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녀의 생일이었을 때는
삼촌 2015-05-25 1
무미건조한 흑백의 세상이 1년 내내 지속되었다가,
"그래, 오늘이 대장이 생일이 틀림없으니까. 준비해온 선물 잊지 말라고. 소년."
단 하루, 분홍빛 색채가 소년의 세계를 찬란하게 물들어오는 날이 있었다.
"으,아... 제가 하, 할 수 있을까요?"
소년에게서 예전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청년은 일부러 힘주어 대답한다.
"물론이지. 아니, 남자라면 할 수 없어 보이는 순간이라도 도전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실패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담아 청년은 소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대장이라면, 알다시피 둔감하기 짝이 없어 대놓고 말하지 않는 이상 이 선물의 의미도 모를 가능성이 크니까. ...알겠지?"
"으..어...네. 고..고마워요, 제이 아저씨!"
형이라고 부르라는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소년은 달려간다.
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분홍빛 색채의 중심을 향해.
소녀는 선물을 든 소년이 아닌 다른 소년과 함께 있었다.
"야, 임마 어딜 갔다 오는거야? 찾았잖아."
소년과 친구인 다른 소년은 걱정했다는 어조를 담아 쏘아붙인다.
"그래, 석봉아. 차원종한테 납치당한건 아닌지 걱정했었어."
"아...거,걱정해줘서 고마워. 슬비야. 그, 그래서 말인데..."
소년은 소녀를 눈 앞에 두자 평소처럼 숨이 막혀온다.
그 때 다른 소년이 끼어든다.
"응? 뒤의 그건 뭐야. 선물이야?"
눈치 없는 소년의 말에 소녀도 선물의 존재를 알아챈다.
"그러네. 선물 상자야. 석봉아. 선물 받은거야?"
한 순간에 계획이 무너진 소년은 그저 어버버버거릴 뿐이다.
또 다시 다른 소년이 끼어든다.
"어휴, 정말 눈치가 없어서는. 오늘 네 생일이잖아. 아까 유리한테 선물 받아놓곤 까먹은거야?"
"어, 어?"
소녀는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던 듯 눈이 동그레졌다. 소년은 허둥대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보곤, 소녀가 정말 귀엽다고 생각해버린다.
"정말이야, 석봉아?"
"으,응. ....새, 생일 축하해. 슬비야. 이거, 선물이야."
결국 어정쩡하게 되었지만, 소년은 만족한다.
깜짝 선물을 받아 기쁜 미소를 짓는 소녀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까.
"흠,흠. 그렇지. 석봉이꺼 받는 김에 내것도 받아라. 딱히 신경 쓴건 아니고. 그...내 생일때도 선물 받으려면 먼저 줘야하니까."
소년이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다른 소년이 이번에도 끼어들었다.
다른 소년은 헛기침을 하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작은 선물을 소녀에게 던진다.
"이세하. 뭐야 이건?"
"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지난번에 유리랑 얘기한거 우연히 들은게 기억나서. 거 석봉이꺼랑 비교해봐도 대충인거 티나잖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다른 소년은 쑥쓰러운듯 고개를 돌리며 소년과 소녀에게서 멀어진다.
세하답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실소하던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
소녀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같은 미소지만
다른 미소를
"...슬비야. 나도 알바 때문에 가볼게"
"응. 알았어. 선물 정말로 고마워 석봉아. 역시 넌 내 좋은..."
"그,그럼 안녕!"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 소년은 몸을 돌려 뛰어간다.
일년에 한번, 무미건조한 세상에 분홍빛의 색채를 칠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분홍빛에게도 물들이고픈 세상이 있었음을, 소년은 몰랐던 때가 있었다.