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실리마나이트

반세련 2015-05-28 3

“흐으... 읏”

 

 

덜덜 떨리는 다리. 겁 먹은걸까, 나. ㅡ바보같아. 여기에 혼자가겠다고 한건 나인데,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걸까. 벽에 기댄체 자신을 나무라며 제게 천천히 걸어오는 소녀를 응시하였다. 벚꽃을 연상케하는 분홍빛의 머리칼은 이미 소녀의 선혈로 얼룩진지 오래. 하늘을 연상케하는 하늘색의 눈동자는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내세우던 신념따위는 흐릿해진지 오래였으리라. 자신의 분홍빛 머리칼에 검은색을 뿌린듯한 탁한 색. 붉은 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까지.

 

소녀는 저랑 똑 닮아 있었다.

 

 

“……무서워?”

 

 

소녀가 그리 물었다.

 

입을 꾹 다문체 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아주 만약 긍정의 대답을 한다면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제게 새로운 힘을 권할테니까. 여기서 죽는 것은 자신이 용납하지 못했다. 저 밖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일어나 저 소녀의 무릎을 꿇게하고,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는, 쿵쿵 뛰는 심장은 이미 자신이 그녀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 않던가. 그녀를 이길 수 없다ㅡ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머리는 애써 그것을 부정해, 다가가라 일러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입술을 짓이기며 주먹을 쥐어, 제 다리를 몇번이고 쳤다. 왜 말을 듣지 않는지, 자신은 이렇게 약한 존재였는지. 한탄하며 그렇게 다리를 몇번이고 치자, 그제서야 떨림이 멈추었다.

 

 

“나는, 너를 쓰러뜨릴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가겠어”

 

 

임무 수행 전, 몇번이고 외쳤던 말을 다시 입에 담아보았다. 적을 섬멸하겠다고. 이것은 하나의 다짐이었다. 어떤 적에게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이었으며, 무사히 돌아가겠다는 하나의 약속이었다. 소녀는 한 발자국 딛어, 팔을 뻗는다. 플라잉 대거가 염동력에 의해 띄워져 제 주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굳은 의지를 표해내는 눈동자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녀가 물었다.

 

 

“어째서 거부하는거지? 우리는 여왕이 될 수 있어. 옛 동료들과는 다르게, 차원종들은 말도 잘 듣는다구? 귀엽기도 하고 말야”

 

“...그런건 필요없어. 말을 잘 듣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나의 소중한 동료니까ㅡ, 나는 굴하지 않을거야.”

 

 

소녀의 말에 고개를 젓고서는 제 의사를 표해내었다. 그래, 굴하면 안 돼. 허나 흔들리는 마음은 어찌하는가. 싶어 착잡한 마음에 눈을 감으니, 문득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란.

 

 

 

 

 

 

 

 

 

 

 

 

 

 

 

 

 

 

 

 

“슬비야! 짜잔!!!”

 

 

척 봐도 얇아보이는 잡지책 하나를 들고와, 소녀의 옆에 앉는 흑발의 소녀. 무슨 일이냐 묻자, 이 잡지에 탄생석이 나와 있더라며 생글생글 웃었더랜다. 탄생석? 의문을 표한 저를 보고선, 조곤조곤 탄생석의 의미를 알려주는 그녀.

 

 

“그런 의미해서! 슬비 너는 생일이 언제였더라?”

 

“응? 아, 내 생일은 4월 30일이야”

 

우와, 4월 마지막 날이네? 그리 말하며 책을 넘기다 찾았다며 한줄 한줄 천천히 보다 여기있다며 자신에게 잡지책을 들이대는 소녀. 종이 향이 무척이나 강했다.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제 동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실리마나이트 라는 탄생석.

 

 

“으음, 실리마나이트의 뜻은 경고구나.”

 

 

경고? …뭐, 재미로 보는거니까. 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겨들은 소녀가 다시 화면을 응시하였다.

 

 

 

 

 

 

 

 

 

 

 

 

 

 

 

 

 

 

“...실리마나이트”

 

 

문득 떠오른 기억에 작게 읊조렸다. 그 보석의 뜻은 경고였다. 그래, 경고. 자신에게는 여러가지 의미의 경고라고 볼 수 있었으리라. 목숨이 위태롭다는 경고,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반드시 언젠가, 동료들이 저들의 손에 의해 다칠 수 있다는 경고.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이 낳은 저 아이. 그런 나약함에 대한 경고였다. 그런 자신의 중얼거림에 뭐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를 노려보았으니.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줄거야”

 

“하아?”

 

 

제 나약함에게 그리 꾸짖었다. 알 수 없는 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드디어 머리가 이상해진거야? 라며 묻는 소녀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채 뛰어나갔다. 이 한 번에 모든게 달려 있었다. 마지막 남은 체력까지 짜내어, 그녀의 앞에 다가섰을즈음, 소녀가 외쳤다.

 

 

“내 앞에서, 사라져버려!”

 

 

ㅡ결전기 위성 낙하. 거대한 폭발음이 고막을 때리고, 제 눈앞에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을 즈음 몸에 힘이 빠져 지면에 몸이 닿았다. 서서히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끝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으리라. 이제 쉬어도 된다는 듯한, 그런 나른함에 이내 눈을 감았다.

 

 

 

 

 

 

 

 

 

 

 

 

 

 

 

 

 

 

 

“슬비야!”

 

 

폭발음에 달려온 사람들. 불에 탄 그을음이 이곳저곳에 남은 곳은 가관이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은채 정신을 놓은 소녀의 꼴도 말은 아니었으리라. 그 모습에 더욱 더 발걸음을 재촉해 다가가는 여성의 눈동자는 한 없이 흔들렸다. 그 뒤에서 흑발의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한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으리라.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소녀는 눈을 떴다. 걱정했다며 소녀에게 안기자, 환자는 가만히 내버려둬, 서유리. 라는 짧은 말에 볼을 부풀리다 이내 품에서 놔주는 유리라 불린 소녀였다. 평소에 하던 게임기는 주머니에 넣어둔채, 몸은 어떻냐 묻는 소년을 바라보다ㅡ 꽤 호전되었다 답하였으니.

 

 

“……빨리 낫기나해, 며칠째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낸듯, 그래. 라며 짧은 한마디를 뱉어내며 옅은 미소를 담아내었다. 창밖에는 이미 꽃은 져, 파릇파릇한 잎만 남겨진 벚나무를 바라보는 소녀. 기억속에 아로새겨진 그 벚꽃아래, 거닐던 우리는 소풍따위가 아닌 차원종을 섬멸하기 위해 갔었던 것을 기억한다.

 

 

“..저기, 있잖아. 이세하”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이, 응? 이라며 저를 쳐다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가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가 들릴만큼,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이 상황이 끝나면, 우리 다 같이 소풍가지 않을래..?”

 

 

그리 말하자, 답이 없던 소년이 뒷통수를 긁적이며 그러던지ㅡ 라는 애매모호한 답을 꺼내놓자, 무슨 이야기를 했냐며 껴드는 어린 소년을 껴안은 소녀. 그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답하는 소년에게 작은 웃음을 보였다. 창문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

 

 

 

 

 

                                                     「우리들의 뒤늦은 5월의 봄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2024-10-24 22:27:4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