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꽃

이른새벽 2015-05-31 3

분홍색 꽃








"아...힘들다... 이제 드디어 끝난건가?"

"수고했어..얘들아. 그리고 제이 아저씨도."


임무가 끝난 어느 날. 그날따라 차원종의 수가 많아 모두가 힘들게 임무를 마친 후였다. 언제나처럼 나는 유정언니에게 보고를 하는 중이었고, 세하는 게임기를 들고 있었으며,유리는 제이 아저씨, 테인이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언니, 오늘은 이상하게 차원종들이 많았어요."

"그래, 나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건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방금 연락이 왔거든? 그러니까 안심하렴."

"아..그래요? 휴우..안심이네요"


일시적인 현상이라..하긴,예전에도 이런 일은 많았었지.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다. 걱정했던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우리 검은양 건물로 들어갔다.


"후우..."


너무 피곤했는지 나는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누워버렸다. 잠이 솔솔 오는게 금방이라도 잘 것 같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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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결국 진짜 자버렸다. 일어나보니 우리 팀원들은 어딘가 놀러가기라도 했는지 쪽지가 놓여있었다.


'우리 근처 공원 좀 갔다올게~ 피곤해 보여서 깨우지는 않았어'


팀원들의 배려심에 새삼 고마워졌다.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혹시 공원이 보이나 싶어 창가로 다가가니 처음 보는 분홍색 꽃이 놓여 있었다. 들어올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니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분위기가 흘렀다. 많은 꽃잎과 연두색 암술 수술들. 그 밑으로 쭉 이어진 초록색 줄기와 두 장의 잎, 마지막으로 예쁜 빨강색 화분까지.


"'아..유리가 사온건가?"


얼마 전에 내 머리색과 같다며 좋아하며 사려고 했던 유리가 생각났다. 나는 그때 불필요한 지출이라 생각해 유리를 말렸지만 내가 없는 새 사왔나 보다. 여기 이렇게 있는 걸 보니 불필요한 지출만큼은 아닌 것 같다.


꽃구경을 마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예상대로 공원이 한눈에 보였다.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팀원들도 작게나마 보였다.


"재밌어 보이네..."


게임기를 들고 걸어가다가 넘어진 세하를 보고 깔깔대며 웃는 유리와 괜찮냐고 물어보는 듯한 테인이, 직접 일으켜 주는 제이 아저씨까지 참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


"꾸워~크워어어어"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치....차원종의 목소리같은. 나는 설마 하고 옆을 보았다.


"헉...."


아까의 그 아름답기만 하던 꽃이 괴상한 차원종으로 변해 있었다. 차원종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이건 위험하다.


"피,피해야해..!"


웜홀 생성을 사용하여 일단 그 꽃에게서 머릴 떨어졌다. 떨어지자 마자 내가 있었던 자리로 공격이 가해지는 것을 보아하니 조금만 늦었어도 작살이 났을 거다. 스피드가 매우 빠른 것 같다. 나는 우선 칼을 소환해 꽃에게로 던졌다.


핏-


아주 작은 상처가 생겼다. 스피드 뿐만 아니라 방어력까지 강한 것 같다. 이거 상대하기 힘들겠는데..? 원거리 공격이 필요하다. 나는 전자폭풍을 생성해내어 꽃에게로 보냈다.


"쿠워어...꾸르르..."


생각보다 데미지가 컸는지 꽃이 주춤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반전을 사용한 후 꽃에게로 다가가 평타를 몇대 때려주었다. 꽃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잎을 길게 뻗어 나를 공격해왔다. 긴급회피를 사용하여 재빠르게 피한 후 바로 레일건을 사용했다.


탕,탕,탕,탕탕탕탕탕-


공격이 끝나면 바로 반격을 해오는 걸로 보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끊임없이 공격해야 하는 듯 하다. 나는 집속탄을 만들어내어 경직을 준 후 움직이지 못하게 공간 압축을 사용했다. 예상대로 꽃은 빨려들어 갈 뿐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 사용할 스킬은...


"내 앞에서 사라져버려!"  


결전기 위성 낙하. 이미 건물은 많이 부서진 지 오래다. 천천히 위성이 떨어지고 나는 레일 캐논까지 연달아서 사용했다.


콰앙-.퓨부부붕


위성이 떨어지고, 큰 충격이 느껴졌다. 레일 캐논까지 모두 사용을 마치니 그 식물은 거의 기력이 없어 보였다. 

좋아..이제 마지막이다!


"시내 버스다!"


버스를 떨궈주었다. 마지막으로 밀기까지 해주니 그 식물은 이미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스르르-


식물이 사라지고, 남은 곳엔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창문 뿐이었다. 특수 방어막 처리를 해서 그런지 검은양 건물은

많이 부서지긴 했지만 아직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으으...처리한 건가."


힘들었다. 팀원들은 아무 일 없는건가? 창문을 보니 부서진 우리 동아리 방을 보고 놀란 듯 달려오는 팀원들, 그리고 그 뒤로 커다란 꽃이 보였다.


커다란 꽃. 내가 아까 처리한 것보다 훨씬 큰 꽃이었다. 맨드란 라플레시아 인가..! 라플레시아의 독가루가 순식간에 팀원들과 사람들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갔다.

.

.

.


"아, 슬비야!"


유리의 목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인사나 할 때가 아니다. 폐허가 되버린 공원 속에서 제이 아저씨와 세하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고, 유리와 테인이가 맨드란 라플레시아를 상대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합류했다.


"유리야 옆에 조심해!"


작은 라플레시아지만 그 위력은 컸기 때문에 유리에게 피하라고 알려 주었다. 유리는 바로 피하고는 총으로 라플레시아를 쏴 없앳다. 그때 사라진 라플레시아 옆으로 작은 분홍색 꽃이 보였다.

이..것도 차원종인가? 하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유리가 매우 가까이 있는데도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꽃인 듯 했다. 그저 자신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꽃. 아까 본 꽃과는 매우 다른, 평범한 꽃이었다.


"슬비누나!"


멍하니 서 있었다. 테인이가 나를 불러도,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순간 부모님이 생각났다. 왜..왜 생각나는 거지? 하필 이런때에!

눈물이 뚝 하고 흘렀다. 전장 속에서 평화로이 서 있는 분홍색 꽃과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시던 부모님, 내가 쓰러뜨린 꽃과 차원종의 공격을 막고 나 대신 쓰러지던 부모님...많은 장면이 보여졌다. 어느새 눈 앞은 뿌옇게 변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왜 눈물이 흐르는 걸까.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에게 맨드란 라플레시아의 독가루가 날아왔다. 맞으면 치명적일 테지만,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피해선 안돼.


퍼억-


"슬비야!"


나를 부르는 유리의 목소리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편했다.


2024-10-24 22:28: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