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Only one Troth (전 Troth) 단편
라이코사루 2014-12-21 3
옛날 옛적에.
하늘에 구멍이 생기며.
그들은 어느 순간 세상에서 나타났습니다.
무한한 힘과. 초월적인 능력. 그리고 파괴본능.
진보의 끝을 달리고 있던 인간의 기술도 그들 앞에선 무력했습니다.
세계는 점점, 부서져갔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눈에는 '그것'들이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던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괴물'의 시선 한번에 가족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괴물'의 포효 한번에 친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괴물'의 몸짓 한번에 고향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결국 소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외로운 나머지 소녀는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 소년이 울고있는 소녀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왜 울고있는거야?"
"괴물들이 무서워. 흐흑. 엄마랑 아빠랑 친구들... 모두 괴물들이 흑..."
소녀는 너무 운 나머지 퉁퉁 부어버린 눈을 비비며 자신에게 말을 건 소년을 쳐다보았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에 매마른 입술, 남루한 옷차림. 단 한가지를 제외한다면 소년의 모습은 길거리에 나와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통 아이들과 달리.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듯한, 끝이 보이지 않는 소년의 눈에 소녀는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년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소녀에게 속삭이듯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야. 그러니까 무서워 할 필요 없지. 진짜 괴물은 저기에 있어."
그러나 어찌된 영문일까요. 소년이 가르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주변과 다르게 아직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멋진 모양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소녀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소녀의 기억이 맞다면 저곳은 분명 괴물들을 처치하는 용사님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용사님들을 보고 괴물이라니. 방금 보여준 소년의 행동을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소녀가 당황하자 소년이 소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너희 부모님과 친구를 죽인 진짜 괴물을 보고싶어?"
순간적으로 소녀의 눈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은 꺼지지 않는 불처럼 보였습니다.
모든것을 태울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꽃.
소녀는 소년의 질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소녀의 한쪽 손을 잡고 아까의 건물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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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제말 듣고 계세요?"
"어? 으응? 아하하. 미안 미안. 그래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러니까, 저희 팀 구성 치고는 임무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지 않아요?"
"확실히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겠네. 나도 상관한테 계속 컴플레인은 넣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는..."
"그런가요... 그래도 저희들 알아주는 건 언니밖에 없네요. 그럼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애써 명랑한 척을 하며 멀어져가는 슬비의 얼굴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유정은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피지컬과 정신력을 가져도 몇날 며칠동안 광대한
강남 일대를 일일이 조사하고 다니며 차원종을 격퇴하는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벅찬 일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험하게 굴리고 있으니...
"야! 이세하! 게임 적당히 좀 안해?"
"아아, 뭔 참견이래. 내가 게임을 하던 말던. 너나 잘 하시죠."
"얘, 얘들아. 싸우지 말자. 응?"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는 유정의 귀에 멀리서 세하와 슬비가 다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유리의 중재로 세하와 슬비의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유정은 아이들의 체력이 슬슬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정은 정찰을 하러 경계선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딘가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아... 이럴려고 한게 아닌데..."
18년 전에 일어났던 차원전쟁. 그것을 막기 위해 유니온에서 새롭게 추진된 대 차원종 결전 병기 '클로저' 조기 육성 계획 '검은 양'. 유니온의 사무원이었던 유정은 예정대로라면 유니온의 부장급으로 승진해야 했지만 올해 있던 인사이동에서 '검은 양'계획의 관리요원으로 배정되었다.
"저기 유정씨, 유니온측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잠깐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아, 은이씨? 네 지금 갈게요."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은이가 큰 소리로 유정을 불렀다. 유니온측에서 연락?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니온에서 유정에게 연락할 만한 일이 없었다.
유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이가 있는 막사로 걸어갔다.
"네, '검은 양'관리요원 김유정 지금 받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유정.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과거에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목소리. 유정은 목소리를 듣고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너... 설마?"
"지금은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현 유니온의 이사 직책을 맡고 있죠."
"이사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한참 전에 유니온의 이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양'의 총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수화기를 든 유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까지 명령을 전달했던 상관이 바로 너라는 거야?"
"유정. 호칭과 어투가 부적절한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사님이 지금까지 모든 일을 이사님이 관리했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유정, 당신을 관리요원으로 추천한 것도 저였습니다."
"혹시 '검은 양'팀의 지원 요청을 묵살한 것도 이사님의 결정 사항입니까?"
"...그렇습니다."
데이비드의 대답을 들은 유정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죽은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뻔뻔하게 얼굴을 다시 들이미는 데이비드의 목소리를 들으니 유정의 목 바로 위까지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검은 양'맴버들의 피로한 모습을 방금 전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던 그녀였기에, 유정은 데이비드에 대한 감정을 더 이상 추스를 수 없었다. 유정이 크게 한 소리를 하려고 입을 연 순간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로, 내일까지 추가 인원을 한명 배치해 드리겠습니다."
"그것 참 좋네요... 라고 말할 줄 아셨습니까? 추가 인원 한명? 이사님 지금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으신 듯 한데..."
"상황이라,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유정. 당신이 보고 있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군요."
"그렇다면 이사님이 보기에 어린 애들을 저렇게 굴리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타깝지만 유정. 저희 유니온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요는 비즈니스라는것이죠. 알겠습니까? 처신을 잘 해주길 바라겠습니다."
비즈니스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유정은 입술을 꼭 다물며 말했다.
"변했군요... 이사님."
"...세상에 변하지 않는건 없습니다만. 유정도, 저도, 세상도 말입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에선 '뚜-뚜-뚜-'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세치 혀만 놀릴줄 알지.."
"꺅! 유정씨 진정해요 진정, 릴렉-스. 후-하-후-하."
유정이 수화기를 거칠게 바닥에 내팽게치자 송은이가 화들짝 놀라며. 유정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은이의 호흡법을 몇번 따라하자 유정의 머리도 차차 식어가며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방금 통화한 사람과의 일도 일이었지만, 유정의 머릿속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상관의 말로 이루어 볼때 더 이상 '검은 양'의 지원이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로 맹세한 유정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지금까지 맹세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던가.
그러나 지금. 유정은 그저 한명의 나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뭐가 괴물이긴 괴물이야..."
"유정씨, 뭐라구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정은 은이에게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최근에 다시 시작된 차원문의 흔들림으로 나오기 시작한 차원종때문에 반쯤 파괴된 강남 시내의 모습은 처참했다.
시내를 보던 유정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 사이로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손으로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오늘따라 날씨는 이렇게 좋은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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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모두 건강들 하신가 쿨럭... 오늘부로 '검은 양'팀에 배정된 'J'라고 한다네. 뭐어- 잘들...쿨럭. 부탁한다는 이 말이지."
J는 간단히 인삿말을 마치고 본인 앞에 있는 3명의 청중들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동고동락을 하게 될 '검은 양'의 동료들에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눈에 풀려있는 상태로 아까전부터 게임기를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있는 애송이.
뭐가 이상한지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분홍머리 소녀.
"와아~!" 하고 소리를 내며 왠지 반짝반짝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검은 생머리의 소녀.
뭐랄까... 굉장한 조합이구만 이거. 라고 J는 생각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검은 양'의 리더를 맡고 있는 이슬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J씨."
"아아, 너가 슬비구나. 쿨럭쿨럭... 듣던데로 귀엽게 생겼구나. 쿨럭, 그리고 나한테는 말 놔. 편하게 가자고 편하게 앞으로 팀원이잖냐. 쿨럭."
"저어, 몸이 많이 않좋으신 것 같은데..."
"쿨럭쿨럭... 뭐어, 내가 저혈압 포함 약 20가지의 병을 몸에 달곤 살지만... 내 걱정은 말고 너희들이야말로 무리하지나 마라. 쿨럭."
"그, 그런가요?"
"그럼, 자고로 건강은 아침에서부터 오는 법이다. 그 말 명심하고. 쿨럭. 건강이 최고야, 늙어서 아프면 얼마나 슬픈데 말이지. 컥! 쿨럭쿨럭."
J가 기침을 하고 가렸던 손을 때자, 그의 손바닥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저거 저거 피 아니에요?"
"아하하! 아저씨 되게 웃긴다!"
J가 연신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내자, 유리가 배를 잡아가며 웃기 시작했다.
"야야야, 웃지 말라고? 사람은 말이야, 언제 훅 가는지 모르는 법이야... 쿨럭. 젊을 때 미리미리 옥체보존하란말이다... 선배로써의 충고다."
"그, 그래 유리야 그만 웃어. 실례잖아... 여기 휴지로 닦으세요."
"쿨럭. 고맙다."
이렇게 왁자한 와중에도 꼿꼿이 자기 할 일을 하는 인간.
J는 1mm의 움직임도 없이-손가락은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아까와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게임기를 들고 있는 애송이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쿨럭, 저 녀석은 이름이 뭐냐?"
"아하하, 쟤는 이세하라고 해 아저씨."
"하아... 저희 팀의 뭐랄까... 저기 있는 먼지덩어리 같은 녀석이에요."
슬비가 경멸스러운 눈으로 세하를 쳐다보고 유리가 "아하하!"웃으면서 세하의 등을 팡팡 소리나게 두들겼지만,
세하는 놀랍게도 구도의 자세로 균형을 유지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동안 세하를 바라보던 J는 잠시 후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나머지에게 물어보았다.
"쿨럭... 저 세하라는 녀석한테 어머니가 있었냐?"
"예...?"
"헤에...?"
J의 질문에 슬비와 유리는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차차- 실수야 실수. 쿨럭. 세하의 어머니가 혹시 클로저냐고 묻고 싶었다."
"네에. 분명 세하의 어머니가 차원전쟁에 참여하셨던 클로저라고 하더군요. 아마 성함이..."
"아- 됐어 됐어. 그래. 그분의 아들이라고... 인과라는건 묘하군 그래. 쿨럭."
"혹시 아시는 사이세요?"
"질긴 인연이랄까... 쿨럭. 그나저나 저 녀석좀 말려야 하지 않겠냐."
J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세하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으아아아아! 궤적 올-클리어! 플탐 124시간... 장하다 이세하!"
플탐 124시간이면, 124시간동안 저 게임을 했다는 건가?
J가 놀람도 잠시. 벌겋게 상기된 얼굴과 충혈된 눈동자.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세하가 얼마나 게임에 집중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슬비와 유리에겐 흔한 일상이라는 듯, 세하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뿐이었다.
"이야, 얘들아 이번 게임은 좀...? 어라? 아저씬 누구?"
"일단 J라고 한단다. 쿨럭. '검은 양'의 보충인원이랄까."
"그래? J형이라 불러도 되지?"
"그려... 쿨럭."
"그럼 J형, '검은 양'소속 기념으로 피방가서 전설의 리그나 한판 돌릴까?"
"야! 이세하! **거 아냐? 세상에 그렇게 게임을 해 놓고, 게임을 하고싶어?"
슬비가 기가 찼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세하에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하하, 이슬비, 나한테 뭐라 하기 전에 너가 할 일이나 제대로 하시지?"
"뭐어? 게임밖에 모르는 바보가 뭐라는거야."
"당신만 하겠습니까. '무능력한'리더님."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가소롭다는 듯한 세하의 한마디.
그 말에 지금까지 팔짱을 끼며 침착하게 있었던 슬비가 평정을 잃었는지 이마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너, 그 말. 취소해. 당장."
"하지만, 거절한다."
"이세하... 계속 그러면 가만 안둘거야."
"어~ 그래 그래. 들어와봐, 내가 여자라고 봐줄지 알았냐?"
계속되는 세하의 비아냥에 슬비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허리에 매달린 칼집에서 단검을 뽑아 양손에 쥐었다.
그러자 세하도 슬비를 노려보며 의자 옆에 놓여져 있던 검을 들어올렸다.
일촉**의 상황. 세하와 슬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가 '검은 양'기지의 실내를 무겁게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 둘은 서로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듯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
섣불리 끼어들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J는 함부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지..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에.. 아저씨가 어떻게 좀 해봐."
안절부절 못하며 J쪽으로 다가온 유리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배치 첫날부터 무슨 날벼락이냐... 쿨럭. 살벌하구만..."
아직까지 세하와 슬비는 무기를 치켜든 채 여전히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슬비, 처음부터 사람 까니보는 듯한 눈이 맘에 안들었어."
"...흥."
그 순간.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세하와 슬비는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슬비!!!"
"이세하!!!"
푸른 섬광과, 붉은 섬광. 두 빛무리가 한 가운데에 정확히 부딪히는 순간 그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흘러나왔다.
"으아악!... 이게 무슨 일이야... 쿨럭. 유리야 괜찮니?"
"까.. 깜짝이야. 아저씨야 말로 괜찮아?"
"뭐, 나야... 역시 젊음이란 좋구만...쿨럭."
방금 전의 충돌로 인해 칠판이고, 탁자고, 다 날라가며 기지 안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충격파로 인해 구석까지 밀려넘어진 J와 유리.
그 둘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뒤쪽으로 날라간 탁자 뒤에 몸을 숨기며 슬비와 세하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검이 부딪힐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주변에 흩뿌려지는 스파크.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쾌속의 검격이 1초에 몇번씩이나 서로 합을 이루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쿨럭."
"그래 아저씨. 빨리 말려보라니까."
"미안하지만 난 자살하는 취미는 없거든. 쿨럭."
말은 태평하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선글라스 아래에 숨어있는 J의 눈은 냉철하게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다!
"크윽!"
J가 둘 사이에 들어가려던 찰나, 슬비의 공격에 튕겨저 나간 세하의 검의 J의 머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 벽에 꽃히며 '덜덜덜'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벽에 꽃힌 세하의 검과 달리 슬비의 단검은 세하의 턱 바로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격한 싸움에 지쳤는지 슬비는 숨을 몰아쉬며 세하에게 중얼거렸다.
"하아, 하아... 끝났네."
"쳇, 빌어먹을."
"이세하, 아까 말한거 사과해."
슬비가 세하의 목에서 단검을 거두며 칼집에 집어넣었다.
"미안...이라고 할 줄 알았냐... 어? 어어? 어디갔지?"
세하가 사과하는 척 하며 게임기를 가지고 도망가려 했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까 세하가 조심스럽게 올려둔 게임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세하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없어! 없어! 없다고! 어디 간거지? 어디?"
광기가 서린 세하의 행동에 놀랐는지 모두들 말을 잃고 말았다.
J야 오늘 처음 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슬비와 유리에게도 지금 세하의 행동은 생소한 것이었다.
"아... 아... 안돼..."
몇 분간 열심히 뒤진 결과 세하는 게임기를 찾아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이미 산산조각나 있었다.
세하는 부서진 게임기를 잠시 멍하니 쳐다보더니 다리가 풀렸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 저기. 세하야?"
슬비가 세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세하는 격하게 놀라며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손바닥을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멍청이 주제에 슬비님께 덤빈거 한번만 봐주세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엄마..."
"갑자기 왜, 왜 그래?"
갑작스럽게 보이는 세하의 비정상적인 모습에 슬비는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J옆에 서 있던 유리마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허둥대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둘과 달리 J는 침착해 보였다.
"극심한 자아비판과 우울증세. 불안정한 공황상태, 위축. 어떤 것에 대한 집착과 공격적인 성향...쿨럭. 전형적인 PTSD증상이군. 몰랐나?"
"PTSD...? 그게 뭔가요."
세하 앞에 서 있던 슬비가 물었다.
"그래, 어떤 일에 트라우마가 생겨 나타나는 정신질환의 일종이지...쿨럭.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게임이 집착하던것도 이해가 가는구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 뭔가 경험했겠지. 무의식에 남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말이야."
"그렇다면, 세하는...!"
"녀석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쿨럭."
"그럼 아저씨, 우린 어떻게 해야 돼?"
유리가 J를 보며 말했다.
"글쌔..."
J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여전히 땅바닥에 고개를 박은 채 중얼거리고 있는 세하에게 다가갔다.
"슬비야 잠깐만 옆으로."
"아, 네에."
슬비가 옆으로 비껴서고 J가 세하의 앞에 있게 되었다.
J는 무릎을 꿇고 앉으며 떨고 있는 세하의 손을 감싸쥐었다.
"세하야 나를 쳐다봐라."
그리고 J가 손으로 세하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가 잘못한 건 없다니까? 쿨럭..."
J가 세하를 달래주자, 세하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J를 쳐다보았다.
"J...J형. 흐흑..."
"그래, 그래..."
세하가 J의 품 속에서 울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혼절하듯 쓰러졌다.
"엿차. 후, 일단 안심이군."
"세하 죽은거에요?"
유리가 물었다.
"아니... 잠깐 잠재운 것 뿐이야... 콜록."
J가 세하를 들어올려 소파 위에 올려놓자 지금까지 잠자코 서 있던 슬비가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저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렇게 말하는 슬비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J는 잠시 슬비를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잠든 세하를 보며 말했다.
"글쌔다... 너는 그냥 걱정되서 그랬던게 아니었나?"
슬비는 J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따, 딱히 걱정되서 그런건 아니에요! 그냥 리더로써..."
"뭐, 아무튼... 아이고 허리야. 나이를 먹으니 원."
J는 허리가 아픈지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던 의자를 하나 주어와 위에 걸터앉으며 말을 계속했다.
"비단, 너 때문이라는건 아니란 말이지... 쿨럭."
"..."
"나야 오늘 처음 와서 이 팀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한 팀인 이상 모두에게 책임이 있겠지. 유리도 슬비 너도. 물론 세하한테도 말이야."
"그런가요..."
"세하에게 PTSD가 있었다는건 몰랐니?"
J의 물음에 슬비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세하는 저희에게 말을 잘 하지 않아요... 난 리더로써 그런것도 모르고... 그저..."
"뭐, 이런 갈등이 나쁜것만은 아니야. 서로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이지. 곯은 상처를 냅두면 언젠가 썩는것처럼 한번씩 이렇게 풀어줘야해."
"혹시 J선배도 이런 일을 겪은적이 있나요?"
"많았지... 샐 수 없을정도로.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어... 쿨럭. 원채 개성들이 강해서 말이야. 하하."
"그럼 서로 미워했나요?"
"미워했냐고? 아니, 전혀. 우리는 서로 좋아했고 아꼈지. 정말 환상적인 팀이었어. 정말로..."
"..."
"너는 세하가 죽을정도로 싫냐?"
슬비는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굉장히 어렵지...쿨럭. 하지만 감정을 묵혀두면, 그것은 도리어 독이 되버린다."
"그, 그런적 없어요."
"어어? 슬비야 왜 이렇게 얼굴이 빨게?"
"더, 더워서 그래! 아~ 너무 덥다."
슬비가 얼굴을 붉히며 손부채로 파닥파닥하고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J는 옛날 자신의 팀원들을 다시 보는것만 같았다.
"얘들아."
"왜? 아저씨?"
"네, 선배님."
J의 부름에 각기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싸울때도, 미울때도 많겠지...쿨럭.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나중에 가서 웃을 수 있는게 바로... 팀이고 친구다. 녀석을 잘 보살펴줘야지."
"응! 명심할게."
"네,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유정씨?"
언제부터 있었는지 유정이 칠판 뒤에서 쨘 하고 나타났다.
"아하하, 언제부터 눈치챈거죠? J씨."
"뭐어, 방금 온거같진 않다고만 말해두죠...쿨럭."
"과연... 대단하시네요."
"언니! 지금까지 다 보고있었어요?"
슬비의 일침에 유정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아, 뭐랄까... 들어갈 타이밍을 놓쳤달까... 아하하."
유정이 슬비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있는데, 옆에서 세하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J형..."
"듣고 있었냐?"
"네... 뭐..."
그러자 슬비는 유정에게 잔소리를 하는것을 그만두고 세하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저기 이세하."
"...?"
"미...안..."
"아... 아니야,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말 안해서..."
세하의 고개가 점점 숙여졌다.
"야 이세하!"
"에?"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평소처럼 해봐... 이... 멍청아..."
세하와 슬비의 눈가에 물망이 차오르며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앞으론... 흐끅, 힘든게 있으면, 꼭 말하라고. 우린 친구잖아."
"알았어..."
J와 유정은 그 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잘 됐구만. 아, 그러고 보니 유정씨. 데이비드한테서 받은게 있습니다...쿨럭."
"데이비드 이사요?"
"네."
"뭐죠?"
J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유정에게 건내주었다.
-친애하는 유정.
유정. 오랜만입니다.
저번에 전화로 그렇게 말한건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쪽 회선이 도청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죽은줄 알았던 제가 어떻게 살아남아서 유니온의 이사자리까지 차지했는지 의문이 많을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설명하기에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설명드리겠습니다.
유정. 옛날에 저희가 했던 약속은 아직 기억하고 있겠죠.
'다시 우리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라는 것 말입니다.
현재 유니온이 두 파벌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쪽은 과거 유니온을 지배해온 구 세력파.
다른 한쪽은 젊은 유니온 간부들을 위시한 혁신파 입니다.
저는 일단 '검은 양'프로잭트와 반대편에 있는 파벌. 즉, 구 세력파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들어가면서, 구 세력파. 즉, 괴물의 실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차원전쟁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이 한 일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전 이 괴물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입 속으로 직접 들어갔습니다.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붕괴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유정. 더이상의 지원은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검은 양'은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팀원들을 대충 뽑은 게 아닙니다.
저번에 당신이 올린 결과 보고서를 보니 생각보다 저조하더군요.
왜 그런걸까요. 팀워크라도 부족한 걸까요?
유정.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겠습니다.
서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뒤에 웃으며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아직 그때를 잊지 않은 데이비드가.
편지를 다 읽은 유정의 입에서 미소가 점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쿨럭... 거, 뭐. 좋은 내용이라도 적혀 있습니까?"
"네에, '검은 양'의 미래가 보였달까요."
"그거 좋군요. 월급이나 제때 들어오면 좋겠습니다만. 요즘 몸이 영 않좋아서..."
"저기 J씨."
"예에."
유정은 J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감사합니다."
"허허, 뭘요."
"J씨도, 아시죠?"
"뭐, 그렇게 됐습니다만."
유정은 종이쪽지를 다시 J에게 돌려주었다.
"저는 잠깐 바빠질 것 같습니다. 제가 해야할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이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유정씨."
J와 유정은 악수를 나누었다.
"얘들아, 나는 잠깐 일 때문에 유니온에 가야되거든. J씨랑 은이씨가 잘 해줄테니까 그때까지 잘 하고 있어 알겠지?"
"녜이 녜이, 잘 다녀오셔."
"네, 언니 잘 다녀오세요."
"언니, 기념품 사와야돼!"
각기 다른 세 가지의 반응들.
아이들을, 아니 모두를 위해서라도 유정은 발을 재촉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유정이 저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때 모두들 어딘가 한두군데 마음에 상처를 입고, 눈은 죽어있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아이들이 상처받고 싸워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유정은 나아갔다.
상처는 겪은 자만이 안다. 18년 전. 부모님과 친구와 고향을 잃은 유정이었기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상처는 되물림되선 안된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지켜야 한다.
그게 유정이 할 일이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데이비드의 의도를 알았으니 남은건...
유정이 기지 밖으로 나가자 맑게 갠.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그것을 보고 저 높은 하늘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게 하겠노라, 라고 유정은 생각했다.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네...좋다..."
-Only one Truth/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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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고지로 80장 정도 나오는군요. 여러분, 긴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은 양'팀의 우정과, 아이들이 꼭 전쟁에 나서야 하는가... 그리고 유정(즉, 어른들)에 초점을 맞춰서 썼는데요.
제 부족한 필력으로 이야기의 주제가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됐을지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