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rs/Grave keeper[프롤로그(2)]
레인하달 2015-06-08 0
같은 날, 5시 12분
“그래서, 도로를 아주 개박살을 내버렸다?”
“......예에.”
수현은 먼 곳에 시선을 돌리며 작게 대답했다.
도저히 눈앞의 여성을 정면으로 바라볼 배짱이 안 생겼기 때문이다.
녹색의 긴 웨이브 머리와 검은색 뿔태 안경이 매력적인 여성은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소리쳤다.
“너 제정신이냐?! 이제 곧 퇴근 시간인데 도로를 그따위로 만들어!!! 하물며, 전투 때문이 아니라 사이킥 무브 힘 조절을 잘못해서?!?!”
“아니, 그, 사이킥 무브로 망가진 건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싸우다가......”
“그 *** 상하로 찢기고 싶냐!!!”
“죄송합니다!!!”
여인이 거칠게 책상을 후려치며 소리치자 수현은 더 이상 개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그리고 90도로 숙인 그의 눈앞에 검은색의 반질반질한 명패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국가차원관리부 부산지부 요원관리국 국장 이휘은]
즉, 지금 자신의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여인이 바로 수현의 직속상관이자 클로저들의 실질적 수장이라는 얘기였다.
“야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또 그 망할 지부장 놈한테 까이게 생겼잖아!!! 가뜩이나 요즘 일처리 거칠다면서 **** 거리는데 네가 책임질래?!”
(저는 당신에게 그 **을 다 받는 것 같습니다만...)
수현은 속으로 꿍얼꿍얼 거렸다. 만약 지금 생각한 것을 말로 뱉었다가는 그대로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타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다.
“하아...... **. 지치니까 일단 이건 넘어가자.”
“일단...입니까.”
수현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 보고를 하러 온 것이 4시 30분쯤이었으니 대략 30분은 넘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것이 일단이라니! 차라리 마나나폰들과 탭댄스를 추고 스케빈저와 포커를 치는 게 훨씬 편하겠다!!!
수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곧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서류봉투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이건? 설마 보너스?”
“뒈질레? 네가 뭐가 예쁘다고 보너스를 주냐.”
휘은의 단칼 같은 부정에 수현은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대여섯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류를 훑어보던 수현은 곧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뭡니까, 이건?”
“보는 그대로다.”
휘은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답했다.
여유로운 휘은의 모습에 수현은 표정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팀을 만들라니...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겁니까? 저와 명이 녀석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하신지가 엊그제 같은데.”
서류의 내용은 정식 팀 창단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휘은은 길게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어. 위쪽에서 망할 몽상가 녀석이 재밌는 일을 꾸미고 있더라고. 거기에 지지를 해 줄 생각이다. 뭐, 정확히 말하면 그쪽에 향할 시선을 이쪽으로 끌어오는 거지만.”
“몽상가라면... 데이비드 리 국장 말씀이십니까.”
그녀의 말에 수현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데이비드 리라면 분명 클로저들을 위해 일하는 야심가였다. 그리고 상부의 인간들 중 깨끗한 편의 인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팀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팀 하나 만든다고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
“독고린. 강한성.”
수현의 투정에 휘은은 툭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그에 수현의 행동이 딱 굳더니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그 정도는 돼야 시선을 끌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애초에 네가 손해 보는 이야긴 아니잖아? 오랜만에 네 옛 친구에게 사회 물 먹여줄 수 있을 거고, 놀고 있는 퇴물 하나 다시 쓰겠다는데.”
휘은의 말에 수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자신에게는 손해되는 얘기가 전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도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가 진짜 상부 놈들에게 암살당합니다.”
“걱정마. 그따위 **들한테 죽을 만큼 녹록한 몸은 아니니까.”
휘은은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요즘 차원종 출현이 잦아진 건 알고 있지?”
“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나고 있었으니까요.”
휘은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에 들어 차원종 출현이 잦아진 건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불려나가 사냥을 해야 됐고, 최근에는 자다가 강제로 불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걸 핑계로 둘을 불러내는 거다. 형량 줄이는 걸 대가로 위상 범죄자 끌어들이는 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농땡이 부리던 식충이 하나 다시 일하게 하는 거니까.”
“...그 둘은 그렇다 치고 한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나 명이, 그 둘을 포함해도 4명뿐입니다만.”
“그건 걱정마라, 안 그래도 쓸 만 한 애송이 하나 주워 왔으니까. 네가 지금 말할 건 예스냐, 노냐, 그거야.”
수현은 휘은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팀... 팀이라......)
한참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던 수현은 고개를 들어 휘은을 마주봤다.
“그래서, 대답은?”
“하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손해 볼 건 없으니까요.”
“오케이. 그럼 나중에 시간 내서 한 번씩 만나고 와봐. 독고린의 경우는... 네가 직접 데리고 올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두지.”
“예, 알겠습니다. 그럼......”
수현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아, 맞다.”
휘은이 깜빡 잊었다는 듯 소리를 내자 수현은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나 아직 팀명 생각 안 해뒀는데 뭐 좋은 거 있냐?”
“.........”
그녀의 말에 수현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답했다.
“묘지기(Grave keeper). 묘지기로 해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