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 - 1
서진권 2015-06-07 2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항상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시가 취미였으니까. 낚시를 잘 했냐고?
아니. 전혀.
내가 아는 한, 그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낚시꾼이었다. 아버지는 주말만 되면 아침마다 항상 나를 두 시간 거리의 저수지로 데리고 갔다. 물론 그가 애지중지하는 낚시세트와 함께. 작고 외딴 저수지는 여름만 되면 녹조가 끼는데다가 새벽녂에 도착하면 물가 가득한 안개로 냄새마저 지독했다. 당연히 나는 그곳에 가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더러운 물에 물고기가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믿었나보다. 아니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썩은 저수지에 갈 수 있었을런지. 아무튼 새벽에 도착하면 그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자리를 펴고 그대로 해가 떨어질 때 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거르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물고기가 제대로 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항상 만족하는 것 같았다. 매번 허탕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사정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버지 때문에 매 주말이 정말 죽기보다도 싫었다. 한 번 상상해보라. 주말마다 낮선 시골에 끌려가 아무 수확도 없는 행위에 매번 동참해야 하는 심정이 어떨 지.
한 번은 아버지가 내게 낚시대를 넘긴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낚시에 재미를 붙이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낚시대 끝을 서 너 시간 씩 바라봐야 하는 지루한 행위에 나는 곧바로 질려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물가 주변의 곤충들을 잡아 괴롭히는게 더 즐거웠다.
주말마다 저수지의 곤충들은 나로 인해 지옥을 겪어야 했다. 내가 잡아 죽인 곤충만 몇 천 마리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어쩌면 미발견 된 몇 개의 종을 멸종시켰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항상 저녁 6시가 되면 자리를 접었다. 당연히 무언가가 잡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매번 핀잔을 주었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다음 주도 또 와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의자를 차에 집어 넣으며 대답 대신 흐뭇한 미소로 아이스박스를 꺼내 그 안 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보여주었다.
"자, 봐라. 오늘은 이 만큼 잡았다."
그 물고기는 새벽에 근처 시장에서 사온 물고기였다. 심지어 그건 바다 물고기였다. 하지만 그런건 그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나보다. 아버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물고기를 손질하여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매운탕을 끓여 나에게 주었다. 사실 아버지는 요리 실력도 그저 그런 편 이었다. 그래도 낚시하는 사람 옆에서 기다리는 것 보다야 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매운탕을 먹는게 몇 백 배는 행복했다.
산 아래로 떨어지는 햇빛 아래에서, 나는 어느 날 운전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째서 낚시를 하죠? 아무것도 못잡았잖아요. 근데 왜 만날 여기에 와요? 여긴 냄새나고 더러워요. 물고기같은 건 없다구요. 처음부터 여기엔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구요.
하지만 반항기 섞인 나의 물음에 그는 그저
"아직 살아있으니까." 라고만 말 할 뿐 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주홍빛 석양을 맞으며 묵묵히 운전하는 그의 그늘 진 옆모습만을 기억할 뿐 이다. 나는 그때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바라보는 아버지의 옆모습은 참으로 크고, 어딘지 외로워보였다. 끝 없는 차로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 갑자기 허공으로 붕 떠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꽉 메었다.
"언젠가는 잡아서 너에게 주마. 저 호수에서, 반드시 건강하고 싱싱한 물고기를."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 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다음 날 여느때와 같이 밍밍한 콩나물국에 식은 밥을 말아먹고서 출근했고, 인류가 아는 지구의 역사는 그 날 끝장이 났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일상이라는 단어는, 퇴근길 차로 한복판에 차원종이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인간의 뇌수를 빨아먹기 위해 나타나면 특경대와 클로저들이 출동해 놈들을 도륙내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이 대충 망해버렸을 때, 회사 나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아버지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제와서 알 방법은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아버지의 비루했던 일상 또한 어쨌든 종말을 고했으리라는 것 뿐이다.
솔직히 그가 어떻게 되었을 지 짐작은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지막을 굳이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내 앞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감안하면, 그의 최후를 상상하는 일은 나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에 선 아버지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습만은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없었다. 솔직히 이젠 그의 얼굴조차도 희미하다.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 어떤 성격의 남자였는 지. 이제 제대로 기억하는 건 오로지 낚시하는 그의 등 뿐 이다.
잠에서 깼다.
창 밖으로 석양이 조용히 지고 있었다. 신서울 가득 빼곡히 들어 찬 마천루들이 구름 아래 마저 남은 저녁놀을 증기탑처럼 은은히 머금고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미간을 주물렀다. 눈이 무척이나 뻑뻑했다.
무척 오래된 꿈을 꾸었다. 정말로 간만에 꾸는 꿈 이었다. 꿈 덕분인지 현실감각이 무뎠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넘어 있었다. 얼마나 잔 것인지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아리방에는 나와 핸드폰 게임을 하는 여자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흐린 눈을 몇 번 질끈 감았다 뜨기 반복하니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김유정이다. 나의 관리요원, 나의 잔소리꾼. 하지만 그녀가 어쩐 일로 이런 늦은 시간까지 이곳에 남아있는 것 일까?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술 과 칼퇴근.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일어나다, 나는 이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내가 앉았었던 책상 위 에는 시말서로 보이는 종이 여러장이 쌓여있었다. 나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참 세상 편하게 자네요, 제이씨?"
옥구슬 굴러가듯 예쁜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원망의 가시가 잔뜩 돋혀 있다. 나는 가볍게 사과하며 잠이 덜 깬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깨워보려 애쓴다. 그녀는 반쯤 뜬 눈으로 나를 힐끗 째려보며 한편으로는 핸드폰의 화면에 남은 시선을 집중한다. 스크린을 터치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니 이내 기묘한 전자음이 방 안을 메운다. 나 덕분에 찡그려진 얼굴이 기쁨으로 바뀐다.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저기 그게, 뭐 잡았어?"
"제이씨가 알 바 아니잖아요?"
그녀의 매서운 말 한 마디에 나는 바로 고개숙인 남자가 됬다. 서로간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녀는 살짝 내 눈치를 보더니 약간은 무안한 표정으로
"청새치 잡았어요. 레어 물고기. 되게 잡기 힘든 거에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는 그녀 몰래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 꿈의 이유는 그거 때문 이었냐? 아버지는 살아생전 청새치는 커녕 송사리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그녀는 참치하고 덩치가 비슷한 놈을 잡았단다. 물론 핸드폰 안의 이미지일 뿐 이었지만 그래도 현실에서조차 빈손인 것 보다야 낫다.
머리가 아직도 띵 하다. 잠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낮술때문인 것 같다. 근데 내가 왜 시말서를 쓰고 있었지? 마치 뇌가 녹아버린 것 처럼 느껴졌다. 캔 바닥에 마저 남은 찌끄러기 맥주를 해장술 삼아 마시고 나니 약간은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다. 아, 맞다, 이런 빌어먹을.
"왜요? 자다 일어나니 이제 좀 사태 파악이 되세요?"
"저기, 유정씨? 그 때 일은 미안하게 됬어, 미안하니까......."
"아, 그래요? 그 따위 일 벌여놓고 말 로만 미안하면 클로저 생활 다 끝나나요, 네? 제이씨?"
이번엔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내가 그녀에게 할 말은 하나도 없다. 나는 책상에 앉아 천천히 머리를 싸쥘 수 밖에 없었다.
보름 근신에 감봉 10 개월. 오늘이 근신 이틀 째 다. 그녀와 함께. 물론 직접적으로 그녀의 잘못은 아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앞에도 쓰다 말은 시말서와 술병이 쌓여 있다. 세상에, 이제보니 맥주가 아니라 소주병이다. 그나마 병나발을 불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녀 성격에 낮부터 소주로 나발을 불었다면 나는 잠든 채로 맞아죽었을 것이다.
아직 내가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며, 나는 남은 시말서를 쓰기 위해 마저 펜을 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일 주일 전 으로 거슬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