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악마
판티앙 2015-05-29 0
탕, 탕탕 ────
수 년간 전장을 함께 달렸던 청각임에도, 불청객을 세례하려는 총성의 난발에는 침착성이니 냉정함이니 하는 갈피를 찾기 힘들었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걸 찾아서 뭘 하겠냐고. 전쟁에 법은 없다. 따라서 질서도 없다. 어쩌면 인간이 최대로 만들어낸 엔트로피─무질서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과열된 총을 아래로 내렸다. 포대자루는 생각보다 엄폐용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 쿨럭. 차라리 항복이라도…"
항복? 용인할 수 없는 이야기지.
"시끄러워요 아저씨, 사람은 하나같이 늙으면 약해진다니깐?"
투덜거리듯 말하며 새 탄창을 끼워넣는다.
엄폐물 위로 위협사격을 해댔지만, 위협은 위협일 뿐이다. 중과부적, 사면초가… 최악이다 정말. 용병이란 직업은── 혹은 전쟁이라는 시츄에이션은.
"…그러게, 그냥 버려두지 그랬나."
남자가 부여잡은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0.5cm도 안되는 납작한 쇳덩어리가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하다는 것. 촌철살인이라니, 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이젠 그 6분의 1만 있어도 충분해.
"아저씨 빼내오면 돈을 준다잖아요, 정말…."
땀이라거나, 피, 그런 체액들로 젖어버린 머리칼이 시야를 가리는 동시에 피부를 간질인다. 다만 이제 이마를 훔칠 힘도 없어. 그럴 시간에 방아쇠 몇 번이라도 더 당기는 게 현명하다.
"돈이 그렇게 중요했나…."
"그러게요, 내가 미쳤지."
마음같아서 느낌표를 찍고 싶었지만, 총성이냐 시계(視界)가 희미해지는 시점인지라 망설이는 탓에 애매하게 온점이 찍히고 말았다.
"……보아하니 남편도, 혹은 아들딸도 없지?"
"저도 시집 가고 싶거든요?!"
의도와 달리, 다른 문장에 힘을 주고 만 셈이 되었다. 피로해진 몸이, 포대자루 뒤로 느슨하게 늘어져버린다.
"신이 있다면…"
"에? 뭐라고요?"
"… 신이 자네를 지옥에 보내겠나, 천국에 보내겠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저는 천국에 가고 싶은데요."
"…하하."
그는 기침을 두어번 뱉는다.
"자네는 날 살리려고 했지. 그 의도는 분명 좋은거겠지만──
탕, 탕탕. 지나가는 총성들.
──자네가 그로 기인해서… 쿨럭! 훨씬 더 많은 수를 죽인다면, 사람 살리고도 지옥 가는 꼴이 아닌가?"
저는 크리스찬도, 무슬림도 아닌데요. 그래서 알라나 야훼는 믿지 않아요. 라고 평소라면 대답했겠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럴 의지가 들지 않았다.
지옥이라고? 완전 억울하잖아─── 나 해본거라곤 돈 벌려고 총 쏜거밖에 없는데. 잘 하도록, 그게 그나마 재밌도록 태어났는데 어떡하란 말인지. 애시당초 신이란 게 있다면 그런 재능을 부여하는 건 그가 아닌가. 신님, 그럼 저는 재능을 살려서 지옥을 가는건가요. 그런 죄목도 있나요.
아, 모르겠다. 과자나 먹고싶어. 허니버터맛 꼬낄콘이라거나, 짭쪼름한 향신료들이 발려진 문어집이라거나, 소파에 누워서 TV의 시시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도중에 누에띠네를 먹으면서 살이나 찌우고싶다. 아, 살 찌면 안 되지.
"───그러니까, 자네도 천국 가고싶으면 일찍 여기서 죽어버리는 게 어떤가."
억울하잖아. 완전.
"자기합리화잖아, 아저씨."
"어쩌겠나. 쿨럭!… 악마는 보기 싫으니 말일세."
저편에서 멀리 들려왔던 총성들이, 어느샌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가오는 발자국이라거나, 대화소리… 영어도 간신한 그녀에게 아랍어가 제대로 번역될 리는 없었지만. 분명 진격하라 같은 내용이었을거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천국에 가기 위해 일찍 죽으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딴 식으로 살기 위해서 이런 재능이나 줄 리가.
차라리 클로저로 태어나게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하느님. 어쨌건 저는 오늘 죽을 생각이 없거든요. 만약 오늘 제가 죽게된다면 적어도 불쌍하게는 생각해서 지옥은 보내지 말아주세요. 연옥 정도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안 죽어, 못 죽어.
"…시끄러."
시험적으로 한 발을 엄폐물 위로 격발함과 동시에, 그녀는 유탄 발사기를 집어든다.
"나."
철컥.
지옥에 가기 싫다라. 만약 지옥에 갈 때를 적응해 둬야겠지.
좋아, 그렇다면. 악마 보기도 적응할 겸, 지옥을 내 집처럼 쓸 연습도 할 겸───── 악마가 되어보자고.
"─────죽기 싫다고! 알라후아아아악바르────!"
미리 던져두었던 연막탄의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시에, 그녀가 묵직하게 들어올린 유탄 발사기는 굉음을 몇 번이고 터뜨린다.
"송은이 경정님은, 특경대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요원복을 입은 채민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송은이에게 묻는다. 여느때처럼 서류를 넘기는 와중에, 던지는 질문.
"글쎄, 그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웃으며 답한다.
"더 죽이면, 악마도 감당 못 할 지옥에 갈 것 같더라!"
"…그게 뭡니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늘그막 중2병 같은겁니까?"
"흐."
언제나처럼 비스킷을 입안 가득 털어넣은 그녀는, 손으로 V자를 갖다대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