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 이슬비 공략 - 4

계란튀김정식후루룹 2015-06-05 2


"…그래서 말이야."

 나는 지금 세하와 유리, 슬비와 함께 시내를 걷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세하가 슬비의 잔소리 없이 게임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와 슬비를 맺어주게 하려 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세하가 주장한 작전인 더블데이트 라는 걸 위해 자주 검은 양 팀과 어울렸고, 그 결과 시간만 생기면 우리 넷은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도 인천에 뮤지컬 공연이 있다는 사실에. 인천에 온 우리는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쉽다는 세하의 주장에[더블데이트를 하기 위한 핑계다.] 인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가한 오후의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랑 슬비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사실 세하의 계획은 내가 봐도 깜짝 놀랄 만큼 완벽했다. 대체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모를 정보들을 바탕으로[본인 말로는 엄마가 줬다고 하는데 대체 알파 퀸 이 왜 세하에게 협조하는질 모르겠다. 이유를 물어봐도 쓸쓸한 얼굴을 하며 대답을 회피하는 것 때문에 묻지를 못했다.] 완벽한 계획표를 짠 뒤. 본인이나 유리에게 물어봐서 알아낸 슬비의 취미, 특기 같은 것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슬비가 셜록 홈스를 드라마를 좋아하는 셜로키언[쉽게 말하면 홈즈빠 다.] 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3일에 걸쳐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관련 정보를 긁어모았던 적도 있다. 세하가 비록 게임을 편하게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대체 얼마나 잔소리를 받았으면 이 정도로 열정적이고 완벽하게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슬비를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세하의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결과가 망했다. 세하는 잔소리도 많이 줄었고, [사실은 일하느라 게임을 할 여력이 없어서 그렇다]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는 기분이라며 혼자 좋아하고 있지만. 슬비를 좋아하는 나, 이기에. 단언할 수 있다. 슬비는 지금 세하에게 관심이 있지, 나에게는 친한 친구 정도의 생각밖에 가지고 있질 않았다.
 이 사실을 눈치챘을 땐 솔직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렇게 좋아했는데…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다니. 친구이기에 미워할 수도 없다, 좋아하기에 슬비를 원망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열등감에 휩싸인 채 웃는 얼굴의 가면을 뒤집어 쓰는 것 뿐이었다.

"석봉아 너도 이거 먹을래?"
"아냐. 괜찮아."

 슬비를 위해 노력한 결과. 말을 더듬는 버릇도 지금은 거의 고쳐진 상태다. 나는 유리가 주는 어디서 사 왔는지도, 이름도 모를 음식을 거절하며 흔들리는 가면을 단단하게 굳혔다. 가면을 굳힌 뒤 슬쩍 일행을 살펴보니 나 말고는 유리가 가져온 음식을 다들 손에 들고선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먹고 있어서 그랬을까? 슬비가 지나가다 누군가와 부딪치며 들고 있던 음식의 양념이 그 사람의 옷에 묻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했을 법도 하건만, 슬비는 바로 사과를 하며 휴지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한눈을 팔며 걸어서."
"하하. 아뇨 괜찮습니다."

 슬비와 부딪친 사람은 우리 또래 정도의 소년이였는데. 다행히 이런 일로 시비를 걸진 않는 착한 사람이었는지 웃으며 슬비가 건넨 휴지를 받아서 옷에 묻은 양념을 닦아냈다. 하지만 진한 앙념이었는지 앙념은 잘 닦이지 않았고, 곤란했던 소년이 멋쩍게 웃으며 슬비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소년의 눈이 슬비의 얼굴로 고정되었다. 슬비는 갑자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휴지, 더 필요하신가요?"
"…분홍색 머리카락."

 소년이 본 것은 슬비의 얼굴이 아니라 머리카락인 것 같았다. 조용히 슬비의 머리카락 색을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홍색이 뭐가 어때서 그렇지? 아. 하긴 확실히 분홍색 머리카락이 조금 희귀하긴 할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분홍색으로 염색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클로저 같은 경우에도 슬비처럼 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이 변한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을 테니 말이다.
 잘 생각해보니 이건 조금 희귀한 정도가 아니라 초레어급 머리카락 색이였다. 소년은 아마 처음 보는 머리카락 색에 당황한듯싶었다. 그런데… 소년의 기세가 변했다. 사람 좋게 보이던 미소가 소년의 입 끝이 비틀리며 저열한 비웃음이 되었고, 들고 있던 휴지를 내팽개치며 바닥에 침을 뱉는 모습은 어딜 봐도 좋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흥. 뭐야 너 클로저 였냐?"
"네? …그런데요. 뭐 문제라도 있나요?"

 소년은 방금 까지의 존댓말은 어떻게 했는지 반말을 탁 뱉어내며 슬비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슬비라도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변하자 당황스러웠는지, 조금 말을 더듬었다. 소년은 그걸 알고선 그러는지, 모르고선 그러는지 주변에 들릴 정도로 크게 웃음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는 입을 열었다.

"킥… 클로저가 왜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냐? 응? 너희 같은 쓰레기가 우리랑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역겨워서 토가 나올 지경이다. 킥킥"
"… 그, 그게 무슨!"

 갑작스레 터지듯 나온 소년의 말에, 나와 슬비랑 유리는 당황했고, 세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클로저의 인식은 그렇게 좋지 않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최악에 가깝다. 대놓고 무시하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며, 말 한마디도 나누기 싫어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왜? 화나냐? 그래서 어쩔 껀데? 괴물 잡는 괴물은, 조용히 싸움터에 가서 개처럼 구르면서 차원종이나 없앨 것이지, 뭘 어슬렁거리고 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클로저를 싫어해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무시하며 조롱하진 않는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있을 때 뒷담으로 하는 말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정면으로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클로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인지, 아니면 힘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몰라도, 클로저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클로저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슬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자 소년이 이를 가는 소리도 들려올 정도였다.

"하! 강남이 왜 그런 꼴이 났는지도 뻔하네. 그때도 이렇게 뺀질거리며 놀고 있었겠지!!"
"그만해!!"

 듣다 못 한 유리가 소리를 지르며 슬비의 앞을 가로막았다. 슬비는 유리의 뒤에 서서 두 주먹을 꽉 쥔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리는 울먹이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하 는거야! 우린 놀지않았어. 최선을 다했다고!!"

 진심을 담아 외치는 유리의 말에 소년은 자신의 폭언에 대해 반성했다… 와 같은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의 진심이 담긴 말은, 오히려 소년의 무언가를 자극했는지 소년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한층 더 짙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딴 개소리는 집어치워. 뭐? 최선을 다해? 그래. 그렇겠지. 너흰 항상 말하지. '최선을 다했다.' 라고 말이야. 그래서 강남이 저 꼴이 되도록 구경만 하고 있었냐? 그렇게 열심이신 우리 클로저께서 강남이 저 모양 저 꼴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셨어요? 예?!"

 소년의 폭언에 단순히 목소리만 조금 울먹거리던 유리의 눈에 물방울이 살짝 맺혔다. 그리고 결정타가 들어왔다.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 사이에서 얼쩡거리지 마. 알겠냐? 이 괴물들아."

털썩-

 결국 사내의 폭언을 버티지 못한 유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애써 얼굴을 가리려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유리를 보며 소년은 비웃음을 감추지 못한채 크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소년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게 뭐지? 자세히 보니 소년이 커지는게 아니라 소년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 지는거 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랑 소년의 거리가 가까워진거지? 어라? 문득 느껴지는 감각에 나는 내가 다리를 움직여 소년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왜이러지? 하지만 그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내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어? 자, 잠깐!

짜악-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소년이 나에게 따귀를 맞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찢고 쓰러진 뒤였다. 갑작스러운 짝 소리에 유리와 슬비, 세하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 일어나."

 그리고 내 입도 내 손, 발 처럼 내 통제를 벗어난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력 고자인 내가 왜 이런 스스로 감당도 못할 소설을 콘테스트에 올렸을까. 후회된닼ㅋ
2024-10-24 22:28:1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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