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세.와. 리메이크 14화(상)
최대777글자 2015-05-28 0
reader side 허시혁
하늘을 완전히 가린 것 같은 나뭇잎들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는 햇빛을 맞으며 숲속을 걸어갔다. 향기도 좋고 그늘덕에 덥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우와, 시혁아! 방금 봤어? 플라밍고가 날개 폈던거.”
“오, 방금 그건 되게 멋졌다. 사진기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에게 말을 걸어온 서유리가 최대한 안 보이는 각도에서 플라밍고가 날개를 폈다 접은 것을 보았다.
‘끙... 괜히 의식되서 불편하네...’
지금 그녀는 수영복을 입은 상태이다. 물론 위에는 후드 같은 걸 하나 걸치고 있으니 상관 없지만 난 괜히 그녀를 인식하고 있다.
“...시혁아.”
“어, 왜?”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진정 각오를 다지고 그쪽을 보았다. 어째서인지 다리나 기세로 눈이 먼저 갔지만 재빨리 얼굴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넌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지?”
“그렇지.”
“그곳에서는 어떻게 지냈어? 위상력을 얻기 전이었을 테니까 평범했을 듯한데.”
“...”
그러고보니 이곳에 적응하다보니 원래 세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원래 그곳에서 나는 검도를 전문적으로 배워 그쪽 진로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원래는 검도를 했어. 전국대회에서 상도 탔었고.”
“우와, 진짜?!”
“응. 사실 너도 그렇지?”
“...어라?”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네가 싸우는 걸 몇 번 봐왔으니까, 겉으로 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본 베이스는 자세가 바로 잡혀있었어. 검을 잡는 방법이나 초식, 공격법이나 스텝, 오랫동안 연습한 티가 나던데?”
“우와아... 너도 검도를 진짜 진지하게 했나보네... 솔직히 처음 마구잡이식으로 싸우는 걸 봤을 때는 걍 좀 이상한 애다 싶었는데...”
“너 의외로 남을 상처주는 타입이라는 거 모르지?”
“엑?”
“됐어, 어차피 상을 탔어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
나도 모르게 감정이 약간 실려서 깔린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문제는, 난 지금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려서 약간 화가 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위상력이 발현돼버렸어. 그 덕에 상대는 붕 떠서 날라갔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그쪽에서는 위상력이 뭔지도 몰랐으니까 결국 이겼지만 그 이후부터 사람들은 날 괴물취급하더라.”
“괴물취급이라니...?”
그녀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동그란 눈이 약간 귀엽게 느껴졌지만 이런 얘기를 하며 그걸 신경쓸 수 있을 리가 있는가.
“그 후로 도장에서는 쫓겨나고, 친구들도 나를 피하고, 결국 외톨이가 되어버렸어. 이제 인생따위 틀려먹었다고 생각하며 드러누웠을 때 그 검이 보였지.”
“그 검이라면... 항상 들고다니던?”
“응. 부모님은 집에 대대로 내려져온다던 가보라던데... 얼마전에 그것도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어. 그 검의 출처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 검은 죄가 없잖아. 먼지는 제때 털어주자, 라는 식으로 검을 뽑았는데...”
“뽑았는데...?”
그리고 활짝 웃어보였다.
“차원문이 열렸어. 그 차원문에 휘말려서 이곳으로 떨어진 거고. 그리고 너흴 만났지.”
“그렇구나...”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오, 저거 뭐지?!”
순간 눈에 들어온 초록색의 둥그런 구체, 검은색의 구불구불한 무늬, 틀림없는 수박!!!이긴 한데...
“왜 나무위에 있는 거지?”
“그야 숨겨놓는다고 했으니 높은 위치에 있으면 못 볼 거라고 생각한 거 아냐?”
“일단 가까이 가보도록 할까.”
말 끝나기 무섭게 바로 도약하여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나뭇가지가 굵어서 그런지 내가 올라가도 끄떡도 하질 않아 약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수박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망설여졌다.
[‘진짜’ 수박들을 찾는게 목표입니다~]
‘크윽.... 왜 이제와서 그 말이 신경쓰이는 거지...’
“시혁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금방 가지고 내려갈... 응?”
‘방금 무언가가 콰악, 하고 내 손을 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
.
.
reader side 문현철
“과연... 이것 때문에 보기만 해도 열이 뻗치는 거였군...”
방금 조각내버린 수박을 보며 중얼거렸다. 꽤 먹기 좋게 조각난 부분을 주워서 잘 익은 부분을 한 입 베어 물자 여타 수박과 다를 게 없는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났다.
“....맛은 좋군.”
.
.
.
reader side 이세하
“...”
“...”
‘어색해...!! 아니, 왜 처음보는 애랑 짝이 된 거냐고... 그것도 성별도 다른 애랑!!!!’
그렇다, 우리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조를 짰고 내 번호는 1이었다. 넘버원이니까 꽤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저기.... 벌쳐스 소속이랬지?”
“응.”
내 질문에 바로 긍정으로 답한다. 대답은 하는 걸 보니 날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는 타입인가...
“어쩌다가 벌쳐스에 들어가게 된 거야?”
“..........”
“아냐, 미안.”
그녀가 대답하길 꺼려하자 바로 질문을 취소해버렸다.
“저기.”
“응?!”
그녀가 갑자기 날 부르자 그 쪽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저기”라는 말은 말을 걸기 위해서 쓴 게 아니라 진짜로 저 쪽에 있던 무언가를 가리킨 것이었다.
“저건.... 수박....?”
“찾은 것 같아.”
“우와... 저걸 여기서 발견했어? 시력 쩐다...”
그러고는 바로 사이킥 무브를 사용해서 수박에 가까이 다가갔다.
“음... 일단 하나 찾았... 어라, 왜 그래?”
“...뭔가 이상해.”
그녀의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수박이 있는 쪽을 봤을 때 드디어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헐... 설마...”
.
.
.
reader side 제이
“후우.... 시혁이 녀석... 전력으로 던질 줄이야...”
아직도 격한 통증이 느껴지는 허리를 손으로 살살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제이 씨, 괜찮으세요?”
“어, 유정씨 얼굴 보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네.”
“농담은 그만두시고, 일단 이것부터 봐주세요.”
유정씨가 내게 관리요원용 클로저 패드를 내밀자 그것을 받고 내용을 보고는 약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잠깐, 이거 설마!”
“이 상황과 조금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확실하다, 그 독일국가 총 사령관이라는 사람의 목적은... 설마...
.
.
.
reader side 이슬비
“아무리 열심히 찾아봐도... 전혀 보이지를 않는데요?”
“그러게... 찾아보려고 해도 수박이랑 나뭇잎은 거의 같은 색이라 눈에 띄지도 않네...”
나는 나와 키가8cm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 잘못보면 여자애처럼 보일 남자아이인 미스틸테인과 같이 숲을 걸어다니며 수박을 찾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어라, 슬비누나! 수박이라는 거 초록색 바탕에 검고 구불구불한 줄무늬가 있는 좀 커다란 열매죠?”
“응.”
“저거 아니예요?”
“어, 의외로 쉽게 찾았다?”
“그런데 누나...”
“응?”
“수박이라는 열매에는 이빨도 있어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