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먼 자의 시선 - 프롤로그

세빌라 2014-12-23 1

많은 사람이 왕래했다고 하는 시간의 광장, 하지만 그 말은 순 뻥인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정상적인 물건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 바닥에 놓인 책과 유리 파편, 새하얀 바닥들은 이미 노화되었다. 전부 차원종 때문이라고 하는데, 덕택에 저기 있는 무장한 아저씨들만 고생이다. 저 아저씨들은 누구냐고? 차원문 철거중대원들이다. 하는 일이 많다고 하던데, 지금은 상대하기 힘들다는 C급 차원종을 포박한 채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냥 잡으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해봤는데, 퇴짜 맞았다. 이 고지식한 아저씨들, 그러니까 당신들이 애인 없는 거야. 이 여린 18세의 마음을 그렇게 후벼 팔 필요까진 없잖아!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체념은 내가 했어야 했다.

그래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나는, 앉을 만한 곳에 앉아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심심하다, 심심해. 아저씨들, 내게 일거리 없나요? 돈 벌고 싶단 말이에요. 심부름도 좋으니까 일 좀 시켜달란 말이에요. 네, 제발요.

 

“심심해, 서유리?”

 

옆에서 들려오는 차갑고 얇은 목소리, 우리의 대장인 이슬비다. 그녀의 차가운 눈매는 이미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따, 딱히 심심한 건 아냐!”

“그런데 왜 입이 나와 있어?”

“무, 무슨 소리야? 내 입이 어떻다고?”

 

왜, 왜 이래?! 갑자기 나를 향해 바라보며 그런 차가운 말을 내뱉어?! 하지만 나의 이런 모습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이 나와 있어서.”

“하, 하하. 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흠.”

 

그러더니 아무런 말이 없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나는 그저 뚫어지게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나저나 평상시에는 세하에게 말을 건네던 녀석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네니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봤자 세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뿐이지만……. 아무래도 슬비도 꽤 심심한 모양이다. 오죽하면 나한테도 말을 붙이고 말이다. 이럴 때는 이성인 이세하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데 말이다. 옆에서 보면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세하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고개를 돌려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에 이어폰을 낄 녀석이 아니기에, 게임 소리도 나야 할 텐데, 전혀 나질 않았다. 결국 찾다 못해, 슬비를 쳐다보았다.

 

“세하는 4층에 있을 걸?”

 

4층?! 도대체 거기에 뭐가 있다고 거기까지 간 거지? 뭔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녀의 대답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4층 정도 높이에서 멈췄다. 하지만 세하는 보이질 않았다. 얘가 드디어 구석에 숨어서까지 게임을 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아까 4층에서 차원종을 잡다가 오락실 있는 걸 봤는데, 얘도 본 것 같아.”

“오락실이 있었다고?”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이세하 녀석. 게임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오락실까지 찾아서 갈 정도로 게임에 집착할 줄은 몰랐다. 가뜩이나 차원종으로 인해 다 망가졌을 텐데, 거길 가서 뭘 하겠다는 건지……. 그나저나 오락실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나는 전혀 그걸 못 봤는데? 정말이지, 이 녀석의 눈썰미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그렇게까지 게임에 집착하는 거에 이해가 정말 안 간다니까.”

 

슬비가 갑자기 한숨을 내뱉었다. 표정과 말투는 매정해 보이지만, 눈빛만큼은 완전 달라보였다. 나 혼자만의 판단이지만, 혹시 그런 건가? 한 마디를 던져 볼까? 라고 슬비를 불렀다.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세하 좋아해?”

“뭐?!”

 

넌지시 던진 한 마디, 그러자 슬비가 얼굴이 빨개졌다. 정곡을 찔린 건가? 평소에 냉정하던 슬비가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리야?! 나, 난 단지 우리 거, 검은 양의 이미지에 타, 타, 타격을 받을 까봐 그런 거라고!”

“그런데 말을 왜 더듬을까?”

“누, 누가 마, 말을 더듬는다고 그, 그래?! 하, 하여간 세하는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후훗, 이렇게 나오는 슬비도 상당히 귀엽다. 앞으로도 이렇게 괴롭혀줄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폰으로 찍어, 세하한테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음흉한 마음으로 계속 슬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시선만 피할 뿐이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으악!!!”

 

갑자기 들려오는 한 마디, 슬비나 내가 아니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목소리가 전해진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 조심해!!!”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C급 차원종이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잠깐, 저 녀석은 분명히 철거중대원에 의해 포박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고민할 틈은 전혀 없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접근했기에, 나랑 슬비는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흥.”

“여차!”

 

우리는 자리에서 피한 뒤, 자세를 잡고 무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 차원종은 우리에게 공격을 가하기는커녕, 갑자기 제자리에서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데, 갑자기 주변에서 D급 차원종들이 소환되었다. 소환된 수는 대략 10마리 정도인가? 이런, 수적으로 엄청 불리해졌다. 나는 아저씨들을 바라보았다.

 

“아저씨들, 그러니까 내가 잡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이 녀석을 본부에 보내겠다는 명령이 있었다고.”

“나 참, 정말 못 말린다니까.”

“유리야, 지금은 이 녀석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야.”

 

슬비의 차가운 한 마디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우선은 이 녀석들을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왼 손에 들린 권총을 그들에게 들이댔다.

 

“그건 그래. 자, 얘들아. 이 언니가 놀아줄게. 빵야~! 하고 말이야.”

“몸만 20대고, 정신은 초등학생이면서.”

“거기서 몸 이야기는 왜 해?! 게다가 내 정신 상태가 어떻다고?!”

“그냥 한 말이야.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나 참, 얘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겠다니까……. 내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자, 그럼 준비됐지?”

“오케이! 그럼 먼저 나선다!”

 

나는 거침없게 그들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지나쳤다. 녀석들은 몸이 굳어 있더니, 제자리에서 쓰러지거나 사라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권총으로 연사를 했다. 그러자 내 공격을 당한 몇몇 차원종들이 피해를 입고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헤, 얼마든지 덤비라고!”

“조심해!”

 

귓가에 들려온 이슬비의 한 마디, 그러나 제대로 들을 틈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복부를 강타당하고 말았다. 뭐에 맞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맞고,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서유리!”

“쿨럭, 쿨럭. 이 녀석, 왜 이렇게 세?!”

 

나는 고통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들어 다시 한 번 녀석을 베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녀석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안면을 강하게 내려쳤다. 이번에는 슬비 쪽으로 날아갔다. 어떻게든 멈추려고 할 수 없었다.

 

“꺄악!”

 

결국 슬비랑 나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 손에 쥔 무기들은 자연스럽게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살짝 혼미해진 상황에서, 슬비는 냉정을 유지한 말투로 내게 말을 자주 건넸다.

 

“괜찮아?”

“그, 그럭저럭.”

 

말은 그렇지, 제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턱을 맞은 건가? 충격을 너무 받았다. 그런데 슬비는 나를 치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여기서 쉬고 있어.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볼게.”

 

뭐?! 혼자서? 그건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든다. 수도 많은데, 어떻게 혼자서 녀석들을 상대할 거냐고?! 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충격 때문인지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걱정하지 마. 지금 저 분들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상대하기 쉬울 거야.”

 

슬비의 한 마디와 동시에,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달려드는 D급 차원종들, 하지만 순식간에 전멸을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저 나이프들이 차원종들을 가차 없이 베어나갔다. 녀석들의 비명을 들을 틈도 없었다. 가끔은 공격을 하는 녀석도 있지만, 마치 손가락으로 튕겨내는 것처럼 나이프로 쳐냈다. 그렇게 몇 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빠르고 강한 공격을 한 이슬비, 그래서 검은양의 리더인 모양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지켜보는 것뿐이라니……. 조금은 분하다.

 

“자, 이제 너만 남았어. 어쩔 거지?”

 

소환한 차원종들이 전멸한 탓에, 살짝 겁먹은 것 같은 C급 차원종, 개처럼 크르릉만 거리더니 갑자기 위를 바라보았다. 왜 저러지? 도저히 차원종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슬비는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냉정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설마…….”

 

차원종은 갑자기 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4층 위치에서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잠깐! 4층에는 세하가 있었다면서?! 그러면 상당히 위험하잖아! 나는 있는 힘껏 제자리에서 일어나며, 슬비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리하지 말라니까.”

“그, 그렇지만 저기에는 세하가…….”

“내가 어떻게든 쫓아가볼게.”

 

그리고 그녀는 망가진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나도 가고 싶지만,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많이 나아졌기에, 제자리에서 앉아 있는 정도? 뿐이다.

그런데, 슬비가 굳이 뛰어가지 않아도 됐었다. 4층 안으로 들어가 버린 차원종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는 놀란 나머지, 두 눈만 휘둥그레 뜨기만 했다. 잠깐, 가만히 보니 차원종의 머리 위에는, 세하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표정은 자세히 안 보이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자세였다. 한 손은 검을, 한 손은 턱을 잡고 있었다. 그는 쥔 검으로 녀석의 이마를 찌르고 있었다.

 

“이세하!”

 

그대로 추락해버린 차원종, 당연히 먼지는 사방으로 퍼졌다.

 

“콜록, 콜록!”

“도, 도대체 뭐야?!”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1층, 중대원 아저씨들도 기침을 많이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였다.

다행히도 먼지들은 걷어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차원종을 노려보는 세하가 있었다. 그는 검을 뽑은 뒤, 가차 없이 녀석을 연속으로 베었다.

 

“크웨에에에에에!!!!!!!!”

 

세하의 연속 공격에 차원종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잔인한 이 광경을 도저히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입만 벌리고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광경을 같이 바라보는 이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베는 것인가? 오죽하면 아군인 나도 그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말리다가는 나도 당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쥐었던 힘들이 전부 풀리기 시작했다.

 

“…….”

 

이 와중에 세하가 내뱉은 한 마디, 곧이어 그는 녀석을 찔렀다. 그러자 차원종은 한 줌의 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는 계속 차원종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 이세하?”

 

나는 잠깐 그를 불러봤다. 결국 돌아온 것은 차가운 눈빛이었다. 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양의 같은 일원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나는 아직 발끝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ps. 클로저스 OBT를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프롤로그를 준비했으며, 앞으로도 연재를 쭉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4-10-24 22:21: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