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네 번째 이야기- 남겨진 자
NSanE 2015-05-31 1
"남겨진 자의 슬픔은 떠나간 사람의 슬픔보다 크다"-누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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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눈꺼풀을 힘껏 들어올려보려 하지만 희한하게도 너무 무거워서 생각만큼 잘 들려지지 않는다.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여전히 눈은 떠지지 않지만.
힘겹게 차가운 바닥위에 발을 얹는다.
차갑다.
'차가워?'
발바닥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냉기는 절대 거짓이 아니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문득 두려워져서 재빨리 주변을 더듬어본다.
핸드폰처럼 느껴지는 물건을 떨어뜨릴 뻔 하고는 바로 잡아서 잠금을 슬라이드해서 풀어본다.
익숙한 잠금해제음이 내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기억을 더듬어보며 전화를 누르고 익숙한 키보드를 눈감고 어떤 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꾸욱-, 다시 한 번 전화를 누른다.
뚜르르,뚜르르, 기본적인 착신음이 몇 번 울리더니 여성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진다.
"아, 유리니?어디야?어디에 있어?"
내가 전화한 번호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
서유리의 번호이다.
나랑 같이 임무에 나가서 마지막까지 내 옆에서 싸워준 동료이기도 하다.
그래서 막연하게 그녀도 왠지 여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전화를 건 것이다.
유리 특유의 밝고 높은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 기대를 부숴버렸다.
"여보세...어,세,세하니?"
떨리는 그 목소리는 분명 김유정 누나의 목소리다.
"어..?어?유정이 누나에요?누나가 왜 유리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요?"
문득 불안한 느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점점 그것의 영역을 넓혀간다.
"어?어...그..그건,일단 세하야 너는 어디에 있니?"
"모..모르겠어요.눈도 안 떠지고..여기가 어디에요?"
"네가 만약 아무 곳도 안 갔다면 넌 병원이야. 일단..일단 내려오겠니? 우린 1층에 있단다, 너는 5층에 있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닥을 내딛으며 일어서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가 엄청 어지럽다.기립성 저혈압. **.
한 번 휘청이고 균형을 잡은 후 더듬거리며 문을 찾고는 열고 나간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며 겨우 승강기 앞이다.
띵동, 익숙한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이제 유리를 만날 시간이야..'
부푼 마음을 한가득 껴안고 더듬거리며 1층 버튼처럼 느껴지는 것을 누르고 승강기 벽에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유리야, 몸은 괜찮아?'
'유리야, 나 어떡하지? 눈이 안 떠져.'
'유리야, 임무 실패한 걸까?'
'유리야, 너 마지막에 내가 어찌 되었는지 기억하니?'
'응?잠시만,생각해보니깐 난 마지막에 이름 없는 인형과 싸우다가..어찌 되었지?'
잔잔한 수면 위에 떨어진 돌이 큰 혼란을 일으키듯, 내 마음속에 떨어진 걱정이란 이름의 돌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띵동.
드르륵.
승강기가 열리는 소리가 난다.
더듬어가며 문을 나서고 주섬주섬 다시 핸드폰을 꺼내 어림짐작으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띠리링.띠리링.
바로 옆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리더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하자 내 얼굴이 뭔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더니 몹시 부드러운 무언가에 파묻혔다.
"세하야..세하.어떡하니..?"
"우풉-?!"
문득 유정이 누나가 자주 쓰시던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더니 누나의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울려 퍼진다.
'설마하니..나 지금..가슴에 파묻힌.....?
이게 웬 떡이라니..'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채는데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세하야...죄책감 가지지 마. 넌 잘못 없어..어른들이 잘못한 거야.."
듣기만 해도 이 사람이 울고있다는 것을 알만큼 촉촉한 목소리가 내 귀 바로 위에서 들린다. 따뜻한 숨결이 내 정수리에 닿는
것 같고. 미세하게 유정이 누나의 몸이 떨리는 것도 느껴진다.
'뭐? 죄책감? 무슨 죄책감..?'
그전에 질식사하겠다 싶어 이리저리 버둥거린다.
"푸하-,유,유,유,유정이 누나-?!"
병원의 차갑고도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유정이 누나의 몸을 밀치고 똑바로 선다.
"세하야..미안해, 미안해..."
"뭐,뭐가 미안한데요?!"
'설마.내가 눈을 평생 못쓰는거야?싫어.그런건 싫어.유리를 못본다는건..싫어.'
"..."
하지만 유정이 누나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누,누나!저 앞이 안보여요.천천히.천천히!"
뭐가 그리 급한 건지 내 목소리를 듣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날 잡아끈다.
"또 한명..죽었군."
"아직 어린아인데 말이야..쯧쯔.."
수군거리는 어른들의 목소리에 점점 사고가 얼어붙어간다.
'설마.아니겠지?아닐거야.아니여야 해.'
유정이 누나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몇 걸음을 더 때고 멈췄다.
" 저..모두들?세하가 왔어요..."
'어?모두 여깄는 건가?모두 무사한 걸까?'
"모두,여기 있어...?"
"이,세하아..."
'틀림없어.저 목소리는 이슬비야.그런데 목소리가...혹시 울었나?'
"이슬비?이슬비 맞아?어디에 있.."
"이세하아-!!!!!"
이슬비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가 내 멱살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내 뺨을 쳤다.
얼얼한 느낌이 내 얼굴에 퍼졌다. 전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느낌.
"이..이슬비..?"
'내가 왜 맞아야 해..?'
"이세하.이세하.이세하.이세하.이세하!!"
끝없이 내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목소리가 흔들리고 갈라지더니 결국엔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빼액.소리를 지르는 이슬비 때문에 귀가 아프다.
하지만 이슬비가 한 그 다음말 때문에,
나는,모든 행동을 멈췄다.
"너 때문에..흐윽.....유리가,유리가아..."
철푸덕.무언가 무게가 있는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내 하반신 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뭐?,유리가,어쨌는데..어쨌는데?"
"...동생..네 잘못이 아니야."
제이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비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떨리고 있는 목소리다.
"뭐가..요?"
"네 잘못이 아니야..이걸 명심해."
"그니깐 뭐가요?!!!!"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핀잔을 주지 않는다.
주변에선 오히려 동정의 말이 나온다.
"뭐냐고...뭐냔 말이야!!!"
"20XX년!5월....16일.오후 5시 37분. 검은양 팀의 서유리 수습 요원이 사망하였습니다.."
유정이 누나가 말한 그 말을 듣는 순간.내 머릿속이 하애졌다.
'거짓말.'
'거짓말.거짓말.'
'거짓마아아알!!!!!!!!'
"뭐,뭐라고요..?유정이 누나.왜 거짓말을 해요..?**에요?에이,저 이런거 싫어해요.응? 유리야. 유리야 어디있어?응? 빨리 나와아.나 화낸다?"
"서유리 요원은...이세하 요원의 건블레이드에 꿰뚫린 부상으로 인해..,사망,하였습니다....."
'뭐..?'
'뭐라고..?'
'뭐라고??'
'내가.내가?'
'내가 유리를?'
"세하야.유리에게 마지막..인사를 해주렴.."
내 손을 잡고선 어디론가 움직여주는 유정이 누나의 손이 엄청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게 현실이란 것을 알아갔다.
그리고 내 손이 어딘가에 얹어졌다.
부들부들 거리는 촉감이 수많이 손바닥에 풀어지고 흩어진다.
유리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느낌이다.그럼 진짜로 유리는.....
"유리..?유리야...?"
"진짜야?진짜..?"
"내가 널 죽인거야...?응...?"
"보고 싶은데, 이 눈이.이 눈꺼풀이.들어올려지지가 않아...유리야.."
'제발,부탁이야.눈 좀 떠지게 해줘..!'
부들부들.떨리는 눈꺼풀이 점점,점점 올라가더니 쩌억.
앞이 보인다.
유리의 하얀 피부는 창백해져있다.
유리의 입술은 윤기를 잃었다.
"............"
손을 들어서 유리의 뺨을 쓰다듬어본다.
죽은 자의 남겨진 몸은 인형처럼 차갑고 딱딱하다.
"유리....크흑..야.눈을 떠...눈 떠!"
유리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 유리의 입술과 눈.
"유리야,유리야아-!!"
톡톡.뺨을 두들기다가 점점 세지는 강도는 뺨을 후려치는 것처럼 느껴질 것도 같았다.
"흐아,악.흐윽..유리,유리야.....유리야아...-흐아악,아흑..."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가슴이 칼에 찔린 듯이 아프다.
불로 달군 철이 내 몸을 태우는 것처럼 아프다.
너무 아파.
눈물이 새어나와 내 뺨을 타고 흘러 유리의 뺨에 떨어진다.
"거짓...말,제발...거짓말이라고 해줘...."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눈물 섞인 말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확인해도 유리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왜...왜, 유리가 죽었어요..?"
"아까 말했다싶이 너의 무기에 찔려 죽은 거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한다.
"제..제가,제가 그런거에요..?"
"..........."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어떤 답보다도 잔인한 침묵이였다.
"제가,제가 그랬냐고요!!"
"..............."
"말좀,말좀 해요!!"
몸을 확 틀어서 유정이 누나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난 그걸 보았다.
유정이 누나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가 바로 점 같이 수축되는 것을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내 눈동자가
인간을 벗어난 것임을
내가 무책임하게 지워버린 몇 시간 동안의 기억을
피로 잔뜩 물든 손을 보면서 킥킥거리며 웃는 내 모습을
유리의 배가 내 블레이드에 관통당하는 모습을
유리가 피웅덩이에 엎어져서 죽어가는 모습을
슬비의 울부짖음을 듣고도 무시한 것을
슬비와 칼을 맞부딪힌 것을
무책임하게 쓰러진 것을
"아흐악..커흑..."
주먹으로 내 가슴을 쿵쿵 쳐봐도 이 꽉 막힌 듯 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올라온다.
손톱으로 내 가슴을 거칠게 긁어 보아도 감각은 스멀스멀 올라와서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과 함께 내 몸에 빠른 속도로 퍼지는 듯하다.
"아니야..아니야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가 한 만행을 잊으려 한다.
'최악이야. 이것 또한 잊으려 하고 있어.이세하'
"세,세하야..너 눈동자 색이..."
유정이 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다.
'무섭겠지. 내가 두렵겠지. 내가 싫겠지. 내가 밉겠지. 난, 용서받을 수 없는 놈이야.'
"기,기다려 세하야. 의사를 불러올게."
"......"
손을 들어서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고 거울을 달라고 청한다.
길게 내려온 내 머리카락에 가린 눈동자를 거울로 비추어 본다.
붉은 색의 눈동자는 염화를 머금은 듯 뜨거운 느낌을 잔뜩 머금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 색의 눈동자 한 가운데에는 열십자 모양으로 검은 색 줄이 찍찍 그어져있다.
'난.. 인간인가?'
'내가 살아있어야 하나? 난 처벌받겠지? 죽을 수 있을까?'
뚜벅 뚜벅.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뚜벅. 뚜벅. 뚝.
이슬비 앞에서 멈춘 발걸음 소리는 이제 중저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이슬비 수습요원. 유니온에서 당신을 긴급 체포합니다."
철컥. 수갑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
고개를 돌려 이슬비 쪽을 보니 이슬비는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보고만 있다.
"잠깐!그게 무슨 소리죠? 제가 관리요원인데 왜 아무 말도 없이??"
"김유정 요원님. 귀하의 관리 하에 있는 이슬비 요원은 검은양 팀의 리더로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서유리 수습요원의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말이지요."
도저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 유리를,유리를 죽인 건 나야. 근데,근데,근데 왜 아무 잘못 없는 슬비를 잡아가는 거야?!"
뚜벅.뚜벅. 선글라스를 끼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가 내 앞에 왔다.
나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듯 한 신장.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과 기품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버렸다,
문득 그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이며 내 귀 옆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요 어린 꼬맹이... 그 이유를 알려줄까? 그건 말이지? 니 엄마 빽이란다. 알겠니?"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는 몸을 다시 일으키고 슬비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내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서, 그가 내게 한 말을 곱씹었다.
'내..엄마..빽...?'
'엄마? 엄마가 관련된 거야? 엄마가 나를 책임에서부터 강제로 벗어나게 한거야?'
'아무리 엄마라도. 엄마라도-!! 이건 아니잖아...나는,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왜.왜.왜.왜.왜. 나를 무작정 보호하기만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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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내 집에 왔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 짐을 가지고 내 집에 와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우리 집.
싸늘한 공기가 나를 맞이해 준다.
부모님 방은 한번 흘겨보고 내 방으로 곧장 들어가고 짐을 던져놓고 침대위에 몸을 눕힌다.
창문을 통과하는 달빛은 내 방의 일부분을 밝게 비추었다.
"**..나 같은 놈을 비추지 말란 말이야.. 네 빛을 더럽히진 말란 말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를 주먹으로 친다.
주륵.눈물이 제어가 되지 않고 또 다시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유리..유리야아.."
내 책상 위에 있는 동료들과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발견하고 손을 뻗어 그것을 집는다.
환하게 웃는 유리.
기쁘지 않은 척하지만 웃고 있는 슬비.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내 머리를 헝클이고 있는 제이 아저씨.
뒷짐을 하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테인이.
헝클어지는 머리를 신경 쓰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유정이 누나.
"이럴 줄 알았으면..알았으면...웃을 건데..."
씁쓸한 미소를 짓으려고 하지만 안면근육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입술 안으로 침범해 혀를 적신다.
짠 맛이 느껴진다.
쓴 맛이 느껴진다.
"유리야. 유리야. 내 친구 유리야. 나는, 나는 어찌해야 해...?"
침대 밑에서 잔뜩 쭈그리고 등을 벽에 기대며 다리는 팔로 감싸 잡아당긴다. 무릎과 이마 사이에는 액자를 끼워두고 더욱 더 몸을 웅크린다.
항상 전자제품의 푸른빛이 어른거리던 소년의 방이.
오늘은 환한 만월의 빛과, 소년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채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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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다닝..처음 써서 올리는 작품인데...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