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검은 양] 싸우는 이유
가람휘 2015-05-30 2
* 1 *
“저기, 아줌마.”
“왜? 꼬맹아. 그리고 아줌마가 아니라 누나다.”
무너져 내린 시가지의 한복판. 그곳에서 한 소년이 여성에게 물었다.
“아줌마는 왜 싸우기 시작한 거예요?”
“글쎄. 그런 건 이미 진즉에 까먹었어. 하지만 지금 싸우고 있는 이유는 있지.”
소년의 질문에 여성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참고로 나는 단골 술집이 다시 문을 열게 하기 위해서!”
“아저씨한테는 안 물었어요.”
“너무해!”
여성이 소년에게 대답한 직후, 덩치 큰 사내가 다가와서 말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여서 싸우는 이유를 주제로 떠들기 시작했다.
“너는 어때? 데이비드.”
“나야 뭐,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공무원이 됐는데 위에서 시키니 하는 거죠.”
“로망이 없구만~”
“그러는 너는 어떤데?”
“나? 나는 빨리 이 싸움을 끝내고, 내 소중한 사람과 결혼을─”
“그만둬! 그거 사망플래그라고!”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던 이들이 곧, 처음 말을 꺼냈던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너는 싸우는 이유가 뭐야?”
“나는─”
* 2 *
“음….”
오랜만에 옛날 꿈을 꿨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 때, 그 사람들한테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저씨, 아저씨.”
“왜 불러? 동생. 그리고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야.”
동아리실에 모여 있는 검은양 팀. 그 곳에서 이세하가 J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왜 싸우기 시작했어요?”
“흠? 그건 또 제법 원초적인 질문이로군. 그건 왜 묻지?”
“이슬비가 그걸로 구박하잖아요. 저는 그냥 싸우는 것뿐인데.”
“그게 문제라는 거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아하하, 슬비야, 너무 그러지 마. 주름 생겨.”
“에, 정말!?”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는 동아리실.
“그래서, 아저씨는 뭘 위해 싸우는 거예요?”
“나? 글쎄. 싸우기 시작한 이유는 잊었어. 하지만 지금 싸우고 있는 이유는 알고 있지.”
싸우기 시작한 이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금 전 꿈에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었던 걸까. 솔직히 모르겠다. 아마 별 볼일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다만, 지금 싸우는 이유는 확실하다.
“너희 같은 아이들이 싸우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떠났던 전장으로 돌아왔다.
“뭐에요. 전에는 저축해 둔 돈이 다 떨어져서 라면서요.”
“아하하, 이런. 들켰나? 폼 좀 잡아보려 했는데.”
씨익 웃으며 옆구리를 찌르는 세하를 보고, 제이 또한 바보 같은 웃음을 보이며 같이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음이 동아리실 전체로 전염될 무렵, 문을 열고 김유정이 들어왔다.
“저기, 제이씨….”
“그래, 이 형님이 나설 차례로군. 약은 미리 먹어 뒀지. 가자고.”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김유정은 별로 달갑지 않은 얼굴로 제이를 불렀고, 제이는 예상 하고 있었는지, 별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아저씨 혼자 가는 거예요? 왜 우리는 안 가고요?”
“그건….”
제이가 혼자 나서려 하자. 미스틸테인이 김유정에게 물었고, 김유정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제이가 대신 대답했다.
“동생. 이건 어른의 일이야. 내게 맡겨.”
그 말을 끝으로 동아리실을 나서는 제이의 뒤를 김유정이 따라오며 말했다.
“제이씨. 정말로 괜찮겠어요? 이건….”
“걱정 마. 힘들게 손에 넣은 평화야. 저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건 차원종과의 싸움으로도 족해. 이런… 더러운 높으신 분들의 싸움에 저 아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아.”
힘들게 손에 넣은 평화다. 많은 희생이 있었고, 소중했던 이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런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하겠어. 그게 설령 그 아이들에게 경멸을 받는 일이라고 해도.”
“하지만, 저 아이들이 알게 되면 정말로 제이씨를 어떻게 생각할지…!”
“뭐, 저 아이들도 언젠가 이해 해 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버림받는 데에는 익숙해.”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나를 경멸할 것이고, 내게 등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익숙한 일이다. 그걸로 이 평화가 지속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걱정 마세요. 저는 제이씨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요.”
“하하, 그거 듬직하군.”
세상에는 여러 가지 전장이 있는 법이다.
그 아이들이 활약하는 무대, 개인적으로는 그마저도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고르라고 한다면 그쪽 전장이 그 아이들에게 어울린다.
이런 더러운 전장은, 조연의 무대는 내가 맡는다.
“이 더러운 전장은 내 대에서 끝낸다. 그 아이들이 이런 더러운 곳을 알게 하지 않겠어.”
* 3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야. 형이라고 불러.”
“아저씨는 뭘 위해 싸우는 거예요?”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질문. 그것을 지금 내가 듣고 있다.
“글쎄. 왜였을까. 이미 잊었어. 하지만 지금 싸우고 있는 이유만은 말 할 수 있지.”
그 사람이 했던 말.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말.
“너희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 사람의 의지를 잊겠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이건 딱히 그 사람을 따라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저 크다보니, 그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것 뿐.
“헤에…. 뭔가 멋지네요. 나도 나중에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그만 둬라. 이건 내 대에서 끝낼 거야. 네가 컸을 때 나처럼 될 일은 없어.”
그 사람이 내게 그랬었다. 이 더러운 세상을 내게 남겨주고 싶지 않았지만, 힘이 부족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었다.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이루겠다고.
그러니, 내 대에서 이 더러운 전장을 끝낸다. 인류의 적은 차원종 하나로도 충분하다.
“에에? 그런 게 어딨어요!”
“그보다 나처럼 될 생각이라면, 우선 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만둬. 안 그러면 너도 나중에 아저씨 소리 듣는다.”
꼬맹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검은양의 동아리실. 작동도 되지 않는 고장 난 게임기와 tv가 그대로 남아 있다.
색이 바래서 읽기 힘든 만화책도, 그 옛날의 노트북도 그대로다. 변한 것은 오로지 사람뿐.
“저기….”
“아, 왔나. 좋아, 갈 거면 빨리 가자고.”
잠시 꼬맹이의 상대를 해 주고 있자, 한 여성이 동아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그렇다고 꼬맹이들을 끌어들일 수도 없잖아. 저 애들은 이런 더러운 세계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뭔가 잔뜩 붙어있는 건 블레이드를 들어올리며, 내 전장으로 향한다.
“얼른 다녀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안 돼. 당분간 게임은 금지야.”
“에에? 너무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