾰족하게 만들며 허둥댈 재미있는 상황이지만, 슬비는 미동이 없었고 세하는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야...?'
주륵.
슬비의 입에서 붉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나오자, 그제서야 세하가 화들짝 놀라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슬비가 손을 들어 검지로 그의 입술을 제지하며 말한다.
"다행이야... 이번엔 지킬 수 있어서...."
말을 마친 슬비가 세하의 가슴깨로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세하의 동공이 눈에 띄게 확장된다.
"이... 이슬비... 슬비야.......?"
슬비는 세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지막히 말을 받는다.
기운없는 목소리지만 왠지모르게 편해보인다.
"...응.... 왜...?"
이제서야 상황이 파악된 세하가 흔들리는 눈으로 슬비를 다그쳤다.
"바보야!!! 누가 이런 식으로 구해달라고 했어?! 대체 왜그런거야!!!"
슬비는 그저 조용히 미소만을 머금었다.
"리더가... 팀원을 챙기는 건.... 당연하잖아...? ....그리고... 난.. 세하... 너를...."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웃어보이며 말을 멈췄다.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하면.... 나... 치사해 보이겠다...."
그녀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슬비야... 이슬비!! 정신 차려!!!"
"걱정 마 이세하.... 난.. 항상... 네 편....이야....."
이 말을 끝으로 슬비는 세하의 품 안에서 축 늘어져버렸다.
"슬비야아아!!!!!!!!!!!!!"
세하의 절규가 강남 도심에 메아리쳤다.
"크윽... 이런 **...! 유정씨! 슬비가 다쳤어! 지금 바로 병원으로 보낼거니까 준비 부탁해!"
-네?! 뭐라고요?!?! 알았어요! 당장 의료반을 대기시켜 놓을게요!-
"유리야! 테인아!"
다급히 유정에게 무전을 때린 제이는 조무래기 차원종들을 정리하고 있던 유리와 미스틸을 불러모았다.
"스..슬비야!!!"
"슬비누나!!"
모여서 상황을 알게 된 뒤 유리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미스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세하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늘어진 슬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가 패닉상태인 검은양팀을 끌어모아 신속하게 대책을 전했다.
"일단 세하는 당장 슬비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해라, 혹시 모르니까 유리도 따라가고! 테인이는 나랑 같이 여기 남아서 상황을 정리하자."
"알았어요 아저씨."
베테랑답게 가장 먼저 평정심을 되찾은 제이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상황을 수습해간다.
제이와 미스틸을 뒤로하고 유니온 지정 병원을 향해 날아오른 세하와 유리는 더욱 속도를 끌어올렸다.
"기운 내 세하야! 응?"
"어...."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슬비는 연락을 받고 미리 대기하고있던 캐롤리엘과 이하 요원들에 의해 옮겨졌다.
곧 수술실에 불이 켜졌고, 세하는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물도 마시지 않은채 굳어있었다.
유리가 쫄쭐 굶고있는 세하를 위해 이것저것 가져다 권했지만 끝내는 밀어내며 무엇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때문에 이렇게 됬는데... 편하게 밥같은걸 먹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소탕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제이와 미스틸 또한 바로 병원에 도착했고 축 처져있는 세하를 안쓰러워했다.
"세하야.. 그러지 말고 뭐좀 먹어.. 응?"
"맞아요.. 슬비누나가 일어나서 그런 모습 보면 화낼거에요."
동료들이 이것저것 먹을걸 들고왔지만 세하는 요지부동이었다.
**... 내잘못이다.
나 때문에 슬비가 나 때문에 크게 다친 슬비가... 좋아하는 여자가 부상을 입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밥이 멀쩡히 넘어갈리가 없다,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리가 없다.
마음이 편할리 없다.
바보같이 다쳐서 누워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몸을 던져 나를 구해주던, 고통스러웠을테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나를 먼저 걱정해주던 그런 녀석이다.
매사에 쉽게 물러서는 일이 없던 녀석이 이정도로 무너질리가 없다는 걸 안다.
알고있지만... 3일씩이나 못 일어나면... 불안해지잖아... **.
오늘도 병실의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다 깨어 변함없이 누워있는 슬비의 상태를 살핀다.
혼자 살아온 슬비가 입원하면서 마땅이 곁을 지켜줄 보호자가 없다보니 유정 누나와 제이 아저씨가 번갈아가면서 있겠다고 하셨지만,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내가 있는게 맞다.
여기서 슬비와 함께 있고싶다는 내 개인적인 사심도 한몫 거들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로 사흘째 슬비의 곁을 사수하고 있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주라... 너 원래 부지런한 애잖아... 일어나서 나한테 잔소리 해야지..."
그러면서 지난 사흘간 꺼내**도 않았던 게임기를 꺼내 손에 쥐여본다.
"나 게임한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할거라고.... 너 눈 뜰때까지 게임만...."
".....꺼......"
.....?
방금 슬비가...
기대를 걸고 침대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여전히 슬비는 눈을 감고 있다.
하.. 이제 하다하다 환청까지 들리나봐...
"게임기... 꺼... 이세하...."
잠깐, 환청이 아니야?!
"이슬....비?"
고개를 들어 다시 침대를 보자, 슬비가 그토록 보고싶었던 하늘같이 푸른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게임이나 하려하다니... 하여간 이세하... 넌 어쩔 수 없는 게임폐인이야..."
눈뜨자마자 가시돋힌 디스라니, 너도 어쩔 수 없는 독설가구나.
눈물이 찔끔 나오려한다.
그래, 이래야 이슬비지.
그녀는 편안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있었다.
너무나도 보고싶었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품 안으로 슬비를 데려왔다.
"이세하...?"
살짝 당황한듯 하지만 개의치 않고 하고싶었던 말을 줄줄 쏟아낸다.
"멍청아.. 왜 이제야 일어나는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너 못 일어나는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냐고!!"
말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져 나도 모르게 소리쳐버렸다.
"...미안해..."
또.
또 미안하다고 말한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사과하는거야...
"또 사과한다... 넌 아무 잘못 없어."
그 후로 얼마나 더 슬비를 안고 있었을까.
"저.... 저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거야...?"
쿨럭, 저기요.. 이슬비양? 그렇게 얼굴 잔뜩 붉히고 눈 치켜뜨는건 반칙이라고 여겨집니다만...?
하마터면 제이 아저씨마냥 피를 토해낼 뻔 했다.
**.. 불공평해...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간호사실에 알리니 곧 의사가 들어와 슬비의 상태를 체크하고 갔다.
이미 다 회복된 상태로 하루정도 잘 먹으면서 안정을 취하면 바로 퇴원이 가능하단다.
"근데 너 왜이렇게 많이 야위었어?"
유정누나에게 슬비가 회복되었다고 알릴겸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는데 슬비가 나를 전체적으로 쓱 훑어보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지적한다.
아.. 그.. 그게 말이지....
"바... 밥맛이 없어서... 너도 알잖아, 병원밥 무지 맛없는거..."
실없는 소리를 하며 괜히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고있다.
"왜그랬어? 바보같이..."
슬비가 새초롬하게 눈을 흘긴다.
그러니까 그건 반칙이라고.... ** 귀엽잖아...!
유리가 뭐라도 먹으라고 할 때 좀 먹어둘걸 그랬나.
"뭐... 미련한 리더를 따르는 미련한 팀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해두자."
그러자 슬비가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기분이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미련하다는 거니?"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보다."
"응?"
"너 그때 무슨말 할려고 했냐? 기절하기 직전에."
대화를 이어가다 문득 떠올랐다.
무슨 얘기길래 치사하다고까지 하면서 입을 닫았을까.
내 물음에 슬비는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어째 점점 얼굴이 불타오른다?
"아... 그...거..... 말이지.... 사실.. 그 때 말하면.. 네가 불편할까봐 안했는데..."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슬비다.
아니 뭔데 얘정도 똑부러지는 애가 저렇게 뜸을들여?
잠시 다물어졌던 녀석의 입술이 다시 열린건 자기 얼굴이 마치 마그마가 끓듯 최고로 빨개졌을 때였다.
"조... 좋아..해.... 이세하.... 너... 너의 여.. 여자친구가... 되...되... 되고 싶어..."
정말 힘들게 말을 마치고는 두 손으로 한껏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역시, 이녀석도 여자인걸까나.
그런데...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빼앗겨버렸네.. 타이밍."
"에?"
어? 토끼다 토끼.
그렇게 놀랄 필요까진...
"에?는 무슨 에?냐, 나도 너 좋아해 이슬비... 아니 슬비야."
"세... 세하...야..."
우와 안그런척 했지만 이거 엄청 떨린다.
이미 고백받은 상황에서도 이정도라면 슬비는 도대체....
어쨌든 나는 그대로 슬비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슬비는 깜짝 놀라 또다시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집중한다.
둘 다 서툴러서 키스라고 하기도 뭐할만큼 엉터리로 해버렸지만 오히려 기분은 좋다.
그러고보니 서로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른건.. 처음 아니야?
호흡이 가빠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도 숨을 몰아쉬고 있던 슬비가 문득 떠올랐는지 손뼉을 쳤다.
"아! 너 생일..."
생일? 아.. 그러고보니 3일 전이 내 생일이었네.
그런건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지만 애시당초 잊고있었는걸?
거기다 네가 그날 다치는바람에 올해는 이세하 생에 최악의 생일이야.
"됐어, 신경쓰지 마."
"그.. 그치만... 생일 축하도 못해주고.. 선물도 꼭 주고싶었는데 준비하지도 못하고..."
전혀 아무렇지 않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어이어이.. 그렇게 시무룩한 얼굴 하지 마, 내가 더 미안해지잖냐...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이렇게 귀여워졌지?
그러다 문득 정말 번개처럼 풀죽은 슬비를 한큐에 회복시킬 방법이 뇌리에 스쳤다.
"선물은 이미 받았잖아, 나한텐 네가 생일 선물이야, 아까 최악의 생일이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 최악의 생일에 최고의 선물을 받아버렸네."
Aㅏ.....
부끄럽다, **듯이 부끄러워.
차마 슬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보......."
"엉...?"
"이세하 바보... 그런 말을 해버리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잖아.... 흑...이건... 반칙이야... 불공평해..."
.....그러니까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그렇게 쳐다보는 네가 더 반칙같다만...
완전 치트키라고...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준 뒤, 앞으로의 다짐을 담아 한마디를 건낸다.
너에게 하는 약속인 동시에 나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한 말을.
"이제는 혼자 두지 않을테니까... 지켜줄게...."
이튿날, 검은양팀 동아리실.
"슬비야~ 세하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세하와 슬비를 유정을 비롯한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다시한번 미안해요 유정 언니랑 제이 씨.. 그리고 얘들아...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
"그래 슬비야 이제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
"응, 잘 부탁한다고 대장,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에 만든 녹즙을 한 잔..."
"앞으로도 잘 부탁해 슬비야!!!!"
"어이 유리야..? 오빠가 말하고 있었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슬비누나! 누나랑 형이 없으니까 허전했어요."
달칵.
"오랜만이군 검은양팀 여러분."
"데이비드 형?"
"""""지부장님???"""""
테인이까지 막 말을 마친 타이밍에 딱 맞게 동아리실에 발을 들이는 한 사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시에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어쩐 일이야 형?"
"아, 잠깐 전해줄 게 있어서 말이야, 그나자나 유정씨, 유정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예쁘군.. 어때, 오늘 저녁에 둘이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이나 같이 하겠나?"
"됐거든요 지부장님? 그만하시고 여기 오신 이유나 말씀하시죠."
"하핫, 이거 오늘로 99번째야, 한 번만 더 차이면 정말로 기념할만한 일이 되겠는걸?"
평소대로 유정에게 기름을 잔뜩 바른 느끼한 작업멘트를 날린 데이비드는 세하와 슬비에게 각자 봉투 하나씩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아, 휴가증이네, 일단은 말이지."
그러자 일동 모두 깜짝 놀라 되묻는다.
""""""휴가증이요?!?!""""""
이런 반응을 예상했었는지 데이비드는 깔끔하게 웃으며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 차원종들이 나타나면 소집에 응해야 하지만 일단은 휴가증이 맞네, 이슬비 요원은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세하 요원 역시 옆에 붙어있느라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지않나, 그러니까 좀 쉬다 오라는 뜻에서 주는걸세, 여기 붙어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세하가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슬비의 손을 잡고 나가려한다.
"잠깐만, 세하야- 슬비야-"
유리가 둘을 불러세우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혹시 차원종이 나타나도 우리가 다 쓸어버릴테니까 슬비랑 마음편히 데이트해-♪"
씨익하고 웃는 얼굴에 유리의 덧니가 드러나자 둘의 얼굴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확 달아오른다.
"유... 유리야..."
"서...서유리...!"
"후- 청춘이야."
"에휴... 난 언제 연애라는걸 해보나..."
"후훗, 내가 있잖나 유정 씨."
"거절하겠어요, 지.부.장.님."
"하하핫, 드디어 100번을 채웠어, 정말 기념해야 하지 않나?"
".....시끄러워요."
"에에- 언니 부끄러워한다-"
"아...아니야! 유리야!"
떠들썩해진 동아리실을 나와 손을 꼭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
"슬비야, 몸은 괜찮지?"
"응."
출입문을 벗어나 길가로 나온 세하가 묻자 슬비가 베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우리 첫 데이트 하러가자!"
"에?"
순간 슬비의 묶은 머리가 쫑긋하고 선다.
세하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정말로 토끼같다고 다시한번 생각하며 그녀를 이끌고 시내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저기... 세하야."
"왜?"
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조금 부끄러워하는 슬비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하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
슬비가 수줍은 얼굴로 신발코를 땅에 콕콕 찧으며 팔을 내밀고 밌다.
피식.
세하는 슬비의 무언의 요구대로 그녀와 팔짱을 끼고 보폭을 맞춰 가던 길을 계속 걷는다.
"정말.... 정말 좋아해..... 세하야..."
"나도 좋아해, 슬비야..."
-Fin。
원래 세하 생일 기념으로 써보려고 했던거였는데 많이 늦어버렸네요...
쓰다가 자꾸 막혀서.. orz
팬소게에는 처음 올려보는데 글쓰기가 이렇게 힘든줄 몰랐네요... 특히 전투씬은 진짜 절망적...
작가분들 존경합니다 +_+
그럼 읽어주신 분들께 소소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줄일게요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