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x갓오하] 제 이름이 진모리라고 하네요 -5

신류희 2015-06-07 1

이슬비와의 만남으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신서울의 새벽 아침 시간. 사람 한 명 없는 공원에서 한 명의 소년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사자의 갈기와 같이 삐죽삐죽 뻗은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이마에 쓴 수면 안대. 그리고 쌀쌀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반팔티를 입었으며 하의는 파란색의 운동복을, 붉은색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허리에는 점퍼를 묶어 매어놓았다. 그 소년은 바로 진모리였다.


"후우! 하앗! 핫!"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모리는 홀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 주먹과 발차기가 휘둘러지자 누구나 느낄 정도의 바람이 일어났다. 그것만해도 주먹과 발차기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예상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렸을 때부터 진태진에게 리뉴얼 태권도를 배워왔던 모리는 리뉴얼 태권도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는 근접전에 약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목표가 한정적인 것, 세 번째이자 마지막 약점은 몸에 무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모리는 이 약점들을 극복하고자 오랫동안 계속해서 수련을 해왔다. 얼마든지 리뉴얼 태권도를 사용할 수 있게 몸을 단련해 왔으며 복싱을 비롯한 여러가지 무술들 또한 익혀왔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왔던 수련이었다. 이미 그의 힘은 인간을 넘어 클로저들과 견줄 정도였다. 다만 위상력이 없다는 것뿐. 그렇기에 모리는 자신의 힘을 단 한 번도 전부 사용한 적이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수련을 하는 이유는 바로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였다. 차원종이라는 위협과 그 외의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수련을 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힘이 차원종에게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모리의 생각이었다.


"하아. 그러고보니 오늘이었나."


오늘. 바로 유리의 검도 대회 결승전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모리는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유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자신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체력을 기르거나 목검을 휘두르며 해왔던 노력들을 이제 보상받을 날이 온 것이었다.


"뭐,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까지 유리가 해왔던 노력을 알고 있기에 모리는 반드시 유리가 우승할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리는 서서히 밝아오는 해를 뒤로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걸리지 않아 모리는 금방 집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학교에 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응? 뭐지?"


집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간 모리는 현관 앞에 놓여있는 신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에 모리는 설마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집 안에는─


"아, 왔어? 금방 기다려, 다 끝나가니까."


─교복 위로 새하얀 에이프런을 걸친 유리가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런 유리를 본 모리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너! 왜 여기 있는거야!? 오늘 결승전이잖아!?"


"응, 맞아. 그런데?"


"그런데가 아니잖아! 집에서 쉬면서 결승전을 준비를 해야지 왜 우리 집에 와서 밥을 하고 있어!?"


"무슨 소리하는거야? 내가 매일 아침 밥을 차려주는건 당연한 일이었잖아. 그리고 그건 오늘 같은 날이어도 변함없다고. 참, 엄마가 너랑 같이 먹으라고 고기 조림을 조금 싸주셨어."


"고기? 하아. 아주머니도 참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모리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집에 먹을 입도 많은데 자신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 유리의 어머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모리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에이프런을 걸치고 국자를 든 모습은 나름 잘 어울린다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리와 친하게 지냈던 모리는 유리의 부모님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거기에 서로 집도 가까웠고 모리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안 뒤로는 자주 모리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유리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어느새 아침마다 찾아와 모리와 함께 아침 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중요한 대회가 있는 날에까지 찾아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빨리 씻고 나오기나 해. 준비해 놓을 테니까."


"하아. 알았어. 그리고 고마워."


"별 말씀을."


감사의 인사에 유리는 밝게 웃어보이고는 다시 등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된 모리는 갈아입을 속옷과 교복을 챙기고는 욕실로 들어가 입고 있던 옷들을 빨래 바구니 안에 넣고는 그대로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땀으로 인해 찜찜했던 느낌이 쏟아지는 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씻고 나오자 개운함을 느끼며 모리는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여러가지 나물을 비롯해 국과 반찬들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놓여진 밥상을 보면서 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3년이 넘도록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유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늘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으나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유리를 모리는 차마 쫒아낼 수가 없었다.


"응? 벌써 나온거야? 상당히 빠르네. 역시 남자아이라서 그런가?"


마지막으로 두 그릇의 밥을 가져다 놓은 유리가 모리를 보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에 무언가가 보였다. 축축한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물기가 보였다. 그것을 본 유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모리를 향해 다가갔다.


"정말이지."


모리에게 다가간 유리가 모리의 손에 쥐어진 수건을 빼았고는 그대로 모리의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우왓! 뭐하는 거야?"


"조용히해. 자기 머리하나 제대로 못 말리면 어떻해?"


"그냥 어느정도 닦으면 된거지 뭐."


"안 돼. 확실히 닦으라고."


수건으로 계속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던 유리는 이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리의 머리에서 수건을 벗겨내었다.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모리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읏!"


종이 한장 차이의 거리에 모리의 얼굴이 있자 유리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뒤로 몸을 뺐다. 갑자기 얼굴을 붉히 유리의 모습에 모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아? 얼굴이 붉은데, 어디 아픈거야?"


"아, 아니야! 아무것도! 자! 빨리 밥먹고 학교에나 가자!"


"알았어."


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이 차려진 식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모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리는 여전히 붉게 물든 얼굴로─


"바보."


─라고 작게 말하고는 모리의 뒤를 따랐다.





아침을 먹고 모리와 유리는 그대로 학교로 향했다. 모리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유리는 잠깐 수업을 듣다가 대회의 시간에 맞춰 조퇴를 하고는 그대로 검도부의 고문 선생과 함께 대회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신강고의 교장실. 한 중년인과 작은 체구의 소녀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녀는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푸른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슬비였다.


".....그런 이유로 신강 고등학교의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이 학교의 위상능력자 학생을 유니온의 전력으로 스카웃 하겠다고?"


"좋겠지. 어차피 클로저는 성인이 되면 유니온에 들어가야 하니... 단, 다른 학생들 학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교장을 향해 슬비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실을 나가려던 순간 교장이 슬비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자네의 그 옷차림 말일세.... 학교에서는 좀 그렇다고 할까.... 탈의실을 빌려줄 테니까....."


결론적으로 슬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클로저 요원복이 아닌 신강고 교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어본 슬비는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학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이라니, 느긋한 말씀 하시네.'


차원종이 아직 나타나 습격을 하고 있는 이때, 학업을 우선시하는 것은 뭔가 아닌 것 같다고 슬비는 생각했다.


'아니 교장 선생님 뿐만 아니라..... 다들 태평하구나.'


주위를 둘러보면 학생들 모두가 차원종의 위협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서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슬비는 자신도 모르게 떠올렸다. 학교 친구들과 밝게 웃으며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고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차원종들이랑 혼자서 싸우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건 어제 일로 잘 알았어.'


왜 팀으로 움직이는지 알겠네 하고 생각한 슬비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던 슬비의 눈에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에 손에 게임기를 쥐고 있는 소년, 이세하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수면 안대를 쓴 모리가 누워서 자고 있었다.


"헐? 교복?"


세하도 슬비를 발견하다가 그녀가 입은 교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떳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 이 학교 다녀?"





"어제는 미안했어."


"응? 아아, 됐어. 사과도 받았고. 이미 지난 일인데 뭐."


둘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슬비는 세하의 옆에서 뭔가 머뭇거리고 있었고 세하는 어떻게든 슬비를 무시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거북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저기, 어제 내내 너에 대해서 쭉 생각 해 봤어."


침묵을 깬 슬비가 세하에게 말했다.


"넌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앞 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지. 아무리 위상능력자라고 해도 그건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해. 실은 여기온 이유는 널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서야. 난 네가 필요해."


슬비는 어느새 세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말했다.


"난 네가 아니면 안 되겠어."


세하는 지금 슬비의 말에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슬비의 말은 고백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왜!? 영문을 모르겠어!? 대체 어떻게 사고가 흐르면 그런 결론이 나는데? 거기다 너 기합이 너무 들어가서 공중에 떠있거든!?"


"검은 양에 들어와줘!"


마지막 슬비의 말을 듣고나서야 세하는 슬비가 고백이 아니라 어제 말했던 팀에 대한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부탁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미안. 나 같으네 너랑 한 팀이 되어 봤자 어제처럼 발목만 잡을걸?"


"알아. 니 실력 형편없는거. 어제 봤으니까."


슬비의 거침없는 말에 순간 세하의 이마에 사거리가 생겨났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비는 세하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넌 위상력을 컨트롤 한다기 보단 전부 힘으로 밀어 붙였잖아? 그러니 죽도가 버텨낼리가 없지. 제대로 된 무기만 있으면 제 몫을 할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 정도는 유니온 연구원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고. 실력 좋은 사람들이니 너한테 딱 맞는 무기를 찾아 줄 거야.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 니 배경이나 실력 때문이 아니야."


"하아. 갑자기 그런 얘기를 들어도 말이지.... 넌 왜 차원종과 싸우고 있는 거냐?"


그 말에 슬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한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차원종을 남김 없이 섬멸해서 사람들을 지키고 싶으니까."


사람들을 지킨다. 라고는 말했지만 슬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원종에 대한 복수 뿐이었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유니온에 들어갔고 클로저 교육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복수심을 딱히 누군가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니?"


"...그렇...지. 일단 생각 좀 해볼께."


슬비의 말에 세하는 슬비의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세하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서유리는? 오늘 만나자고 했는데."


"나랑 여기 자고있는 모리랑은 같은 반이긴 한데 지금은 학교에 없어. 걔 그래 보여도 검도 신동이라서 오늘 전국대회 결승전 치르러 갔거든. 아마 지금쯤이면 신나게 상대를 두드려 패고 있거나 시상식에서 메달을 달고 있을걸?"


"그렇구나. 언제 올 지는 모르는 거네?"


갑자기 풀이 죽어 시무룩 해지는 슬비의 모습에 세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하, 학교에 들리는지 메세지 보내볼께."


그때 였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에게서 유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있지, C반에 서유리 있잖아."


"그 검도녀?"


"응. 방금 검도부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서유리가 사실은 위상능력자였대. 그래서 오늘 대회에서 실격 처리 됐다는데?"


여학생의 말에 세하랑 슬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유리의 실격패 그리고 분명히 가지고 있지 않던 위상력의 사용. 위상능력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던 세하나 슬비는 지금 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생들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그거 아니야? 위상능력자는 성인이 되면 무조건 유니온에 들어가야 하니까 부모가 자식이 능력자인거 숨기는 케이스. 그거 완전 치사하고 비겁하지 않냐?"


그 말에 세하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뒷편에서 자고 있던 모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힘을 숨길 생각이면 조용히 살던가. 일반인 대회 나가서 상장 쓸어 오는건 무슨 정신이래? 어쩐지 이상하게 강하더라. 정말 치사하...."


말을 하던 남학생의 말이 도중에 끊어졌다. 이유는 바로 눈앞에서 넥타이를 붙잡은 세하 때문이었다.


"이세하? 왜? 한대 치게? 치고 싶으면 쳐. 위상능력자가 민간인한테 손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러고보니 너 서유리랑 친했지? 동지라 이거냐? 너도 알면서 암말 않고 있었던거 아니야?"


그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세하가 정말로 주먹을 휘두르고자 했을 때 슬비가 세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표시했다. 그때 였다. 모두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위상능력자가 아니라면 때려도 되겠네?"


그 목소리에 세하나 슬비가 시선을 향했을 때는 이미 퍼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둘의 시선에는 주먹을 내지른 모리가 보였다.


"꺄아악!"


갑작스러운 상황에 옆에 있던 여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리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리는 상관없다는 듯이 손가락 관절을 풀며 쓰러진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뭘 그거 가지고 주저앉고 그래? 아직 안 끝났어."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세하는 알았다. 지금 모리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말이다.


"크, 크윽! 진모리 너! 알고 있을텐데!? 사고를 치면 너도 곧 있을 다음 대회에 출전 못한다는 사실을 말야!"


남학생이 외친 그 말에 모리의 발걸임이 뚝 하고 멈췄다. 그 모습에 쓰러진 남학생이 외쳤다.


"왜? 또 쳐** 그래!? 아아, 그렇지! 사실은 너도 서유리랑 같이 위상능력자인거 아냐!? 끼리끼리 논다고들 하잖아!"


"저 자식이...."


남학생의 말에 세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나가려던 순간 모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포기하지 뭐. 그깟 대회 안 나가면 되는 거지?"


모리가 한없이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남학생들 내려다 보았다. 분명 곧 있을 대회는 모리에게도 중요한 대회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대로 유리가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 대로 해라...."


할아버지인 진태진이 가르쳐 주었던 진씨 집안의 가훈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가훈이겠지만 또 다르게 보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


"어, 어어!"


남학생은 설마 모리가 대회를 포기하면서 까지 움직일 줄은 몰랐는지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학생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모리가 그대로 쥐고 있던 오른 주먹으로 남학생의 얼굴을 쳤다. 또 다시 퍼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본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모리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남학생의 멱살을 잡아 세우고는 남은 오른손으로 그대로 복부를 가격했다.


"커억!"


"아직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발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힘도 조절한다. 감정에 맡겨 자신의 힘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모리의 두 주먹이 남학생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모리의 주먹이 휘둘러질때마다 피가 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모리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남학생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네가 뭘 안다는 거야."


퍼억! 다시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리는 계속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네가, 너희들이 그 녀석이 해온 노력을 알기나 해?"


모리의 말은 남학생만이 아닌 주위에 있던 모든 학생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그녀석의 손을 본적이 있어? 17살 여자아이의 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굳은 살이 가득한 그 손을? 매일같이 목검을 휘두르고 그 때문에 손에 물집이 생기고 터져 피가 나도 유리는 절대 손에서 목검을 놓지 않았어. 매일 아침마다 체력 단련을 하고 학교가 끝나도 남들 처럼 놀기보다는 늘 검도 연습만 했지."


계속해서 퍼억, 퍼억 하고 소리와 함께 모리의 말이 모두의 귀에 들려왔다.


"남들보다 2배, 3배는 연습해서 그 정도의 실력을 쌓은거야? 그런데 뭐? 치사? 위상력을 숨겨? 함부로 말하지마, 이 자식아! 그녀석의 노력을 모르면 조용히 닥치고 있으라고!"


그러면서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을 때, 누군가가 모리의 팔을 붙잡았다.


"누구..."


모리가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려던 순간 자신의 왼쪽 뺨을 때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짜악 하고 울려퍼진 그 소리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몸을 움츠렸다. 모리는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을 느끼며 자신의 때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정미..."


모리를 때린 사람은 바로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여학생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우정미. 모리와 유리랑은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지낸 사이였다. 지금 그녀는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모리를 보고 있었다.


"정신차려, 진모리! 사람 하나 죽일 셈이야!? 네가 그런다고 유리가 기뻐할 것 같애!?"


"......미안."


"알면 됐어. 그리고 벌써 늦은 것 같으니까."


정미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에 달려오고 있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누군가가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을 불러온 것이 분명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야!?"


선생들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진 남학생과 손에 피가 가득히 묻어있는 진모리였다.


"진모리, 네가 그런거냐?"


"네."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선생님의 말에 모리는 조용히 선생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하와 슬비가 보였다. 모리는 그들을 향해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미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나도 화가 났는데 뭘. 일단 너나 신경쓰도록 해."


"그래."


그리고 모리는 그대로 선생님들과 함께 교무실로 향했고 쓰러진 남학생은 서둘러 양호실로 옮겨졌다. 소란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방금 전의 일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하와 슬비는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였다. 세하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세하."


"...우정미."


등을 돌리자 보인 것은 화난 얼굴의 정미였다.


"너, 모리랑 친구 맞아?"


"그게 무슨 말이야?"


"모리가 그렇게 사람을 때리는데 말리기는 커녕 지켜보기만 하면 어떻해!?"


".....미안. 할 말이 없다."


세하는 왜 모리를 말리지 않았냐는 정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 외에는 세하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자신도 화가 났다고는 하지만 슬비처럼 모리를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흥! 됐어. 너랑은 얘기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매서운 눈빛으로 세하를 보던 정미는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세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나저나 서유리는? 답장 왔어?"


혼자 중얼거리던 세하는 슬비의 말에 핸드폰을 보면서 말했다.


"왔어."


"뭐래?"


"지금 학교로 온대."


"일단 지금 이 소란이 서유리의 귀에 들어가는건 좋지 않아. 밖에서 만나기로 하자."


"알았어."


슬비의 말에 세하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유리가 도착했다.

2024-10-24 22:28:2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